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영이란 작가가 있다. 자그마한 키에 통통한 체격. 스물 아홉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앳된 얼굴. 하지만 그는 단 두 편의 장편으로 99년 한국 만화계 최고의 인기작가로 떠올랐다. 한때 그룹 H.O.T를 [핫]으로 읽느냐 [에쵸티]로 읽느냐가 신구세대 가름의 기준이었듯 지금은 천계영의 만화[오디션]이 그렇다. 탁월한 실력을 가진 천재소년들이 밴드를 결성, 오디션을 통해 실력을 겨루는 과정을 그린 음악만화 [오디션]은 요즘 청소년을 묶어주는 새로운 코드다. 4권까지 나온 [오디션]은 신간이 나올때마다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주인공 재활용밴드의 인기는 H.O.T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20~30대 여성들도 천계영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을 몸에 입거나(티셔츠, 바지, 모자 등), 학용품(다이어리, 노트, 필기구)으로사용하고 있고, 집안 곳곳에 인테리어로 장식한다.
이화여대 법대 졸업후 광고회사를 다니던 그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 95년. "상상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해 만화를 선택했다"는 그는 10개월간의 습작시절을 거친다. 처음엔 "실력 없다"는 이유로 만화동호회 가입을 거절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스스로에게 잔인한 성격"이라고 말하듯, 그는 이 기간동안 하루에 15시간 이상 그림연습을 했다. 나중엔 손이 다 망가지고 심지어 마비까지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때 그린 양이 남들 5년간 그린 양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96년 데뷔하면서 그는 한국 만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단편 [탤런트]로 서울문화사 신인공모전에서 대상 당선. 대표적인 만화출판사인 서울문화사 창립이래 공모전 대상 수상자는 천계영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올해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심사를 맡았던 작가 황미나는 "대상은 이 아이를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라고 극찬했다.
97년 첫번째 장편 [언플러그드 보이]는 권당 15만권이 팔려나갔다. 웬만한 인기작도 2만부를 넘기 힘들던 시절. 더우기 대부분의 남성독자가 외면하는 순정만화의 특성상 권당 15만부는 초대형 작가의 탄생을 의미했다. 주인공 현겸이와 지율이는 만화를 벗어나 풍선껌광고, 티셔츠, 쇼핑백, 벽시계, 다이어리 등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주인공 현겸의 "슬플땐 힙합을 춰"라는 대사는 10대의 공통언어가 될 정도였다.
천계영의 두번째 장편 [오디션]은 현재 4권까지 나와있다. 전작 [언플러그드 보이]에서 그 단초를 볼 수 있었던 특유의 패션감각과 매력적인 캐릭터는 더욱 안정됐다. 신간은 나올때마다 판매순위와 대여순위 1위를 휩쓸며 모두 50만권 가까이 팔려나갔고 심지어 만화를 실제상황으로 착각하는 독자도 많았다. 그룹 재활용밴드가 연습용으로 카피하는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퍼머넌트 웨이브]는 천계영이 만들어낸 가상의 밴드였지만, 독자들은 방송국 라디오 프로에 [퍼머넌트 웨이브]의 음악을 신청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잡지 [윙크]에 연재중인 [오디션]은 연재작가의 작품을 돌아가면서 표지로 하는 관례를 깨고 4호 연속표지모델로 등장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천계영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그동안의 순정만화는 점잖을 빼기도 하고 우중충한 구석도 사실 많았다. 하지만 천계영은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빼어난 스타일 감각으로 이끌어 가는 재주를 가졌다. 만화가 대중문화임을 고려할 때 그의 신세대 분석은 탁월하다."
12권 분량으로 [오디션]을 끝낼 2001년이면, 그는 미국 뉴욕 드로잉 스쿨로 1년정도 미술공부를 하러 떠날 계획이다. 귀국후엔 그림체와 캐릭터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그를 "서태지라기 보다는 H.O.T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른을 훌쩍 넘기게 될 그 때쯤이면 "신세대를 넘어 기성세대까지 끌어안을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이미 자료수집에 들어간 새 작품의 제목은 [사마리아]. 인간 영혼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겠다는 포부다. 요즘도 하루 14시간씩 꼼짝 않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좌우명은 "작품은 작가만큼 나온다"는 것. 혹자는 그를 "하루아침에 떠오른 스타"라고 했다. 하지만 그 표현은 사실,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까지의 노력에 대한 의도적 폄하일 뿐이다.
<글=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사진=이응종기자 wjlee@chosun.com >
[21세기 문화스타] 은둔의 만화가 천계영
그는 [은둔의 만화가]다. 밀려드는 방송출연 섭외나 인터뷰요청을 사양하며 경기도 평촌 화실에서 두문불출 작업에만 열중한다. 핸드폰은 물론 없고 집안의 전화코드도 필요할 때만 꼽는다. 그런 그가 4일 오후 문화관광부에 모습을 내밀었다.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을 위해서였다. 두달만의 첫 외출이란다.
"기본적으로 동시에 두가지 일을 못하는 성격입니다. 만화 그리는 것 말고는 할줄 아는게 없는 숙맥이죠."
하지만 그의 완벽주의는 유명한 얘기다. 외출을 안하는 이유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바로 그림에 표현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얻는다. 올 봄 이사한 뒤로는 집에 찾아간 적도 없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만드는게 유행인 홈페이지가 그는 아직 없다. 사실은 몇 년째 개통을 늦추고 있다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 인터넷에 올릴 계획. 최근 번역이 끝났지만 마음에 안들어 폐기했다. 사실 이날 외출에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일본인 문화평론가 스즈키 에미를 만나는 것. 새로 번역을 하기로 한 사람이다. 그리고 [컴백홈] 등 몇몇 단편을 먼저 번역한 뒤 올 연말쯤 홈페이지를 개통하겠다고 했다.
그의 장기목표는 제대로 된 작품을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대접받던 만화를 문화의 한 쟝르로 인정받으려면 작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캐나다의 대형 서점에 갔을 때였습니다. 일본 만화들이 영어로 번역돼 수백권 이상 꽂혀 있더군요. 하지만 우리 만화는 한권도 없어 너무 섭섭했어요. 빠른 시간내에 우리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 책꽂이에 꽂혀 있게 할 겁니다."
<어수웅기자 > |
첫댓글 이분 글 읽고 자극을 많이 받았군요. 하루 14시간의 작업...나도 도전해보고 싶더군요. 그런데 카페에 소모되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았죠. 그래서 좀 고민 중입니다...^^
어제는 이문열과 함께 이 작가가 많은 자극을 줬네요. 이문열에 대한 많은 글, 문학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참고 바라지요.
저도 시에 몰입 할때는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서 앉은 채로 두 끼 먹고 소변을 보러 가기도 방해 되어서, 배설이 없었으면 하고 바랬지요.그렇게 몰두 하고 싶은데..,요즘 일 하느라고,병행 못해요.주변의반대 때문에...,피카소도 하루에 14시간을 그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