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의 춘사(春事)/김백겸
꽃의 서시가 누에나방의 눈썹 같은 아미를 펴고 석류이빨을 드러내 웃는다
꽃의 서시가 침향과 사향의 침상에서 검은 눈동자로 나비의 영혼인 오왕 부차를 쳐다본다
꽃의 서시가 금강의 푸른 물로 목욕을 하고 노을의 붉은 립스틱을 바른다
꽃의 서시가 삼백 육십 개 뼈마디에 비단 가죽옷을 입고 나비의 영혼인 오왕 부차를 유혹한다
청사초롱이 켜진 밤은 용연향의 냄새처럼 깊어지고 운명의 욕망은 더욱 단단해진다
나비인 오왕 부차의 침샘이 꽃의 자궁에 숨겨진 화밀花蜜을 맛본다
아득하여라
월하노인의 청실과 홍실은 강철 칼로도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기이한 인연을 또 묶어서
세월의 한 매듭을 만들어 내는구나
나비인 오왕 부차의 무의식은 서시의 몸을 통해 나라가 불타는 운명을 읽지만
나비인 오왕 부차의 의식은 경국지색이 울타리의 월계꽃처럼 핀 봄날을 본다
나비인 오왕 부차의 무의식은 해골이 웃는 시간의 무덤과 지하왕궁에 있지만
나비인 오왕 부차의 의식은 운우의 가뿐 숨소리와 살 냄새가 퍼진 봄날에 있다
무굴제국의 황제 사쟈한이 왕비 뭄타즈마할을 위해 지은 타지마할처럼
죽음을 넘어가는 정욕은 세월의 기념비처럼 빛난다
소녀와 노랑나비/한영수
아리랑
장독대
봉숭아
넙데기 할머니가 기억하는 모국어
열다섯 이었다
비행장에서 일했다
헌병이 큰 칼 차고
끌어가기 전까진
착, 착, 착, 군화소리
지금도 들려, 해방은
더이상 일본 군인이 오지 않는 것
소녀가 앉아 운다
노랑나비 온다
날아가지 않는 나비
나비 나비....
나비를 나비라고 말할 줄도 모른다
초월 나비/함성호
어제 나는 부채를 잃어버렸다
남쪽 하늘에서 새로운 별자리가 떠오르는 저녁
한가위에는 햅쌀을 팔아서 첩을 샀다네
눈매가 서늘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놀기에 좋았던 여자
단오에는 그 여자를 팔아서 부채를 샀지
깨끗한 손으로 눈꼽을 떼어주던
(부끄러웠지만)여자의 손길이 시원한 바람으로 불어와 참 좋았지
그 부채를 잃어버렸다
마지막 잔은 그냥 두어야 했다
기어이
별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돛을
펼치고야 말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어리석었나)
나는 유리배를 타고 은하수를 흘러가네
―꽃피고 새잎 나는 어여쁜 날에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데려가 주오―
性을 알 수없는 작고 늙은 꽃들이
쭈그리고 앉아 부르는
마지막 노래의 아름다움을 나는 보았지
(누가 들어줄까?)
나는 유리배를 타고 은하수를 흘러가네
소용돌이치는 성단을 지나 모든 빛들의 무덤으로
흰 버드나무가 백발을 감는 어느 별의 강가에서
잠시 해진 신을 벗어 지친 발을 씻기도 했지
그 강물에 비친 옛이야기처럼
비행기가 야간등을 켜고 염소자리를 지나고 있다
문득―,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한다
한가위에는 뭐든 팔아서 첩을 사고
단오에는 사랑하는 여자를 팔아서 부채를 샀지
변죽이 딱 스물 한 마디로 마음에 들었다네
그 부채를 잃어버렸다
나는 유리배 작은 유리배를 타고
가장 흉한 꿈들이 버려진 별의 무덤을 찾아
무서운 여울과 중력의 파랑을 건너
방금 우연과 필멸을 지나왔다
그때 사수자리에서는 천진하게 별이 지고
나는 그것이 내 운명인 줄도 모르고 소원을 빌었지
얼마나 어리석었나
그런 날이면 차가운 유리바닥에 누워 잠을 밀어낸 적도 있었지
초월 나비
나는 나비
어두운 밤하늘을
떼지어 오르락내리락 나는 나비들
어떤 음도 붙일 수가 없고, 따라갈 수도 없어서
팔랑거리는 춤은 신비음에 맞춰 날아가네
누가 들어줄까?
