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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지식 스크랩 HK의 사골국 우려먹기와 그 끝에 관하여, 아무래도 짧을듯?
독사(이진화) 추천 0 조회 51 10.08.20 15: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잡설을 시작하기 전에 드리고 싶은 양해 말씀

 

1.

이번 글은 지극히 HK사 중점이니, HK를 증오하시고 FN 헤르스탈을 찬양하시는 분들은 다른 글을 참조해주시길.

빠가 까를 창조한다니 필자가 HK까가 될지도

 

2.

이번 글은 예전글들과 다르게 내부구조 이야기가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어짜피 글 주제 자체가 HK의 총기 작동구조와 디자인 우려먹기를 비판하는 내용이 될테니 간단간단한 리뷰를 원하시는 분은 이번글에서 실망하실수도.

HK의 사골국 우려먹기라고 쓰고 내부구조 관련 뻘글이라고 읽습니다

 

3.

사실 이 글 쓰는 사람도 내부구조 들여다보는건 딱 질색이지 말입니다.

모름지기 총은 겉모습이 이뻐야 제맛

 

4.

엔터 많이 쳐서 쓰는게 트렌드인듯 싶었으나 왠지 그걸 읽기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번에는 엔터치기좀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봤자 이렇게 많이 끊어지겠지만 말입니다.(...) 

 

 

 

 

더_좋은_돌격소총_달란_말이예요_징징.JPG

 

 

StG-44 기껏 만들어놨더니 이거보다 더 좋은거좀 만들어달라고 독일군이 떼써서 종전 기념으로 맞춰서(!!!) 개발된 StG-45(M)(StG-44 개발은 헤넬사였지만, 45는 마우저사가 만들었습니다.) 종전 직전에 개발되어 몇정 못만들고 연합군손에 들어갔지만, 연합군은 이 총에 대해서 프로토타입이라는 이유 때문에 별 관심을 가지진 않게 됩니다.

 

다만, 독일은 전후 이 녀석을 가지고 뭔가 시도해봤고 이러한 시도로 나온 G3가 오늘날의 HK을 만들것이라는 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총이란건 일정기간의 수명이 있기 마련입니다.

 

뭐 저쪽에서 경찰국가라 자부하면서 요즘에 전쟁 비용 때문에 허덕되는 나라는 수십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디자인을 100년씩이나 우려먹으면서 대체할 엄두를 못내지만, 사람이나 기계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도태되거나 망가지는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총이나 디자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하는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 한 디자인만 가지고 수십년동안 욹어먹으면서 좋은 디자인 하나 만들어놓으면 3대가 먹고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 회사가 있었지요.

 

알파뱃 두개와 & 부호 하나로 대표되었던 그 회사는 이러한 모토를 가지고 회사의 지위를 듣보잡에서 명가 총기회사로 성장하게 했었고 이와 동시에 가장 큰 성공에 이은 가장 뼈아픈 실수와 치욕의 역사를 보여준 회사로 남게 되었지 말입니다.

 

 

일단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H&K사의 사골국 우려먹기라는것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G3와 이 총에 쓰인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떠올리는건 아니고, 밀덕후나 가능한 발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혹자는 G3의 블로우백 디자인이 HK의 전매특허라고 말할 정도로 HK와 G3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고, 실제로 G3와 그것을 개량한 작품을 가지고 HK가 벌어들인 수익을 따지고 본다면 HK는 확실히 G3와 함께 성공할 운명적인 회사였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상을 따져보면 HK와 G3, 그리고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의 성공은 당연해야 할 정도의 운명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냥 운이 좋고 시간이 대충 맞아서 나온 뽀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먼저 HK와 G3의 운명적인(?) 만남을 살펴보기 전에 G3이 나오기 수년전인 2차대전 말기에 있었던 약간 허무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할텐데...

 

때는 세계 2차대전 말기 보통 1943년 이후의 독일을 이야기하자면 패전의 패전을 거듭하다 못해 패망이 단지 시간문제인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패망은 독일군이 원래 못났다고 하기 보다는 독일의 수장이라는 윗대가리 분들의 병크로 생긴 일들이니 둘째치고 일단 대가리분 잘못 만나 고생하는 독일군 보병들은  국가패망이라는 무서운 결과는 둘째치고  일단 총기부터 어떻게든 해달라는 요청을 애걸복걸 하는게 일반적이였다 할 수 있지요.

 

 

뭐 이 당시 총기 개량이나 개발은 G43이나 MKb.42같은 신제품들에 대한 출시를 요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그런거 만드느라 진빼지 말고 일단은 현재 쓰고 있는것을  약간이나마 개량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들면 Gew-98에서 Kar-98k으로 P08 루거 권총에서 발터사의 P38 권총으로 그리고 무겁고 가격도 비싸고 생산량도 적은 MP38을 MP40으로 개량하듯이 일반적인 보병용 제식화기를 눈에 팍 띄지는 않지만 그래도 실제 성능은 약간이나마 높아져서 전투력 상승(!)을 꾀할 수 있는 일종의 업그레이드를 의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업그레이드 요청의 일환으로 MG42도 MG34의 개량형으로 등장하였고, 이때 제대로 업글을 했는지(외계인을 삶아먹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MG42는 오늘날에도 까일데가 없는 녀석이라 불릴만큼 성능이 좋단 평을 받았습니다만,(물론 미친듯한 발사속도로 인한 총열 과열과 강선 깎아먹기는 제외) MG42조차도 이미 한번 했던 업그레이드 말고 한번정도는 더 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할 수 있지요.

 

 

MG42가 개량을 필요로 했던것은 MG-42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였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MG42는 그 당시 기관총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녀석이니 뭐라고 할만한 성능상 단점은 없었습니다만, 적어도 1940년대 초/중반에 이르는 시점에는 독일군은 패전을 거듭함과 동시에 물자의 부족에 시달렸고 아무리 단순하게 만들고 싸게 만들었지만 기관총의 훌륭한 성능을 보존하기 위해 아낌없이 자원을 투자해야 했던 MG42에 너무 많은 자원을 더이상 투입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MG42에 대한 단순화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러한 결론으로 등장한 것이

"전작보다 나은 단순작"이라는 이상한 칭호를 받은 MG-45이란 녀석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MG-45의 사진

 

 

사진은 미군이나 영국군에 찍힌 사진이 아니라 소련군이 종전 직전 찍은 사진으로서 얼마 안되는 MG-45을 노획한 소련군이 총을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기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당시에는 소련군도 이 녀석이 MG-45라는 이름을 붙여놨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성능평가를 했을때는 MG-42와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그 성능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MG-45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약간 복잡하다는 평을 받은 MG42를 싸게 만들려고 만든 개량형입니다.

