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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 산행
날짜-2011.10.16 일요일 맑음
인원-고고산,느낌표!
도상거리-23.8 km
시간-11시간
코스-자운대-금병산-적오산-화암사거리-우성이산-원촌삼거리-당산-우술산-회덕정수장-계족산-계족산성-비래동고인돌
시간별코스-자운대(07:30)공군대아파트(08:30)노루봉(09:15)옥련봉(10:20)적오산(12:00)화암사거리(12:30)우성이산도룡정(14:10)원촌교(15:20)회덕정수장(16:20)계족산(17:00)계족산성(17:40)비래동고인돌(18:30)
금병산에서 계족산까지 성혈이란 이야기 길이 있습니다. 비록 언제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고 새겼는지 문헌으로 남은 기록이 전혀 없어 알수는 없지만 각기 다른 하나 하나의 성혈들을 보면서 그 속에 간절히 담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재 해석 해보는 이야기 길입니다. 또한 이길은 문화재가 산재한 문화유산 답사길로도 손색이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성혈 이야기를 떠나 볼까요 비단병풍 12폭 금병산 자락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자운대 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운대는 특수 지역일 뿐만 아니라 골프장내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어 사전 탐방 예약이 필수 적입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약에 맞춰 자운대 골프장에 도착 탐방 수속을 마치고 이야기의 첫 출발점 자운대 고인돌 에 도착하니 많은 군인 가족들이 삼삼오오 필드를 누비고 파란 하늘과 맞대어 12폭 금병산 자락 밑으로 자리 잡은 골프장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 시킵니다. 골프장 가운데 자리잡은 두개의 무덤돌 위에는 무수한 이야기 만큼이나 많은 성혈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인돌 안내석 과 고인돌 그리고 금병산 이 노오랗게 물들어 가는 잔디와 아름답게 펼쳐 집니다.
고인돌 유적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해 있는데, 그 중 60%에 이르는 3만 여기의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밀집해 있고 특히 선사시대 조상들이 남겨 놓은 고창, 화순, 강화 지석묘는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군요 그래도 고인돌은 그 시대의 권력이 있고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무덤돌 입니다.
위 고인돌은 2002년 골프장 건설 당시 깨어진 채로 발견되고 겨묻거리 순 우리말이 더 어렵죠 즉 부장유물을 찾을수가 없어 조성 연대는 알수 없지만 주위 유적연대와 비교 5~6세기경의 고인돌 이라고 추정 한답니다.그래도 무척이나 오래된 무덤돌이죠 사진에서 보듯이 양쪽에 무수한 홈이 파여져 있어 마치 곰보돌 이 된듯싶습니다.
본격적인 성혈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성혈(性穴) 이란 암반 표면에 홈처럼 파인 구멍 으로 민간신앙의 기원이 담긴 표식으로 선사시대부터 현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것으로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전해 내려오는 문헌 자료가 전혀 없을 뿐더러 또한 한반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유럽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향한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 이라는 군요 그러구 보면 참 대단한 것이지요....
신앙적 기원이 담긴 표식이라 했습니다. 다산 풍요 가 주목적 이고 그외 별자리 까지도 확대 해석되는 성혈도 있다는 군요 여러분은 위 두개의 무덤돌 위에 135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는데 과연 무엇을 나타낼려고 어떤 염원이 있길레 저 무수한 성혈들이 나타났을까요? 단지 분명한 것은 한사람의 기원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성혈임에는 분명한것 같습니다. 과연 저 무수한 성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요...???
결론은 낼수 없지만 성혈을 만들고 새긴 사람들은 힘없고 가진것 없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고 새겼지 않나 싶네요 아주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말입니다. 자운대 고인돌 성혈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돌널무덤입니다. 우리말도 어렵죠 석관묘인데 훼손되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여 조성해 놓은 것이라 군요...나이스 샷..!!! 낭낭한 캐디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2번째 성혈 금병산 성혈을 찾아 떠납니다.
금병산 성혈을 찾아 떠나기전 들여야 하는곳이 이곳 수운교 입니다. 조상들이 남겨 놓은 문화재가 있거든요
사인여천 사람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참좋은 말이죠...종교를 떠나서 말입니다.
동학농민 혁명,녹두 장군 전봉준,3.1 만세운동 손병희 하면 떠오르는 것 동학 그 동학 수운교 인데 신기하게도 여느 절 모양을 하고 있네요...암튼 명당 한폭의 그림입니다.
문화재 도솔천 즉 천단입니다.경복궁을 중건한 도편수 최원식이 지은 것이라네요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 문화재로 봐주시면 됩니다.
