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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보의 여행철학!
홀로 자유여행을 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라도 여행속에서 느끼는 제일 달콤한 맛은 역시 "자유" 그 자체일 것이다.
나는 중국대륙을 들어갈때면 되도록이면 인천에서 청도, 천진, 위해,단동등으로 여객선을 이용애서 들어간다.
배 운임이 편도 12만원정도이니 비행기 보다 가격이 싼것도 아니고 24시간 내외가 소요되니 시간이 빠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객선을 즐겨 이용하는 이유는 날씨가 좋고 달이 있는 경우에 홀로 밤바다를 떠가는 외롭고도 아름다운 낭만을 맛볼수도 있거니와 그 보다 더 한것은 코가 누렇도록 실컷 잠을 자면서 모든 삶의 짐들을 바다에 벗어 던져 버리고 오직 여행속으로의 필요한 순수한 "자유로운 마음"으로 마음에 옷을 갈아입기 위한 준비시간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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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여행속에서 누리며 얻고자 하는 철학은 F.C.W 이다.
Free : 조건없는 자유를....
Change : 발전적인 사고의 변화를....
World : 내가 세상속에 한점이 아닌 세상을 내 품속으로.....
실크로드2단계의 출발국가인 키르키즈스탄을 육로로 들어 가려면 중국 신장지역의 카슈가르로 이동해야 한다.
천진-북경-우루무치-카슈로 가기위해 인천항에서 천진행 여객선을 타고 장도에 오르는 모습이다.
북경역앞에 있는 거대한 유스호텔이다. 어떠한 여행을 하는 여행자라도 저렴한 비용으로 만족할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었으니 이용해 보기 바란다. 알려지면서 중국인의 이용이 많아지고 있다.
북경에서 아제르바이잔 비자발급을 받는데 실패하고 우루무치로 향한다.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 44시간을 달리는 열차를 탓는데 여름 휴가철과 소명절이 겹쳐서 입석으로 몸을 실었다. 44시간을 서서가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열차와 열차사이의 연결판위에 앉을 자리를 잡았다. 어찌나 만원인지 화장실만 다녀와도 자리는 없어져 버린다.
위 사진은 나와 44시간을 이애기와 웃음으로 함께한 추이라는 6살짜리 예쁜 소녀와 한국의 신라면 처럼 중국의 대표 라면인 강사부와 쭈구려 앉아 귀향길에 오른 노동자들이다. 비좁고 지루한 흔들림이었지만 긴 시간속에서도 중국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이애기할수 있어서 자유여행의 진미를 느꼈다. 여행이란 즐기지 못하면 고행이요 즐기면 수행이다.....
새벽에 시장으로 탄생했다가 아침 9시면 사라져 버린 후 깨끗하게 2차선 자동차 도로로 변해 버리는 우루무치의 아침시장이다.
2년만에 찾아 왔지만 순두부를 파는 아줌마, 정육점을 하는 부부 그리고 은장도를 파는 할아버지도 변함없이 나를 알아본다. 그렇게 사람냄새가 맛있게 물씬나는 벙개같은 아침시장이다.
내가 즐겨먹는 순두부와 덴뿌라..... 합해서 우리돈으로 300원 정도이다. 해장겸 아침식사로 두어그릇 뚝딱 그리고 포장해서 숙소로 가져가 서 점심으로 뚝딱.... 그래도1000원이면 된다. 싸니까 더 맛이있다 ~~~
시장에서 자세히 보다가 잘려진 팔이라는걸 알고 기겁을 했다. 사람의 손바닥을 닮아서 여자 상인에게 물어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서로 눈만 마주보고 껌뻑거렸다
이곳 우루무치는 이 세상에서 바다가 제일 먼 내륙이다. 때문에 바다 생물은 아닐것 같고 털이 없으니 곰도 아닌듯 한데 크기와 모양이 성인의 손바닥 크기인걸 보면 내륙의 수달과 같은 종류의 동물이 아닐까 짐작된다....왜냐하면 중국 양자강에서 잡히는 메기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잡히는 큰 상어 크기만 하다. 그렇듯 큰 대륙에서 사는 생물은 크기도 크니 말이다.....
