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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탕춘대산성종주 - 서울산성종주 제3탄
어울림 추천 0 조회 319 11.03.26 06:3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탕춘대산성종주

 

 

1.  누구와 : 산어울마당회원 7명

 

2.  언제 : 2011년 3월 13일(일) 

 

3.  어디를 : 북한산, 인왕산

 

4.  날씨 : 흐린 후 맑음

 

5. 산행코스 : 북한산성유원지정문→의상봉→문수봉→향로봉→홍지문→인왕산→서울역

 

6.  거리 및 소요시간 : 약 20km / 9시간 21분(08:25~17:56)   

 

7.  기타자 

 

1) 구글맵 

 

 

 

2) 구글어스

 

 

 

3) 거리표  

 

 

 

4) 고도표 

 

 

 

5) gps트랙

  


 

 산행기

 

 

* 탕춘대산성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수리봉까지 이어진 4㎞ 정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북한산성을 축성하였으나 북한산성이 높아서 군량 운반이 어렵자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 일대에 군사를 배치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하여 이 성을 축성하기로 했다. 원래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출처] 홍지문 및 탕춘대성 [弘智門─蕩春臺城 ] | 네이버 백과사전

 

 

 

서울을 대표하는 산성은 '서울성곽', '북한산성', '남한산성', '탕춘대성' 등 4개의 산성이다.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공식명칭이 산성인데 반하여 서울성곽과 탕춘대성은 산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성곽은 서울성곽의 물줄기인 청계천을 가운데에 두고 있고, 청계천 유역의 울타리가 되는 산인 내사산(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의 마루금을 따라 축성되었기 때문에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하였고, 인왕산 기차바위능선과 북한산 탕춘대능선을 따라서 축성하였기에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성, 서울성곽, 탕춘대성은 2013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산어울마당 카페에서는 서울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4개의 산성을 탐방하는 시리즈를 기획하였고, 지난 1월에 서울성곽길 종주, 2월에 북한산성14성문 종주를 하였고, 이번에 탕춘대성 종주를 하고, 오는 6월에 남한산성20성문  종주가 계획되어 있다.

 

탕춘대성을 어디서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인왕산 서울성곽에서부터 수리봉까지이고, 거리는 4㎞ 정도이다." 라고 되어 있고, 북한산둘레길 표지판에는 "인왕산 서울성곽에서부터  비봉까지이고, 거리는 5.1km이다." 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 관할구청인 종로구에 문의를 해보니 인왕산 정상 서울성곽에서부터 향로봉까지란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탕춘대성이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한는 산성이고 인왕산 기차바위능선과 북한산 탕춘대능선을 연결하는 산성'이라는 취지에 비춰보았을때 탕춘대성은 인왕산 서울성곽부터 북한산 탕춘대능선이 시작되는 봉우리인 향로봉까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생각된다.

 

탕춘대성 산행코스는 북한산성 구간(북한산성유원지정문~문수봉),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연결하는 비봉능선 구간(문수봉~향로봉), 탕춘대산성 구간(향로봉~인왕산 서울성곽), 서울성곽 구간(인왕산 서울성곽~숭례문)을 두루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탕춘대성의 역할 및 군사학적인 측면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북한산성과 서울성곽을 함께 돌아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나한봉 등 의상능선의 봉우리>

 

 

북한산성유원지 정문에 예정시각보다 약간 늦은 오전 8시 20분에 도착한다. 산행준비를 마친 후 오전 8시 25분에 산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산성 정문에서 바라보니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등 의상능선의 암봉들이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굴곡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다. 산성탐방안내소에서 우회전하여 의상능선으로 들어선다.

 

날씨는 맑을 것이다, 라는 예보와는 달리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이다. 흐린 날씨는 시야가 좋지 않기 때문에 조망도 별로고 사진도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날씨이다.

 

의상봉 들머리에서 의상봉 정상까지 거리는 약 1.5km이고, 급경사로 이어진다. 의상봉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아주 든든하게 느껴지고, 가파른 암릉과 주변 산새로 인하여 설악산 못지 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해골바위>

 

<창릉천 평야지대>

 

가파른 암릉을 조금 오르다보니 해골바위가 우리를 반기고, 뒤돌아보니 창릉천 평야지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계곡의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백화사, 삼천사, 진관사 등 명사찰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봉 오른쪽으로는 용출봉과 용혈봉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낸다.