문화재 석종입니다. 두드리면 부위마다 다른 소리가 납니다.쇠북 소리 맑은 종소리 전설로는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면 저절로 운다네요...어디서 많이 듯던 전설과 같지요...^*^
참 아름답죠..문화재 다운 면모가 있는지요..? 예술적 가치를 눈으로 확인 한다음 본격적인 금병산 성혈을 향해 갑니다.
금병산 성혈 들머리는 공군대학 아파트에 있는 금병산 안내도 에서 시작이 됩니다.
20 분쯤 올라가면 우측너럭 바위에 성혈이 새겨져 있는것을 발견 할수가 있습니다. 한나로 된 바위위에 2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외진 산중턱에 있다는 것이 신기 하기도 합니다만 예전 이곳 윗쪽에 가난한 오두막이 있었습니다. 두 부부는 나무뿌리를 채취해 무쇠솥을 닦는 솔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을 이어가고,어린 아들은 먼 학교길을 걸어서 다녀야만 했습니다. 등하교 길 에서 동네 아이들 한테 거지 쌔끼라며 무수한 돌 팔매질을 당하며 다녔다고 합니다. 이너럭 바위 성혈은 이 두 부부의 한 맺힌 눈물 자국이 아 닐까요...
21개의 성혈을 보고 있노라면 가난한 오두막에 살던 두 부부가 생각 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구 보면 자운대 고인돌 성혈과 이곳 금병산 성혈 차이가 수천년이 되는 셈이네요...많은 것을 생각 하게 합니다. 많지 않은 바위 성혈임에도 말입니다. 자~~ 일어서야죠 3 번째 적오산 성혈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숨가쁘게 올라오면 노루봉 능선상에 도착 되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이정표의 금병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병산 정상입니다.자운대 전체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죠 적오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노루봉을 출발해 금병산 제1봉 옥련봉에 도착했습니다. 12폭 병풍산 금병산 을 비유 12봉 봉우리 마다 정상 석을 세워놓았는데 정상에 세우지 않고 정상 바로 밑에 세워 놓아 찾아 보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제12봉 창덕봉을 시작으로 대법 현덕 감찰 출세 운수 연화 옥단 도덕 공덕 일광 제1봉 옥련봉입니다. 봉이름이 어쩐지 종교 냄새가 좀 나지요...^*^ 경사지를 내려가 적오산 성혈을 향해 갑니다.
제1봉 옥련봉에서 바라본 자운대 모습입니다. 자운대 조망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금병산과 적오산을 연결하는 서낭당 고개 입니다. 즉 숯골과 덕진골을 연결 하던 마을 옛고개입니다.
드디어 적오산 적오산성 서문지에 도착 합니다. 작은 적오산 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 적오산 이야기를 풀어 볼까요...^*^
산성 서문지을 들어서면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이 운동시설 있는 곳 작은 바위에 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산성 안에 7개의 성혈입니다. 떠오르는 것이 있죠 북두 칠성 입니다. 그러고 보니 국자 모양 비습합니다.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성혈이라 어마 어마 하지 않습니까..??
예로부터 북두칠성은 항해 할 때 중심별로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이지 않습니까 제일 뒤쪽이 천추(天樞)·두번째 큰 성혈이 천선(天璇)· 순서되로 천기(天璣)·천권(天權)·옥형(玉衡)·개양(開陽)· 제일 앞쪽이 요광(搖光)이라 불리며 한국과 중국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신성시 여겨졌던 별자리 아닙니까 이와같은 큰 의미를 나타내는 성혈이 전쟁터 산성안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귀한 성혈을 뒤로 하고 성벽 으로 내려 갑니다.
적오산성 북벽모습입니다. 백제시대 산성이라니 참 오랜 세월을 지켜온 성벽입니다.그 시대 백성들의 노고를 보는듯 합니다.. 적오산 정상 말바위를 향해 올라 갑니다.
적오산 정상 말 바위입니다. 이 말바위에는 적오산을 노래하는 멋진 무명씨 한시가 적혀 있습니다.
저는 하두 많이 외어서 눈을 감으면 저절로 외워집니다. 한번 감상 해 보실레요...^*^
赤鰲隨溪 <적오수계>
芳里春風 <방리춘풍>
靑柳連城 <청류연성>
係馬於枝 <계마어지>
적오산 계곡 따라
방현마을엔
봄바람이 불어오고
푸른 버드나무는
성을 따라 줄지어 섰는데
말은 나무가지에 매어있구나
작자 미상의 시이기에 더욱 빛이 나는것 같습니다. 잘 감상 하셨습니까..산성 우물지를 향해 내려 갑니다.