 

솔직히 말만 개량형이지 나쁜말로 하면 미친듯이 단순화한 녀석으로서  일전에 정성스레 만들던 개머리판이나 소염기같은 녀석들을 무지막지하게 단순화시켰고,(절삭가공으로 만들던 부품도 모조리 철판 프레스로 교체하고, 리벳으로 대충 짜맞추기까지..) 심지어 내부구조까지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 종전 말기 부족했던 화기 숫자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뜬금없이 HK이야기에 왜 등장하느냐? 그 이유는 이 녀석이 바로 G3의 직계조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뜬금없이 MG-42와 G3과 관련되었다고 하는건 뭔 개솔이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MG-45의 경우 내부구조 단순화를 진행하던 도중 몇가지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의 첫번째 사용이라고 할 수 있지 말입니다.

 

사실 MG42의 경우 맨 처음 등장했을때는 일반적인 반동 작용식을 사용하였고 부수적으로 롤러 록킹 장치를 탑재함으로서 반동으로 총의 급탄을 구현함으로서 내구성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신뢰성을 보장한 작동방식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방식의 경우 실제로 성능 자체는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롤러 장치와 반동 작용식 노리쇠를 결합하는 과정이 좀 복잡했고, 이땜에 이쪽은 대량생산을 하기가 애매모호해졌고(+ 반동 작용식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쇼트 리코일을 사용했고, 작동성 향상을 위해 리코일 부스터까지 탑재) 이쪽을 간단히 하면 총의 단가도 낮아질거라는 예상을 가지고 반동 작동식보다는 조금 더 만들기 쉽다는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하면서 이쪽에다가 롤러 지연장치를 사용한것이 바로 MG-45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요.(물론 일반적인 개념으로 따지고 보면 블로우백이 쵸큼 더 복잡하긴 한데, 이제나 저제나 블로우백 찬양)

 

뭐 MG45 자체는 성능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부가 생산성이나 성능 향상을 위해 생산라인을 아예 새로 고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취소했기 때문에 전후 남아있던 샘플 몇정이 자연스레 연합군에 들어가면서 MG42와 비슷하다는 점만 부각되고 잊혀졌습니다만, 그건 연합군의 사정이였고 독일군은 새롭게 만들어본 이 작동방식을 다른데 좀 써먹어볼까 하고 고민하게 되는데, 마침 StG-44도 비슷한 사정으로 개량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었고 기관총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총을 개량할 수 있었던 여건 탓에 마우저사는 MG-45에서 쓰려고 마음먹었던 녀석을이쪽에 도입해보자는 결론을 내렸고, 이 결론으로 나온게 바로 StG-45이지 말입니다.

 

 

 

 

 

사진은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설명하는 구조 설명그림인데,이거 말고도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다른것도 있으니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 무조건 이 그림" 이라는 생각은 안하시는게 좋습니다.

 

뭐 후자 그림은 사실상 가스 활대며 별의 별게 더 첨가되서 오히려 더 복잡하니 아예 모르는게 나을수도..

 

 

StG-45(M)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MG-42와 MG-45의 내부구조를 결합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MG-42의 롤러 장치와 MG-45의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반반씩 섞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 말입니다.

 

위에 올려놓은 사진과 같이 연계하여 다시 설명하자면 노리쇠와 격발기구 바로 옆에 장착된 롤러는 스프링의 힘으로 노리쇠와 약실을 결합하고 있다가 총알이 발사되고 나오는 가스와 반동을 적절하게 막아주다가 어느순간 약실이 적절한 압력을 맞춘다 하면 그때 약실과 노리쇠를 분리시켜 노리쇠가 탄피를 배출하고 새로운 탄약을 급탄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위의 사진의 화살표가 바로 스프링 힘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고, 롤러는 마찰로 압력을 막아내는 역할입니다)

 

P.S)

이게 나중에 G3에서 효과를 발휘하는건 G3가 사용한 7.62 X 51 mm NATO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의 경우 7.62 x 51 mm NATO탄같은 고압력 저속탄에서는 총알이 총열을 떠나기 전까지 가스압력과 힘을 충분히 약실에서 잡아주고 있어야 총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주지않고, 초탄 명중률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롤러같은 지연장치를 사용해야 명중률도 높아지고 신뢰성도 높아지며 반동도 잡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말입니다.

 

 

뭐 언뜻보면 그냥 그저 그런 녀석이고, 실제로 MG-45와 MG-42의 방식을 반반 섞은 녀석이니 이 녀석이 딱히 신기하거나 획기적인 녀석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일반적입니다만, 일단 전작인 StG-44가 가스 작동방식에 회전 볼트방식을 사용해서 상당히 복잡했고 이러한 복잡성과 더불어 무게도 무거웠고  마지막으로 생산에 필요한 재료도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생산단가가 꽤 비쌌다고 할 수 있는데, StG-45에서 쓰인 작동방식은 이러한 재료 절감과 내부구조 단순화에 큰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STG-45의 작동방식이 좋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S)

사실 StG-45(M)도 맨 처음에는 MG-42에서 쓰인 롤러 방식의 쇼트 리코일을 사용하려고 했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STG 시리즈가 생산량이 모자라 기관총 수준으로 쓰는것이 일반적이였고 이쪽은 MG-42로 이미 충분히 입증했으니 새로운 방식으로 모험을 하는것보다는 오히려 낫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있었기에 맨 처음 프로토타입에서는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시제품의 경우 MG-42와 다르게 고정총열을 사용하면서 가스 피스톤도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스 시스템 자체가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연 방식의 블로우백으로 총의 작동방식이 큰 변화를 맞이하긴 했습니다만, 이러한 변화에도 총알을 발사할 시에 총내 압력이 제대로 빠지기 전에 총알이 밖으로 나가는 현상이 생겼고 이 현상은 결과적으로 아직 총안에 남아있는 탄피를 손상시켜 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탄피와 챔버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탄피를 훼손시키지 않는 상태로 노리쇠를 후퇴할 수 있게 따로 설계를 해야했고 이 설계방식은 나중에 또 G3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하지 말입니다.

