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려거든
본문 : 창세기 19장 12-22절
『지난 주에 많은 비가 오는 바람에 충청권과 남부지역에 피해가 심했습니다. 산사태와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집과 농작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다시 장마비가 몰려오고 있다니 큰일입니다.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고, 속히 복구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피해를 당한 이재민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길 소망해 봅니다. 특별히 이번 장마 중에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 궁평2 지하차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강뚝이 터져 물이 지하도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지하도를 지나던 17대의 차량이 침수되어 1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텔레비전에서 ‘한 청년이 지하차도를 들어갔다가 앞에서 밀려들어오는 물을 보고, 긴급하게 차를 돌려 역주행하여 지하도를 빠져나옴으로 살았다’는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함께 동영상을 보겠습니다.
궁평 지하차도 역주행 (2분 39초) |
여러분은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이 청년이 지체하지 않고, 차를 돌려 그곳을 빠져 나왔기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청년이 “사장님. 차를 돌려. 물 차.” 위험성을 알렸는데도 그냥 그곳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살 수 있었는데도 그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청년이 ‘물 차. 차 돌려’ 말을 했을 때, 같이 돌려서 나왔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지하도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고, 또는 지하도에 멈춰 있는 차가 있었습니다. 결국 순식간에 물이 차 14명이 죽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에 청년의 말을 들었더라면, 지체 없이 그곳을 빠져 나왔더라면, 안타까운 죽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롯의 가정이 그랬는지 모릅니다.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과 사위들, 총 여섯 명이 소돔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창세기 19장 24-2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쉽게 말하면, ‘강뚝이 무너져 궁평 지하차도에 물이 가득 차는 것처럼,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리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영상에 본 청년이 “사장님. 차를 돌려. 물 차.” 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오늘 본문에도 천사들이 나타나 이들에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사가 가르쳐 준 대로 하기만 하면, 저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예를 들어 참 죄송한데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여 오늘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살려거든’ 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요, 반대로 말하면, ‘분명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렵니까? 하여 오늘 말씀 ‘살려거든’ 말씀을 잘 들으셔서 영과 혼과 환경이 살아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살려거든 “떠나야” 합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궁평 지하차도가 물이 찬 이유가 교량작업을 하기 위하여 있던 제방을 허물고, 낮게 임시로 쌓았던 제방이 무너졌기 때문이랍니다. 또 비가 많이 오면 지대가 낮은 지하도에 물이 찬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날 비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원래 그곳이 위험한 지역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차들이 그곳을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하고, 또한 차들도 그곳으로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도로를 막지 않았고, 또 차들이 그리로 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다녔어도 문제가 없었고, 그날 아침까지도 이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들은 그곳이 전혀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비가 옴으로 미송 강의 뚝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6만여 톤의 물이 낮은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청년과 많은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지하차도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물이 밀려들어 오는 바람에 17대의 차량이 물에 잠기게 되었고, 1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청년이 긴급하게 차를 돌려 그곳을 떠났기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청년이 그곳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림과 같이 물속에 갇혀 죽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시 롯이 사는 소돔 땅이 위험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악행을 하고, 남자와 남자가 사랑을 하는 동성애가 판을 치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런 그곳을 하나님께서 심판하려는 계획을 가지시고, 천사들을 보내어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함께 12절을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자. 롯의 가족이 있는 곳은 소돔 성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다시 말해, ‘그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곳은 죄로 가득 찬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곧 멸망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롯의 가족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요.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멸망하는 곳, 죄악된 곳, 어두움의 세상을 떠나야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14절에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 16절에선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말이 나오는데, 이는 ‘빨리 그곳을 떠나야 하는데, 저들은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남의 안타까운 사고를 예를 들려서 죄송한데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래 위험한 곳, 사고가 날 곳을 가지 말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갔다면 속히 그곳을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상에서 어떤 장면이 나왔나요?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있는 차가 있었습니다. 남들은 지금 살겠다고 후진을 하고 역주행을 해서라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더라는 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747번 급행버스가 그곳에서 침수가 되었는데, 원래 이 길로 다니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길로 갔다고 사고가 난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저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오늘 우리도 위험한 곳, 사고가 날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특히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실족케 하는 곳, 우리의 영혼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곳을 멀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설령 피치 못해 가지 말아야 할 곳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속히 그곳을 떠나야 할 줄 믿습니다. 『뉴스를 보는데, 순식간에 지하차도 안으로 물이 오자, 차들이 움직이질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버스도, 트럭도 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처음에는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물이 바퀴 높이 이상 차자, 시동이 꺼졌습니다. 버스운전수가 차 유리창을 깨어 사람들을 내 보냈지만, 이미 물이 허리 높이로 찼기에 살아난 사람이 적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위험한 곳에서 오래 머물다가 보면, 나중에는 빠져 나올 수도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여 저는 오늘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길 소원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이처럼 불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나야 할 곳을 떠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려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이 다 살게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살려거든 “농담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동영상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청년이 급히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한 것이 있었습니다. 들어오는 차들을 향해 “사장님. 차를 돌려. 물 차.” 소리를 친 것입니다. 혹시 못 들을까봐 ‘빵 빵’ 크락선을 눌러 위험성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을 따라 그곳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살았지요. 문제는 뭐에요? 청년이 “사장님. 차를 돌려. 물 차.” 소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들이 몰라서 그랬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 전날까지 비가 많이 왔습니다. 홍수주의보도 내려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눈으로 많은 차들이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돌려 역주행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어야 하는데, ‘설마’ 하는 생각,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하는 안일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명 살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저들은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롯의 사위들이 그랬습니다. 우리 함께 14절을 읽겠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자. ‘이곳을 떠나라’ 하자, 사위들이 어떻게 했다고요? “농담으로 여겼더라.” 여기서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키참헤크’라고 하는데, ‘비웃다, 우습게 여기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장인이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도,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하며 장인을 비웃었다는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긴급하게 살기 위해 역주행을 하면서 소리치는 청년의 소리가 장난같이 들릴까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다짜고짜 “사장님. 차를 돌려. 물 차.” 했을까요? 저는 당시 롯도 그랬다고 생각을 합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직접 천사들에게 말을 들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유황과 불이 쏟아져 멸망하게 된다는데, 딸과 사위들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자. 시간이 없으니 빨리 이곳을 나가자. 하나님께서 이곳을 심판하신데” 재촉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믿었어야지요. 더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했다면, 당연히 장인을 따라나셨어야지요. 그런데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인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긴 사위들은 15절 이하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이는 저들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으니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그저 농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내가 네가 행한 것으로 심판하리라.” 말씀하시는 데도, “설마? 아직도 멀었는데…” 하며 가볍게 듣지 않으신가요? 자 여러분! 저 청년이 직접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에 다급하게 말하는 거에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기에 이렇게 진실하게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마음으로 다급하게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농담으로, 먼 훗날의 이야기로 가볍게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든지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다급하게 외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말씀일지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말씀을 주실지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여러분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여 저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이 없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과 혼과 환경이 살아가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살려거든 “산으로 도망하여야” 합니다.
