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0장 16-23절 박해 속의 증인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순종하고 충성한다고 해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거나 박해가 피해갈 것이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 때문에 또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 때문에 온갖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평안한 날에도 예수님의 증인인 것처럼 어려움의 날이나 박해를 당하는 날에도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증인들이 가는 그 길에는 이리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왜 이리라고 말합니까? 이리들의 특징은 무리지어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잡아먹는데 있어서 조금의 긍휼이 없습니다. 잔인합니다. 탐욕스럽고 게걸스럽습니다. 예수님의 증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이리처럼 조직적으로 행동하며,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박해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에 반대되는 그리스도인들을 조금도 용납할 마음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리 가운데 들어가는 아무 힘도 없는 양이 온전히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까요? 살아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약한 양같은 존재지만 예수님은 강한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연약한 양같은 여러분들이 이리같은 세상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은 이런 날을 대비하여 예수님의 증인인 전도자의 마음 가짐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지혜고, 다른 하나는 순결입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이 둘을 따로 떼어놓으면 신앙은 이상한 색을 띠게 됩니다. 균형을 잃게 됩니다. 이리들에게서 증인으로써의 자세를 굳건하게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영적인 이리들인 권세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은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들 역시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변에 자기의 영적인 실체를 숨긴 채 접근하는 이단 세력들 역시 만만치 않게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의 영혼과 정신을 파괴하기 위하여 별별 수단을 다 쓸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은 “그렇게 위험하면 안가면 될거 야닙니까? 왜 꼭 가야만 하는 거죠?”하고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가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끊어질 것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역시 끊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인들은 세상에 들어가서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이리 가운데 들어가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17-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을 찾아가기는 해야하는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긴장감은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갖게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 중 한 사람에 의해 팔리셨다면 여러분 역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으로 인해 생명이 담보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둘기같은 순결을 유지하면서도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가 말만으로 신앙생활한다고 하는지 아니면 생명을 걸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지혜를 다 동원하여 여러분과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혜가 없음으로 인해 이용당하게 되어 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위기와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은 아이들만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도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천지 이단 같은 사람들이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교회에 들어와 성도를 미혹하는 것처럼 교회를 박해지로 끌고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이용하여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압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교회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며, 열린 공동체인 교회는 언제나 세상에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숨길수 있어도 빛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어두움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의 숨겨진 마음과 행위를 다 드러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 세상의 죄와 악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받은 교회를 톻해 성령이 하실 일에 대하여 요한복음 16장 7-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렇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세상의 악에 대하여 방관하지 않습니다. 침례 요한처럼 폭군 헤롯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합니다.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은 무리를 이끌고 가서 정부에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헤롯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동해서 정부에 대항하는 사람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자기의 안전장치로 만들어 놓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옳다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비추는 모양으로 그것이 예수님에게서 온 빛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깨어 있어서 이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거실 문만 열어도 거실에 켜놓은 빛이 순식간에 문밖으로 빛을 내보내는 것처럼 교회는 어둠의 세상을 비추기 위해 항상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의 시대는 어두운 세상에 강렬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빛이 숨어 있어도 결국은 어두운 세상에 발각되고 거기에서 재판과 심문을 받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생과 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9-20절입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여러분들에게는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진리 가운데 거하고 진리를 행하는 교회는 진리를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에도 스데반 집사님이나 사도들처럼 진리를 증거하는데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엉터리 재판을 받고 죽게 되는 그 순간에도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 그때에 너희는 너희를 재판하고 있는 사람들과 재판을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거기서 진리를 선포하고 내가 진리라고 선포하는 것은 너희 안에 계신 아버지의 성령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얼마나 양심에 화인을 맞았는지 도무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21-22절에 기록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가족들을 사랑하는데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여러분을 미워하고 대적하며 죽는데 내줄 때가 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피하라”고 하십니다. 피하는 것이 믿음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29-30절입니다.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사도 바울 역시 위급한 상황에서는 도망을 쳤습니다. 사도행전 14장 5-7절을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꼭 잡혀서 순교했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할 때와 하지 않아도 될 때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간 동네에서 박해하거든 피하라 그렇게 피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생을 사느냐 못사느냐가 복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침묵하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을 믿어야 할 사람들이 영벌을 당하게 됩니다. 그 책임은 교회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심판을 받을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며 수많은 이리 앞에서 사역을 행하는 동안 먹이를 잡아먹을 때의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구원받은 세상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아들이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영광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돌리며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충만과 지혜와 순결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박해를 받는 날에도 성령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면서 여러분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를 온 세계 가운데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된 사역에 쓰임받는 제석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