결국 StG-45(M)은 StG-44 개량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G3을 만들기 위한 HK의 프로토타입이였을뿐

 

 

뭐 결국 StG-45는 만들어졌고, 마우저사는 이걸 제식화시키는데 성공하긴 했습니다만, 잘 알려졌다시피 StG-45는 결국 대량생산을 앞둔 상태에서 종전으로 생산이 중단되었고 세계 2차대전은 명작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되었지 말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생산되지 못한 StG-45는 더이상 아무런 곳에서도 쓰이지 않게 됨에 따라  잘못하면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이 사장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연(!!)인지 몰라도 이 작동방식은 그냥 잊혀지지는 않게 되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작동방식이 흘러들어간 곳은 뜻밖에도 독일이 아니라 독일의 적수였던 프랑스였다랄까요......

 

 

 

 

 

AK만든 사람과 M16만든 사람만 기억해주는 더러운 세상!

G3을 만들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G3의 개발에 영향을 미치신 Ludwig Vorgrimler 박사

(예전엔 발음을 넣었지만, 왠지 누군가한테 독일어 잘못 발음했다고 까일것 같아서 생략했지 말입니다.)

 

 

이분의 경우 종전이후 버려질 뻔한 StG-45(M)와 그 내부구조를 가지고 프랑스로 건너가 추가적인 개발을 시작하셨으며 결과적으로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HK G3의 라이벌이자 이복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CETME 소총의 개발에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위의 사진 설명에서도 언급했듯이 StG-45의 디자인과 작동방식은 LV에 의하여 프랑스로 건너가게 됩니다.

(뭐 이때 LV만 건너간건 아니고, LV의 동료격인 Theodor L?ffler도 같이 건너가게 되고, 나중에 둘이 같이 일하게 되죠)

 

뭐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이유는 일단 독일 전역이 개판되었고 전후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상황임과 동시에 1차대전 이후처럼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하여 무기 개발이 제한될까봐 염려되서일 수도 있습니다만, 실질적인 목적은 마우저사의 개발팀이 프랑스 국방부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단 프랑스의 뮐루즈라는 곳에 정착한 LV은 StG-45의 디자인 개량말고도 탄약에 대한 변경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뭐 StG-45가 애초에 7.92 mm탄약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탄약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이 구조로서는 가장 적합했을 지는 몰라도 독일이 더이상 이 녀석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고 프랑스가 그 탄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건 명백한 사실이였기 때문에7.92탄 말고 그 당시 기본적인 소총탄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괜찮은 파워력을 가진 녀석을 찾게 되었고 그때 가장 대표적으로 나온것이 바로 .30 카빈탄을 쓰는 CEAM Mod?le 1950이라는 녀석입니다.

 

P.S)

가장 대표적으로 나온건 .30 카빈탄을 사용하던 CEAM Mod?le 1950이라는 녀석이였습니다만,실제로는 굉장히 매니악한 소총탄들도 LV의 디자인에 실험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7.5 x 38 mm이라는 녀석을 들 수 있는데 뭐 수치상으로는 7.62 x 51 mm와 별로 큰 차이가 없는 녀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1940년대 만들어진 녀석인데 무려 알루미늄 소재의 탄두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굉장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 말입니다.

 

물론 알루미늄 탄두라는 건 맞지만 실제 알루미늄 구성은 별로 큰 비율을 차지않았고 아무데서도 채용한 기록이 없는, 다시말해 성공할 가능성도 적은거라 판단되었는지 몰라도 이 녀석은 1947년 버려진 이후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G3와 디자인적으로 많은 점이 달랐지만, 탄창을 보면 G3이 아니란것을 알 수 있는 CEAM Mod?le 1950

 

 

CETME와 G3의 디자인은 이미 1950년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실현이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지요.

 

다만 개머리판은 아직 고전적인 목재를 사용하고 있고, 핸드가드도 좀 이상한 구조를 사용하는데다 결정적으로 장전 손잡이도 오늘날 G3의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등 몇가지 없는 점도 있긴 하지 말입니다.

 

 

CEAM Mod?le 1950는 프랑스군의 제식소총으로 선정되는 행운을 얻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생산은 되지 않습니다.

 

이 녀석이 생산되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루면서 새로운 소총을 도입해 시험삼아 쓸 만한 상황이 아니였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프랑스가 NATO의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미국과 탄약 호환을 위해 .30 카빈탄을 쓸 수 없기 때문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재미있는건 .30카빈탄이 미국제인데, 미국이 그것을 쓰는것을 거부했다는 것이지 말입니다.) 이후 프랑스를 포함한 NATO 국가들은 미국의 횡포로 7.62 x 51 mm탄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았고 결국 CEAM Mod?le 1950는 .30 카빈탄을 사용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다른 신형 돌격소총들과 함께 묻히게 되지요.

(이쪽과 관련해 자세한 글을 보고싶으시다면 http://blog.naver.com/zzang1847/107859481 을 참조하시길)

 

이렇게 CEAM M1950은 쓰이지도 못하고 묻히게 됨으로서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또 위기를 맞게 됩니다만, LV가 더이상 프랑스에 남지 않고 스페인으로 옮겨감으로서 다시 한번 기회를 갖게 되었고 드디어 제대로 된 녀석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녀석이 바로 G3의 기본형이라고 할 수 있는 CETME 소총입니다.

 

 

 

 

 CETME 소총 시리즈의 개발사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

 

 

CETME 소총의 경우 G3와 같은 뿌리를 두고 개발된 녀석인 만큼 혼동하기가 쉽다고 할 수 있는데, 전체적인 디자인과 작동방식은 같습니다만, 세부적인 디자인들은 약간씩 다르니 구별이 아주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차이점이라면 가늠자가 HK 특유의 가늠자가 아닌점, 탄창이 커브가 진 점을 예로 들 수 있지요.)

