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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엽기사진실 스크랩 [펌]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순수승부사 추천 0 조회 1,743 11.04.11 08:30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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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4.11 08:52

    첫댓글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뭔가 특별한 사연을 기대해보았는데 반전은 없군요. ㅎㅎ 그나저나 순수승부사님은 국사관련 전공자신가요? 댓글이나 게시물 보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거 같길래...

  • 작성자 11.04.11 09:13

    아니요.하도 대한민국 까는 사람이 많아서 관심이 생긴거에요.

  • 11.04.11 09:00

    좋은글 너무 잘보고감니다 ㅎ 감사함니다

  • 11.04.11 09:42

    일단 글 잘 읽었구요/ 좋은 마음에서 지적하나 하자면, 도입부에서 18세기 (1700~1799)라고 썼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19세기(1800~1899)입니다. 즉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시기는 19~20세기 초반 입니다.

  • 11.04.11 10:40

    임진난 이후 약화된 왕권과 세도정치의 문란으로 인해 조선후기는 썩을대로 썩었죠. 양반들의 백성에 대한 수탈과 핍박이 조선이란 문화 선진국을 패망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봅니다.

  • 11.04.11 12:01

    흥선대원군 만큼 과감하게 개혁주도를 한 인물도 조선 역사에는 드물죠. 어쩌면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이 공업화를 통한 발전을 바탕으로 생긴 국력이 몇백년간 썩어있던 조선과는 비교가 될수 없었고 중국또한 정복당했다는게 대원군이 파악하지 못했던 점들인것 같네요. 100년만 일찍 태어났었더라면 조선 역사가 달라질수 있었는데 말이죠...

  • 11.04.11 13:17

    흥선>>>>>>>>>>>>>..고종
    고종이 병신임
    윗글은 고종을 위해 은근히 변명해주는 글

  • 11.04.11 13:50

    음....전 홍선대원군이 경복궁 증건을 선택했을때부터 모든게 꼬였다고 보는데...ㅡㅡ;; 역시 사람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른듯

  • 11.04.11 14:34

    조선은 대원군과 명성황후 민씨 일파와의 권력 다툼때문에 더 빨리 몰락의 길을 가게 된거죠.. 대원군은 외세의 힘을 빌어 자존을 세우기 보다는 조선 스스로가 부강해져서 외세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하길 원했고, 명성황후 민씨일파와 고종은 그건 너무 시간이 걸리니 외세를 잘 끌어들여 서로 견제하게 하면서 국가를 발전시키자는 생각이었죠. 결과론적으로 명성황후쪽 세력이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쪽박을 차버린 형국이지만 힘도 없으면서 마냥 외세에 쇄국으로 저항하기도 힘들었을겁니다.

  • 11.04.11 14:39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당한 사건은 명성황후의 공작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마각을 드러내고 있었고 때마침 터진 동학혁명을 빌미로 명성황후는 일본군을 조선내부로 불러들여 자국의 백성들을 학살하게 만듭니다. 그후 일본군은 청나라군이 조선에서 안나가기 때문에 우리도 안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눌러 앉았고 이게 결국 청일전쟁.. 일본이 승리하고 .. 그다음 러일전쟁, 또 일본이 승리..그뒤 먹히는거죠.. 자국민의 시위를 진압하려고 일본군을 불러들인 명성황후를 저는 매우 안좋게 봅니다.

  • 작성자 11.04.11 15:04

    명성황후가 일본군을 내부로 불러들여 자국의 백성들을 학살하게 만든게 아니라.
    일본이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침략의 구실로 삼은거죠.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조선정부에서 청에 원병을 요청하자 일본이 텐진조약을 구실로 쳐 들어오니까
    정부와 동학농민군 사이에 전주화약을 맺어서 마무리를 짓고 청군과 일본군 철수를 요구했는데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궁정을 침입하여 민씨세력을 제거하고 친일내각을 수립한거죠.
    명성황후가 일본군을 불러들여 백성들을 학살했다는 것은 일본애들이 주로 하는 주장입니다.

  • 작성자 11.04.11 15:20

    명성황후가 청나라의 대원군 납치의 배후가 아니라는 것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 피란일기가 발견된 걸 보면 알 수 있죠.
    임오군란 진압하러 온 청나라는 외교적 해결을 통해 조선에서의 입지도 다지고 일본과의 분쟁도 차단시킬려고 적극적인 중재를 했지만
    대원군이 일본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무력 대결까지 고려하니까 난처한 청나라가 납치를 해 명성황후세력을 재집권시키는 거죠..
    명성황후는 대원군을 없앨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시아버지라서 그러지 못했고 그게 고종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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