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보다 설렘으로 민10:11-16. 2024. 1/28
2024년도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늘 우리는 1월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살아갑니다다만, 뭔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전혀 낯선 것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하려는 용기를 쉽게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 한쪽 구석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보다 설레는 마음이나 새로운 것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이 큰 사람, 그래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늘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사람은 우리는 개척자라고 부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 사람들이 쉽게 가려하지 않는 길을 용기 내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하던 중에 어쩌면 가장 설렘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날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온 후 두 번째 해 두 번째 달 20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13개월 하고 20일이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지 석 달 만에 시내산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내산 아래에서 약 11개월 가까이 머물러 있었고, 오늘 본문은 드디어 시내산을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을 향한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출발하라고 신호를 보내신 것입니다.
Ⅰ. 앞서가시는 하나님 11-12
11-12절에 보면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자손이 시내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그들이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바란광야에 오는 내내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여기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언약궤가 앞장섰다’는 말은 하나님의 광야 길을 앞서가셨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궤가 바란광야에서 멈추었습니다.
바란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고 두려운 광야’(신명기1:19)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바란’이라는 단어는 ‘빛나는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태양빛에 반사되는 모래가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태양빛이 뜨겁게 작렬하는 곳입니다. 또한 그 지역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된 낮고 험한 언덕과 메마른 모래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인간이 거주하기에 결코 적합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광야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광야 길에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분간하기도 막막하고 어려운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친히 그 여정을 진두지휘하셨습니다. 민10:33-34절에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여기에 "찾으셨고"라는 말은 "이리저리 다니다", "정탐하다", "자세히 조사하고 살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목자가 양을 위해 맑은 물과 푸른 풀밭을 이리저리 다니며 자세히 살피며 찾듯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곳,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을 찾으시고 예비하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신1:30절에 보면 참 감동이 밀려 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모세는 여호와를 가리켜 30절에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안아주셨다”고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좋을 때는 좋지만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고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대우하셨나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스스로 힘들어 했던 적은 있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떠나신 적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가 가득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셔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곳이기에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합니다. 조직을 만드셨습니다. 14-16
하나님의 출발 신호와 함께 시내산을 출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것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시내산에 1년간 머물면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십계명을 주심으로 인생에 있어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성막의 완성과 군대를 조직함으로 가나안 정복 준비를 마치게 하셨습니다. 불과 1년전만해도 오합지졸이었던 이스라엘은 이제 영적으로나 군사조직적으로나 완벽하게 준비된 하나님의 정예부대로 변모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은 가나안 땅을 향해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두로 유다 자손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행진하였으니 유대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이끌었고.” 여기에서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군대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진영의 군기’라는 말은 군대가 전쟁터에 나갈 때 맨 앞장 서는 군대의 깃발을 말합니다. ‘진영별로’라는 말 역시 군대의 한 조직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앞장서 나가는 유대지파를 부르를 때 그냥 ‘유다지파’ 이렇게 부르지 않고 ‘유다 군대’라고 부릅니다. 유다지파만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닙니다. 15절에서는 가장 앞장섰던 지파 가운데 잇사갈 지파에 대해서도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라고 표현하고, 16절에서도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시내산을 출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마치 잘 짜여진 군대의 모습처럼 설명하고 있을까요?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머물면서 그들은 더이상 옛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내산에서 바란 광야까지 가는 그 기간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겠습니까? 가나안 정복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두려운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3년 4개월만에 코로나 19종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마음에는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코로나의 종식을 선언했지만 아직도 코로나는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써야할 것같은 생각이 들고, 실제로 공공장소에 갈 때면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못지 않는 전염병이 앞으로도 자주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에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 코로나 때문에만 그렇겠습니까? 코로나19가 워낙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강타해서 그렇지, 우리는 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글로벌 경제위기도 그렇거니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도 우리 사회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영역을 좁혀 개인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안정되지 못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 등이 늘 마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간다면, 결코 이 한해가 우리에게 절망의 한해가 될 수없습니다. 이제 교회도 목장을 다시 일으키고 무너진 교회학교를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다음세대를 위해 힘을 합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다음주부터 청년 예배가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는 마냥 이 현실 앞에 주저 앉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회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또한 설렘으로 2024년도를 당당하게 헤쳐나가야 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가 상황이 힘들고 여건이 어렵더라도 성령과 함께 꿈을 꾸고자 합니다. 다시 부흥하는 꿈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성령과 함께 꿈을 꾸는 한 해가 되기 바랍니다.
Ⅲ.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가는 길은 광야입니다. 바란 광야입니다. 크고 두려운 광야입니다. 그들은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쉴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크고 넓은 광야이지만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머무를 곳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3일 길을 걸은 후에 쉴만한 곳을 찾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잠시마나 여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걸어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설렘입니다. 11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을 드디어 떠난다는 설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간다는 설렘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때,그 구름 기둥을 쳐다보며 가는 그들의 마음에 ‘이런 기적같은 일을 우리가 보다니!’라며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에 설렘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광야생활에 대한 두려움, 자신들이 가야 하는 광야가 어떤 곳일지 알지 못한 채 가야 하는 두려움,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실지 알지 못한 채 구름 기둥만 바라보며 가는 막연함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불안감에 찾아든 두려움, 그리고 하루하루 광야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고달픔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두려움과 설렘 가운데 그들은 구름 기둥의 인도를 따라 본격적으로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두 가지 마음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을까요? 설렘이었을까요?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어쩌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가 얼마나 두려운 곳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그런 감정들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광야는 겪으면 겪을수록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무섭고 두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설렘이 더 많습니까? 아니면 두려움이 더 많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언제나 우리 인생에서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 가자!’라고 말씀하실 땐 잠시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이끌어가실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자고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라고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하는 인생길은 언제나 처음 걷는 길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0대 청년은 20대 청년의 때를 처음 살고 있는 것이고, 50대 장년들은 50대의 인생을 처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많이 살고 80을 넘어서신 분들도 80대를 처음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우리 인생을 처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길을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초보 운전자와 같은 우리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길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인도하시든 서쪽으 인도하시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잠16: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시37:5-6절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러분, 혹 내가 가야할 길의 방향을 찾지 못해 두려운 분 계십니까? ‘자,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겨 보십시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지금의 삶의 자리가 크고 두려운 광야와 같이 힘들어 고달픈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크고 두려운 광야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자, 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실지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고 순종하여 따라가 보십시다.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에 반드시‘쉴만한 곳’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내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지름길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진정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우직해 보여도 이 광야 같은 세상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멀어도 느려도 험해도 하나님의 길로 가십시오. 분명 현실은 두렵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의 손에 내 삶을 맡긴다면 그 힘든 환경이 설렘으로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아침에 묻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이 한해 이제 1월 마지막 주일에 서서 어떤 자세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직도 두려움 속에 계십니까? 건강의 두려움, 재정의 두려움 인간관계의 두려움 속에 갇혀 있습니까? 아니면 설레임이 일어납니까?
이 광야같은 세상에 “주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안전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한눈팔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