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RPG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비하 및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 RPG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또는 단체, 그 밖에 모든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 같은 예도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RPG는 실제 존재하는 국제적 역학관계를 찬양 또는 비판하거나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 체제, 인권 탄압과 폭압적 정치 질서를 옹호,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식민지에 있어서는 민족 해방이 곧 계급 해방이고 정치적 해방이 곧 경제적 해방이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민족이 총체적으로 무산자 계급이며 제국주의가 곧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6.10 만세운동 당시 전단 |
정부에 소속된 이들의 자유나, 당원의 자유는 -그들이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자유라 할 수 없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자유다.
-로자 룩셈부르크
8. 영광스러운 당
1956년 8월 25일 3대 최고인민회의 총선거가 준비되었습니다. 다자후보 선거가 제한적으로 도입된 가운데, 적지 않은 선거구에서 두 명의 후보가 경쟁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북한 내 기존의 단일 원내교섭단체였던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연립정당인 신민당과 민족혁명당이 전격 이탈한 이후에 치러지는 선거였기에 조선공산당은 크게 긴장했습니다. 더군다나, 소련의 지도자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방북 이전 먼저 방문한 소련의 외무부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이 선거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본부청사에서 만남을 가지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도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책이 무엇인지 논의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았던 조일봉과 이덕삼은 이 문제에 대해 중앙위원들과 머리를 맞대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잘 나오지 않았고, 특히 계획경제와 사회주의 체제는 '정권이 성과에 따라 자주 바뀔 수도 있는' 진짜 자유민주주의와는 제대로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뾰족한 답안은 누구도 낼 수 없었죠. 조일봉의 평가에 따르면, '혁명체제가 이미 세워진 국가에서 혁명을 지속하려면 역설적으로 인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군사 분야 전문가인 조일봉은 미국이 북한을 폭격으로 산산이 조각냈던 것을 상기시켜 과감한 방위 무기 도입사업을 발표함으로써 공산당에 대한 지지를 되돌려받자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한편, 이덕삼은 다른 정당을 방문하였습니다. 민족자주연맹과 한국독립당 등이었죠.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은 결국 '월북 민족주의자들의 정당'이었으며 북한체제의 선전을 위해 이용된 조직일 뿐이라, 사회주의 체제하의 자유선거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원세훈과 같은 인사들은 공개적 공산당 충성맹세와 남북 민간교류를 교환하는 빅딜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죠.
조선공산당은 조일봉의 제안에 더해 제대로 된 선거정책을 결정했습니다. 전면적인 네거티브, 군내 투표함 조작, 종남파 선전, 금권선거 등의 방안도 제안되었지만 놀랍게도 발표된 결과는 직접적인 대중에 대한 호소였습니다. 직업적 혁명가들의 전위당이라던 공산당이 골랐다기엔 대단히 과감한 선택지였죠. 물론, 우익측에서 활동한 조선민족혁명당이나 중국의 신민주주의에 익숙한 신민당에 비하면 일견 미숙한 방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참사였습니다. 기독교 우익 정당인 조선민주당이 출마한 모든 선거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이었죠. 의석만 해도 16%, 득표율은 그보다도 높았습니다. 체제안전을 담당하던 국가보위상과 문화선전상은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즉시 사임했고, 전 조선민주당 위원장 조만식에 대한 내사가 이뤄졌지만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밝혀졌습니다.
즈다노프 주석은 선거결과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큰 의미는 아니라는 뜻으로 방북을 연기하였습니다. 박헌영은 수상 자리를 유지하되 거의 대부분의 각료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조선민주당은 대규모 공천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그게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대성공을 이루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자, 박헌영은 자신의 기준에서 어설프게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던 오승택의 마지막 관련자 이덕삼을 좌천시키고 조선인민당에 의원 꿔주기를 감행, 인민당을 위성정당으로 장악하여 오승택의 영향력을 일소하였습니다.
조석중은 자신이 조선민주당의 대규모 공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밝힙니다. 자신과의 접촉을 아예 하지 않았던 조선공산당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었죠. 그는 경제정책의 전권을 요구했지만, 즈다노프의 방북이 연기된 상황에서 그건 시기상조라는 설득에는 조석중 본인도 동의했습니다.