지금도 시장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왕 수판이다. 윗알이 2개라 우리하고 용도는 같아도 계산하는 요령은 틀린가 보다.....
빵과 양고기샤스릭 그리고 휴대용 52도고량주다. 신장을 여행할때 즐기는 나의 主食이고 그리고 酒食이다.....
2년만에 찾아온 나를 알아보고 "한구어~?"(한국사람)라며 반긴다.... 조용한 반가움에 따뜻한 온정을 느끼게 하는 말이 없는 만두집 조리사다.
드디어 우루무치 도착4일만에 키르키즈스탄 비자를 손에 쥐었다.
구 소련의 연방에서 독립한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곳들이 미지의 장막에 가리워져 살아가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러 들어간다는 것은 흥분이 아니 될수가 없다. 오쉬의 내란때문에 외국인 여행을 통제한다는 염려속에서 막상 비자를 받고보니 새로운 긴장과 한편 쾌재속에 마음이 바빠진다. 이렇듯 여행이란 설레임의 연속이다....
우리도 어린시절 어머니는 들녘에 나가시고 보호자 없이 놀면서 클때 스스로 바지를 내리고 대소변을 가릴 능력이 될때까지는 저렇게 밑터진 바지를 입고 컸었다. 심야뻐스를 타고 카슈가르로 함께 갈 꼬마다...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로 24시간을 달리는 침대뻐스.... 이게 나의 이번 여행에서 누워서 잠을 자면서 이동할수 잇었던 마지막 행복이었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인도등의 심야 뻐스들은 침대화가 되어있는데 이번 여행의 중앙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카프카스의 나라들은 큰 대륙인데도 없어서 보지를 못했습니다....
실크로드상의 옛 상인들에게는 제일 큰 장애물이었으며 생사를 걸고 횡단해야 했던 대표적인 사막으로 콜라콤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이 있다. 그중 언제와도 황량함이 무서울 정도인 타클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고속도로이다.
고속도로 간이휴게소에는 화장실이 없는곳이 많다. 그 이유는 여름이면 작열하는 뜨거움에 대소변을 싸도 냄새 날 시간도 없이 말라 붙어 버리고 겨울이면 추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쳐서 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에 여자고 남자고 휴게소 뒤로 돌아가서 아무곳에나 볼일을 보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실내 화장실이든 야외 화장실이든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볼일을 보는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 있지만 우리로서는 참으로 고역이고 특히 홀로 여행하는 여자들은 남자들 보다 말 못할 고생을 더 마니 한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할때 내가 즐기는 한국형 고기 볶은밥이다.
대형 가마솥에 밥을 찌듯이 은행을 비롯한 약과와 양고기를 넣고 볶는다. 혹시 김치를 가지고 이슬람지역을 여행을 하게되면 함께 취식해보기 바란다. 보드카와 삶은 양고기와 김치....ㅎㅎㅎ~~
카슈가르 시내에서 빵을 팔며 노점상을 하는 할아버지 같은 39세의 청년이 나를 기억해 낸다. 나에 디지탈 카메라가 신기해서 찍어달라고 졸라대는 손자같은 막내 자식이 소원을 이룬듯한 흡족한 표정으로... 찰칵....
신장에서 살아가는 위구르족 사람들은 티베트 사람들 처럼 지금도 자신들을 중국 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은 터어키와 같은 민족으로서 " 동터어키스탄 " 또는 "위구르스탄" 이라고 숨죽여 외치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민족이다.
한족을 통하여 스며드는 위구르의 힘빼기 정책에 맞서 부딪치고 항거하다 보니 자주 내란이 일어나고 최근의 우루무치항쟁도 그런 맥락이며 그러므로 신장의 카슈가르와 우루무치는 항상 경찰들이 배치되어 24시간 긴장이 감도는 곳이다.
사진은 가정용 전기로 오토바이 충전을 하는 장면이다. 이곳 카슈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오토바이가 없고 모두 충전용 밧데리로 사용하는 전기 오토바이를 사용한다. 공해방지 보다 내란때 휘발유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예방책이 우선인듯 하다.
