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 표물입항( 物入港)
①
사월 십오일.
항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붐볐다.
상업을 장려하고 외국과의 교역에도 적극적이던 송(宋)나라 때와 달리, 농업
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이 당금 명(明)나라 조정의 정책이긴 하지만
오랜 교역의 역사를 이어가는 항주의 번성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포구에 들어 찬 크고 작은 수많은 배와 사람들이 항주야말로 대륙 해양무역(
海洋貿易)의 중심지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배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듯, 말씨와 용모가 제 각각인 뱃사람들이 저마다 큰
소리로 외치며 물건을 부리고 싣느라 빚어내는 북새통은 건강한 대륙의 숨결
이었다.
멀찍이 닻을 내린 거대한 범선(帆船)들과 선착장 사이를 오가는 거룻배들은
가라앉을 듯 가득 짐을 싣고도 요리조리 잘도 물살을 갈랐고, 물목을 들고 하
역하는 물건을 확인하며 수판을 튕기는 화주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물
건값을 흥정하는 장사꾼과 뱃사람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선착장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마치, 여름밤 연못가의 개구리 울음처럼 시끄럽기 그지없는 선착장 한 구석.
얕은 수심에도 지장을 받지 않는지, 커다란 쌍돛을 내린 한 척의 이장선이 선
착장에 정박해 있었다.
"히야, 봉래도의 무공이 어떤지는 몰라도 배만드는 솜씨만큼은 틀림없이 천하
제일이구먼!"
"아무렴! 오백 석을 실을 수 있는 배 중에 두 길이 안 되는 곳까지 들어올 수
있는 건 봉래도의 배뿐이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뱃사람으로 보이는 사내들은 거대하면서도 날렵해 보
이는 배를 바라보며 감탄의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하긴, 평생을 바다 위를 오가며 보내는 그들의 입장에서야 천하제일을 다투는
봉래도의 무공보다 거친 파도를 거뜬히 이겨내며 수월하게 대양을 오가는 배
가 더욱 부럽고 대단해 보이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나 그들은 외양만 볼 뿐 그 속에 감추어진 정교하고 독창적인 봉래도의 조
선술은 알지 못했다.
학문, 아니 학문하는 정신을 탄압하는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봉래도에 정착한
중원인들의 지혜와 수천 년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해남사람들의 경험이 합
해져 이룩한 그들만의 독특한 조선술을.
봉래도의 배는 선창(船倉)에 무려 열 여섯 개의 격벽(隔壁)을 만들었기에 배
밑창이 뚫리거나 현측(舷側)이 파손되더라도 다른 구획에는 물이 새지 않았으
므로 완파되지 않는 이상 가라앉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돛에 있었다.
큰 돛이 두 개라 이장선이라 부르긴 했지만 발처럼 대나무로 살을 댄 돛은 세
개가 있었는데 그중 앞의 것은 세로로, 뒤의 것은 가로로 펼쳐지게 되어있으
며 중간의 작은 돛은 풍향을 조절하게 되어 있어서 완전한 역풍(逆風)이 아니
면 항해가 가능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돛마다 풍량(風量)에 따라 수월하게 돛을 말고 펼치는 권상
기(卷上機)를 설치하여 목숨을 걸고 사람이 돛줄에 매달릴 필요도 없이 배의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실로 위험은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한 것
이다.
수면 아래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舵]는 물의 저항을 줄이도록 구멍을 뚫어놓아 조타(
操舵)가 용이함은 물론, 키를 사슬로 묶어 끌어올릴 수 있는지라 같은 크기의
다른 배가 항해하지 못하는 얕은 수심에서도 능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주위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래도에서 도착한 이장선이 닻을 내린 곳에
서도 짐을 내리는 일꾼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어서들 서둘러라! 오전 중에 짐을 다 부려야 해지기 전까지 창고에 모두 쌓
아둘 수 있다!"
차일(遮日) 아래 마련된 다탁(茶卓)에서 봉래도의 인물과 담소를 나누는 진가
보상의 주인 진두수(陳斗壽)를 대신해 일꾼들을 독려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날
카로웠다.
어디에 줄을 댔는지 수삼 년 전부터 하역(荷役)일을 독점하고 있는 마가(馬哥
)의 패거리들을 다그치지 않으면 한없이 늘쩡거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진가보상의 총관 이풍삼(李豊三)이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이다.
왁자한 소란 따위에는 면역이 되듯,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일꾼들이
쌓아놓는 짐 더미를 바라보던 진두수는 자신의 가장 큰 고객에게 고개를 돌
렸다.
"이번에는 다른 물건들도 눈에 뜨입니다 그려."
