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고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행20:13)
비전의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밀월(蜜月)의 사람입니다. 즉 아무리 바쁘고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없이는 비전의 여정을 완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비전의 사람은 항상 무슨 시간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과의 일대일 교제입니다. 수많은 비전의 사람들이 그리 했고,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창24:63 상)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또 예수님이 그리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3)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5:16)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눅22:39)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비전의 사람 바울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그 역시 아무리 바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도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주님과의 밀월을 가지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무엇입니까?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도보로 혼자 걸었던 사건입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고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13절)
사실 그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배로 편하게 갈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고 가니...”(13절 상)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주님과 교제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육로로 약 30km 가량 되는 거리로써, 하루 종일 걸어야 이를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루 중 얼마동안 하나님과의 밀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정기적으로 기도시간 내지는 말씀 묵상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비전의 성공적인 완수는 하나님과의 밀월 시간에 비례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즉 얼마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며, 비전의 여정 완주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