어찌나 더운지 청순한 여중생들이 더위를 피해 학교앞 도로의 가로수 그늘밑에서 줄줄이 앉아 숙제를 함께한다. 이유인즉 학교 교실도 집에 공부방도 이곳만큼 시원하지는 않단다.... e-메일로 사진을 보내 주었다...
키르키즈스탄 오쉬의 민족분규 사태로 인해 국제뻐스가 운행을 하지않아 국경을 넘지못할수도 있는 불확실성속에도 벅찬 가슴을 안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국경으로 달려 가는 중.... 그러나 이길이 오쉬의 내란속으로 들어가는 운명의 길일줄이야......
중국령 국경사무소를 통과한 후 일희일비속에서 기념사진 찰칵...... 지난밤 월드컵대회를 우승한 스페인 칭구이며 조금후면 이칭구는 타직스탄으로 넘어 가고 나는 죽음의 오쉬로 들어간다. 나에 마음은 지옥인데 이 친구의 마음은 천당이다....
중국 카슈가르에서 키르키즈스탄으로 넘는 국경이다.
중국에서 키르키즈스탄으로 넘는 국경은 수도인 비쉬퀙으로 가기 위해 나린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있고 또 하나는 오쉬로 바로 들어가는 국경이 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려면 3천년의 역사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의 거점이 될 오쉬를 들려봐야 됨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날마다 보도되는 국제뉴스에 의하면 지금 오쉬는 인종끼리의 내란으로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으며 내국인까지도 출입을 통제하는 상황이라 여행자들의 출입은 상상도 못할일이었다. 나는 바로 오쉬로 들어가는 국경코스를 일단 유보를 하고 수도인 비쉬퀙으로 들어가는 국경으로 넘어가서 여행을 진행하다가 오쉬상황을 지켜 본 다음 들릴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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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나는 중국국경을 넘고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국경이 아닌 오쉬로 향하는 국경임을 알았다.
원인을 알고보니 택시를 알선해주는 여행사 사장이 택시비는 1명이든 4명이든 똑같은 금액이라 오쉬행 국경으로 1명이 타고가는 택시에 우리3명을 함께 태워 보내 버리고 그리고 우리3명의 택시비는 여행사 사장이 몽땅 챙겨버린 농락 이었다. 이렇듯 국경의 대표적인 필요악의 삐끼들이 여행사 사장들이다.
문제는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비자가 없고 안전한 비쉬켁으로 가자니 차량이 없고 어쩔수 없이 우리 일행은 오쉬로 향할수 밖에 없었다. 여행 첫걸음부터 이게 무슨 운명에 장난이란 말인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의기양양하게 " 한번 가보자 인간이 한번 죽지 두번 죽느냐" 하며 합세를 하며 큰 소리도 쳐 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떨고 있었고 발걸음은 어쩔수 없이 키르키즈스탄 국경수비대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키르키즈스탄 국경에서 히치(같은 방향으로 가는 화물차등을 이용하여 이동하는것)를 하려고 기다리는 우리들에 모습이 귀찮았는지 국경 수비대장이 화물차로 국경사무소까지 우리를 짐짝처럼 실어서 운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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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어디서나 국경을 넘을때면 초긴장속에서 돌연변수도 많고 그 만큼 추억도 많다....
여행자에 있어서 국경이란 아프리카 캐냐의 마라강과 똑같은 곳이다. 강을 건널수 밖에 없는 누우떼와 같은 낯선 여행자들 그리고 그 낯선 여행자들을 낚아채서 빨아먹고 사는 악어떼와 같은 삐끼들이 있다.
여행이란 악어떼가 물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을 건너야 하는 아프리카의 누우떼와 같이 삐끼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경을 넘어가야 하는것 또한 여행자인 것이다....
오쉬로 함께 갈 일행 중 키르키즈스탄에서 살고 있다는 중국친구와 샘이라는 뉴지랜드 친구와 셋이서 보드카를 한잔하면서 용기와 의지를 다져 본다.
