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18. 일곱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박이순 집사
성경 말씀 야고보서 1:9~11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사람다움이란?
찬송 469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가족 방문 정귄자 권사 막내아들, 임성례 권사 셋째 아들 가족(강원도),
최연희 권사 딸 부부, 이순희 집사 딸 가족, 황막래 권사 아들 부부 외
찬송 464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이현우 성도를 모시고 원대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19구급차들이 즐비하고
병원 응급실 안은 도떼기시장 같았습니다.
접수조차도 못 한 체 3시간여를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 이현우 성도님도 휠체어에 앉아서 3시간여를 기다려야 하니
엉덩이가 무를 것처럼 휠체어 아래로 온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면 다시 부추겨 올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3시간여를 무심하게 서 있는 목사님조차도
눈이 휑해져 지쳐있는 모습에
우리 이현우 성도께서
목사님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아무 이유도 없는 목사님이
고생고생하시네요.
9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절,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절,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진하리라
어제 오후 나절에서야
쓰레기를 태울 겸 차가운 바람 가슴에 담을 겸 잔디정원에 나갔습니다.
우리 박영숙 집사도 심심했던지 때맞춰 빼꼼히 나왔습니다.
잠시, 산책하면서 하는 말이
우리 권선희 선생께서 출근할 때마다 길고양이 사료를 가져와
길고양이들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착한 행실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권선희 선생도 쓰라린 아픔을 안고 사는 분입니다.
어린 아들이 몇 년째 암투 병 중입니다.
그러니 엄마 가슴이 얼마나 아리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가엾은 길고양이들까지 불쌍히 여기는가 봅니다.
그래서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주님처럼
작을지라도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우리 권선희 선생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9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지구상의 돈을 다 쓸어 모으면 60조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경 130조 원입니다.
그런데 60조 달러 중 59조 달러는 쓰여지지 않는 돈입니다.
그냥 은행 계좌에 숫자로만 찍혀 있을 뿐입니다.
결국, 돈이라는 놈은 추상적인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색종이 돈에 목숨을 걸잖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그놈의 돈 때문에 망하고 죽습니다.
목사님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절, 가로되 어느 계명이 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19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절,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길고양이를 거두는 우리 권선희 선생처럼
그릇 하나에 흰쥐 다섯 마리 밥을 가득 담아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서 흰쥐 다섯 마리마다 각각 그릇을 만들어 놓고
그중 한 마리 흰쥐에게만 밥을 주고
나머지 네 마리 흰쥐에게는 밥을 주지 않고
빈 그릇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네 마리 흰쥐가 배곯아 끙끙끙 소리 질러댔습니다.
그런데 밥을 맛있게 먹던 한 마리 흰 쥐도
끙끙끙 앓고 있는 네 마리 흰쥐를 보면서
밥을 전혀 먹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쥐새끼도 이럴진대
우리도 사람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장관은 장관다워야 하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하고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성도는 성도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난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겠습니까?
부모님을 잘 못 만났기 때문이겠습니까?
그래서 젊은 싯다르타는
브라만 계급이었던 부자 부모 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충분할 터인데도
사람은 왜? 고통스러운 것일까?
깨닫기 위해서 가난을 자처했습니다.
수행 3년이 지나서 뭔가를 깨닫기 시작할 때쯤
아주 어여쁜 여인을 만났습니다.
아뿔싸, 그 여인은 몸을 파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싯다르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말인즉은
너도 나에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아니겠습니까?
싯다르타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릴 줄도 압니다.
그리고 난 단식(가난, 굶주림, 절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전혀, 이 여인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여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돈 그리고 명예, 권력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린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만났던 우물가에 여인을 보는 듯합니다.
♬ 906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 2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 3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아주시리
♬ 후렴,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10절입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우린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이런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깨달음과 믿음 때문에
우리 인류가 발전해 온 것입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인지능력,
믿음 때문입니다.
야고보도 형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고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그리고 깨닫고 얻게 된 심안心眼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야보고는 62세에 순교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금방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11절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진하리라
주역에 대인, 소인, 비인飛人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를(지천명) 대인이라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자를 소인이라 합니다.
깨달음이란
Who am I?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밖에, 돈뿐이 모르는 사람을 소인배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비인飛人입니다.
목사님이 서울에서 이런 비인飛人 목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인飛人은 똥 같아서 상대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기록되기를
우리 인생이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꽃은 아름다워야 열하루잖습니까?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룻밤 꿈과 같잖습니까?
엊그제 혈혈단신 우리 김성오 집사님 화장을 시키니
유골이 한 줌이었습니다.
그러니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 김성오 집사님이 사우디 가서 죽어라 벌어놓은 돈
믿었던 아내가 하루아침에 훅 날려 버렸습니다.
우리 고모님께서 북부시장에서 노점상을 했습니다.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추운 겨울에 쪼그려 장사를 하다가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장독을 청소하다 보니
장독 속에 5만 원권 지폐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만 원도 못 써보고 죽어라 죽어라 일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부자였는데도 어린 조카들 용돈 한번 주지도 않았습니다.
이사야 40장 6절입니다.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느니라
요즘 목사님은
바람처럼 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처럼
무심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무심한 바람이 없다면
꽃이 피겠습니까?
무심한 바람이 없다면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이제 봄기운이 역력합니다.
그러니 곧 들꽃 진달래 개나리도 피겠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빠르니 우리 인생도 금방 늙어버렸습니다.
죽어라 일했지만 병든 몸뿐입니다.
주님, 이런 우리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세상은 사랑할 줄도 모르고 아우성이잖습니까?
죽고 죽이고 그렇습니다.
달무리가 지면 비가 온다더라
어디서 한 번 얻어들은 뜬소문에
헐뜯고 물어뜯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생을 낭비합니다.
어른인데도 그렇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사오니
무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느니라 하신 주님
나이가 든 것만큼 성숙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참 좋으신 주님, 주님을 찬송하니 우리 마음이 평안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이제 받은 바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헌금을 드립니다.
주일, 주정,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드린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육체는 풀이요 그의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니
영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살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그리고 암투병 중에 믿음으로 치유되기를 원하는
진교희 권사님과 장로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