적오산성 안에 있는 우물지 입니다. 생명수 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른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 물이 있기에 생명을 연장 할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찾는이 없는 하찮은 조그마한 우물에 지나지 않지만..전쟁중에는 제일 소중한 우물이었겠지요...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4 번째 성혈이 있는 우성이산 으로 향해 내려 갑니다.
적오산 정상 입니다. 폐초소와 잡풀만이 무성합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적오산성 입니다.
적오산 날머리 입니다.
우성이산 성혈이 있는 우성이산 가는 길입니다. 화암사거리에서 좌측 으로 진행 합니다. 행단보도로 조심 조심 걸어 갑니다.
우성이산 들머리부터는 대덕사이언스 길과 같이 성혈길이 이어집니다. 자 같이 가실까요...^*^
우성이산 들머리 입니다.
폐 초소가 화봉산 휴게소로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대덕 터널 윗쪽쯤 너럭 바위가 성혈이 있는 곳입니다.
좌측으로 4개의 성혈이 있는데 서쪽 계룡산 전체 모습이 조망 되는 곳입니다. 지는 저녁 노을 속의 계룡산과 성혈이 깊은 관계가 성립이 될듯합니다. 과연 계룡산 속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어떤 염원을 기리며 이 4개의 성혈을 새겼을까요..오늘 하루도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냈음을 감사 하며 새겼을 까요..?? 우측 성혈을 봅니다.
우측 바위에는 1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동쪽으로는 계족산이 조망됩니다. 해뜨는 계족산과 성혈입니다. 동트는 계족산을 보며 무슨 소망을 담아 이 바위에 많은 성혈을 새겼을 까요 좌측 성혈보다는 이곳 성혈이 더 간절함이 더 강하지 않을 까요 지는 저녁 노을 보다 동트는 아침이 더 신성함이 더 강하지 않을까요 귀한 자손하나 점지해 달라고....^*^
많은 생각을 뒤로 하고 도룡정으로 향합니다.
도령정입니다. 대덕사이언스 길은 우측으로 내려가고 우성이산 2 번째 성혈은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도령정을 출발 우성이산 끝머리 지점 갑천 조망이 좋은 조망지 바위위에 2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로 인해 조망이 가렸지만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곳입니다 앞으론 맑은 갑천이 흐르고 뒤에는 찬바람 막아주는 우성이산이 평풍처럼 둘러 쳐져 있는 마을,한폭의 그림같은 마을을 볼수 있는 이 조망바위에 새겨진 성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많지 않은 2개의 성혈입니다. 평화롭기만한 마을임에도 어떤 간절함이 있어 이곳에 성혈을 새겼을까요..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며 이 성혈을 만들었을까요...말이 없는 성혈을 뒤로 하고 당산 5 번째 성혈을 향해 내려 갑니다.
우성이산 날머리 입니다.
원촌동 방향으로 진행하며..솔로먼로 파크 앞도 지나 갑니다.
원촌동 숭현 서원에 도착 합니다.
숭현서원은 정광필·김정·송인수.이시직. 송시영.김장생·송준길·송시열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문화재 숭현서원을 둘러보고 원촌교를 건너 당산 성혈로 향합니다.
숭현서원에서 바라본 계족산 입니다. 저멀리 정상에도 성혈이 있으니 가야 할 길입니다.
정면 원촌교를 건너 주유소 뒷편 배배골로 들어 가야 합니다.
원촌교를 건너며 바라본 대전의 젖줄 갑천 입니다.신탄진 아파트가 보이네요
배배골 입니다. 봉고차 가 있고 슈퍼 간판 정면 바위에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배바위 오르기전 바위 전면을 깍아 세운 현감 불망비 입니다.
적어보면 縣監 韓公聖輔 沒世不忘碑 (현감 한공성보 몰세불망비)라 새겨 놓았습니다.일반 공덕비는 비문을 세워 공덕을 기리는 것이 보통인에 얼마나 고마움이 컷으면 바위에 새겼을까요..진짜 영원이 잊지못할 불망비가 된것 같습니다.
불망비 윗쪽 너럭 바위에 성혈이 새겨져 있는데 우측 6개 좌측 14 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배바위 앞으론 갑천이 흐르는 서원진 나루터 입니다. 나루터가 성혈 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배가 들어오고 떠나고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기다림이 존재하는 나루터에는 많은 사연이 존재하는 곳이겠지요..과거보러 떠난 자식 가족생계를 위해 떠난 낭군님 애절한 기다림의 증표가 이 배바위 성혈로 남지 않았을까요 그 옛날 돗배가 들어오고 떠나는 장면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곳입니다. 이곳 당산 배바위 성혈을 감상하고 회덕 향교를 거쳐 계족산 성혈로 향합니다.