봉래도주를 대리해 진가보상과의 거래를 책임지는 막운청(莫雲靑)의 입가에
어딘가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적세가와 화친을 도모하기로 하신 도주님의 마음이 담긴 물건들이지요."
"허어, 화친의 예물이라……."
진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었다.
찻잔에 반쯤 가려진 그의 눈은 차일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털북숭이의 안색이
돌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숫캐 뭐 자랑한다고 온몸에 북실거리는 터럭을
보란 듯이 드러낸 털북숭이는 마가 패거리를 인솔해온 자였다.
"하면, 직접 북경까지 가십니까?"
"아니올시다. 본도의 총관께서 이미 세권표국에 의뢰를 하셨습니다."
"흐음, 저희도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만 세권표국이라면 믿을 만 하지요."
진두수는 상대의 잔에 차를 따르며 세권표국 칭찬을 늘어놓았다.
한가롭게 방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배에서
내린 짐 더미를 헤아리는 마가 패거리의 털북숭이 두령에게는 충분히 들릴만
한 소리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바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흘낏 털북숭이의 표정을 살핀
진두수는 오늘 새벽일을 떠올렸다.
석백송과 함께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봉래도의 범선에 올랐던 오늘 새벽의
일을…….
어제 석백송이 찾아와 세권표국에서 맡게된 표행에 관해 얘기하며 도움을 청
했을 때, 진두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석백송이야 무림인 출신이라지만 자신은 장사꾼이었다.
국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꺼릴 게 없었고, 무적세가와 봉래도가 화친을 맺는
일이라면 장사꾼으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석백송을 믿는 마음이 적지 않은 그였다.
무림호협(武林豪俠)다운 활달함과 장사꾼의 치밀함을 두루 갖추었을 뿐더러
십여 년 이상 거래하면서 한 번도 신의를 어긴 적이 없는 석백송에게 남다른
호의를 품고 있었으니 그의 부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작은 은혜를 남겨 후일 더욱 큰 이익을 보겠다는 타산이 선 까닭이긴 했으나
부탁을 들어주면 적지 않은 사례를 하겠다는 석백송의 제의를 물리칠 정도였
다.
하기사 부탁이라야 간단한 일 아니던가.
봉래도의 배가 포구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만나야겠으니, 남모르게 동행해 달
라는 부탁.
낮게 깔린 구름이 달빛을 가린 이른 새벽.
봉래도의 배에 올라 막운청과 석백송을 인사시킨 후 그가 할 일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들어간 옆 선실에서 해남특산의 운정차(雲精茶)를 마시는 것뿐.
하나 그 시간.
마침내 표물이 무엇이고 표물의 의미를 알게 된 석백송은 막운청을 설득하느
라 무진 애를 쓰고 있었으니…….
"우리 군주님을 항주까지 모시라는 것이 내가 받은 명령의 전부요."
막운청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표물(?)을 접수해서 함께 가겠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반대하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다.
만일 석백송이 무적세가의 금진후가 수결한 신표를 보이지 않았다면 베어 버
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리고, 항주에서 북경까지 모시는 일은 무적세가에서 할 일이고 그들이 귀
표국과 계약한 것도 내 알 바 아니오."
석백송은 속이 탔다.
봉래도의 군주가, 무적세가로 가는 신부가 표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그
는 새삼 이번 표행에 자신의 운명이 걸렸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석백송은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젓는 막운청을 설득하려
애썼다.
"귀하의 임무가 뭔지는 몰라도 군주님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불칙한 무리가 주목하는 마당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군주님을 노출시킬 수는 없소!"
막운청은 화를 냈다.
"중원에서 무적세가를 넘볼 세력이 없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로구먼. 천금같은
군주님이 햇빛을 피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
사실, 막운청도 무적세가에 도착할 때까지 군주의 혼사 자체가 비밀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귀한 군주가 조그마한 거룻배에 의지해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바다로 나서는 모습은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중원의 누구를 만나더라도 녹록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최상몽의 특별
한 지시를 받은 터라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억지를 부렸다.
"귀 도주와 무적세가 가주의 합의에 의해 나는 군주님을 북경까지 모셔갈 책
임을 부여받은 사람이오."
석백송이 봉래도주를 들먹이며 양측의 합의를 강조하자 막운청의 거친 숨소리
가 한결 잦아들었다.
이것도 싸움이라면 싸움. 석백송은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나로서는 무엇보다 군주님의 안전이 우선이니 내 말을 따라 주시오!"
"크흠……."
잔뜩 인상을 쓰며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던 막운청이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
다.
"군주님의 혼수가 마차로 두 대가 넘고 도주께서 보내는 예물 또한 적지 않으
니 거룻배로는 나르지도 못하오."
석백송은 반색을 했다.
"걱정하실 것 없소이다."
