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 요 1:49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오늘부터 요한복음을 주제별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가장 쉬운 복음서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복음서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첫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이 유일합니다(현대인 신약개론, 197쪽).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굿뉴스, 192쪽). 요즘 위드(with, 함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위드는 교제를 통한 일체 됨을 시사하는 단어입니다(IVP 성경주석, 1,410쪽). 말씀은 시간상으로 태초에 계셨으며, 공간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BCBC, 55쪽). ‘하나님과 함께하셨고’라는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무디주석, 1,821쪽).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다는 요한복음 8장 58절과 이사야가 주의 영광을 보리라고 예언한 요한복음 12장 41절과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는 요한복음 17장 5절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신약개론 요람 십자가 왕관, 395쪽).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구절은 1장 1절에서 시작해 1장 18절과 20장 28절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로이 죽, 신약성경신학, 271쪽). 의심하던 도마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에서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해코지할까 두려워서 다락방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절 저녁에 다락방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외출하고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했고 도마는 유령을 봤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은 8일째 되는 날, 유대인들의 문화로는 그날도 세기에 주일부터 다음 주일은 8일이 됩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주일에 다시 다락방으로 찾아오셨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예수님의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옆구리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하셨다고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부활하신 몸을 입증하셨습니다(마지막 일주일, 245쪽).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의 몸도 육의 몸도 있으십니다. 도마는 그제야 예수님을 ‘주님(퀴리오스, κυριος)’이자 ‘하나님(테오스, θεοs)’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도마의 고백은 요한복음의 절정(Highlight) 입니다(굿뉴스, 233쪽). 요한복음 1장 1절과 18절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데, 20장 28절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처음에도 끝에도 인클루지오(inclusio, 수미쌍관) 기법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도마가 의심했다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듯이, 모든 독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길 바라고 있습니다(ESV 스터디, 2,110쪽).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란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IVP 성경주석, 1,466쪽). 요한은 서론에 나왔던 예수님의 신성을 반복하고 있습니다(요1:1,14,18). 예수님은 하나님이란 도마의 말에 긍정하셨으며, 성경을 통해 믿을 미래의 교인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20:29, 무디주석, 1,889쪽). 유대인들은 유일신론(唯一神論)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별도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구별되면서도 일치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십니다(요한의 신학, 78쪽).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둘째,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비견될 만큼 위대한 사건이라고 말씀합니다(신약개론 요람 십자가 왕관, 395쪽).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하시매’라는 헬라어로 스케노오’(σκηνόω)인데, 구체적으로는 성막을 쳤다는 의미입니다(성경신학개론, 374쪽). 문자적으로는 ‘천막 안에 살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머무르셨던 것처럼(출40:34), 예수님이 육신의 장막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땅에 머무셨다는 의미입니다(굿뉴스, 193쪽)./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하시는 요한복음 4장 6~7절과 눈물을 흘리시는 요한복음 11장 33~35절과 목마르다 하신 요한복음 19장 28절도 예수님이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아담의 후손과 똑같은 사람이시라고 말씀합니다(신약성경신학, 276쪽).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셋째,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이튿날도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36절에서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 때 성령님이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신 사람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ESV 스터디, 2,056쪽).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죽음을 면제받았듯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기에 요한복음 8장 24절과 34절에서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넷째, 이스라엘의 임금인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안드레는 원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굿뉴스, 194쪽).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자, 안드레는 요한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요1:40). 안드레는 형인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도했습니다(요1:42). 이튿날 예수님은 안드레와 같은 동네 사람인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3).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라고 전도했습니다(요1:45). 빌립이 ‘우리’라고 말한 사람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자신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요1:46).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라는 표현은 유대인 관점에서 나사렛에는 로마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부정한 지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메시야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부모님이 만삭이 된 몸을 이끌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LABC, 72쪽).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일단 ‘와서 보라.’라며 예수님에게 데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요1:47). 나다나엘은 예수님에게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물었고,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8).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직접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 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지식으로 보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을 보지 않고도 자기의 행동을 알고 계신 예수님을 요한복음 1장 49절에서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랍비’라고도 불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렀고,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랍비는 선생님이고,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임금은 메시야라는 뜻이었습니다(굿뉴스, 195쪽). 이스라엘의 임금은 예수님이 다윗 왕의 왕권을 상속한 분이자 계승한 분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신약성경신학, 287쪽).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나온다고 예언하고 있잖아요. 이스라엘의 임금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부른 호칭이었습니다(ESV 스터디, 2,057쪽).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부른 구절은, 마태복음 27장 42절과 마가복음 15장 32절과 요한복음 1장 49절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환영한 12장 13절을 합해 총 4번 나옵니다(굿뉴스, 195쪽, ESV 스터디, 2,057쪽).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구별되지만 일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다윗 왕권을 계승한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이끌린 사람만 믿을 수 있으며(요6:44), 위로부터 난 사람이 믿을 수 있고(요3:3,5)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12, 앨런 컬페퍼, 요한복음 요한서신, 31쪽).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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