키르키즈스탄
위치 : 중앙아시아 북부의 내륙국가이며 동으로 중국, 남으로 타지크스탄, 서로 우즈베키스탄, 북으로 카자흐스탄이 인접해 있다, 수도 : 비쉬케크(Bishkek), 언어 : 키르키스어, 종교 : 이슬람75% 러시아정교 20%,
기타 : 바다와 먼 내륙국가이고 천산산맥과 초원으로 형성된 산악국가이며 유명한 이스쿨과 같은 호수가 많아서 호수의 나라라고 부른다
오쉬의 민족분규 사태란 ?
구 소련연방의 스탈린시대때 우즈베키스탄의 땅이었던 오쉬와 키르키즈스탄의 땅이었던 샤키마르돈을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서로 맞바꾸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즈베키인들만 살아가던 오쉬에 키르키즈인들이 하나둘 잠식하게 되었고 지금은 오쉬 인구분포가 5:5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즈베키인들의 괄세와 키르키즈인들의 설음이 계속 쌓이면서 쉼없이 서로 부딪혀 왔고 이번에는 키르키즈인들이 아예 인종 청소를 해 버리겠다는 식으로 우즈베키인들의 집을 호호방문해서 무조건 서로 죽이고 죽고 집은 불태워 버리는 참혹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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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행2명과 오쉬를 들어갔을때의 상황은 1980년 우리의 광주사태때 처럼 경찰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도시전체가 무법천지가 되어 살상이 계속 자행되는 상황에서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왔지만 민간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은 아직 회수도 하지 못하고 밤에는 가끔 전투가 벌어지는 그러나 질서를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키르키즈인들의 잔인성 !
아직 시외로 도망을 가지 못하고 시내에 숨어있다가 붙잡힌 우즈베키인을 끌고와서 광장 한복판에 무릎을 꿇인다. 또 다시 잔칫날 행사처럼 군중은 몰려들고 군중들은 저 우즈베키인을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잔치는 시작된다. 먼저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고 벌벌떨고 있는 우즈베키인의 머리위에 기름통을 든 사람이 나타나서 기름을 쏟아 붓는다. 다음사람이 나타나서 불을 붙인다. 우즈베키인은 .................... 글로 표현할수 없는 괴성과 몸부림으로 광장을 날뛰어 다니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죽어간다. 그래도 키르키즈인은 쌓인 분이 덜풀리는지 군중속에서 튀어나와 구두발로 멈춰버린 시신을 발로 차며 잔인함을 더한다.
글쎄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앙금을 주었으면 저렇게 까지 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세상에서 죄없는 사람을 인종이 같다는 이유로 꼭 저토록 잔인하게 죽여야 되는지를 키르키즈인들에게 묻고 싶었다.
키르키즈인들은 그런 동영상을 몇개씩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동영상이 더 잔인하게 잘 찍어졌으니 자기 것을 보라고 경쟁이나 하듯이 서로 내민다.
오쉬의 전쟁터로 우리를 싣고 출발할 랜트차량이 3시간후에 출발한다고 해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서 긴장속에 얼어버린 마음을 달래 보기도 하고....
당당하고 그져 행복하기만한 소녀형제의 모습에서 우리와 다른 세상의 기준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렇잔아도 죽고죽이는 내란의 현장속으로 들어 가는 착찹한 심정인데 도로변의 묘지가 웬지 더많은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국경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하룻밤을 길에서 자면서 오쉬까지 들어가는 길은 천산산맥을 따라 가는 초원길이며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신기한 것은 모든 초원이 골프장 필드와 같았고 나무 한그루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구 소련치하에서 집단생활화 되어 버렸지만 그옛날 유목민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꼭 다시한번 찾아와 트래킹을 하고 싶은 상그릴라적인 트래킹 코스이었다.
(오쉬를 빠져 나갈때까지 카메라를 가지고 정상적으로 사진을 찍는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보는 아래 사진들은 대부분 몰래 찍었던 사진들이다)
아침7시가 지나서야 계엄군들의 검문을 받으며 시내로 들어갈수 있었다. 출입문 마당에 장갑차가 출동대기 상태로 서 있다. 숙소를 잡고보니 하필 계엄군사령부가 주둔하고있는 알레이 게스트 하우스이다. 고양이 새끼가 호랑이 굴로 찾아들어온 꼴인지 아니면 우리까지 지켜 줄 응원군속으로 들어온 것인지 두고봐야 되겠지만......이게 무슨 운명에 장난인가....!?