한편, 선거의 결과로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선전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북한에서는 제대로 된 대남공작기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직후 석방된 정백이 이영, 김염 등과 함께 '진짜 좌파공산주의 정당'인 사회노동당을 복원하여 극좌파를 대표하는 원내세력이 생기는 등 과격파의 준동도 심상치 않았죠. 조선공산당은 북파 공작원에 시달리면서도 이러한 사태를 막기위한 체제개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9. 선언과 경고
이집트 공화국 정부가 1956년 7월 26일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결정하면서, 수에즈 운하에 큰 지분이 있는 영국과 프랑스가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노동당내 우파 총리인 휴 게이츠컬과 노동당 내각은 잘 진행되던 협상을 엎은 이집트의 행보에 크게 반발하였고, 나기브 정권이 나치의 재림이라 의심하던 이스라엘에게 이는 이집트를 선제공격할 좋은 핑계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반발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프랑스 총리 로제 뒤셰와 권력분점협정을 통해 집권한 앙투앙 피네, 에드가르 포르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중도우파 정권은 이집트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재이스라엘 조선인민군 군사고문파견단 단장 김웅 대장의 초청으로 외무부상 비우익을 필두로 한 북한 대표단이 텔 아비브의 모처에서 모였습니다.
중동 최강의 군사집단을 결성한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선제공격할 경우 일주일 만에 수에즈 반도 전역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외교의 연장선상인 법, 대전략 면에서는 여러 논의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지원 여부, 프랑스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추측... 오승택과 친했던 이덕삼에 대한 감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군사'고문단'에 불과한 북한 대표단은 북한이 이스라엘의 상국이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대신해' 행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2년 동안이나 고지전을 겪었던 북한의 입장에서도 포격과 총격전이 반복되는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관계는 인세의 지옥을 방불케 했습니다. 다만, 유대계의 정보력과 손을 잡은 대표단은 프랑스가 이집트 공격에 반대한 이유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알제리의 독립세력인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이 이스라엘에 머물고 있으며, 이스라엘 당국이 이들을 지원하지도 않고 핍박하지도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사와 토론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표단에게 내려진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대표단과 북한 상층부의 현실 인식이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표단은 이스라엘의 아랍인 학살 문제를 무척이나 우려하였지만, 북한 상층부는 이게 이스라엘에는 악영향일지언정 북한에까지 그 여파가 끼칠 것이라 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학살 문제를 꺼려하는 대표단 태도 '자체가'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저지른' 학살과 참극의 선봉이자 그 지도집단 자체인 북한 정부의 일부인 대표단으로써는 인지부조화였던 점도 있었습니다.
북한 대표단이 각종 정보와 제안만을 제공하고 떠난 뒤, 이집트에서 나치 잔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잔당 중 한 명은 자신들이 사형선고를 내린 자란걸 깨달은 프랑스 정부는 소련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FLN이 이스라엘에서 환송과 함께 떠나고, 알제리에서 인민당과 공산당이 재결성되며 알제리와 본토 프랑스의 완전 평등을 위한 정책이 입안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9일만에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해 시나이 반도를 장악하고 수에즈 운하 통행과 티란해협 통과를 보장받았습니다. 게이츠컬 총리는 사회제국주의자라며 비난을 받고, 그 와중 벌어진 칸유니스 학살은 국제사회의 묵인 속에 결국 잊혀졌습니다.
마침내 영국군이 1956년 11월 15일 이집트에서 철수하고, 이스라엘이 1957년 3월까지 주둔하며 이집트는 애매한 승리를 얻어야 했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는 인정받았지만, 운하를 정치적인 목적으로는 쓰지 못하게 된 것이었죠.
한편, 대표단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옴에 따라 2기 박헌영 내각은 사실상 조석중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주체적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명목으로 어느정도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경제개혁안을 도입하였습니다. 사회노동당은 이에 대해 반발하며, '단일한 노선'은 사실상 해체되었죠. 이것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후에 가서야 알 수 있을 터였습니다.
10. 국가의 유일사상 확립원칙
한편, 이전 조선민주당 사태를 두고 정치적 개혁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의심과 미움을 받던 이덕삼은 조심스래 정권 인사들을 만나며 체제개혁안을 논의하였고, 박헌영의 충복인 조일봉은 조선민주당을 최용건의 주도로 장악하는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대체적인 결론은, 직선제 입법부를 크게 제한하여 조선민주당의 세력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제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체제위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일명 '밀실 방안'을 통해, 정치적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보다 우월한 북한의 인텔리들은 새로운 체제개혁안을 연구했습니다. 각국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공업국가 북한에 맞는 체제와 기존에 존재했던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심지어는 임정까지 연구대상에 올랐습니다.
