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령부 예하 1공수 특전여단 3대대에 배치됐다. 자대로 바로 가지 않고 4주간의 공수훈련과 6주간의 특수전 훈련, 2주간의 여단 전입훈련을 다 거친 다음에야 자대로 배속됐다. 관등성명부터 외게 했는데 ‘여단장 준장 전두환’ ‘대대장 중령 장세동’이었다. 장세동 대대장은 내가 후반기 훈련을 마치고 돌아간 사이에 바뀌어 함께 근무해 보지 못했다. 얘기만 들었는데, 군인으로서의 평판은 매우 좋았다. 5공화국 당시 장세동씨 후임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을 했던 안현태씨가 바로 옆 대대 대대장이었다.
특수전 훈련 때 폭파 주특기를 부여받았다. 나는 공수병이자 폭파병이 되었다. 6주간의 특수전 훈련을 마칠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그는 나중 12·12 신군부 쿠데타 때 끝까지 저항하다가 반란군의 총에 맞아 참군인의 표상이 된 인물이다. 전두환 여단장은 그 쿠데타를 이끌고 성공해 대통령까지 됐다. 관등성명을 외웠던 두 직속상관의 운명이 그렇게 극적으로 엇갈렸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정학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급기야 제적되고 구속됐다. 그런데 군대에 가보니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 해내는 편이었다. 사격, 수류탄 던지기, 전투수영 등 생전 처음 하는 일을 내가 잘하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자대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단연 A급 사병이 돼 있었다. 여단 본부에서 나를 빼가려 하고 대대에서는 붙잡아 두려는 줄당기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들 나보고 군대 체질, 공수부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고 농담을 했다.
1공수여단은 육군본부 직할이고 서울의 위수부대였다. 모든 장병에게 폭동진압봉을 기본 장비로 지급했다. 총에 착검까지 한 상태로 대열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구령에 맞춰 일제히 ‘찔러 총’ 동작을 하는 폭동진압 훈련은 보기에도 섬뜩했다.
그래도 내가 복무할 동안은 훈련만 했을 뿐 실제로 폭동진압에 출동한 일은 없었다. 제대 후 부마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내가 근무하던 1공수여단 3대대가 부산에 투입됐다. 내 조수였던 후임병도 그때 부산에 왔다. 광주항쟁 때는 다른 공수여단이 진압군으로 투입됐다. 폭동진압은 아니지만 12·12 군사 쿠데타 때는 정병주 사령관에게 항명하고 반란군 주력부대로 투입되기도 했다. 군복무를 좀 더 늦게 했다면 나도 역사를 거스르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할에 동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첫댓글 모르겠어요, 그들의 생각들???
노무현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그건 제가 압니다. 그를 정치적으로 올린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