하루를 굶은터라 배가고파서 식당에 들어서니 이 전쟁터에 외국 여행자가 들어온걸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사람들이 자꾸만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신기해 하며 물어보기도 하며 게속 염려도 해준다. 심지어는 한 젊은청년이 이곳 상황을 알면서도 여행을 하러 들어 왔는거냐고 그리고 자신들을 무시하고 우습게 보는 행동이 아니냐는 듯이 우리에게 닥아와 불쾌한듯이 물어보았다.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을 했다. 우리는 쫄수 밖에 없고 긴장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피망속에 양고기를 다져넣어 삶은 안주 그리고 샤스릭에 보드카를 어찌나 맛있게 얻어 먹었다.
우즈베키인들의 상점과 주택은 다시 돌아 오더라도 아예 살지 못하도록 모든것을 다 불태워 버렸다....
탱크 경계병이 앉아서 졸고있다. 숙소에서 창문으로 내려다 보며 몰래 찰칵.....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오쉬의 자이마르 시장 입구이다. 오쉬가 수도인 비쉬?보다 더 사람냄새가 나는것은 아크부르강과 자이마르 시장 때문이라고 한다. 낮12시쯤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아래 사진과 비교를 해보자....
오후 5시 위 사진과 똑같은 장소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는데 시장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후 8시가 되어야 어둠이 내리는데 벌써 시장이 텅 비어 버리고 모든 시내가 고요한 정적만이 감돈다. 밤이되면 가끔 총소리와 응급차량의 싸이렌 소리와 그리고 탱크의 굉음 소리가 임자잃은 밤에 적막을 찢을 뿐 그래도 지금은 우즈베키인들이 모두 국경밖으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조용한 편이란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흘러 오쉬시내를 관통하며 4계절 세차게 흐르는 아크부르강이다. 수많은 시채를 이 강물에 던져 버렸고 유가족들은 강물 하류에서 그물을 치고 시체를 건졌다고 하는데 흐르는 강물의 많은 량과 빠른 속도로 보아 시신을 과연 몇구나 건졌을까 의심스럽고 안타까웠다. 시청 주변을 가보면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고자 인산인해다. 그나마 우즈베키인들의 유가족은 얼씬도 못하니 비극중에 비극이 아닐련지....
오쉬의 한 복판에 위치한 오쉬인들이 성지로 모시는 솔로몬 산이다. 지금의 모든 아픔들을 말없이 지켜본 유일한 증인이다. 그러나 말이 없이 지금도 지켜만 보고있다....
솔로몬 산에 올라 오쉬를 사방을 내려다 본다. 끝없는 지평선의 한 복판에 20만여명이 살고잇는 우리나라의 대전과 같은 들리지 않으면 안되는 교통의 요충지이고 앞으로도 발전의 거점이 될 도시이다. 그래서 중국도 자신들의 자금과 기술로 중국과 오쉬를연결하는 도로를 확장개설 지원하고 있다.
수도인 비쉬?에서 오쉬내란 상항을 취재하러온 2명은 신문사 기자들이다. 이번의 내란은 내면적으로 전 독재 집권자파들의 정치적인 술수가 깔려있고 시민들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해 준다.
불태워 버린 공동묘지 사진이다. 우리는 묘지에 풀이 자라면 정성을 들여 벌초를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불을 질러서 각자 태워버린다.
상대방의 귀, 코,목을 자른다는 참혹한 진실을 하나하나 더 알게 될수록 무서운 오쉬를 빨리 빠져 나가야 겠다고 늘 다짐을 하지만 그런 불안속으로 빨려들어 가면서도 오히려 나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불안의 면역이 생기는 것일까 이곳 사람들과 자꾸 어울려 진다. 천진한 꼬마와 함께 놀며 잠시 내마음에 땀을 닦는다....