대체적인 결론은 인민위원회 체제, 일명 '소비에트 체제'를 도입하고 직선제 입법부는 양원의 하나로 격하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밀실 방안을 지지한 이덕삼의 평판이 약간이나마 돌아온 가운데, 박헌영은 신헌법 채택을 보류하였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 '큰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1. 6월 종파사건
헝가리에서 '교정혁명'이 발생하여 스탈린주의 세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이어 나비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스탈린주의를 추종하는 극좌파 무장세력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 출현하여 공산당, 사회당, 심지어 민주사회당 청년세력을 흡수하였고, 루마니아에서는 안토네스쿠 정권 당시 감옥에 있던 루마니아 민족주의와 혼합된 이상한 스탈린주의를 내세우는 이온 게오르게 마우레르의 감옥파가 집권했습니다.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기존의 잘 작동하던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안토닌 노보트니가 집권하여, 순식간에 헝가리-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에 스탈린주의 정권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폴란드와 중국은 대중의 지지와 적절한 개혁 및 현상유지를 통해 안정적으로 체제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이탈리아 공산당과 프랑스 공산당마저 스탈린주의 교정혁명 지지를 천명하였죠.
이 가운데 1957년 6월 1일, 북한 정부와 군부 관계자들은 비밀스러운 연락을 받고 두만강에 인접한 소련 고려인민족자치군의 수도 '연추'에 모였습니다. 세계한인을 통틀어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인 김알렉산드라가 모임에 참가한 가운데, 이들이 부름받은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소련공산당 상무회가 이두정치의 지도자인 즈다노프와 흐루쇼프에 대한 해임과 사임 요구를 5월 30일에 의결하였다는 것이었죠.
자료조사를 통해 얻은 주코프 원수와 소련군의 입장은 '합법적 정부를 지지하며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북한 대표단은 다시 한번 접촉을 시도하겠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소련공산당 선전선동부장 예브게니야 놀켄은 헤이그 특사의 일원이었던 이위종 열사의 셋째딸이었기에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이 머무르는 북한과도 인연이 깊었죠. 놀켄이 제공해온 상무회에서 즈다노프와 흐루쇼프의 실각에 찬성한 인사들의 명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들 명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이 '반당그룹'의 수장이 베오그라드 조약군 최고사령관 이반 코네프 원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과 자유주의 진영이 사태를 주의깊게 지켜보는 가운데, 반당그룹이 정치적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스탈린의 심복이었던 체슬라프가 '어설픈 자유화 개혁이 소련을 망칠 뿐이니 스탈린주의로 빨리 돌아가자'라는 결론을 내린 탓이었다는 것 또한 밝혀졌습니다.
이윽고 즈다노프와 흐루쇼프를 특수부대를 통해 구출해오자는 의견, KGB를 포섭하자는 의견, 인민대중에게 알려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 등이 나와 토론장이 혼잡해지자, 한참의 논의 끝에 이덕삼은 도전적인 의견을 내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진영의 또다른 지도자인 티토를 모스크바로 비밀리에 소환하여 이 실각이 무효라고 선언하자는 것이었죠. 여러 인사들이 이에 동의하였고, 박헌영의 묵인 하에 조일봉이 실무 계획을 입안했습니다.
고려인 네트워크를 통해 인민대중에게 호소해 교정파 규탄 시위를 유도하고, 필요하다면 비우익이 서류를 위조하여 KGB와 내무군이 시위대를 지지하게 하는 한편, 일부 군부대를 포섭해 병력이 인민과 함께 행진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 티토가 모스크바에 등장하여 즈다노프와 흐루쇼프의 실각을 무효화시키자는 것이 최종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KGB와 내무군의 지지 공작이 너무나 잘 작동하였는지, 잠잠하던 인민대중은 군부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믿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지의 대중은 각지의 대회의장과 광장을 장악하고 '노동자-군인 소비에트'를 재결성했습니다. 졸지에 이중권력 체제가 부활하자, 체슬라프는 '선전선동에 의존하는 극좌파적 맹동'이라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티토가 등장하자 이 모든것도 무효화되었습니다. 교정혁명을 지지하려던 터키에 대한 무력침공이 이뤄지며, 사실상 교정혁명의 숨통은 끊어졌습니다.