몸을 잃었으니―고래고기는 이제 먹지 않으려구요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면 오늘을 떠올리며 너를 알아볼 수 있을까?
나비의 날개로 만든 돛이 우수수 지며
흩어져 날아가버리네
나는 유리배를 타고 은하수를 흘러가네
피곤한 발을 씻었던 강은 이제 찾을 수가 없겠지
나비의 흐름을 헤치며 향유고래가 유영하는
이 어둠에서는
사랑했던 사람도
기억나지 않는 고백도
필사적이었던 변명도
밖은 없고 안만 있는 어둠에 와 있다
먼 옛날 한 번 들었던 고래의 울음을 좇아
졸면서 바다를 건너는 어부를 만났지
나는 어제 부채를 잃었어요
그의 꿈을 열고 들어가 들려주었지
초월 나비의 기억과
내 유리배의 상처를
꿈(蒙) 아니면 없었던 일이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잘 감춰둔 기억
그래서 아무도 찾을 수 없고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초월 나비의 기억
그런 일은
얼마나 어리석었나
겨울, 나비/진 란
어디로 갔을까 그 많은 나비들
겨울을 어쩌고 봄 오면 너훌거리며
날아오는 것일까
둥근 꿈으로 고치를 짓고 동면하는 것인가?
수없이 보던 자연 다큐멘타리나
아이들 자연백과사전에서는 잘 알 것 같은데
이 사소한 곳에서 막막해지다니
나비가 순간 동안거에 드는 것일까
햇살 고른 마루에서 꿈을 꾸는 것일까
이웃집 나비가 니야웅 하품을 한다
그 나비가 환한 봄날에
나비를 희롱하는 꿈을 꾸는 것인지
꿈의 그 나비가 고양이 등으로 들어가버린 것인지
사라졌다
그리고 또 나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다 어디로 가버리고
문득, 나비/최연수
설레는 햇살 한 짐을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나는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사뿐, 열차 선 밖으로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 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 차표 한 장을 들고
막 여름을 향해 들어서는 백모란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나비의 부활/이창수
도시의 옥상 작은 텃밭에 채소 나뭇잎들의
구멍이 송송 뚫렸다
이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애벌레들의 잔칫상이 되었다
건드리면 꼬무락거리지도 않고 이파리에
딱 달라붙어 죽는 시늉을 하고 있다
비바람이 손톱을 세워
할퀴어대도 바람의 손아귀를 벗어나
성충이 되기까지 홀로 시련을 헤쳐 나가며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한 그의 변신은 위대한 부활이다
자신의 생명에 목덜미를 죌 때, 수렁 같은
잠이 들어 무의식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환생幻生의 알집을 짜고 시간의
자궁 속에서 태어날 낯선 형상을 맛보고
자유와 용기와 삶의 기쁨을 퍼질러 낳고
꿈의 날개를 퍼덕이며 고혹한 신천지를 찾아
날아들 것이다
나비 효과는 없다/진 란
오늘 난, 나비와 접신을 하고 광장으로 간다
구겨진 춤과 음표를 끌고 광장으로 간다
꽃도 풀도 나무도 죽어버린 곳에서 너훌너훌 나비는
완고한 차벽이 겹겹이 쌓인 틈과 사이를 흘러서 간다
푸른 낙타의 발자국
붉은 달의 발자국
은빛 사막여우의 발자국
노란 나비 떼의 발자국
지구별 여행자의 땀에 밴 배후가 지워지기 전에
때늦은 꽃샘이 심술을 부리기 전에
까닭 없는 오아시스, 너희의 신기루가 아니길
환한 햇살의 금가루로 날리는 사월의 소풍과 가라앉은 세월
냉랭한 물대포에 날아가는 맨발의 어미들
등 푸른 목어가 되어 문 열라고 문을 열라고
제발 문을 열고 이야기 좀 하자고 제 속 두드리는 아비들
금요일엔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금요일이 수백 번
기억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삼백육십오일
그네의 차도르에 앉은 가벼운 비명들이다
광장의 모서리에서 아무라도 끌어안고 싶은 실오라기
그 대오에 캡사이신이 뿌려진다
노랑나비 떼들의 함성과 희어진 날갯짓이 벽 안에서 절명한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는 나비 그래 방관자
그냥 본다, 밭은 눈물의 소금기둥을
나비의 눈/안도현
산초나무 가지 사이에
알을 슬어놓고 간
나비는
궁금했나?
