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상전이다’
아내와 함께 춤을 한다는 결단 그 자체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힘겨웠던 건 아이들에게 우리부부가 함께 춤을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가 아니었나 싶다.
애초에 아내가 춤을 배우며 내게 당부한 첫 마디가
‘나의 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였다.
신랑이 사교춤 한다는 사실이 온 집안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망신스러운데
부창부수로 덩달아 한다면 콩가루 집안이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아내의 심중은 그 동안 나의 춤을 온 가족에게 떠벌리며
온갖 중상모략을 일삼은 전력 때문인 걸 난 안다.
아내 표현대로라면 귀신에 홀린 사람들이나 사교춤을 한다고 했으니
그런 자기가 사교춤을 배운다는 사실이 알려질 염치가 없었으므로...
그런 아내가 어느 명절 사촌 부부가 모인 읍내 노래방에서 스스로 드러내고 만다.
손아래 동서가 부르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나오자
“00아빠~한 번 땡기 도~”
다음 날 모든 책임을 술한테로 돌렸지만,
노래방을 들어서며
“아지매 젤 큰 방으로 주소~~” 할 때 벌써 알아봤다.
제수씨들의 입을 통해 온 집안 구석구석 알려지는데 하루면 충분했다.
생각하면 내 쪽이나 처가 쪽은 같은 세대를 살며 공유하는 부분이 있음으로
또는 중년의 나이가 웬만한 허물은 덮어 주므로 그냥저냥 이해를 아니 할 수 없다 해도 차마 우리 아이들에게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즈음 큰 딸이 겨울방학 때 월. 수. 금 째즈댄스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우리부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말없이 승낙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이들 몰래 사교춤을 한다는데 대한 일종의 상쇄심리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째즈댄스를 배운 날이면 열변을 토한다.
운동도 되고, 땀도 많이 흘려 신진대사에 좋고, 끝나고 샤워할 때 그 기분 짱 이란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부부 서로를 바라보며 ‘사교춤도 마찬가진데....^^&’
겨울방학이 끝날 쯤 아내가 큰 놈에게 엄마도 춤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더니, 대뜸...
“엄마는 춤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엄마는 운동신경이 느려 안 된다! 나이가 몇인 줄 아나?”
무심코 한 그 말이 다혈질인 아내의 속을 뒤집었고,
내 놓고 춤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이야...
엄마를 무시한다며 필요 이상(?) 펄~펄 뛰며 세게 나가는 아내의 작전에 말려
의외로 실마리는 그렇게 쉽게 풀렸지만 마음으로부터 아이들을 이해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특히나, 작은 딸은 당시 여중1 사춘기였음으로....
일요일 모처럼 네 식구 점심식탁에 앉으면 지네 엄마 눈치를 봐가며
“엄마, 그거 재미있나? 친구들 알면 쪽팔리니까 그만두면 안 되나?”
아내는 여전히 작전대로 더 세게 나가지만 옆에서 듣는 내가 참으로 민망했다.
그 후로도 함께 춤을 즐기면서도 늘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웠다.
특히 아이들 앞에선 더욱 더 그런 것이
일상적인 부부 터러블도 춤 때문으로 비춰질까 봐서였다.
어쩌다 어른스런 말도 할 줄 아는 철든 아이들이
어쩌면 우리부부를 철없는 아이쯤으로 보며 불안 해 하는 것 같아
언제나 눈치를 봐가며 조심조심 즐기던 중 그럴싸한 기회가 또 왔다.
춤을 좋아함도 있지만,
은퇴 후를 염두에 두고 혹시 하는 생각에
작년 말 ‘사교춤지도자자격’을 취득한 적이 있는데
연수받으며 자격검정개발회장님과 막역한 사이로 발전해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주고받은 지라
그 협회에서 올 여름 연락이 왔다.
“작년 11월에 사교춤 3종목이 생활체육에 포함 된 기념으로 열리는
[2005전국춤경연대회] 에 우리부부가 참가 해 보라“ 는 것!
일단은 참가하겠다는 의사부터 밝히고는
우선 아내부터 설득해야했다.
원래가 시골정서에만 익숙한지라 ‘대인공포증’이 있을 만큼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내 몰래 참가신청서 내고 며칠 뒤 마련된 외식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참가신청서’ 부본을 아이들 앞에 건네며 입이 아프 도록 썰을 풀었다.
어른들이 하는 사교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생활체육에도 포함되어 공공장소에서 경연대회까지 열리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 엄마 아빠가 출전하려 한다.....