선전선동의 달인이자 이론가인 즈다노프는 이때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합법적인 방안, 예를들어 공산당 중앙위원회 개최 등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경비들을 뚫고 나가 새로이 결성된 모스크바 노동자-군인 소비에트에 참석한 것이었죠. 그는 즉석에서 연설을 이어가며 마치 1917년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어떠한 노선에 의존할 필요 없는 제 2의 레닌'이 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또한, 즈다노프는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고려인들, 북한과 친밀한 인사들은 승진을 거듭하였고, 즈다노프는 제일 먼저 방문할 외국으로 북한을 선택하였습니다. 외무인민위원 유리 퍄타코우가 한달음에 평양으로 날아오자, 북한은 열광에 빠졌습니다. 한편, 이 와중 오승택이 정신병원에서 석방되는 '작은' 일도 있었죠...
12. 진보 숭배
소련이 '진보숭배'를 재천명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속하는 동안, 코민테른 산하에 '경제상호원조평의회', 약칭 코메콘이 탄생했습니다. 즈다노프는 1958년 2월 17일 마침내 평양 방문이 예정되었죠. 그런데 2월 16일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조선민항의 여객기 '성재호'가 공중납치되어 서울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했다는 소식이었죠.
조사 끝에 밝혀진 사실은 한국 내에 일종의 반정부조직이 존재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북파공작원 네트워크에도 퍼져 있으며 공중납치의 목적은 즈다노프 방북을 앞두고 북한 체제가 민항기가 한국으로 귀순할 정도로 불안하다고 조작할 명목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비우익은 섣불리 대남 강경안을 꺼냈다가 제2차 국토완정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휩싸여 대단히 곤란한 처지가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아랍인 학살은 걱정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강경책은 부정하지 않는 이중사고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외교현장에서 강짜를 부리다가, 이범석 대통령의 강대강 대결정책에 거의 실각할 뻔했습니다. 더군다나 강경파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히기까지 하였죠.
한국의 정체불명의 조직은 여전히 영향력을 넓히며 성재호 납남사건으로도 모자라 어선 납치를 자행하였습니다. 북한해군에 의해 이들의 무장상선이 1958년 6월 격침되고 나서야 납치행각은 종식되었지만,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었죠. 이들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권력이 강화된 북한 국가보위성은 대남 강경파의 좋은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덕삼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던 식량정책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인사들과 담판을 지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논의 끝에 과감하게 '일부라도' 식량자급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진영의 경제권에서 무역을 통한 식량수입과 수출중심 경제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종속이론에는 배치되었지만,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가 아니었던 북한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능한 선택지였죠. 이 정책은 성공을 거두었고, 부농 계급의 출현이 저지되기까지 하였습니다.
대신 이덕삼은 중국과 소련의 조선족과 고려인을 규합하고, 식량안보를 위해 유사시 양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강화를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처음 창설되었죠. 첫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 조평통은 대남공작의 기능까지 서서히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일봉은 셰르바코프 국방인민위원과 회담하여 신무기를 도입하고 한국의 공작을 저지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였습니다. 소련을 비롯해 각지에 유학 및 고문단 파견을 늘리고, 최신무기를 수입하는 한편 북한군의 활동영역을 아예 인종적 한계때문에 가지 못하였던 지역까지 늘리자는 의견까지 나왔죠. 이는 북한군이 현지 무장세력을 훈련시키거나 아예 입대시킴으로써 세계 사회주의 투쟁의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실전경험을 얻어야 한다는 실제 이유가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탕가니카의 줄리어스 니에레레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좌익 민족주의 정치인들과 북한은 비밀리에 접촉을 시작하였습니다.
버마가 반공좌익 중립노선을 천명하고, 반대로 쿠바에서 친소 좌파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는 동안 이집트를 격파하고 자신만만하던 이스라엘의 옆 이라크에서 나기브주의 쿠데타가 발생하였습니다. 세계질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죠...
