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6번째 편지 - 국화 옆에서
“조 변호사님, 잘 지내시나요. 제가 농장에서 키운 국화가 잘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았습니다. 혹시 가져가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일주일 전 화훼 농원을 하는 이사장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재고가 얼마나 되나요.”
“250개 정도 됩니다. 가져가는 것이 저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치우려고 해도 인부를 써야 하고 버릴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사장님은 몇 년 전 그 농장에서 루피너스 100주를 사면서 인연을 맺은 사이입니다. 화훼 농원은 씨를 뿌려 꽃을 대량으로 키우는 곳입니다. 문제는 납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량 재고가 남게 됩니다.
지난 4월 말에도 이사장네 농원에서 키운 겹해바라기가 재고로 남는 바람에 무려 2,000주를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화훼 농원이 반복적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저는 이사장을 돕는 셈 치고 국화 화분 250개를 트럭을 빌려 시골집으로 운반하였습니다. 화분 250개가 얼마나 많은 양인지 상상을 못 했는데 가져와 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습니다. 이 집, 저 집 나누어 주고도 지금 50개 정도 남아 있습니다.
국화 하면 흰색이나 노란색으로 알았는데 이번 국화는 노란색과 보라색입니다. 노란 국화를 흔히 보는 국화이지만 보라 국화는 흔치 않습니다. 얼마 전 제주에서 핑크 뮬리 꽃밭에 보라 국화 화분 수백 개를 놓아둔 것을 보고 신기했는데 그 보라 국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국화 축복을 받고 국화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국화는 전 세계적으로 몇 종류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1만 5,000종이 넘고 국내에도 1,000종의 국화가 있다고 합니다. 국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시도도 하지 않겠습니다.
국화는 중국에서 온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화가 언제 전래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 충숙왕 때 중국의 천자가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국화는 개화 시기에 따라 추국, 동국, 춘국, 하국으로 나눕니다. 그래도 가을에 피는 국화가 으뜸이지요. 또 국화는 꽃잎의 크기에 따라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눕니다. 꽃잎을 수평으로 쟀을 때 대국은 16cm 이상, 중국은 16-5cm, 소국은 5cm 이하입니다.
국화는 색깔이 다양합니다. 크게는 흰 국화, 노란 국화, 분홍 국화, 보라 국화, 붉은 국화로 나눕니다. 이 색깔 국화마다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흰 국화의 꽃말은 <진심, 성실, 감사>랍니다. 노란 국화는 <진실과 짝사랑>이고, 분홍 국화는 <정조>이며, 보라 국화는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입니다. 마지막으로 붉은 국화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가 꽃말이라고 합니다.
집에 온 국화는 노란 국화와 보라 국화입니다. 노란 국화는 <짝사랑>이고 보라 국화는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이니 노란 국화보다 보라 국화가 더 인기 있는 이유가 색깔 말고도 꽃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장례식에 헌화 되는 꽃이 흰 국화입니다. 왜 흰 국화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주류입니다.
“개화기 이후 서구 기독교 문화가 들어와 복식 간소화 등 실용적인 장례문화가 시작되었다. 흰색 상복과 삼베옷을 입는 한국 전통 장례문화에 어울리는 흰 꽃은 국화밖에 없어 조화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국화 하면 떠오르는 것이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사군자입니다. 학창 시절 매란국죽으로 외우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른 봄눈이 채 녹기도 전에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트리는 난초>, <늦가을에 첫 추위와 서리를 이겨내며 꽃을 피우는 국화>, <모든 식물이 잎을 떨어뜨린 추운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을 간직하는 대나무>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 한 수가 기억납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찾아보니 작자는 이정보입니다. 오상고절이라는 말을 배운 것도 이 시조입니다.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는 충신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국화를 생각하면 서리가 연상되고 꼿꼿한 선비가 그려집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 배운 시 한 편으로 이 강인한 이미지의 국화가 누님 같은 꽃으로 우리들 가슴에 새겨지게 됩니다.
바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다시 읽어보니 이 시에도 서리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풍진 세파를 다 겪고 초연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꽃, 서정주가 노래한 누님은 어쩌면 서정주 시인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마당을 하나 가득 채운 국화를 바라보니 제 인생이 국화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화 같은 인생을 위해 젊은 날 소쩍새의 울음을 울며 저를 재촉했고, 먹구름 속 천둥소리에 놀라며 때론 겁먹으며 중년을 보냈습니다.
젊음의 뒤안길에 서서 왜 그리 그 젊은 날에는 가슴을 조이며 살았는지 허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살아갈 앞날에는 또 무서리가 수없이 내려 가슴을 서늘하게 할 것이고, 그때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날 것입니다.
국화는 누님 같은 꽃이기도 하지만 환갑을 넘은 우리 세대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국화에 정이 갑니다. 이틀에 한 번 물을 주기 위해 시골집을 찾습니다. 이 국화가 얼마 갈지 모릅니다. 한 달 이상 가면 좋겠습니다. 국화가 지면 마음도 스산해질 테니까요.
2022.11.7. 조근호 드림
<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 에서 >
첫댓글 국화꽃에 대한 많은것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이가을에는 국화꽃 전시회와 축제가 한창열리고 있습니다. 많이보고 즐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