 

 

<용출봉 용혈봉>

 

<의상봉에서 바라본 안개에 휩싸인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용을 쓴지 한시간 남짓 의상봉 정상에 도착한다. 의상봉은 의상대사가 참선을 수행했다 해서 의상봉이라고 했단다. 의상봉에서 바라보면 북한산성 요새의 윤곽이 또렷히 보인다. 원효봉을 필두로 염초봉~백운대로 이어지는 북쪽의 원효능선, 백운대와 문수봉을 잇는 동쪽의 산성주릉선, 그리고 문수봉에서 의상봉을 잇는 남쪽의 의상능선 등 세방향으로 외적이 침입한다면 거의 난공불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원효능선은 거대한 암릉군으로 형성되어 있어 암벽등반장비를 갖추고도 쉽게 오를 수 없는 천혜의 성곽이고, 산성주릉선은 평균고도 600미터가 넘는 고도와 가파른 경사도를 자랑하고, 의상능선은 용의 이빨을 연상케 할만큼 가파른 암봉들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단, 서쪽은 대서문이 해발고도 150미터로 고도가 낮아 방어가 취약하기 때문에 중성문을 축성하여 이를 보강하였다.

 

의상봉을 내려서서 안부에 이르면 북한산성 14성문 중 하나인 가사당암문을 만나게 된다. 가사당암문은 진관내동에서 북한산성을 왕래하는 문이다. 가사당암문 왼쪽에는 커다란 불상이 좌불하고 있는 국령사가 있고, 12(14)성문 종주시 의상봉을 생략시는 이곳을 통해서 가사당암문으로 바로 오른다. 북한산성 성곽은 암봉에는 축성하지 않았고, 암봉과 암봉 사이에 축성을 하여 취약지를 메꾸었다.

 

 

<용출봉>

 

<정비된 성곽>

 

<방치된 성곽>

 

의상능선의 성곽은 암문 주위는 새로 정비해서 깔끔한 반면 암문을 약간 벗어나면 여장이 무너지고 방치되어서 흉물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축성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든다.

 

 

 

 

 

 

<부왕동암문>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등 의상능선의 3인방은 한데 어우러져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굴곡을 형성하고 있다. 굴곡과 암릉의 경사도가 가파르기 때문에 암릉등반을 좋아하는 산꾼들에게 아주 선호되는 코스이다. 증취봉의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면 부왕동암문을 만나게 된다. 부왕동암문은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 해발 521m에 위치한 암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나월봉 침니>

 

부왕동암문을 지나서 조금 오르면 나월봉 우회로 이정목과 만나게 된다. 나월봉은 유일하게 일반 등산객에게 정상정복을 허용치 않은 암봉이고, 그 만큼 위엄이 있다. 암벽등반 확보장비가 있다면 등반이 가능하겠지만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나월봉 우회로 이정목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월봉 정상 바로 아래에 침니가 있는데, 이곳으로 우회를 많이 한다. 나월봉 정상을 날등으로 넘을 수 있는지 면밀하게 '루투파인딩'을 해보니 확보장비만 있으면 별로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은 확보장비가 없으므로 별 수 없이 우회를 할 수밖에 없다.

 

 

<좌로부터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등 의상능선의 암봉이 한눈에 보인다>

 

나월봉을 우회하여 가다보면 남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나한봉이고, 암봉이 아니고 숲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을 들르지 않고 상원봉으로 바로 직행한다. 나한봉 정상은 지나온 의상능선 암봉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또한 비봉능선과 지릉들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조망처이고, 정상의 공터가 넓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아주 좋은 장소이다. 

 

 

<상원봉(715.5m)>

 

나한봉에서 동남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상원봉이고, 이곳은 청수동암문 방향과  남장대터로 가는길의 갈림봉이다. 청수동암문은 남쪽 방향이다. 이곳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청수동암문과 만난다.

 

 

 

청수동암문은 1999년에 해체 된 후 보수되었고, 문수봉과 상원봉(715.5봉) 사이에 위치하고, 고도는 694m이다.  청수동암문은 비봉능선과 북한산성을 왕래하는 문이고, 삼천사 계곡과도 바로 연결된다.

 

청수동암문에서 남쪽으로 우뚝 솟은 암봉이 문수봉 정상이다(일반 등산객들이 올라가기에는 조금 위험이 따르고, 문수봉 정상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암봉은 실제 문수봉 정상이 아님) . 지난 2월 14성문종주시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혀 있어 우회하고 말았지만 오늘은 약간 살얼음만 덮혀 있기 때문에 우회하지 않고 정상으로 오르기로 한다.