배바위 성혈을 뒤로 당산 정상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 오면 백송 아파트가 나오고 백송아파트 단지를 내려와 경부선 교각밑을 지나 오르면 회덕 향교에 도착 합니다.
가야할 계족산 입니다.
경부선 통로를 지나 가야 합니다.
회덕 향교입니다.
회덕 향교는 세종때 건립되었고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교육기관입니다. 회덕 향교를 둘러보고 뒷산 우술산을 넘어 골프연습장 을 지나 회덕 정수장 고개에 도착 계족산을 오름니다.
우술산성이 있는 우술산 골프연습장 옆을 통과
차가 나오는 회덕정수장 방향으로 오르면 계족산 정상에 도착 합니다.
드디어 계족산 정상에 도착합니다.정상 바위에 3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는데 여느 성혈과 느낌이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간결하게 3개 그리고 약간의 각도가 기울어져 있고 간격이 일정합니다. 비록 3개의 성혈이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3 태성을 상징 할수도 있고 천.지.인을 표현 하고자 했을수도 있고..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보고 있을라 치면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성혈입니다. 계족산 성혈을 뒤로 계족산성 성혈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본 계족 산성입니다. 저 산성 입구에도 성혈이 있습니다.
저녁 노을이 비치는 계족산성입니다. 두 부부 발걸음이 바쁨니다.
원상태의 모습니 더 정감이 갑니다. 많은 노력이 눈에 보입니다.
계족산성 성혈입니다. 성문밖 바위에 새겨진 성혈 은 무슨 사연이 저리도 많길레 많은 성혈이 새겨져 있을까요
50 여개 넘는 성혈 하나 하나에는 전쟁터에 나간 자식걱정이 그대로 이 바위에 새겨진것은 아닐까요. 제발 무사하기만 해다오..애절히 기도 하는 어미의 모습이 그려 집니다.날이 어두워 집니다. 발걸음을 재촉 비래동 고인돌 성혈로 향합니다.
절고개를 지나 비래사에 도착 하고 옥류각과 바위에 새겨진 초연물외를 뒤로 하고 내려오면 옛 비래골 입구에 2기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고인돌 로서는 금강유역 최초의 예로서 자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고인돌 이라고 하네요..안내판 좌측 고인돌 위에 32개 우측 고인돌 위에는 2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좌측 고인돌 위에 32 개의 적지 않은 성혈이 새겨져 있는데 어떤 염원이 담겨져 있을까요..더욱이 남의 무덤돌 위에서 어떤 목적을 두고 말없는 흔적을 저리 많이 남겼을까요..?
21개의 성혈이 새겨진 우측 고인돌 입니다. 21 개의 성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요...? 상상의 이야기 세계로 인도하는 성혈길 발걸음을 이곳 비래동 고인돌 성혈위에서 모든 성혈 이야기를 갈무리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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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래도 동행이 있어 좋은 자료 만들수 있서서 고맙웠습니다.
잘 보고, 잘 느끼고 갑니다~
성혈을 다듬은 조상님들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일반 사람들의 산행처럼 가벼운 산행이 아닌 역사공부와 지식 공유를 할수있는 이런 귀한 산행 자료들이 많아서 자주 함께하고싶은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공부를 하게되네요.. 많은 정보 감사합니다..
성혈을 찾아 떠나는 산행 아마 우리 대전이 유일한 테마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산행이죠...
다양한 성혈모양들을 잘보고가며 감사합니다.성혈모양에따른 뜻을 아시는분이 있으면 뎃글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다른 성혈 뜻을 아시분 있으면 귀중한 뎃글이 될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도 신기할뿐이며. 느낌표님과 함께하신 고고산님의 대전사랑 존경스럽습니다.
하루 왼 종일 60리길을 걷고 올라도 피곤이 없으신가?
진산님 반갑습니다. 힘이 들었나 입술이 불으텃습니다. 그래도 이야기 많은 60리 길 이었습니다.
화봉산 초소 바위 성혈은 묻혀서 안보인다는것인지요...비래골 마을에 2개의 고인돌이 더 있다는 이야기죠..얕은 봉우리라 함은 아파트와 고속도로 사이 봉우리 말씀 하시는 것인지..배배골 불망비 철책 공사를 대장님이 하셨군요..ㅎㅎ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탐사 해 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