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덩어리(with-jin1004@hanmail.net, http://cafe.daum.net/happyshinhwa )님의 소중한 글입니다.
펌설 허락을 해 주신 진주덩어리님께 감사드리구요. 불펌과 표절을 금합니다.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너와 만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바닷가에 다시 또 찾아와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돌아오지 않더라도 난 여기에 서 있겠지
아마 엔진을 켜둔채
========================================================================
어두운 표정의 민우는 컵에 뜨거운 물을 쪼르륵 따랐다.
약봉지를 찌익 뜯어낸 그는 그것들을 들고 침대가에 다가가 앉았다.
"...좀 괜찮아 졌어?"
낮은 목소리로 물은 민우는 폭신한 침대에 이불을 움켜쥐고 누워있는
유미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미의 이마 위엔 찬 물수건이 올려져있었다.
팅팅 부은 눈으로 민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미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 집. 네가 갑자기 기절해서 질질 끌고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한층더 부드러운 억양이
느껴졌다.
유미는 이불자락을 꼭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열기운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랐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런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약한 민우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감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약봉지를 꼬깃꼬깃 구긴 민우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민우 씨!"
방을 나가려던 민우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흘깃 돌렸고
비틀거리며 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하고 있었다.
"저 년이 미쳤나!!"
민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쓰러지려 하는 유미를 냉큼 받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너 아픈데 자꾸 힘쓰면 금방 뒈져."
민우의 험악한 말이 위로 대신 들려왔지만 지금의 유미에겐 그런 험한
말조차 천사의 소리로
들렸다.
몽롱함에 반쯤 풀린 그녀의 눈은 하염없이 민우에게 꽂혀있었고 민우는
얼른 유미를 침대에 던져놓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많이 아픈 모양이군.."
".....민우 씨가 제 이름.. 그렇게 불러준거.. 얼마만예요? 아니..
처음인가?"
유미는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민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지금.. 굉장히 죽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민우 씨, 아까 저한테
결혼하자고 한거.. 맞나요?"
민우는 순간 망설였다.
1. <얘가 요즘 뽕맞더니 돌았나!?!>라며 그냥 프로포즈를 물러버린다.
2. <그래. 사실이야. 너와 결혼하고 싶어.>라며 사나이 한번 뱉은 말
멋지게 지켜보인다.
답은 2번이었다.
순간적으로 생각한 프로포즈는 절대 아니었다.
유미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고.. 무엇보다 이 프로포즈는 혜성을 위한
프로포즈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는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맞아. 아픈데 자꾸 돌아다니면 확 도망가버릴테니까 다 나을때까지
누워있어."
"...네."
유미의 얼굴에 금새 웃음꽃이 피어났고 민우는 도망치듯 그 방을
벗어났다.
쾅!
방문을 세게 닫은 민우는 벽에 기대 스르륵 내려앉았다.
"헉.. 지금 나 너무 느끼했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가 땅을 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낯익은
구둣발이 그의 앞에 멈춰섰다.
"..형!"
선호는 주저앉아있는 민우를 발랑 일으켜세우곤 화사한 얼굴로 물었다.
"반가워, 형! 유미한테 청혼했다며!"
선호에게 붙들려 이리저리 흔들리던 민우가 가는 실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넌 정말 알수없는 캐릭터다. 아무한테도 말한적 없는 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지금 그런거 따질때냐? 축하한다! 결혼식은 언제 할꺼야? 이왕
이렇게 된거, 형 맘 바뀌기 전에 날잡아야지.."
선호에게 잡힌 옷깃을 탁 떨쳐낸 민우는 힘없는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도리도리 손짓을 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
난데없이 들이닥친 집안 행사에 호들갑떨던 선호는 추욱쳐진 형의
어깨와 목소리에 덩달아 풀이 죽고야 말았다.
세상을 다 등진 것같은 민우의 모습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만든
것에 자신도 한몫했으므로
선호의 죄책감도 더 무거워졌다.