(참고로 마지막 2개 버전은 7.62 x 51 mm가 아니라 5.56 x 45 mm NATO탄 버전입니다)

 

 

CETME 소총은 외관적으로는 G3와 동일합니다만, 사용 탄약은 약간 다르게 고안되었습니다.

 

스페인은 1970년대 후반까지 NATO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참여하지 않는 중립국이였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스페인은 미국의 압력을 받지 않으면서 자국산 탄약을 개발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 당시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CETME는 7.62 mm대신 7.92 x 40 mm이라는 독창적인 탄약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CETME가 전혀 G3와의 고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CETME Modelo 2가 스페인군에 정식으로 채용된 이후 Modelo 2의 디자인에 흥미를 보인 독일 국경경비대가 이 녀석에 7.62 x 51 mm NATO탄을 사용할 수 있는 버전을 CETME에 의뢰하였습니다만, CETME의 경우 독일 국경경비대의 요구를 잘못 알아듣고 7.62 x 51 mm NATO탄이 아닌 탄약의 규격은 동일하지만 장약량을 줄인 7.62 x 51 mm탄약을 채용하도록 설계한 버전을 건내주었고 결국 독일은 CETME 혼자서는 이 개발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갓 설립된 독일의 HK와 CETME를 같이 묶어주게 됩니다.

 

P.S)

참고상으로 말씀드리는건데, FN-FAL과 CETME 디자인 말고도 독일연방군 제식소총 선정자리에서는 SIG사의 SG-510와 AR-10도 공식적으로 참여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SIG-50은 G3와 함께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사용한 최초의 전투소총이지 말입니다.)

(다만 SG-510은 대외적으로 별로 팔린 기록이 없는 녀석인지라 이쪽은 G3와 비교했을때 별로 많이 언급되진 않습니다.)

 

 

이 묶어준 개발팀에서 HK는 CETME의 디자인에 클로즈드 볼트 방식을 채용하였고(CETME의 경우 자동사격에서는 오픈볼트였지만, HK는 반자동과 완전자동 모두 클로즈드 볼트로 교체합니다) 디자인에서도 핸드가드를 철제 핸드가드로 변경하고, 총류탄 발사기를 위해 총열길이를 늘리는등 인체공학적 설계와 더불어 독일 국경경비대가 원하는 디자인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 디자인이 국경경비대와 더불어 독일연방군에 제식화되면서마침내 HK사는 G3라는 이름의 전투소총을 자신들 손에 놓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CETME을 맨 처음 만든 스페인도 HK의 디자인을 1958년 채용하게 되지 말입니다.)

(다만 탄약은 7.92 mm을 고집하지 않고 장약량이 적은 7.62 x 51 mm을 채용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후 이야기는 잘 알려졌듯이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과 G3은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대박을 터트렸고 G3은 7.62 x 51 mm NATO탄을 사용하는 전투소총으로서는 꽤나 큰 판매실적을 자랑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게 되지요.

 

이러한 G3의 성공에 따른 판매금액과 명성은  G3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던 HK사에게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었고(맨 처음 G3 생산은 라인메탈과 HK가 같이 주도했지만, 라인메탈이 MG3 생산을 시작하면서 HK에게 생산권을 넘깁니다) HK는 1949년 갓 탄생한 개인화기 회사 답지않게 이 당시 거의 TOP 5에 들어가는 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HK의 전성기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P.S)

G3가 나올 수 있었던 주요 이유중 하나가 FN-FAL을 만든 벨기에가 2차대전 당시 독일에게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뒤끝을 보여주는 FN사가 판매를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웹상에서 자주 떠돌지 말입니다.

 

사실은 FN사가 맨 처음에는 독일군이 FAL에 대한 판매를 요청하자 약 10만정에 달하는 FAL을 독일 연방군에게 판매한 기록은 가지고 있었고

다만 독일군의 경우 맨 처음 도입된 10만정의 FAL을 G1이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한 이후 추가 도입물량은 FN사에서 만들어 공수하는것이 아니라 자국에서 라이센스로 생산하게 해달라는 것을 FN에게 요청했지만 FN이 이를 거절함에 따라 다른 전투소총을 찾게 되었고, 그 중에서 FAL보다 낫다고 평가되는 HK사의 CETME 디자인을 G3라는 이름으로 도입한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약에 그렇게 뒤끝이 심했다면 UZI가 독일군에서 제식 기관단총으로 오래 쓰인것은 말이 안되는 시나리오지 말입니다.

(다만 이쪽은 독일군이 꼭 구입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전후 보상 차원에서 구입한거긴 하지만 말입니다.)

 

 

P.S)

LV의 스페인에서의 활동은 CETME 소총 선정 이후 끝나게 됩니다.

 

뭐 그렇다고 쫓겨난 것은 아니고 이분은 고향인 독일로 돌아와 계속 개인화기 개발에 몰두하게 되는데 비록 CETME 이후 성공적인 디자인은 만들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민수용 소총이나 몇개 만들고이후에는 HK-21에 기본이 되는 실험작도 만드는등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개인화기 개발 사업에 종사하셨다고 하네요.

(왠지 일대기는 존 브라우닝과 비슷한 분인데, 이분은 좀 더 마이너한 곳에서 활동하신듯 하지 말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사진의 다른 버전

(이건 위에거랑은 조금 다른 G3 내부구조 사진)

 

 

사실상 기본적인 작동방식이나 전체적인 구조는 StG-45(M)와 같다는것을 볼 수 있지 말입니다.