 

 

<문

<문수봉 정상 오름길>

 

살얼음을 피해  한사람씩 조심스럽게 밧줄을 잡고 오른다. 문수봉 정상에 올라서니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잇는 비봉능선이 또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또한 문수봉 자락의 암봉들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나온 의상능선의 암봉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외부인이 범접치 못함을 보여준다.

 

 

<문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문수봉 자락 암봉>

 

<문수봉 정상>

 

많은 등산객들이 문수봉 정상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마치 문수봉 정상을 정복한 양 의기양양하게 기념촬영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수봉 정상에서 내려와 정상 바위를 우로 끼고 돌아 문수봉 자락으로 내려간다. 문수봉 자락에는 기기묘묘한 암릉이 이곳저곳에 깔려있다. 참으로 아름다움 광경이다.

 

 

<실제 문수봉 정상(좌), 가짜 문수봉 정상(우)-문수봉정상 이정목이 있는 바위>

 

<문수봉자락 끝부분 암릉>

 

문수봉 자락에 철난간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 거의 모든 등산객들은 청수동암문으로 통행을 했다. 철난간이 생겨 좋긴 하지만 정체현상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하는 등산객들도 많이 있다. 설악산 용아장성도 그러하듯이 이곳에도 바위꾼들은 더이상 다니지 않는다.

 

 

<문수봉의 아름다운 암릉>

 

<문수봉 자락에서 바라본 사모바위와 응봉능선>

 

 통천문을 지나 첫번째로 맞이하는 봉우리가 승가봉(僧伽峰)이고, 근처에 있는 사찰인 승가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승가봉은 지나온 문수봉과 보현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을 분만 아니라 비봉능선의 사모바위, 비봉, 그리고 관모봉, 향로봉까지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조망이 아주 좋은 암봉이다.

 

 

<사모바위>

 

사모바위(士帽바위)에 정오 12시 30분에 도착한다. 여기서 점심을 먹은 후 사모바위를 오르기로 한다. 많은 등산객들이 사모바위 옆을 스쳐 지나가지만 사모바위에 오른 이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옆으로 지나가면서 보는 모습과 실제 암릉등반을 통해서 만져보는 감촉이 같을 수 없고, 워킹의 세계와 암릉의 세계가 같을 수 없다. 사모바위는 머리부분과 몸통부분으로 나뉘는데 몸통부분은 암릉등반으로 오를 수 있다.

 

오랜만에 사모바위의 감촉을 맛본다. 약 2년 정도 된 것 같다. 등산객들로 인하여 많이 닳았지만 그래도 고도가 낮고 각도가 약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바위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망중한을 즐겨본다.

 

사모바위에서 서남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비봉이고 신라시대 진흥왕순순비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확보장비가 없으면 통과할 수 없기 대문에 우회하여

바로 관모봉으로 향한다.

 

 

<관모봉에서 바라본 문수봉 보현봉 승가봉>

 

관모봉은 북한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고, 응봉능선, 의상능선, 원효능선 등이 삼겹으로 형성되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바위가 펑퍼짐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아주 좋다. 잠시 휴식 후 향로봉으로 향한다.

 

 

<관모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관모봉에서 서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향로봉이고, 향로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탕춘대능선이다. 그러므로 향로봉은 탕춘대능선이 시작되는 봉우리이자 탕춘대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수봉에서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비봉능선은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잇는 능선이고, 평균고도가 500미터 이상이고,능선 양쪽의 경사도가 세서 천혜의 성곽 역할을 하고 있다.

 

향로봉에서 바라보면 탕춘대 요새가 확연히 드러난다. 탕춘대 요새는 북쪽으로는 비봉능선과 북한산성, 동쪽으로는 형제봉능선, 남쪽으로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잇는 서울성곽, 그리고 서쪽으로는 인왕산 기차바위능선과 탕춘대능선으로 이어진 탕춘대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적의 침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요새다.