조선공산당(남로당파), 인민민주주의 :박헌영, 이현상의 남로당파는 조선 본토에서 초기에 사회주의 활동을 한 극좌 정파입니다. 이들은 소련 노선을 북한 땅에 맞게 해석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으며,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기관지 :해방일보]
조선공산당(콤그룹), 정통맑스주의 :이관술, 이순금 등의 콤그룹은 남로당파가 일제의 탄압으로 은신해 있을 때 일제에 맞서 투쟁한 투사들의 집단입니다. 이들은 정통마르크스주의 성향이 있으며 이상적이고 급진적으로,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파에서 기원한 남로당파와는 달리 고려공산당 상해파에서 기원했지만 사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관지 :해방일보]
조선공산당(이북 국내파), 볼셰비키레닌주의 :현준혁 등 일찍이 김일성을 반대했다가 실각했던 이북 국내파는 우익과의 합작에 적극적인 온건파 집단입니다. 이들은 남로당파의 인민민주주의 노선을 지지하며, 북한에 지지기반이 있기 때문에 남로당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관지 :해방일보]
조선공산당(정통파), 스탈린주의 :박정애, 최용건을 비롯해 본래 김일성 지지파였던 이들은 주로 북한에 지역기반이 있는 군인과 기술자들입니다. 이들은 북한의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자급자족과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기관지 :정로]
조선공산당(소련파), 레닌주의 :허가이, 정상진을 비롯한 소련계 고려인 인사들은 북한 내 지지는 별로 없지만 소련에서의 국가 및 당운영 경험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본래 김일성을 지지했지만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기관지 :정로]
사회노동당, 좌파공산주의 :정백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옛 조선공산당 장안파/대회파의 사회노동당은 전평보다도 노동자 자주관리를 중시하면서도 조선민족혁명당보다도 조합주의를 더 부정하고 인민당보다도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더 주장하는 아나키즘 직전의 극좌 좌파공산주의 정당입니다. 이들은 모든 정당 중 가장 강경하지만, 그것이 이들이 독재를 주장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관지 :전선]
조선민족혁명당, 부하린주의 :의열단의 후신인 조선민족혁명당은 김원봉의 정당으로써 인민공화당이라는 과도기의 이름을 버렸습니다. 이들은 마침내 조선신민당과 화해하고 세를 크게 불리고 있습니다. [기관지 :광명일보]
조선신민당, 신민주주의 :최창익, 김두봉 등으로 이뤄진 중국 공산당과 손을 잡고 북중국에서 반일 투쟁을 펼친 조선신민당은 연안파라고도 불리며 독립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세력입니다. 어느 정도 민족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은 경공업 자급자족 노선을 지지하며, 반대파에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합니다. [기관지 :전진, 독립신보]
천도교청우당, 혁명적 민족주의 :주로 청우당이라 불리는 이 정당은 민족주의 정당이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지지합니다. 천도교 종교색은 생각보다 약하며, 독립운동 당시의 전설적 경력 때문에 ‘말 잘하는 청우당’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기관지 :개벽신보, 당성]
조선민주당, 기독교 민주주의:이들은 기독교 민주주의, 민족주의 정당입니다. 사회주의 북한에서 이들의 입지는 넓지 않지만, 북한 땅은 본래 엄청난 기독교세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지지는 조선민주당으로 향합니다. [기관지 :조선민주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티토주의 :오기섭, 허성택 등이 있는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직후 조선 내 공장을 노동자 자주관리로 장악한 경력이 있는 직맹은 지금도 노동자 자주관리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단체입니다. 조선공산당의 '부활' 이후, 조선직업총동맹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갔습니다. [기관지 :전국노동자신문]
조선인민당, 중도맑스주의 :여운홍, 장건상, 강기덕의 조선인민당은 콤그룹, 이북 국내파와 사이가 친한 민주사회주의 정당입니다. [기관지 :조선인민보]
민족자주연맹, 진보주의 :중도 민족주의자들이 설립한 평화주의, 진보주의 단체인 민족자주연맹은 비공산주의-비자본주의 중립국가로써 남북한 평화통일을 지지하지만, 현재로써는 북한 측에 기울어진 정치단체입니다. [기관지 :조선중앙일보]
한국독립당, 삼균주의 :전설적인 독립운동 정당인 한국독립당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좌익 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정당입니다. 옛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기관지 :독립당당보]
여러분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1) 한반도 내에서 어떠한 형태, 어떠한 규모로든 '독립된 자주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 수호할 것.
2) 일왕 숭배의 연속선상에 있는 개인숭배, 일인 독재 체제를 철저히 혁파하고 다시는 비슷한 체제가 등장하지 않게 할 것.
[최종 목표 1 :독립된 사회주의 체제 건설 및 수호] :진행 단계 3/6
[최종 목표 2 :개인숭배와 일인 독재 혁파 및 재발 방지] :진행 단계 4/6
@렌지파일 "농담이면 좋을 말씀이시군요, 차관님. 하지만 이해가 되는 제안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점이 다시 생깁니다. 미국은 이렇게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아도 일본군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와 대화를 하시려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적어도 우리를 대화상대로 여기신다는 점에선 다행으로 보입니다만..."