 

 

일단 G3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다 아실테니 생략하도록 하고.... 뭐 G3가 성공하게 된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하자면 해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NATO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으니 일단 총 개발 못한 NATO국가는 어쩔 수 없이 G3 사용

=> 사실 1950년대만해도 사실상 7.62급 전투소총에 대한 개발은 많이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2차대전 끝난거 전후복구하느라 바뻐 죽갔는데, 복구가 먼저지 보병용 소총이나 개발하자고 머리 쥐어짤 시간이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어쩌다 보니 냉전이 시작되고, 어쩌다 보니 AK같은 녀석이 나와서 혼란에 빠지니볼트액션이나 반자동이 아닌 전자동 소총을 도입하긴 해야하는데, 기술력이나 자본이 없으니 일단 타 국가에서 만든것중에 쓸만한거 있으면 그거라도 도입해서 쓰자는 의견이 있었고 결국 이러한 의견중에서 몇 안되는 옵션이였던 G3은 상대적으로 부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NATO국가는 무조건 7.62을 사용하라는 강요를 하는 시점인걸 감안한다면 말이지요.

(당장 독일도 오죽 급했으면 FN사의 총을 10만정이나 수입해서 쓸 정도였으니 이 당시 사정은 이해하기 쉬우실듯)

 

2.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디자인이 7.62 x 51 mm NATO탄과 궁합이 잘 맞아서 좋은 평가를 받음

=> 아무래도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이라는 디자인 자체가 7.92 x 33 mm Kurz탄을 위해 개발된 작동방식이고, 7.92탄보다는 조금 더 힘이 세긴 하지만 돌격소총이라는 범주에 얼핏 들어가는 7.62였던것과 더불어LV가 그래도 CETME사에서 일할때 이 녀석을 염두하고 HK와 같이 개발에 착수했던지라 어떻게 탄약과 작동방식은 잘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뭐 잘 맞아떨어진건 기본적이였지만, 부가적으로 괜찮은 명중률을 자랑하는것은 물론이요.

내구성도 꽤 괜찮은 수준을 자랑한다는 평가를 대외적으로 많이 받게 되어 자연스레 이것이 광고효과로 작용하게 되었지요.

 

P.S)

G3와 FN-FAL 이야기를 하다보면 둘의 내구성이나 정확도 비교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있으신데, 일반적으로 FAL이나 G3을 소유했던 민수용 사격가들에 말에 따르면 거기서 거기라고 합니다.

 

뭐 G3는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썼고, FAL은 가스작동식에다가 브리치 블록방식을 써서 약간 다르긴 하지만(브리치 블록이나 롤러 지연방식이나 비슷하게 가스압으로 노리쇠를 후퇴하는 디자인이니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능이나 내구성, 그리고 명중률까지 거의 50보 100보 차이였다고 하는데 오히려 웹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실제 성능 테스트보다는 FN빠 VS HK빠에 관한 것이였지 말입니다.

(다만 FAL은 이스라엘군이 중동전쟁때 사막지형에서 급하게 쓰느라 내구성이 좀 낮다는 소리를 듣긴 합니다.)

(솔직히 FAL이나 G3나 M14나 M16이나 사막지형에서는 제대로 관리 안해주면 잘 작동하지 못합니다. 다 총이니깐 말이지요.)

 

 

P.S)

참고로 FAL VS G3에서도 어느 녀석이 더 성공했냐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FAL은 약 90개국에서 사용되었고, G3는 약 40개국에서 사용된것으로 기정사실화 되어있습니다.

 

뭐 숫자 놀음은 다들 하실줄 아실테니 어느 녀석이 훨씬 많은 판매실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아시겠지 말입니다.

 

 

3. 5.56 x 45 mm NATO탄이 등장하기 전에 나온지라 반동제어에 대한 불만이 전혀 표시되지 않았음

=> 이건 G3만의 장점이라고 하기보다는 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 나온 전투소총들을 일컬어서 나오는 장점인데 5.56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에 나왔던지라 7.62급 자동소총이라는 이름 만으로 괜찮다는 평가를 들었고 5.56이 나오기 전에 7.62급 전투소총을 써보고 반동 제어 못한다고 징징거리는 병사들은 팔힘없다고 외면받았지 말입니다.

물론 팔힘이 있건 없건 7.62급 전투소총은 사실상 자동사격을 고안한것 자체가 보병용 화기로서는 최악의 실수였지만...

 

4. 외계인 삶아먹는 독일인 디자인인데 어떤 플라스틱 총이나 탄도학 그지같은 저가 소총이 G3한테 누가 개길소냐

=> 뭐 외계인 소스같은걸 끼얹나?

 

 

위에서 언급되었던 3가지(4가지가 아니라?)의 장점으로 인하여 G3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둡니다.

 

사실 2차대전 전후의 복잡한 개발과정을 종합해본다면 당연히 성공해야 할만한 명작인건 사실입니다만 정작 이걸 개발해서 독일군에 채용시켰던 HK는 이 뜻밖지 못한 성공에 어안이 벙벙했고 결국 HK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G3의 디자인과 구조를 우려먹는것이 회사를 성공시킬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지요.

실제로 HK는 그러한 우려먹기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후문이....

 

 

 

 

말이 필요없습니다.

SAS, 9 mm 파라블럼, HK

그야말로 3가지 단어로 설명이 가능한 그 총

SAS-HK9!! 

 

 

G3가 성공한 이후 HK는 본격적으로 개인화기 사업에 몰두하게 시작하게 됩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HK는 맨 처음에는 미싱이나 만들던 회사인데, 이후 Mauser사의 하청업체로 들어갔지 말입니다)

 

이때 HK의 경우 G3의 디자인이나 작동구조가 신뢰성이 높다는 평을 받게 되자 아무래도 이쪽으로 방향을 잡는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그 당시 등장했던 유명한 소총탄이며 권총탄이며 구할 수 있는 탄약들을 닥치는 대로 이식하기 시작 하는데(웃긴게 동구권 국가들에 판매할 생각으로 G3에 7.62 x 39 mm M43탄까지 이식하는 병크도 저지른곳이 바로 HK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HK사는 9미리 파라블럼을 넣었을때 G3의 구조가 상당히 괜찮다고 느껴진 HK는 마침 독일 국경경비대가 소총과 비슷한 느낌의 기관단총같은걸 좀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니(G3은 맨 처음 독일 국경경비대가 요청해서 만든것이지 말입니다. 그러니 소총과 비슷한 느낌의 기관단총을 원할 수 밖에요.) 마침 9미리 파라블럼이 괜찮다고 느껴진 HK는 전체적인 모양이나 내부구조는 유지하되 크기를 줄이고 여러가지를 손본다음 이를 HK54라는 이름으로 내놓았고이게 바로 MP5의 원조가 되는 바로 그 기관단총이지 말입니다.