숨겨둔 알이 잘 있나
몇차례 싸락눈으로
싸드락싸드락 왔다간다
싸락눈으로 와서
가만히 울다
산초나무 손목 적셔놓고
간다
알 속에 든
나비의 어린 눈도
보고 있겠지?
산초나무 잎 틔우고 나면
자로 재보아야 할
허공의 폭,
허공의 깊이,
보고 있겠지?
나, 술 취해 잠든 사이
이불 덮어주고 간
나비화석/이정희
강물에도 속 길이 있음을 보네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노래 한 소절 부를 만큼의 거리인데
그곳에 닿기까지
수십만 년이 걸렸네
함께 돌 다듬던
석장리 움집 앞에서
그대 선한 눈빛 그리네
다녀오리다, 건네던 푸른 목소리
물안개를 걷고 허물어졌네
화석처럼 박힌 얼굴
피라미로 퍼뜩, 튀어 올라
물결 없는 일상을 불현듯 깨우네
강둑 흐드러진 망초꽃 위로
하얀 나비 떼 위태롭게 날고 있네
접는 연습만 수십만 년
접어도 접어도
다시 펼쳐지는
그대 너무 먼 그림자
나비잠/금시아
백일 된 아기의 나비잠
꽃밭을 꿈꾸고 있을까
아직 몽우리 진 옹알이들 피고 있을까
출근 길 건널목에 잠들어 있는
한 치의 미동도 없는 나비잠을 본다
옹알이도 칭얼거림도 없는
하얀 스프레이로 그려진 요람 속의 말랑거리는 잠
어떤 세상의 꿈을 꾸기에 저토록 고요할까
잠은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를
나비의 비행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그렇지, 봄이긴 해도
길 한 복판에 두 팔을 펼치고 잠든 잠이라니,
흰색의 뼈 속에 붉은 심장이라니,
봄비 한두 방울 떨어지는데
차량들 질주하는데
붉은 등과 초록 불 사이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나비잠
저 잠은 허리 한 번 펴 보지 못했던
어느 새우잠의 분신은 아닐까
잠의 전족을 수습하는 신호등은 자꾸만 조급하다
소요의 뒤끝은 늘 조용하다
아주 영영 늦어 출퇴근이 없는 하얀 나비 한 마리
별 차도가 없는 며칠이 지나면
나비는 어느 곳으로든 태연히 날아 갈 것이다
두 팔을 펼치고 꿈을 꿀까, 말짱할까,
자꾸 흐려지는 저 투명한 잠의 낌새를 캐묻듯
꼭 움켜쥔 아기의 손가락 속에서
나비잠은 날아갈듯 말 듯 나풀거린다.
나비/이화은
저 가벼운 터치를
시라고 말해도 되나
저 단순한 반복을
시라고 말해도 되나
저 현란한 수사를
시라고 말해도 되나
허공을 즈려밟는 위험한 스텝을
꽃에 얽힌 지루한 염문을
한 번쯤
하루쯤
한 生쯤은 몸을 바꾸고 싶은
저 미친 외출을 시라고, 시인이라고 말해도 되나
조묵단전(傳)-나비를 업다/문인수
나 혼자 산소엘 와 넙죽 엎드리는데
잔디를 짚는 손등에 웬 보랏빛 알락나비 한 마리 날아와 살짝 붙는다, 금세 날아간다. 어,
어머니?
……
다만 저 한 잎 우화, 저리 사뿐 펴내느라 그렇듯
한평생 나부대며 고단하게 사셨나.
절을 다 마치고 한참 동안 앉아 사방 기웃기웃 둘러보는데, 없다. 산을 내려오는데
참, 너무 가벼워서 무겁다. 등에,
나비 자국이 싹 트며 아픈 것 같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서윤규
어느 해질 무렵의 산책길에서 나는
우리나라 나비 중 가장 긴 이름을 가졌다는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를 만났다
키 작은 꽃대 위에 앉아 있는 나비 앞에
나는 숨을 죽이며 두 무릎을 꺾으며
눈 높이를 낮추었다
나비의 날개 속에는 점과 선, 면들이
천만, 백만 분의 일로 축소해 놓은 지도처럼
아주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쩌면 그 누구도 모르는
보물섬으로 가는 비밀지도인지도 몰랐다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할 적마다
나는 마치 꿈을 꾸듯 날갯짓을 하며
비밀지도 끝의 한 점, 섬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무거운 몸을 내려놓고
나비춤을 추며 나비꿈을 꾸었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양 날개 가득
아름다운 별자리들을 촘촘히 박아 넣고 있었다
어느 사이 나비는 날아가고 나는
나비가 남기고 간 짧고도 긴 메시지를
내 마음의 호주머니 안쪽 깊숙이 접어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꽃그늘 아래 머무는 바람처럼 나직이
—네 이름을 불러본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
나비의 꿈/마종기
1
날자.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헤매고 부딪치면서 늙어야지.