이덕삼은 팔짱 낀 볼스를 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그냥 평상시보다 정자세로 앉기로 결정했습니다.
볼스에게도 질문함과 동시에, 그간 남한과 일본과 미국 이 삼국관계에 대해 조평통에 들어온 한인 관련 정보가 있는지 되뇌어봅니다.
@통장 "일본군이라면 어떤 형태요?"
이주하가 질문하자 볼스는 미리 준비한 듯 대답을 술술 하네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9조 '2항'을 개정하여 헌법에 존재하지 않는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하여 헌법에 명시하여 국군화하고, 국방의 의무와 폭넓은 자위권(집단적 자위권) 또한 헌법에 명기한다는 것입니다. 1항은 남긴다네요.
@통장 별다른 정보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의 재무장이 언급되었고, 거기에 남북통일을 묶는다는 건... 이덕삼은 슬슬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볼스는 [대일 청구권과 조(한)일 수교]를 대단히 에둘러 말하고 있습니다.
@렌지파일 '박헌영이 또...!'
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할뻔했지만, 이덕삼은 십수년의 정치인 짬을 발휘하여 얼굴을 가라앉혔습니다.
일본이 가증스럽더라도, 볼스가 내포하는 것은 상당히 매혹적이었습니다. 조국통일... 통일을 위해서라면..
문득 이덕삼은 박헌영이 무슨말을 했을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래서 이주하를 보고 얘기한 거였군.
이덕삼은 이주하 동무에게 질문했습니다.
"...동무, 괜찮습니까?"
@통장 이주하는 "생각해볼게 많긴 하겠소."라고만 대답합니다.
토론 전문? 으로 초빙된 윤기복이 먼저 포문을 엽니다.
"일본 이야기가 이렇게 자주 언급된다는 것은, 북남조선이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맺기를 원해서 그렇습니까?"
@렌지파일 "그렇습니다."
볼스는 부정하진 않네요.
"일본과의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은 오랜 준전시태세로 강화된 '북-남한'의 군대가 재무장한 일본의 군대와 충돌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렌지파일 북한군은 몰라도 남한군이 강화...?
@돈이 곧 진리 1950년 6월 24일 기준으로 본다면 강화는 맞습니다.
@렌지파일 오오.. 선봉장 ㄷㄷ
"저기 남쪽 이승만도 결국 끝까지 반일을 못버린채 정권을 떠났습니다. 그런 외교의 인재도 차마 일본과 화해한다는 선택은 하지 못한 것이지. 적어도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장 여기서 대일배상금 공동청구가(…)
@통장 볼스는..
"그러면, 민족국가(Nation)의 통일과 일본의 사과 중 하나만 받아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대담하게 질문합니다.
@E.E.샤츠슈나이더 그렇게 [보상]금을 받고, 개인 청구권은 막히게 되는데..
@렌지파일 이덕삼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자신은 조평통 부위원장이라고 한번 더 되뇌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개인으로 들리길 간절히 바라는 이덕삼(..)
"..당연히 일본의 사과요. 우리 조선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에도 있지만, 그간 함께해온 민족의 기억, 그리고 일본에게 저항하며 스스로를 조선민족이라고 인식한 저항정신이 있습니다. 나는 조선민족 디아스포라를 잇는 모임의 부위원장이오, 조선을 위해 사회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잡혀 죽을 뻔한 한명의 저항가입니다. 이남과의 통일은 우리가 대화하여 일궈야하는 과제요, 디아스포라 간 연결의 가장 큰 과제지만, 일본의 사과는 일본이 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일본의 행위요. 내가 할 수 있는건 쟁취하려 노력할테니, 일본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으면 합니다."
@통장 좌중은 침묵에 휩싸입니다. 볼스는 씩 웃네요
"그럼 우리가 통일에 반대하면, 무력으로 우리를 축출할 각오도 되어 있단 의미입니까?"
@렌지파일 이덕삼은 드물게 크게 웃으며 말합니다.
"바로 그게 인생이지요. 원하는대로 된다면 무슨 재미겠습니까? 말했다시피 일본의 사과는 일본이 하고자 하면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본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얘기할 내용이 아닌 것이고, 만약 일본이 사과한다면, 저는 그날로 일본을 향해 수력발전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108배라도 해야할겁니다."
이덕삼은 다시 씩 웃고 볼스에게 말합니다.
