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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한 색채로 남도의 자연과 정서를 담아내는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서양화가 진원장 교수(61·계곡면 출신·조선대학교 전 미술대학장)는 지금 생애 스물한 번째의 작품전을 준비하기 위해 작업실에 묻혀있다.
"올 가을에 서울에서 가질 전시회인데 그림이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그림이 아닌 자유로움을 표현한 그림…"
진원장의 작품은 고향 해남의 자연과 기억으로부터 발원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청보리, 완두콩, 녹두꽃, 배추꽃, 새들이 작품의 소재로 일관성 있게 등장하며, 남도의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색채 또한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색채의 향연으로 작가 특유의 화폭을 만들어내고 있다. 온 누리가 그의 작품처럼 꽃의 축제로 화려한 막을 여는 4월에 진원장 교수를 그의 작업실로 찾아가 만났다.
그의 화실에서 문득, 이처럼 폐쇄된 공간이 밝고 화창한 자연을 재현하는데 오히려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언덕과 꽃과 나무들의 흔들림은 이미 화가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님의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는 정원의 꽃과 나무들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여성적인 모티브인데 꽃과 정원을 주제로 삼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인물공부를 하면서 인물에서 얻은 느낌이나 테마를 구체화하는 요소로 꽃과 풍경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닙니다. 시골출신이라 어쩔 수가 없지요. 유년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떠오르는 고향의 들녘이 펼쳐진 화폭은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하고, 정화수를 담은 주발, 그리고 고향 집에 놓여있던 장독항아리 뒤로 보이는 아주 오래된 나무에 오롯이 피어난 꽃들은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입니다. 고흐가 남불의 태양 아래에서 강한 색채에 눈을 떴으며, 마티스가 지중해, 모로코, 타히티의 햇빛으로 단련된 눈을 통해 화려한 색을 구사했듯이 저의 작품 깊숙한 곳에는 남도의 풍광과 정서가 배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작품세계가 구축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남은 문화예술의 안목과 층이 높은 곳이고 특히 문학 쪽으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는데 어떻게 화가의 꿈을 갖게 되셨는지요?
어렸을때 진로는 대부분 선생님들의 영향이지요. 제가 계곡서초등학교 6학년 때 백혜자 선생님이라고 계셨어요. 그분이 해남예술제에 저를 데리고 가 거기서 장원을 한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 마침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고종사촌이 외가에 내려왔는데 왕자파스라고 아주 좋은 크레파스를 갖고 왔더라고요. 당시 시골에는 겨우 양초에 물감을 녹여 만든 정도의 크레용을 쓰고 있었는데 그 왕자파스를 빌려 쓴 덕분인지 제가 봐도 그림이 잘 그려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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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심사를 하신 분이 해남중학교 미술교사였던 나점석선생님인데 그분은 광주서중에서 최영훈, 이두헌선배들을 가르친 실력가였죠. 미술대회 장원을 하자 졸업 무렵 나선생님이 한 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아버지께 해남중으로 보내라고 설득을 하신 겁니다. 해남중을 거쳐 당시 미술명문고였던 조대부고로 입학을 했고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로 접어든 거죠.
선생님들의 성함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좋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군요. 또 교수님의 모교이자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조선대학교미술대학은 고 오지호, 임직순선생님을 비롯해서 국내 서양화단의 대표적 작가들이 계셨던 곳인데 가장 영향을 받은 분은 누구입니까?
아무래도 임직순 교수님과 황영성교수님 두 분이 아닌가싶습니다. 특히 임직순 선생님은 색채감각이 뛰어난 분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인물화들은 대부분 소녀시절에 지녔던 청순성을 간직한 그림들로 골똘히 상념에 잠겨있거나 꿈꾸는 듯이 정갈해 보입니다. 저는 인물화에 천착하던 시절 '무희의 화가'라고 불렸던 드가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화실이름도 드가화실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춤추는 여인,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것도 드가의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76년 전남도전 우수상, 77년 전남도전 최고상, 8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연거푸 나온 수상작들이 여인을 테마로 한 작품이다 보니 그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순간의 영원화'라는 차원에서 화가들이 움직이는 동작을 포착하려고 하는데 교수님의 여인상은 예컨대 '연습실'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동작 후 잠깐 정지된 순간의 평온함이나 환희 같은 것이 느껴지지요.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작가들은 주기적으로 작품의 대상이나 세계가 변한다고 합니다만 교수님은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분류하며 일관되게 추구하는 회화정신은 무엇입니까?