 

유사시 임금이 서울 도성에서 형제봉능선을 통해서 북한산성으로 피난을 한다면 탕춘대성은 임금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또 전시에 서울 도성에서 북한산성으로 군량미를 바로 나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간 지점인 탕춘대성에 군량미를 저장하여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탕춘대성은 군사학적인 측면에서 서울 도성을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수리봉>

 

향로봉 능선은 확보장비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우회로를 이용하여 탕춘대능선을 내려선다. 오른쪽으로는 수리봉능선이 왼쪽에는 비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문이 굳게 잠긴 탕춘대공원지킴터를 지나 15분쯤 내려가니 탕춘대암문과 만난다. 북한산둘레길과 강북오산동그라미는 탕춘대암문을 통과하여 녹번역쪽으로 향하고 탕춘대성길은 직진하여 홍지문쪽으로 향한다.

 

 

<탕춘대공원지킴터>

 

탕춘대능선은 강북오산동그라미(홍원교를 원점으로 한 안산.인왕산.북악산.북한산.백련산 등 서울강북오산의 산줄기를 이은 산행코스)를 동서로 가르는 산줄기이기에 강북오산의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북오산동그라미와 탕춘대산성길을 동시에 산행한다면 멋진 그림이 나올 것도 같다.  

 

 

<탕춘대성길>

 

<방치된 탕춘대성곽>

 

탕춘대암문 이후 탕춘대성길은 갈대가 우거져 고풍스런 멋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조금 진행하다보면 성곽이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흉물스런 모습이다. 2007년 기사에 의하면 서울시와 종로구가 공동으로 탕춘대성길을 정비하기로 했다, 고 보도되었던데...

탕춘대성길 마지막 부분은 길이 없고 잡목이 우거져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회하여 홍지문으로 향한다.  

 

 

* 홍지문

 

홍지문(弘智門)은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한다. 중앙에 홍예문이 있는 축대 위에 단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로 평면이 40㎡ 정도이다. 성문에 이어 성벽을 연결하여 만든 오간수문(五間水門)은 도성의 물길을 고려하여 높이 5.23m의 홍예문을 5개 내어 홍제천의 물을 흐르게 한 시설로, 조선시대 치수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1921년에는 문루가 내려앉고 오간수문도 장마로 떠내려가 황폐해졌다. 그 뒤 1977년에 탕춘대성의 성벽을 보수하고 오간수문, 홍지문을 복원하였다. 1976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홍지문 및 탕춘대성 [弘智門─蕩春臺城 ] | 네이버 백과사전

 

 

 

<홍지문>

 

오후 2시 50분에 홍지문에 도착한다. 다행히도 홍지문 주위 성곽은 정비를 잘 해놓아서 깔끔하다. 홍지문은 원래 현재 서울성곽의 숙정문 자리에 있어야 할 문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지(智)'에 해당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정문은 원래 사람들의 왕래를 위하여 만들었다기보단 방위를 맞추기 위해 만든 문으로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또 풍수설에 의해, 북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 진다 하여, 문을 만들어놓기만 했을 뿐, 개방하지는 않았다.  대신 숙정문 서북쪽으로 약간 비껴 오늘날 상명대학교 앞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내고 그쪽을 통해 다니게 하였고,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북대문의 역할을 한것은 숙정문이 아니라 현재의 홍지문이고, 바로 그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지(智)'에 해당하는 홍지문이 서울성곽의 북대문에 있지 않고 탕춘대성에 있는 이유이다.

 

 

<오간수문>

 

오간수문은 홍제천의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설계된 수문이다. 홍제천은 평창동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이고,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 등을 경유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의 제1지류이다. 홍제천은 원래 건천이었고, 악취가 나는 하천이었다. 내가 수도권 31산 답사차 3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악취가 아주 진동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현재는 한강물을 끌어올려 내려보내고 있고, 또 하천정비사업을 잘 해놓아서, 오히려 지금은 홍제천 인공폭포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상명대학교 사거리에서 유턴하여 인왕산 성곽으로 향한다. 이전에 왔을 때는 탕춘대성 인왕산성곽이 개방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하단에 데크를 설치해놓았고, 인왕산성곽 외곽으로 길이 나있다. 언제 개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잘 되었다 싶다.

 

 

<인왕산 성곽에서 바라본 홍지문 및 탕춘대성>

 

인왕산에서 바라보니 탕춘대성이 자연지형을 잘 이용한 견고한 요새라는 생각이 든다. 홍지문 주변에는 성곽이 잘 정비되어 있고, 일자로 뻗은 성곽은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인왕산은 설악산과 같이 바위산이다. 그래서 거벽들이 많고, 절벽도 많고, 바위와 수목이 잘 어우러져 풍광이 아주 아름답다. 인왕산 거벽 중 기차바위가 가장 거대하고 우람하다. 왼쪽 사면은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고,  60미터 자일 1동으로 바닥까지 닿을지 의문이다.