"그러니 아까 얘기를 다시 이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로선 민족통일도 정말 사랑해 마지 않는 주제이고, 이쪽이 좀더 가까울 것 같기도 하군요."
@통장 오... 다시 읽어보니 난해해 보이는데, 이덕삼은 일본의 사과도 힘들어보이고 민족통일도 힘들다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민족 통일 접근을 선호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일본사과)포기하면 편해(...)
@통장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를 거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전쟁배상이나 침략 사과 등이 없는 상태에서 북남한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하는 대신, 북남한 간의 어떠한 정치·경제·외교적 결합도 지지하겠다고 한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어느 쪽을 고르겠습니까?"
한편, 비서관 한 명이 이덕삼에게 귓속말을 합니다.
[조선의 국익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선임된 자리니 개인적인 의견은 이야기하지 말 것] 이라네요.
@렌지파일 '뭐, 예상했던 일이구만'
역시 일본 관련해서 솔직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이덕삼은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볼동무"(..)
@통장 협상은 어느 정도 진행됩니다. 볼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라는 말이 나오자, 어느 정도는 순조롭게 흘러가네요.
회의가 끝나고, 회의 참석자들은 박헌영의 부름을 받습니다. '일본과의 제한적 국교정상화와 통일 인정'을 건 빅딜에, 박헌영은 고심이 많아보입니다.
"듣자하니, 이 안을 받아들이는데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렸나?"
박헌영은 이덕삼을 보네요.
@렌지파일 어차피 개인적인 의견이 이미 들통난 마당에 거짓말이나 회피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 이덕삼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합니다.
"동무도 아실테지만, 제가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을 고백해야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당의 결정에 찬동합니다."
@통장 "사실, 아무리 급진적으로 민족주의를 부정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변종인 제국주의 그 자체를 전혀 청산하지 않은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이 있는 것 자체야 이해할 수 있소."
박헌영은 딱히 이덕삼에게 하는 말은 아닌지, 다른 인사들을 돌아봅니다.
"일본이 아무리 재무장을 해도 가질 수 없는게 우리 눈 앞에 있다면 생각이 다들 달라지겠소? 이건 얼마 전에, 김학철 대사가 약속을 지킨다며 내게 준 문서요. 도상록 원사가 확인까지 했지."
박헌영은 문서집 하나를 꺼내 차르륵 넘깁니다. 중간에 찍힌 사진에는, 거대한 원형 내파형 장치가 그려져 있습니다. 석박사 학위가 수두룩한 집무실의 인사들은 금세 그게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원자탄...원자탄 아닙니까?"
"정확히 말하면 기폭장치 설계의 일부요. 중국에서도 직접 실험을 해보지는 못했다는군. 자. 만약 일본의 네개 섬을 핵탄두로 바닷속에 처넣을 수 있다면 어떻겠소?"
@렌지파일 "허....참"
아무리 일본을 싫어해도 일본침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이덕삼이지만, 원자탄을 보자마자 그런 상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쩝하고 입맛을 다시며 이덕삼은 고개를 흔듭니다.
"만든다면, 검이 검집에 있어야 언제 뽑힐지 모르고 대화가 되는 것처럼 보유만 하고 있을 때 가장 좋은 무기입니다.
다만, 이는 분면 게-무 체-엔쟈가 될 수 있으리라 보입니다."
냉정하게, 이덕삼은 회계를 이용하여 만들 때 북한이 먼저 재정 체인지 될지 검토하고, 호신을 통해 가지고 있을 때의 조선 위상 변동을 알아봅니다.
마지막으로 탐문?을 통해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할지 파악합니다.
@통장 일단 굴려봅시다.
회계.
Rolling 3d6 + 2
( 3 + 2 + 1 ) + 2 = 8
돈이 무척 많이 들 것입니다. 그건 당연하겠네요. 다만,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수출/밀수출(...) 경제로 상당한 성장을 이룩 중이니, 인력이 풍부한 지금 못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위상 변동+가지고 있는게 낫나? 없는게 낫나? 탐문입니다.
Rolling 3d6 + 3
( 1 + 1 + 3 ) + 3 = 8
일단 소련은 찬성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권 유지의 수혜를 얻은 즈다노프가 직접적으로 핵개발을 한다고 북한을 조지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기술을 준 사실만 숨겨준다면 역시 묵인할 것입니다.