(물론 내부구조를 유지하긴 했습니다만, 볼트구조는 9미리 파라블럼의 특성상 세부적으로 변경됩니다.)

 

P.S)

독일 국경경비대의 경우 맨 처음에는 MP40같은 2차대전 무기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곧바로 IMI 우지 기관단총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뜬금없이 2차대전 학살의 주인공인 독일이 학살당했던 유태인의 나라의 기관단총을 쓰는것이 말이 안되는듯 싶겠습니다만 전후 이후 나온 UZI는 사실 성능 자체는 MP5가 등장하기 이전의 서구권 기관단총으로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예전의 악연(?)도 풀겸 독일 경비대와 독일군이 MP2라는 이름으로 우지를 다수 사용했지 말입니다.

 

 

일단 MP5라는 이름으로 독일 국경경비대에 채용된 HK54는 별 문제없는 순탄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됩니다.

 

애초에 G3 디자인 자체가 꽤 인체공학적이였고, 클로즈드 볼트에다가 9미리 파라블럼을 사용하니 반동도 적고 내부구조도 괜찮은 수준으로 단순화되어있고, 마지막으로 컨트롤이 쉬우니  마땅한 기관단총이 없었던 독일 국경 경비대쪽에서는 괜찮다는 평가를 하고 잘만 쓰기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독일연방군에도 눈에 들어가 MP2도 대체할겸 채용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고(정확히 MP5라는 제식명을 받은 시기가 이때이지 말입니다. 적어도 경비대에서는 그때까지 HK54라는 이름을 유지했습니다) 군용 기관단총으로 채용되니 자연스레 특수부대에도 들어가게 되고

독일 특수부대가 좋은총 쓴다니 우리도 좋은총 써보자고 해서 영국 SAS도 MP5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어쩌다가 인질극 진압작전에서 MP5 쓰고있는게 의도치 않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눈 깜짝할 새 MP5는 20세기 만들어진 기관단총중 가장 큰 성공을 자랑하는 녀석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P.S)

웃자고 한말 같지만, 실제로 MP5도 G3와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하게 엄청난 대박을 거둔 녀석입니다.

 

뭐 정확성 높고 신뢰성 높다는 점에서는 인정받을만한 녀석이였지만, 소총의 디자인으로 나온 기관단총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성공한 녀석이였고, 막상 팔리기 시작하니깐 엄청나게 나가서 오늘날까지 MP5는 꾸준한 수요를 자랑하고 있지 말입니다.

(다만 가격이 아직도 좀 비싼 수준이라 그게 문제라면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P.S)

물론 그렇다고 해서 MP5가 무조건 TOP이라고 불려야 할만한 녀석은 아닙니다.

 

클로즈드 볼트이니 부품수도 꽤 많이 들어가고, 과열 현상도 쉽게 나타날 수 있는데다가 장비 장착을 용이하게 만들지 않았던 초반 시절에는 소음기 버전을 따로 만들어 주는 행동을 벌였고(뭐 물론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장착하는 소음기 버전보다는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들었긴 하지만 말입니다) 가격은 또 드럽게 비싼데다가 최근에는 9미리 파라블럼만 쓴다고 욕 많이 먹고있지 말입니다.

(뭐 MP5/40이나 MP5/10같은 녀석들은 이런 9미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지만 이 역시 사장당했지요)

 

 

G3의 MP5의 연속적인 성공은 말 그대로 HK를 냉전당시 최고의 개인화기 전문회사로 끌어올리게 됩니다.

(어느새 붙어버린 "전문"이라는 단어에 주목)

 

MP5의 성공 이후 HK는 자신감을 얻고 G3 디자인을 계속 우려먹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는 저격총으로 G3-SG1같은 바리에이션도 만들어보고, 이를 기반으로 PSG-1/MSG-90같은 정밀 저격소총에다가 HK-21같은 기관총도 만드는데다가 추가적으로 G3와 MP5의 바리에이션같은 것을 만듬으로서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의 총기를 만드려 노력을 하게 되고 MP5의 성공 이후에도 HK의 판매실적은 꽤 높게 유지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원래는 PSG 관련 이야기도 넣을까 했는데, 워낙 유명하고 단순하면서 설명하기 귀찮으니(!) 패스합니다)

 

그런데 이 HK의 고공행진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2가지가 존재하였으니...... 그 2가지가 바로 HK우려먹기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HK-33/G41과 잊혀지지 않는 비운의 명작이라 불리는 G11입니다.

 

 

 

 

 개인화기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냉전당시 가장 기가막힌 소총이였다고 모두가 한입을 모아서 말하게 되는 G11

 

 

화승총 시절에나 있었던 무탄피 탄약을 현대에 실현하려 수십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 만든 탄약을 만들었고 이러한 수십년간의 개발과 고생으로 인하여 나온 실제 생산품인 G11의 성능은 일반적으로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현대 돌격소총을 가뿐히 능가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HK의 실질적인 기술력이 총집합된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요.

여기다가도 외계인 소스를 끼얹나?

 

 

사실 여태까지 위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들과 잡설을 총 종합해보자면 "HK는 G3의 성공 이후 여태까지 쭉 G3 내부구조와 디자인을 욹어먹었다"라고 할 수 있는데 뭐 그렇다고 해서 HK가 골빈 머리들의 집합소였던 것은 아니고, G3의 개발이 완료된 이후부터사실상 G3의 디자인을 언제까지나 욹어먹으며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신들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태까지 계속 그렇게 욹어먹었던 고야?

물논 요태까지 그래왔고 아패로도 계속

 

그래서 시작한게 바로 무탄피 탄약 관련 사업이였는데 기존의 소총들이 가진 한계점을 벗어나고, HK만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나온 프로젝트가 바로 G11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그 이전까지 무탄피 개발에 대한 시도는 몇차례 있었지만, HK처럼 본격적으로 대 자본을 투자해서 성능을 평가할 수 있고 발사가 가능한 시제품까지 생산한다음 판매를 준비한 회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잘만하면 HK는 말 그대로 돈방석 위에서 앞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만, 다들 잘 아시다시피 그런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지요.