쏘련연방으로 부터 독립을 한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레닌 동상이 시청앞 광장에 서있다. 지난 봄에 민중혁명으로 독재 정치를 몰아낸 역동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는 나라임에도..... 어쩌면 그들만의 향수일지도 모른다.....
아래 사진의 고려인 동포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맛잇는 접대를 받는데 샘을 데리고 갔다. 샘 친구의 행복한 모습이다.
이번 내란때 키르키즈 폭도들에 의해 집앞쪽이 일부 불태워 졌는데 그래도 주위 키르키즈인들이 보호를 해줘서 도망가지 않고 집을 지킬수 있었다고 한다. 꼬마 소녀의 엄마아빠가 한국으로 돈벌러 갔다고 한다. 기러기 가족이다 어디를 가도 우리 동포들의 생활력은 대단하다....
내가 오쉬에서 5일 동안 머무르며 여행을 할수있게 용기를 주고 안내를 해주고 보호를 해준 러시아에서 조종사를 하다가 정년퇴임후 이곳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있는 우리 고려인 동포인 강레오니드 형이다. 이번 내란때 사용한 경비 및 호신용 총이다. 무장한 동포가 있으니 한결 든든하고 으쓱해 졌다.
날마다 아침이면 오늘은 어디로 어떤것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보고하러 와서 아침식사를... 무사히 잘 다녀 왔다고 보고하면서 저녁식사를 내집처럼 드나들며 열심히 잘 얻어 먹었다.
우리가 최고급으로 치는 비싼 철갑상어 알 젖갈이다. 우리의 토화젖갈처럼 밥에 비벼서 끼니마다 실컷 먹었다.
강레오니드형이 하루를 더 머물게 하시더니 오쉬에서 자가용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사진처럼 바위절벽속에서 물이 쏟아지는 신기한 곳을 보여 주었다. 아직 원인을 규명 되지는 않았는데 년중 계속 흘러 나온다 하니 아마 가까운 만년설산에서 눈이 녹으면서 지하수맥을 따라 흐르다가 이곳 구멍으로 나오는것이 아닌가 추정해 보았다. 이곳에서는 아직 관광자원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안되어 잇었지만 언젠가는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될수 있으리라고 생각 되었다.
떠나는 날 마지막 아침식사를 하고 기념사진을.....나와 갑장인 김로사(아주머니)는 대인관계의 호칭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 나를 계속 오빠라고 불러 주었다. 동포의 따뜻한 정을 한없이 누렸다.
동물울 죽이는 방법보다 더 잔인하게 인간을 살육하는 오쉬의 현장을 뒤로하고 비쉬퀙으로 떠난다. 어쩌면 탈출한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것이다...... 내가 이러한 비극을 일부러 확인하러 온것은 아니었다. 오쉬는 3천년의 실크로드 역사를 간직한채 지금도 미래에도 이 지역의 발전적인 요충지가 될 곳이므로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나로서는 꼭 들려봐야 할 곳이었다. 강 레오니드 형이 렌트카 기사에게 차비까지 지불해 주면서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잘 부탁한다. .....너무 큰 신세를 지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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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보의 여행이란 낯선 사람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고 그것은 " 얻어먹고 얻어자고 얻어타며 흘러다니는 여행이다 "
비쉬퀙 공원에 세워진 조형물이다. 구 소련 사회주의 치하에서 군사적 기능으로 세워진 많은 광장, 동상, 체육관등이 독립후 군중을 강제로 동원하는 시스팀이 없어 졌기 때문에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옛 영화로움을 되새김하며 흉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회주의와 이슬람의 결혼 행사문화는 우리와 비교될 만큼 대단하다.....
낯선 여행객의 닥아섬이 처음인듯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순수하다....
구 소련하에 이곳으로 내려와서 살던 러시아계 민족은 그야말로 귀족이었다. 그러나 독립후 이제는 소수민족으로 바뀌어져 살
아간다. 민족의 갈등이 심한 이곳에서 태어난 저 러시아 후세의 험난할 미래를 생각해 본다....
공원에 데이트를 나와서 조형물의 그늘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연인사이라고 자신있게 답해주며 포즈를 취해준다....