 

 

<북악산>

 

<인왕산 성곽>

 

<정상에서 바라본 인왕산 기차바위>

 

<인왕산 성곽2>

 

 

<인왕산 정상>

 

오후 3시 10분에 인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북악산 및 인왕산 서울성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지난 1월에 동그라미를 그렸었는데,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잔상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인왕상 정상에서 남쪽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범바위이고, 아쉽지만 지금은 공사중이라 갈 수가 없다. 지난 1월 서울성곽길 종주시는 군초소에서 왼쪽길로 우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인왕산의 명소들을 두루 돌아보기로 계획되어 있다.

 

 

 

<범바위(왼쪽)와 오른쪽 대공포진지>

 

<안부에서 바라본 인왕산 정상>

 

인왕산 군초소 이후는 공사 중이라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성곽 철계단을 이용하여 오른쪽으로 내려간 후 우회로를 따라 얼굴바위로 향한다. 길은 희미하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역력하다. 발 아래로 서대문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우회로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공원>

 

<얼굴바위>

 

성곽 코너를 돌자마자 인왕산 얼굴바위가 살짝이 얼굴을 내민다. 사람 얼굴 형태이긴 하나 사람 얼굴보다는 '해골'에 더 가깝게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니 저 멀리서 모자바위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근처 전망바위에서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선다.

 

 

<모자바위>

 

암릉의 날등을 타고 내려가다보니 '선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바위는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전한다. 선바위 숭배는 암석 숭배의 일종으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다고 여겨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이곳으로 옮기게 한 후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고, 조선 태조가 한성 성곽을 쌓을 때 문신 정도전(鄭道傳)과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할 것인지 성 밖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 대립하였으나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성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선바위 뒷모습만 찍고 선바위 굿당으로 들어선다.

 

 

<선바위 뒷모습>

 

<선바위 정면>

 

선바위 굿당에는 몇몇의 신도들이 공을 들이고 있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 후 사진만 찍고 서둘러 빠져 나온다.

 

 

* 국사당

 

민속자료 정보
▒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28호

▒ 지정연월일 : 1976년 7월 16일

▒ 규모·양식: 한옥1동 맞배지붕

▒ 시 대 : 1925년 중건

▒ 소 유 자: 김명권

▒ 소 재 지: 종로구 무악동 산 2∼12

 

인왕산 국사당(仁王山國師堂)은 무속신당(巫俗神堂)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 그리고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국사당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당은 남산 꼭대기 곧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에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도 불렀다. 이 당은 1925년에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저들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할 때 그 재료를 그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다고 하며, 당의 전면 3칸에 왼쪽에 한 칸이 붙어 있었으나 뒤에 오른쪽 한 칸을 붙였다. 따라서 전면은 약 20여m이고 측면은 9m정도의 크기이다. 기둥 칸살은 전면 어간(御間) 약 2.6m에 협간(夾間)과 측간(側間)은 모두 2.4m로, 내부 넓이는 모두 11평이고 바닥은 마루이다. 또 마루 좌우에는 온돌방이 있는데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루 전면과 좌우 일부에는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고 무신도 앞에는 제상이 있으며 마루는 굿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일반 건물보다 단순한 구조이긴 하나 구조는 큰 편이며 집 전체적인 구성은 견실하고 간소하면서도 방주(方柱)의 실귀〔?刻〕이나 문살문의 새김 등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는 최소한의 세련미가 가해져서 우아한 면도 엿보인다. 또 대들보의 후림이나 서까래의 배흘림, 규격 설정 등에서 경공(京工)의 솜씨를 엿볼 수 있어서, 영조(英祖)·정조(正祖) 이래의 견실과 간결을 위주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국사당은 굿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참배하고 기도도 드린다. 참배객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오는데, 정월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 이 당에서 주로 행하는 굿은 사업 번창을 비는 경사굿과 병(病)굿 또는 우환굿 그리고 부모의 사령(死靈)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진오귀굿이다. 그러나 이 당은 무당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고 당주(堂主)가 관리하면서 무당의 요청이 오면 당을 빌려주기 때문에 1년 내내 굿을 하나 하루에 보통 3건, 많을 때는 4∼5건을 하는데 특히 3월과 10월이 가장 많고 음력 섣달은 굿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당주는 신령님을 위해 2년마다 동짓달에 날을 잡아서 '마지'라는 제사를 올리는데 무녀를 초치해서 굿을 한다. 이 당 주위에는 기자암(祈子岩)으로 이름난 선(禪)바위가 있고 암자가 여러채 있으며 또 일반주택과 격리되어 있어 굿장소로 적합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이 국사당은 쇠잔해 가는 서울 무속의 집결처로서 무속신앙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국사당>

 

지난 1월 서울성곽길 종주시 남산에 있는 국사당터를 보고 몹시 궁금했는데 오늘 비로서 궁금증이 풀렸다. 국사당은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이고, 특히 무학대사를 모신대서 국사당이라고 했단다.