(外國은 잠시 여행에 빛나고
이삼년 공부하기 알맞지
십년이 넘으면 外國은
참으로 우습고 황량하구나.)
자주 보는 꿈 속의 나비
우리가 허송한 시간의 날개로
바다를 건너는 나비,
나는 매일 쉬지 않고 날았다.
절망(節望)하지 않고 사는 표정(表情)
절망하지 않고 들리는 음악(音樂).
2
그래서 절망하지 않은 몸으로
비가 오는 날 저녁
한국의 항구(港口)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
낯선 길에 서 있는 목련(木蓮)은
꽃피기 전에 비에 지고
비 맞은 나비가 되어서라도
그 날을 만나고 싶다.
나비 공화국/김지명
너무 많은 꽃들을 스쳐 왔다
들녘이거나 골짜기 어디쯤에서 만난
꽃들의 행방은 모르는 걸로 한다
길 건너 나비가 나를 복사한다
나를 훔쳐 간 눈동자 속
달콤한 입술 달래어 더듬거나
구름판 굴러 땅을 훑고 가는 활개 소리가
비구름의 행보에 나비잠 들 것이다
연두가 녹두 빛으로 빛날 때
둥근 생각으로 별과 달을 돌던 꽃과 나 사이
모난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바람이 물 위를 걸어와 요람을 펼치는 저녁
표정을 지운 표본실에 눕는다
봄여름 구겨 넣은 날개의 고정 핀이 위태롭다
장다리꽃 울타리를 고양이 울음 따라 넘었는데
외줄 거미 그네를 타고
맑은 하늘 흐르는 구름에 앉았는데
하수의 둔치에서 파닥거리던
행려의 명함
내 잔상을 건너온 당신을 인화한다
말투를 따라하고
취향에 굳이 동의하고
후생으로 목걸이까지 목에 건
꿈꾼다는 말
남의 꿈을 빌리러 간다는 말이다
꿈 밖 누구에게 근사한 모자 씌어 주고
몽생과 몽사 사이를 날아가는
-나비의 금홍 탐방/임재정-
해 뜨고 꽃 피고 나비 나는 치마폭을 펼치고 그네가 화장을 한다. 날아오르는 환한 분가루 속, 거울 뒷면 여닫이를 열면 작아
지면서 거듭 나타나는 침방들. 그네가 개켜놓은 날개, 나는 수납되어 있을 게, 말하면 그넨 즐거워라 격자문 칸칸을 닫아건다.
주머니 속 주머니 속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는 금홍의 잠꼬대, 어린 흉금이 쏟아진다. 장탄식이 일렁이는 골방. 그네의 지친
등짝에 힘줄을 걸고 농현(弄鉉)과 탄금의 시간을 건넌다. 촛불이 흔들린다. 그림자가 켜지고 꺼진다. 문갑 속 밤과 낮과 층층
첩첩의 언저리가 붉으락푸르락 물들어간다.
숨 쉴 때마다 좀약냄새 아뜩한 봄여름가을겨울이 순서랄 것 없이 쏟아진다. 징검징검 그네가 걸어드는 나는 내장이 쓸려날
까 똥구멍에 힘주며 애 끓이다가도, 풍성한 앞섶을 펼쳐놓고 하염없이 들썩이는 그넨 매번 다른 방 다른 꽃밭으로 봉긋해져
서, 얏-호, 그렁그렁 눈물들이 뛰어내리고. 코 박고 홍금홍금 기어간 나를 늑골 어디에 브로치로 꽂고 달아오르는 그네의 잠.
나비였을까, 전생은. 음식은 쓰기만 하고 꽃이었을까, 금홍은 달달하기만 해서 붉은 눈동자를 끌고 거듭 날아오르는 나비,
나는. 금홍아, 간절히 되뇔 때마다 격자문 가득 해 뜨고 꽃이 핀다. 금분은분 천일이 날개 가득 가루난다.
마당 밖 배나무 밭엔 뒤꿈치를 든 여우비와 태양이 쫓고 숨고 달아나고. 미간엔 내내 금홍의 방 한 칸.
[돌샘 이길옥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