미안하다고 속으로 몇번이고 더 되뇌인 선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을 감았다.
여기는 성당. 시간을 알수없는 오후 늦은 시각
열심히 청소를 하던 혜성이 한숨을 내쉬며 피아노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넓은 곳을 나 혼자 다 청소하란 말이었다니.."
혜성은 <청소내기>로 미친듯이 화투를 내리치던 동완과 주변수녀들을
떠올리며 한번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피아노 건반을 또롱또롱 치며 혼자 장난치던 혜성은 구석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고 의자에서 쿠당탕 떨어져버렸다.
"으아갸아아악!!! 누구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존재감없이 숨어있다가 심심할때 고개내미는
남자.
"하이.."
진이였다.
양손에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든 그는 혜성의 청소를 도와주려했는 듯
멋쩍게 웃으며 바닥을 몇번 슥슥 쓸어내는 시늉을 보였다.
옷을 털며 일어난 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렸다.
"스님은 절에 안가고 여기서 뭘 하십니까?"
"절 도피 생활 3일째다. 담배핀거 걸려서 지금 들어가면 아버지한테
생매장당해.."
혜성에게 뽀르르 굴러간 진은 교회 의자에 앉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기가 찬 혜성은 확 발로 차서 쫓아낼까 생각했지만 자신도 심심하던
때라 그냥 냅두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끔찍하게 죽을지 몰라요."
"괜찮아.. 야, 혜성아."
턱을 괴고 혜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은 무언가 문득 떠오른 듯
혜성을 불렀다.
덜컥 놀란 혜성은 청소는 안하고 띵까띵까 놀고 있는 진을 휙
노려보았고 진은 그런 그의 눈빛은 싹 무시하며 궁금한 듯 물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거 같아서 안 물어보려 했는데.. 궁금해서 안되겠다."
"...뭐가요..?"
"너 왜 남자가 수녀가 되있는거야? 신부님 되면 안되는거야?"
순간 열심히 바닥을 쓸던 혜성의 손이 마비된 듯 덜컥 멈췄다.
아무생각 없이 물은 진은 같이 흠짓 놀라며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고
혜성은 로봇움직이듯 어설프게 움직이며 피아노 의자위에 사뿐히 앉았다.
하얗게 질린 혜성은 주변을 휘휘 살피다가 곧 손가락을 입에 대고
소리 죽여 외쳤다(?).
"...조용히 해요!! 누가 들었으면 어쩌려고! 갑자기 나타나서
왠 뜬금없는 질문을!!?!"
"아무도 없어. 뜬금없는 질문도 아니야.. 긍께 빨랑 말해봐."
진의 호기심 어린 눈이 반짝 였고 이도저도 못한 혜성의 당황한
눈초리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손에 흐른 땀을 박박 닦은 혜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올것이 온것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래요. 저 남자예요.
제가 말이죠. 사실은 안이랬거덩요.
욕도 무지 잘하고.. 완전 남자였어요..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네..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건지 아세요?"
"모르니까 질문하지.."
"혜성아. 오늘 시험이지? 잘해라."
"예.."
혜성은 보육원 출신이었다.
어릴적, 부모에게 버려져서 17이 된 지금까지 이 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는 다른 고아들과는 달랐다.
머리도 명석하고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최고가 될때까지 노력하는
성격이라 국내 최고의 명문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잘난 외모탓에 여학생들의 가슴앓이 상대가 되기도 한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 고아가 그렇듯 혜성 역시 가슴속에 어둡고 차가운 본성이
크게 도사리고 있었다.
꼭 성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언제나 그를 짓눌렀고 얼굴도
모르는 부모들은 꿈속에 나타나서 그를 몇번이고 더 버렸다.
그때마다 혜성의 어두운 분노는 더욱더 커져갔고 세상에 대한 불신의
마음 또한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런 그의 칙칙한 성격은 누구도 주변에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성향만 가득한 고교시절을 지내야만 했다.