(왜 안일어났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창에 G11을 쳐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을겁니다.)

 

 

뭐 자세하게는 설명해드리지 않았습니다만, G11은 서독과 동독의 통일과 냉전의 붕괴로 처참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언젠가는 예상했던 냉전붕괴였지만, HK는 그것이 G11이 독일과 미군의 차세대 소총개발사업이 완료되는 시점 바로 직전에 될줄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HK는 수십년간 투자한 G11을 물말아먹으면서 세계 최고의 개인화기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경영난에 시달리는 위태한 회사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HK가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었던 희망의 끈은 위에서도 줄기차게 언급했던 G3와 내부구조 우려먹기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우려먹기가 냉전 초/중반에는 먹혔을 지 몰라도 냉전이 후반기에 접어들어가는 7~80년대부터는 약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주춤거림에 종지부를 찍는데는, HK의 야심작이였던 HK-33와 G41가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탄창만_빼면_니네는_뭐가_다른거니?.JPG

HK의 첫번째 5.56 mm용 소총으로 나왔던 HK-33

 

 

말 그대로 G3의 5.56 mm NATO탄 버전으로서 MP5와 더불어 G3의 내부구조를 적절하게 답습해서 나온 몇 안되는 HK사 5.56급 돌격소총인 녀석이지 말입니다.

 

문제는 몇 안되는 HK사 돌격소총인데 HK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HK-33만큼은 그렇게 열광하지 않았다는것이랄까요...

 

 

HK-33은 G3이 7.62를 사용한다는 그 하나만으로 생기는 문제점들 반동을 제어하기 위한 무거운 무게와 약간 모자란 20발 탄창, 길다란 전체길이로 인한 낮은 휴대성 등등 자잘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마침 NATO 국가들이 5.56급 돌격소총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맞춰서 G3의 성공만큼 다시 한번 HK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보자라는 의도로 만든 녀석입니다.

 

실제로 HK-33은 G3보다 무게도 가벼워지고 전체길이도 줄어들었으며 30발 탄창은 물론이고 5.56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한 반동 감소같은 자잘한 장점들을 바탕으로 맨 처음에는 흥미를 끌었고 이러한 특징 덕분에 초반에 독일에서도 소수 쓰이기 시작하고, 칠레나 브라질같은 제 3세계에서도 서서히 쓰이며 괜찮은 판매실적을 바탕으로 성공....하려다가 그냥 사라지게 됩니다.

 

?!?!?!?!???!!??!?!?!?!?!?!?!?!?!?!

 

아니 5.56급 돌격소총중에서 HK가 맨 처음 만든 녀석이고, 실제 평가도 좋았다는데 도대체 왜 HK-33은 실패한 것일까요?

 

우연찮게도 HK-33의 실패는 바로 HK가 고집했던 그 작동방식과 HK사의 NATO에 대한 무지..마지막으로 G3가 나왔을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일단 HK-33이 실패한 이유를 따지면 해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HK-33에서 사용하는 5.56 mm NATO탄과 전혀 맞지 않는 시스템이다.

=>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위에서도 짤막하게 설명했습니다만, 노리쇠와 격발기구 바로 옆에 장착된 롤러를 이용하여 총알이 발사되고 나오는 가스와 반동을 적절하게 막아주다가 어느순간 약실이 적절한 압력을 맞춘다 하면 그때 약실과 노리쇠를 분리시켜 노리쇠가 탄피를 배출하고 새로운 탄약을 급탄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스템의 경우 7.62 x 51 mm NATO탄같이 반동이 높고 압력이 높은 대구경 탄약에서는 효과를 발휘합니다만, 5.56 x 45 mm NATO탄같이 반동이 적은 소구경 고속탄에서는  롤러로 인한 격발기구 및 노리쇠의 고정이 풀리기전에 이미 탄두가 총열을 떠난 상태임과 동시에 롤러를 굳이 사용해서 반동이나 초탄 명중률을 줄여줘야 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롤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결국 필요없는 부품만 더 들어간 셈이 되는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이제나 저제나 따져보면 5.56급 돌격소총에 굳이 복잡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써야 할 이유가 없게 되었지요.

(7.62급에서는 어느정도 반동을 상쇄시키고 안정시키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만, 5.56은 전혀 다른 시나리오지요.)

 

2. NATO에서 원했던 기준을 전혀 충족하지 않는다.

=> 5.56이라는 NATO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HK-33도 M16같은 녀석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STANAG 규격 탄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심하게 대두되었지 말입니다.

 

3. G3와 다른 분위기.

=> G3가 나왔을때는 사실상 전후 복구작업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었고 이 당시에는 빨리 재무장을 해야하는지라 HK에서 만든 녀석이라도 써야할 판이였기 때문에 G3은 자연스레 성공하게 되었습니다만, G3가 아닌 HK-33가 나왔을때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5.56급 돌격소총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자국산이 아닌 타국 돌격소총을 본격적으로 다수 도입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HK-33가 등장했어도 전혀 제식화에는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 말입니다.

(다만 특수부대로는 단축형인 HK-53같은 녀석들이나 HK-33K같은 녀석들은 어느정도 팔리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잠재적으로 있었던 HK-33는 HK사가 만든 총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외면을 받게 됩니다.

 

말 그대로 외면을 받은 녀석으로서 몇몇 국가에서 소수로 채용된 실적을 가지고 있지만, G3와 비교하면 참 초라한 성적이였지요.

 

이러한 HK-33의 실패는 HK사를 충격에 빠트리게 되었고 (G11의 실패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G11가 나오기 전의 일이니 그때는 이것도 큰 실패로 여겼지 말입니다.) 결국 HK는 대대적인 개량을 통해 다시한번 재기를 꿈꾸게 됩니다.

 

근데 그 재기라고 한게 고작 G41였다는것이 문제랄까요...

 

 

 

 

HK-33도 아니고, G3도 아닙니다. 이 녀석은 G41입니다.

 

 

생김새에서 팍 감이 오실 분들은 오셨을거라 생각됩니다.