 

 

<인왕사 일주문>

 

국사당에서 조금 내려가면 '인왕사일주문'이 보이고. 일주문 바로 전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컨테이너박스가 있는 공터가 있고, 이 공터에서 동족으로 보이는 성곽이 서울성곽길 인왕산 끝부분이다.

 

 

<서울성곽(인왕산 군초소~옥경이 슈퍼 구간)>

 

지난 1월에 서울성곽길 종주시는 성곽 안쪽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번에는 성곽 바깥쪽으로 진행해보기로 한다. 철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커다란 성벽이 나의 앞을 가로막는다. 높이가 족히 5미터는 될 듯 싶다.  성체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싶다. 바깥쪽 성곽길은 조망도 좋고, 성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풍스런 맛을 느낄 수 있어 산행의 또다른 맛이 느껴진다.

 

 

<권율 집터>

 

옥경이슈퍼에서 오른쪽 빌라 뒤쪽으로 가보니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끈 장군인 '권율도원수' 집터가 있다.

 

 

<옥경이 슈퍼>

 

<상록수 어린이집>

 

옥경이슈퍼에서 조금 내려가다보면 상록수 어린이집이 보이는데, 서울성곽은 이곳 바로 앞에서 끊겨  숭례문까지 간간이 흔적만 남아있다.

 

 

<홍난파 가옥>

 

<경교장>

 

홍난파 가옥을 지나고 강북삼성병원 안쪽에 있는 경교장으로 들어선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이고, 또한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서 쓰러진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강북삼성병원과 새문안로 사이 벽에는 서울 도성 4대문 중 하나인 돈의문터 안내판이 있다. 돈의문터는 일제시대인 1915년 일제가 도로확장공사를 하기 위해 철거하였기 대문에 안내판의 그림으로만 돈의문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돈의문터>

 

<이화여고>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

 

서울성곽길인 정동길을 걷다보면 여러가지 역사적 건물 및 유적지를 볼 수 있다. 유관순 열사가 다녔다는 이화여고에는 '유관순기념관'이 있는데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덕문터>

 

서울성곽길은 정동길에서 서소문로를 건너 소덕문터~대한통운본사~대한상공회의소~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서소문로를 건넌 후 중앙일보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중앙빌딩주차장 끝 부문 담 위에 보면 4소문 중의 하나인 소덕문 표지석이 있다. 소덕문은 광희문과 더불어 성내의 시체를 성밖으로 내보냈던 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축대>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축대에는 아직도 서울성곽의 성돌들이 남아 있어 그나마 옛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숭례문>

 

오후 5시 56분에 오늘 여정의 마지막 지점인 숭례문에 도착한다.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이라는 글자는 또렷히 보이는데 숭례문은 어디로 갔는가?

한 개인의 사회적 불만이 수백년 내려온 우리의 혼을 앗아가 버렸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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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26 07:21

    첫댓글 좋은 산행기 잘 감상했읍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반팔만 입고 산행 하신 분이 있군요
    제일 멋지고 잘생기신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도 다 멋지신데 그중에서 특히

  • 11.03.26 09:13

    멋진그림에 상세한글. 댓글 먼저 달아놓고... 다시 정독할랍니다~^^

  • 11.05.13 00:03

    탕춘대능선,... 가보고 싶은 코스였는데,... 상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그런데,... GPS Track을 내려받기 하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는데요,... 어찌하면 가능할지요?
    미리 고맙습니다...

  • 작성자 11.05.20 19:01

    탕춘대산성종주트랙을 gps트랙 올리는 난에 다시올렸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11.05.21 00:30

    어울림님,... 고맙습니다..... ^!^
    오늘 일단 구글로 보니,... 코스를 알것 같습니다....
    자세하고 풍성한 내용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한번 다녀오고,.. 저도 Track 올려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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