표물의 정체가 그의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여러 경우를 생각해 온 것이 순
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놈들이 주시하고 있을 터이니 아무 일도 없으면 오히려 의심을 살 거요. 하
니, 혼수와 예물은 그냥 정상적으로 하역하시고 군주님만 먼저 모셔가겠소."
그저 편치 않은 심사에 억지를 부렸을 뿐, 석백송의 말대로 흑마방의 이목이
번뜩인다면 설운경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막운청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소이다. 귀하의 의견에 따르겠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석백송에게 막운청의 매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만일 군주님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무적세가는 물론 중원무림은 봉래
도의 힘을 뼈저리게 알게 될 거요!"
공연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최상몽의 지시에 따라 엄포를 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설운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봉래도 사람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선언하는 막운청의 서슬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석백송은 지지 않고 응대했다.
그가 살아온 세월과 피땀으로 이룩한 오늘날의 위치가 상대의 말 한마디에 주
눅들만큼 엉성한 것은 아니었다. 설령, 그 상대가 막운청이 아니라 봉래도의
도주나 무적세가의 가주라 해도…….
"세권표국의 명성은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오. 어떤 장애가 닥쳐도 무사히
모실 터이니 걱정 마시오!"
필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자가 삶의
무게를 걸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막운청 또한 내로라 하는 봉래도의 무인.
석백송을 보는 막운청의 시선에 일말의 호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
다.
막운청은 거센 파도와 싸우는 바닷사람답게 흔쾌히 마음을 열었다.
"좋소이다. 귀하의 뜻에 기꺼이 협조하겠소."
진두수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시비를 거느리고 함께 거룻배에 올랐건
만 별다른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석백송이 막운청과 합의한 일이라면 그저 믿고 따라도 문제될게 없는 까닭이
었다.
봉래도의 이장선을 떠나 어둠에 잠겨있는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석백송 역시
두 여인의 신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보고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뿐.
그 순간 진두수는 실감했다.
그가 알고 있는 석백송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소리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석백송의 음성이 더 없이 절박
하지 않은가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포구에 도착한 후 진두수가 부르르 몸을 떤 것은
습기 머금은 싸늘한 바닷바람 때문도, 새로 들인 첩에게 빠져 과도하게 원정(
源精)이 손상된 까닭도 아니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두 여인을 대동하고
사라지는 석백송의 긴장된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괜스레 몸이 떨려온 것이다.
진두수는 분명 무림인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봉래도가 단지 질 좋은 진주와 산호의 산지(産地)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석백송쯤 되는 인물이 저렇듯 조심하는 걸보
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서늘한 새벽안개처럼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으니…….
"이제 다 끝났습니다."
이풍삼의 공손한 음성이 진두수의 상념을 깨웠다.
진두수는 가지런히 쌓여있는 짐 더미로 눈길을 던지며 털북숭이의 기색을 살
폈다.
따로 은자를 집어주지 않으면 나들이 나온 노인네처럼 늘쩡거리던 평소와 달
리 일꾼들을 다그쳐 신속하게 일을 끝낸 그 자의 속셈이 눈에 뻔히 보이는지
라 진두수는 오히려 느긋하게 움직였다.
항주 일대의 파락호들이 중심이 된 마가 패거리의 뒤에 무시 못할 무림세력이
버티고 있다는 소문의 실상을 새삼 확인하게 된 그의 심술이 발동한 것이다.
"허어, 이래서야 어디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진두수는 괜한 꼬투리를 잡았다.
"본점의 창고로 갈 물건과 무적세가로 보내는 예물을 분리해서 다시 쌓도록
해라."
털북숭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무적세가를 힘주어 말하는 그의 입가에 스치는
흐릿한 미소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 막운청은 이내 그 뜻을 알고 진
두수를 거들었다.
막운청은 아예 칼집을 두드리며 호통을 쳤다.
"감히 본도의 도주께서 무적세가로 보내는 물건을 함부로 뒤섞어 놓다니…….
네 놈들이 봉래도의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시험을 해 보겠다는 게냐!"
애당초 만만히 보고 엉겨붙어 은자나 뜯어낼 수 있는 배불뚝이 상인 따위가
아니었다.
털북숭이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모르긴 몰라도 봉래도의 무인 앞에서 뻗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는 중원을
통틀어도 손꼽을 정도이리라.
굉장한 소식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전하려는 생각에 몸 달아있던 털북숭이는
막운청과는 감히 눈길도 마주하지 못하고 애꿎은 일꾼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귓구멍이 처막혔나 뭣들 하고 서 있는 게냐, 얼른
어르신 분부대로 따르지 않고!"
털북숭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무거운 짐을 지고도 바람처럼 움직이는 그
들의 모습은 가히 질풍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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