너희들 알다시피 엄만 반상회 가서도 떠는데.....
너희들이 와서 응원해준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가 먼저 손사래를 하며
‘죽어도 안나가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본 큰 딸이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춤이 그렇게 부끄럽다면 뭐 하러 악을 쓰며 배웠더노? 우리가 가서 팍팍 응원할 테니 걱정마라!”는 것...
아내가 춤을 배울 때도 그랬듯 [춤경연대회출전]도 의외로 쉽게 풀렸던 걸 보면
우리가족 어쩌면 ‘바람난 가족’ 아닐까 은근히 조바심도 난다.
그 뒤 경연대회 하루 전 날까지 ‘안 간다’ 고 버티는 아내 때문에
호흡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 한 체 6월26일을 맞이하는데...
일요일이면 아침도 먹지 않고 늘어지게 자는 큰 놈이 일찍부터 부산하다.
언제 연락은 했는지 막내 남동생 내외도 응원 온다는 전화에 아내도 항복하고
그제야 내가 사다 준 무도복을 챙긴다.
작은 놈은 시험기간이라 독서실로 가며 “엄마, 아빠 아~자”로 미리 응원을 받으며
막내 승합차를 타고 계명대학 성서캠프스 실내체육관 앞에 도착하니
전국 각지의 댄스메니아들의 각양각색 무도복에 압도된 아내의 긴장은 더해만 가고....
현대무용...나이트댄스....째즈댄스....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에 이어
사교춤 부문!
단체전(男女 혹은 女女가 개량한복 또는 정장을 입고 펼치는 군무)에 이은
일반부(아마추어부) 순서라는 장내 방송을 듣고 긴장된 아내의 손을 잡고
선수대기선에서 등번호와 선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부부의 명단이 없어
잠시 대회가 중단되고 급기야 대회장인 회장까지 대기선으로 출동되는 소동까지...
일단 우리부부만 빠진 상태로 경기는 진행되는데
차라리 잘됐다며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반면
곁에 선 큰 아이의 실망과 아쉬움으로 주최 측에 항의라도 할 기세였다.
알고 보니,
‘참가신청서’를 일반부에 낸 후 검토과정에서 내가 ‘지도자자격증소지자’임을
뒤늦게 알게 된 주최 측에서 ‘교원부(지도자의 경기로 사교춤에선 프로부문)’에 재등록하고는 경황이 없어 내게 통보를 하지 못했던 것.
작은 에피소드 끝에 사회자의 양해 멘트가 나오고
선수대기선을 통해 높고 넓은 극장식 플로어에서
사회자의 호명과 등번호 소개에 맞춰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맞잡은 아내의 손이 얼마나 떨리던지 ‘아차! 이거 야단났다’싶었다.
제대로 연습한번 못한 터라 내색만 않았을 뿐 나도 떨리긴 마찬가지인데,
우리 심정을 아는지 큰 놈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아빠~화이팅!!”
아내에게 큰 놈 목소리 들었냐고 물으니 대답고 않고 얼굴만 더 창백해진다.
관중들의 고함소리와 박수소리에 뒤이어 때마침 불루스 음악이 흘러나온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날 지루박 음악부터 나왔다면 그야말로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을지 모른다.
역시 불루스는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사실 나야 원래‘간 큰 남자다^^&’
외항선을 타고 알라스카, 베링해를 누비며
못 볼 것 많이 보며 담을 키운 탓도 있겠지만,
왜....그런 말 있지 않은가?
‘눈 작은 사람이 간이 크다’는....
단추 구멍 만 한 눈이라 뵈는 게 없어선지 웬만해서 놀라는 일이 없다.
떨리는 아내 손을 잡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 파트너 중 자기가 젤로 멋있다” 그리고,
“천정을 쳐다보며 숨을 크게 한 번 쉬어봐라”
그러면서 불루스 음악을 마중하며 아내를 감싸 안았다.
다행히 아내의 떨림은 많이 사라져 그렇고 그렇게 3분 30초 동안의
사교춤 3종목이 끝나고 무대 인사와 함께 플로우를 빠져나오는데
큰 놈이 뛰어오며 흥분된 어조로 수다를 떤다.
“앞에 팀(일반부)에 나갔으면 1등인데....”
(지가 춤을 알어? 하여튼....)
아내와 난 큰 놈이 고맙고 대견해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처녀 출전한 춤경연대회가 그렇고 그렇게 끝이 나고.....