미국이 묵인할 것인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망이 북한의 비밀 핵개발에까지 닿기는 어려우므로(교류가 전무하니), 안 뒤에는 이미 늦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침략과 전쟁범죄 사과와 배상을 거부할 때, 북한이든 남한이든 통일 한반도이든, 그 상대방이 핵폭탄이 있다면 아예 배상을 받지 않기로 정하지 않는 한(현실의 중국처럼), 위협이 될 것입니다.
도리어 이 상황(일본이 미국의 군사기지화)에서 일본의 핵개발 가능성은 낮아지니까요.
@E.E.샤츠슈나이더 짠! 나온건 [주체의 핵탄] 이었습니다
(...)
@렌지파일 다이스 구리다!(..)
"...뭐, 몰래 개발해보는건 어떻습니까? 동무"(..)
@통장 놀랍게도 실패 주사위를 다 기적적으로 피해가서(...)
"그렇다면, 일본과의 관계는 받아야 할 배상금을 '보상금' 같은 걸로 어설프게 소액 받느니, 무역과 외교적인 부분에서만 한정해 일본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후일 이 주체탄.. 아, 주체탄이라는건 원자탄 개발 계획의 명칭이오. 하여튼 이 주체탄이 완성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협상을 하자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시오?"
@렌지파일 오.... 구린줄 알았던 다이스가 딱코의 정석이었던 점에 대해(..)
이덕삼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동의합니다, 동무"
@통장 좋습니다. 이덕삼이 별다른 추가의견이 없다면, 볼스와의 회담은 조일관계에서 약간의 이견(무역·영사관계만 있는 어디서 많이본 관계)만 빼고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박헌영은 이덕삼의 변한 태도(사실 변하지 않았고, 변한건 상황이지만요)에 무척 만족한 듯 합니다. 그는 이덕삼을 상급(장관급)으로 재임용할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 일이 한가지 남았군요.. 이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렌지파일 제발 올라가는게 회의에 차는 국가가 되지 않길...!(?)
수고하셨습니다!
@통장 '주석'에 올라있는 박헌영
53년-57~61년에 두 번 있었던 '숙청'
'조선의 주체적 사회주의 노선'이라 불리는 경제정책
'주체탄'이라 불리는 핵폭탄
민족주의자들의 약진
과연(...)
@렌지파일 다른건 단 하나뿐인... 그마저도 그리 다르지 않은...
@렌지파일 아앗..
@dear0904 사실 중앙인민위원회나 인민무력부도 사회주의헌법(1972년의 일명 주체사상 헌법)에 나오는 것들이죠.
@렌지파일 이번에도 승진대상자 명단에서 빠진 조일봉(?)
@E.E.샤츠슈나이더 이영호 해군사령관의 빈자리(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전략미싸일군 사령관이 유력합니다.
@렌지파일 오.. 김여정의 직책이 생각나는 “제1부부장”… 인민무력부에만 존재하는 특수직급인가요?
@E.E.샤츠슈나이더 부부장이 여럿 있어서(중국처럼 5-6명까진 아닙니다), 보통 중요인사를 제1부부장으로 하는 셈 치는걸로 했습니다.(북한 정보도 자기들이 기관명을 매일 바꾸다보니 도통 찾을수가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당 기관이 없으니.. 물론 전인민평의회 소관 부문위는 아직 있는데, 무력부 부부장이나 하던 사람이 그쪽으로 가면 모양새가 좀 그러니까요.
@렌지파일 오… 암튼 매우 요직인 셈이군요.. 수령동지 충성(?)
@E.E.샤츠슈나이더 아, 만약 주체탄(…) 개발팀으로 가게 되면 박철환과 이행규(..)를 스카웃할 수 있을까요? 후자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E.E.샤츠슈나이더 박철환은 핵무기방위국장이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채용되었습니다 (...)
이행규는 가능합니다(?) 연령상 민청 부위원장 임기도 곧 끝나므로..
[이벤트 17]의 통합 경험치 보상입니다. 비우익을 제외한 캐릭터에게 각 분야에 원하는 경험치를 3씩 드리고, 이화영에게는 [태양 아래의 리론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관련 굴림에 +2] 트레잇을 드리겠습니다.
비우익의 경우, 막간 이벤트가 있습니다. 상시 진행인 것은 아니므로 차후에 올리겠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ㄷㄷ... 과연 정부의 경향을 바꿀 것인가..
@통장 관리에 3 받겠습니다.
지혜에 1, 매력에 2 받습니다. 사용처는 캐릭터시트에 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