지나가던 이슬람의 사목이 닥아와 기념사진을 요청한다. 홀로 떠도는 여행자인 내 모습과 행동이 그들의 눈에는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더위에 지쳐 공원 카페에 들러 생맥주를 한잔하는데 까림이라는 48세의 중년이 한국말로 인사를 해온다. 우리나라와 뽕나무를 교역한다고 한다. 우리의 룸사롱 문화와 사우나 문화를 동경하는듯 자꾸 들먹인다. 까림의 접대로 점심을 맛잇게 얻어 먹었다 내일 아침은 집으로 초대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 80년대의 디스코 크럽과 가라오케문화가 유행을 하고 있다. 밤새도록 잠못 이루게하는 음악과 노래소리를 찾아봤더니 남자는 많지않고 여자들이 주류를 이루며 술과 담배와 춤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좌측에 이슬람 머풀러를 쓴 여성도 눈에 띈다....
캐밥을 만드는 첫단계가 궁금했었는데 닭고기 캐밥의 첫단계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몽!?, 대장금!?, 장보고!? 하고 물어보면 열명중 아홉명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하나가 된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은 잘 몰라도 한국 드라마와 한국 배우는 미치도록 좋아한다. 진열된 VTR속에 이병헌과 송헤교의 모습이 보인다.
70년도 이전에 미제(미국제품)하면 똥이라도 좋아했듯이 이곳 시림들은 우리의 한국제품을 좋아한다. 도심에 있는 한국제품 전문?이다.
러시아에서 한국사람은 몰라도 팔도 도시락은 알듯이 이곳에서도 도시락의 인기는 대단했다. 나와 같은 여행자가 여행중에 도시락과 같은 라면을 만나는 것은 사막에서 간이 휴게소를 만나는것과 같다....
이스쿨호수에서 휴가를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사회주의에 있어서 여성의 노출문화는 서구적인 문화에 가깝다 보니 자유로운 의식이 우리보다 더 앞서있다. 우리의 눈은 뚱뚱해 보이지만 저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중년여성의 멋진 모습이란다....ㅋ~
이스쿨의 명성은 대자연의 대단함도 있지만 바다가 없는 이지역으로서는 절대적인 관광휴양지가 될수 밖에 없는듯 했다. 시설과 환경은 우리의 70년대 해수욕장 수준으로 안타까웠으나........건너편 해변의 하얀 건물이 대통령휴양소 이란다.
제주도 3배크기의 이스쿨호수(180km * 60km)는 해발 1600m의 천산산맥을 끼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최대휴양지로 변모해 가고 있으며 특히 겨울철의 스키장은 날로 세계사람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
24시간 영업을 하는 도로가 휴게소의 14세 소녀 직원들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형제곁을 떠나 살아가는 사연들을 듣다보니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12살 어린 나이에 2살 적은 우리 아버지 한테 시집을 왔었다고 하였는데.....
국경이라 사진을 찍을수 없었지만 키르키즈스탄 국경의 군인 숙소에서 한숨을 얻어자고 일어나니 돼지같이 뚱뚱한 군인이 옆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렷다는 듯이 숙소를 빌려줬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전에 돈을 주라고 했으면 당연히 돈을 주고 잠을 잘수밖에 없었겠지만 자고나서 돈을 달라고 하면 돈이 없다고 오리발을 낼수밖에 없는것이 여행경험자들의 노하우^^^ 1시간여동안 오리발로 버텨 이기고 출국도장을 받고 웃으면서 500미터앞 우즈베키스탄 국경으로 흘러간다...... 아듀~ 키르키즈스탄.....!!!
다음은 둘째나라 우즈베키스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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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국적이고 처음 접해본 여행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경 넘어 가는 대목까지 우선 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꼭 볼겁니다. 감사 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자세히 설명하여 주신 여행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일상에 묻혀 사는 저로서는 짬보님이 부럽습니다... 철학의 세계가 마~니 마~니 깊어지는 여행 되세요!!! !!!
하이고 구경잘햇습니다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스리
대단한 용기와 배짱에 박수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