우리 함께 17절을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자 여기서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 다시 말해서 멸망함을 면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에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입니다. 여기서 ‘산으로’라는 말은 ‘저들이 가야 할 목표’를 말하고,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라는 말은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목표가 잘못 정해져서도 안 된다’는 것과 ‘목표가 잘 설정되었더라도 살아가는 방법이 잘못되면 안 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저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일까요? ‘산’입니다. 오늘날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롯이 간 ‘소알’이란 성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돔이란 세상에선 우리가 살 수 없기에 그곳을 떠나 소알이라는 교회에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산, 즉 천국에 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산까지 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여 천국에 모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아본다’는 말은 ‘뒤의 것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끊어 버릴 것을 끊고, 버릴 것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자꾸 세상에, 또는 과거에 매이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로 롯의 아내는 어떠했습니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자 여러분! 롯의 아내가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빈손으로 정신없이 나오다가 보니, 아까운 것입니다. “저 집을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마련한 것인데? 보석과 신용카드라도 가지고 올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돌아본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툭 하면 “옛날 애굽에서 가마 솥 곁에서 고기와 외와 마늘을 먹던 때가 좋았다”며 회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데, 여전히 옛날 종살이 하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여 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도 그 옛날 세상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옛날의 습관이나, 생각, 죄악 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왕년에 이런 사람이었는데…, 나도 금식기도를 하였고, 나도 한때는 충성을 하여 목사님이 알아주었던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지 못하면서 자꾸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자꾸 과거에 매여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세상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6절에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롯의 마음 속에는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세상이 너무 좋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절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까지도 예수 믿기 전의 삶이 더 좋아 보이는 분이 계십니까? 옛날 과거가 생각나며, 아직도 세상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십니까? 우리는 이것을 돌파해야 합니다. 뒤 돌아보다가는 롯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이제 잊을 것은 잊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뒤돌아보지 말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까지 부지런히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가 있는데 뭐에요? “머물지 말아야”입니다. 여기서 ‘머물지 말라’는 말은 ‘중간에 멈추지 말라’는 말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계속 목적지까지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안수집사님이 계십니다. 젊었을 때 성도들이 본을 받을 정도로 믿음이 좋았고, 교회에 큰일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점점 교회를 멀리하더니, 나중에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목사님이 만나 조언도 하고, 기도도 해주셨건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이는 소리로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도 있고, ‘사업에 망해 저 지방으로 내려갔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전에 아무리 열심히 주의 일을 하였어도, 지금 멈춰 있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인지를 몰라도, 믿음으로 또 기도로 그것을 극복했었어야지요. 중단하면, 포기하면, 그동안의 수고가 다 헛되는 것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천국에 도착하는 그때까지 신앙생활의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소돔을 떠나왔다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때 나의 모습이 어떠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세 번째 주는 교훈은 ‘우리가 천국까지 가야 진정 사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요,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 돌아보거나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가야 할 목표는 어디입니까? 혹시 돈 많이 버는 것, 출세하는 것, 자식 잘되는 것은 아니시지요? 하나님 계신 천국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천국에 가는 날까지 우리는 세상을 뒤돌아보거나, 이 땅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해하면 안됩니다. 일하지도 말고, 가정도 돌보지 말고 교회에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어찌 될까요? 하여 천국에 가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제가 궁평 지하차도 영상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도 심판의 날이 갑자기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어떤 말이 될까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세상사는 재미에 살다가 갑자기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는다면, 어찌 되겠느냐? 이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도 주님께서 “아무개 집사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렇게 사느냐? 정신차려” 말씀하시는데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처럼 여기지는 않으신지요? 마지막 때가 다 되었는데,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롯의 아내처럼 세상 것에 마음 빼앗기고 살지 않습니까? 혹시 롯과 같이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떠나라’고, ‘농담처럼 여기지 말라’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 우리는 산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말씀을 마음에 꼭 새겨 단 한 사람도 낙오되는 사람 없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