작가들은 단지 표현할 뿐이지 논리적으로 그림설명을 잘 못합니다. 또 내 그림이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이랬다고 명확히 분류하기도 어렵고요. 그건 평론가들의 몫이지요. 다만 1990년대 말에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과,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체류하면서 행한 북미 여행은 분명히 그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본 것은 '예술은 도발적이다'라는 것입니다. 비슷비슷해서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힘들고 남과 다른 나의 정체성을 철저히 추구해야한다는 것이죠.
그동안 기억 속에 아스라이 존재하는 남도의 풍광과 정서를 그려왔다면, 세계여행 이후 그림에서는 살아 생동하는 자연의 변화가 등장하고, 색채는 더 화려하고 풍부해졌다 할까요? 아울러 이전의 남도 풍광의 표현 방식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지난 2009년 개인전에서 미술사가인 김승환 교수는 저의 작업원리를 "비움과 채움의 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평을 했더군요.
비움과 채움의 미학… 참 어려운 표현이네요.
30여 년 화업의 시간동안 꾸어왔던 것은 고향의 꿈, 자연의 꿈입니다. 거기에는 화려한 색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백이 있고 비움이 있으며 저는 그 빈 곳에 무언가로 채워가려고 합니다. 때로는 구상과 추상의 대비를 통해, 때로는 거칠고 힘찬 붓질로 표현합니다. 보는 이들이 독특한 조형감각을 느끼기를 바라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나 20대에 전남도전 최고상을 받고 30대 초에 국전에 특선을 하셨군요. 화가로써, 또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써 비교적 성공한 인생을 살아오셨다고 할 수 있고 이를 반영하듯 작품 또한 화려하고 열정에 넘치는데 교수님에게도 못 이룬 꿈과 고통이 있습니까?
누구에게나 말 못할 고통이 있듯이 저에게도 고통이 있습니다. 저는 타고난 화가는 아니라고 보아요. 단지 노력하고 있을 뿐이지…. 되돌아보면 정말 많이 노력하며 살았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비교적 실패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한발 앞서, 혹은 남보다 조금 더, 남보다 열심히 준비를 한 덕분입니다. 어떤 경우 누군가를 선택해야하는 입장에 서 보니까 그 준비된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준비 없이도 선택되는 천재라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그게 제 고통이죠. 하하.
고향에는 자주 가시나요?
네. 어머님이 해남에 계셔서 자주 가는 편입니다. 손자들이 어렸을 때는 광주에 함께 살면서 돌봐주셨는데 다시 고향으로 가셨죠. 옛집을 헐어 새 집도 짓고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사시는 걸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우스운 질문인데요. 만약 교수님이 해남자치단체 장이라면 계속 줄어들고 있는 해남인구를 늘일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요?
저는 나폴리모델을 실천해보고 싶어요. 호주 시드니는 낙후된 항만시설과 버려진 철도부지를 아름답고 쾌적한 친수공간으로 만들면서 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 항을 탄생시켰다고 하지요. 하버마켓과 호텔, 컨벤션센터, 공연장, 유람선 등 문화와 상업 기능의 복합단지를 조성해 전 세계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상업과 관광 기능을 겸하고 있는 나폴리항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의 사례도 있습니다. 강진 마량은 원래 제주에서 한양으로 공출된 말이 쉬어가던 곳이었는데 이제 사람이 쉬어가는 미항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촌을 살리면서 관광객을 모으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세계의 여러 항구도시들이 항구를 관광자원화해 경제 규모를 키우고 있는데 해남도 이에 못지않은 관광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만큼 이제 누가 이 자원을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지요.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그림 앞에서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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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해남 출신으로 이런 훌륭한 화가있다니 자랑스럽다. 남도의 빛갈을 잘 살려내는 세계적 색채 화가로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