그것으로 해서 올 해는 우리부부에게는 추억할 기념적인 한 해였었고
나 개인적으론 춤에 대한 시야를 넓히며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 큰 성과는 내 계획대로
우리 두 딸아이에게 공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두 아이가 우리부부의 춤 전령이며 강력한 후원자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춤경연대회에서의 인연 하나!
최근 대전 전국모임 시범 동영상을 보며
아~저 특유의 후까시! 아~저 분!
2005전국춤경연대회 ‘교원부’에서 함께 경연했던 선수 중 한 분이
바로 대전의 대화명 ‘까우오님’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경연대회 후 아마추어인 저를 ‘교원부’에 뛰게 하여
입상까지 하게 했다며 주최측에 강력하게 항의한 분도
다름 아닌 ‘까우오님’이었다는 사실에 반갑고도 죄송한 마음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지면을 빌어 함께 춤추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말
꼭 전하고 싶다.
경기 후 시상을 기다리는 동안 체육관 식당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던
시원한 머리의 대구남자가 바로 ‘춤그리고’였다는 말씀도 함께...
그리고,
그 경연대회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고 채점했던 분 중 한 분도
사즐모 여성회원이었다는 사실을 대구 8월 ‘맘모스 정모’ 때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화명 ‘멋짱이’ 님이었다.
라틴, 모던 10종목 현역지도자로
지난 달 10월!
각 지역의 사교춤지도자들이 대구에서 30시간 연수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멋짱이’ 과 뜻있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 자리에 또 한 분..
서울에서 오신 지도자!
대화명 ‘셀리킴’!
날렵한 몸매의 남자지도자도 대구 연수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겸손하게 자신을 숨기는 기인이사가 수없이 많은 ‘사즐모’ 가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다.
10월 29일 연수 마지막 날은 아내의 견문을 넓혀주려
각 지역 지도자의 양해를 얻어 수료식을 아내와 함께했다.
경연대회에 출전하고
전국지도자연수 수료식에 참석하여
각 지역의 지도자를 만나 각 지역 특색의 춤을 접하며
달라진 아내의 지금 모습은.....
좋게 봐주면 당당해 졌고
좀 격을 떨어뜨리면 낮 가죽이 두꺼워 졌다는 거
기본자세가 그렇게도 안 나와 팔자대로 놀게 포기했었는데
‘뭐하고 등신은 칭찬에 약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이
내가 격려의 말로 ‘당신자세가 좋아졌다’고 했더니
요즘은 아예 눈을 내려 깔고 목에 기부스를 했는데
이상하게 그게 내가 봐도 그럴듯한 폼이라^^&
우리 부부를 곡해않고 그나마 이해해 주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두 딸이
오늘도 우리부부의 춤 안부를 묻는데,
우리부부 어찌 경거망동 하겠는가^^&
‘아이들의 불안에서 응원까지’란 제목으로 컴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세 시간이 흘러 페이지 수도 덩달아 길어져 또 송구스럽습니다.
다음 기회에 정말 짧게
그동안 제가 아내와 춤을 하며 겪어야 했던 갈등을 중심으로
‘부부 춤’을 꿈꾸는 회원님들이 시행착오의 소모를 덜어 드리려합니다.
‘달구벌’ 춤그리고.....
첫댓글 허~~ 대단하십니다 화이팅!!
멋지고 행복한 가정과 건전한 춤을 빛내주시기 바랍니다......파이팅입니다.!
멋찌당~와~우
같은 대구인으로 한번 인연되길 바랍니다..
그리고님 수고 했습니다. 항시 긍정적인 마음씨 ^^ 행복한 가정은 춤으로.. 언제나 화목 하시길 빌겠습니다...
화목한 가정 부럽습니다~~~행복하시기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2탄에서 또 뵙겠네요 ..
멋진글~ 멋진가정과 댄스를 위하여~~~
행복한 가정 이군요. 언제나 춤과 함께하는 님의 가정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춤 그리고님 부러울 뿐입니다...
좋은글잘읽었읍니다 저희도 부부가 함깨 춤을 즐기지만, 님에글을 읽다보면 공감하는부분이많읍니다.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그리고님! 님의글을 볼때마다 관심있게 재밌게 보고있읍니다. 부부가 함께 즐춤하는 모습을 매스컴에서 봤는데 참 부럽더군요. 항상행복하시고 가정의 평강과 건강이 항상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