 

이놈의 HK......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는것을 말입니다.

 

 

G41은 사실 HK-33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나온 녀석이지만, 1선 배치를 위해 나온 돌격소총은 아닙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1980년대 말 정도 가면 이미 G11은 개발이 끝나고 채용준비가 완료된 상태였고 G41은 후방에 남아져 있는 G3들이 G11과 생기는 실제 성능 격차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나온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HK-33와 다르게 G41은 약간 개량을 하긴 했다고 할 수 있는데, NATO 표준탄창인 STANAG 탄창을 사용하도록 개량을 하고 M16같은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캐링핸들이나 노리쇠 멈치도 달아주고 무소음 노리쇠 잠금장치라는 장치(사실 단어만 걸출하지 성능은 M16에 있는 노리쇠 강제 전진기)도 달아주는등 꽤 많은 디자인적 변화를 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G41에 와서도 G3에서 쓰던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에 대해서는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고집하고 있었고 결국 다들 아시다시피 G11는 냉전이 끝나면서 자동적으로 탈락하고 G41은 자연스레 HK-33와 같은 운명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HK의 사골국 우려먹기가 끝나는 그 순간이였지 말입니다.

 

 

 

 

HK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증거

 

 

G36와 UMP는 G3의 내부구조나 디자인을 전혀 따라하지 않은 최초의 자동화기들로 HK가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나온 이후 만든 녀석들중 성공하게 된 대표적인 화기들입니다.

전혀 다른 디자인과 작동구조를 사용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것을 HK에 보여준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근데 이것들 다시 M4 디자인 욹어먹고 있으니 조만간 또 물먹어야 할듯

 

 

HK의 경우 G11의 실패와 G41의 실패로 인하여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후 영국의 로열 오드넌스에 판매된 이후 L85같은 녀석들이나 개량하는 사업을 몇개 맡아하다 2000년도 초반이 되서야 겨우 다시 독일인의 손으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게됩니다

 

그래도 다행인지 몰라도 G11의 디자인이 실패했을 경우 대비작으로 만들어놨던 HK50가 독일군 제식 소총으로 선정되는 행운을 맞았고(여기서 나오는 HK50가 바로 위 사진의 G36의 원형입니다.) UMP도 MP5의 성능에 버금가는 수준에 싼 가격, 높은 저지력을 인정받아 현재 꽤 괜찮은 판매실적을 자랑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으니 HK는 이제 다시 괜찮은 회사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 짧디 짧은 잡설의 결론은 해당과 같습니다.

 

1. 뭐든지 너무 우려먹으면 언젠가는 망하게 되어있다

2.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산다는 말은 훼이크일뿐

3. 성공하고 싶을땐 외계인 소스같은걸 끼얹나?

 

 

 

 

P.S)

혹시나 위의 롤러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자세히 알아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짤방

뭐 다를건 없고 3개의 스테이지로 나뉘어 움직임을 보여주니 이쪽이 더 알기 쉽긴 할듯.

 

 

P.S)

아까 언급하지 못한 점인데, G3와 FAL을 비교했을때 일반적인 사용자의 의견은 해당과 같다고 합니다.

- FAL의 장전손잡이가 G3의 것과 비교했을대 좀 더 효율적이다
- FAL은 오픈볼트고 G3은 클로즈드 볼트인지라 막 갈길때는 FAL이 더 낫다

- G3나 FAL이나 부품수는 비슷하지만, 정밀 분해를 했을때는 FAL이 더 맞추거나 분해하기가 쉽다

- FAL은 가스 조절이 쉽지만 G3은 그렇지 않으니 약간 불편하긴 하다(하지만 별 차이는 없다고 하네요)

보면 알 수 있겠지만, FAL이나 G3이나 정작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근데 M14은 어디갔지?

 

 

P.S)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의 경우 소총에서 효과적인 평을 받긴 했고 나중에 우연찮게 MP5같은 기관단총에서도 괜찮다 평가되어 좋은 실적을 자랑하긴 했습니다만, 재미있게도 이 방식은 권총같은 곳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기회를 맞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롤러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용 권총으로 HK사의 P9같은 녀석을 들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권총탄과 권총의 특성상 탄약이 나가기 전에 약실을 닫아놔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G3와 마찬가지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이를 제대로 접목시킨 덕분에 독일 경찰 뿐만 아니라 미 Navy SEAL에서도 소수로 쓰이고 있긴 하다고 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 방식을 사용하는 권총은 이 녀석이 거의 유일하다 시피한 점이지 말입니다.) 

(참고로 동구권제 Cz.52같은 녀석은 롤러를 사용하긴 하지만 이쪽은 블로우백이 아니라 반동 작용식을 사용.)

 

 

 

 

 

P.S)

따지고 보면 다른 내용이긴 합니다만, FN사도 HK사와 비슷한 경험(?)을 한적은 있습니다.

 

대략 FN사가 만든 소총중에서 그나마 1950년대 가장 성공한게 바로 FAL이라는 녀석이였고 이쪽도 HK와 다를바 없이 욹어먹기를 시전하려고 FN-CAL이라는 5.56급 돌격소총을 등장시켰고, 결국 망했지 말입니다.

 

다만 이쪽은 G3-HK33와는 다르게 FAL의 내부구조를 대폭 변경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만 한데 FAL 내부구조와 작동방식을 유지시켜도 큰 문제가 없는걸 굳이 새로운거 써보겠다고 변경한게 문제지요.

(굳이 좀 새로운거 해보겠다고 5.56에서도 괜찮다고 평가된 가스 작동식 + 회전 노리쇠를 바꾼게 문제라면 문제랄까요)

(근데 내부구조는 바꿀꺼면서 도데체 디자인은 뭣하러 그대로 유지한거야?)

 

다행히도, FN은 CAL의 실패를 깨닫고 FNC라는 녀석을 만들어 벨기에에 채용시켰고 FNC 이후에는 아예 불펍식으로 소총 개발 방향을 돌려버렸으니 이쪽은 HK사와는 다르게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본문출처: 위키백과

 

 

 

 

출처      http://blog.naver.com/zzang1847/11043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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