학교 선생들은 그를 수재라며 떠받들어줘도 고아란 사실을 알고 난 후엔
하나 둘씩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는 혜성이 어른들에게서 더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야, 범생! 평생 공부만 머리에 쳐넣다가 죽을꺼냐? 부모도 없는
자식이 해서 뭘하려고?!"
중간고사를 마친 다음 날, 혜성은 시험의 해방감 속에서 만세를
부르던 교실분위기를 비집고 어김없이 책을 폈다.
그건 분명 튀는 행동이었고 반아이들에게 언제나 눈에 거슬리던
수재에게 트집잡기 좋은 기회였다.
혜성의 책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쳐넣은 놈은 그의 턱을 치켜들곤 피식
비웃었다.
"곱상한 얼굴에 머리 아픈 수학 과학은 안어울려.. 알아들어,
고아자식아?"
"놔, 개새끼야."
그날 혜성은 기절할 정도로 맞았다.
안 그래도 짜증나던 수재 놈이 쓰러지자 반 아이들의 잔악성은
더 깊어져갔고 혜성에게 모두다 떼로 덤빈 것이었다.
다행이 얼마안가 담임이 말렸지만 온 몸이 피와 멍으로 물들은 혜성은
그날 분노에 가득 찬 채 교실을 등지고 나올수 밖에 없었다.
"개새끼들!!! 씨발!! 다들 조져버릴꺼야!!"
운동장 한가운데서 크게 외친 그는 학교 교문을 박차고 나와버렸고
거리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천애 고아인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상처투성이인 그를 보면 모두들 불쾌하게 옆으로 비켜섰고 누구도
그의 마음을 안아주는 이가 없었다.
'씨발.. 개같은 놈들. 씨발..'
혜성은 앞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더이상 갈곳이 없었고 억지로 숨쉬던 것도 그냥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왜 그렇게 욕을 하고 있어?"
하얀 얼굴이 인상깊은 수녀였다.
눈물이 목까지 차오른 혜성은 인자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빛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혜성은 그녀의 검은 치마폭을 감싸쥔채 엉엉 울어버렸다.
"그래서?"
진은 한손으로 턱을 괸채 무뚝뚝하게 물었고 혜성은 자신의 과거이야기에
스스로 푹 빠진 듯 쭉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예요. 그 분과 전..."
혜성의 쓰러져가는 손을 잡아준 그 수녀는 천사며 구원자였다.
마치 열혈청춘 드라마의 감동깊은 한 장면을 보는 듯 싶었으나
그 둘의 실상은 달랐다.
"제길!! 야!! 내가 어제 맡겨둔 빵 먹었지!!!!"
"그래! 먹었다!! 네가 먹으라고 준거 아냐? 성당까지 찾아와서 무슨
짓이야!!"
하얀 얼굴의 미소녀같은 수녀는 지상 최고의 엽기녀였고 그녀를 만나
혜성의 성격도 불같이 화끈해졌다.
둘은 매일 투닥거렸지만 혜성은 날마다 변해가는 자신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연화. 수녀의 이름은 연화였고 그녀 역시 오갈곳 없던 고아였다.
수녀같지 않은 그 수녀는 누구보다 혜성의 마음을 잘 이해하였고
혜성이 기댈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혜성은 연화를 사랑했다.
종교적 갈등에 부딫칠만한 위험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연화역시 혜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연화 때문에 혜성은 날마다 숨을 쉬는 것이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렇게 연화와 1년을, 2년을 정겨운 욕설과 싸움으로 보냈고..
끔찍했던 그 날이 둘의 만남의 완결편이 되었다.
"야, 너 생일이 언제냐?"
"... 그딴게 어딨냐? 우리한테.."
혜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연화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왜 없어!! 수녀님이 안정해주셨냐? 그.. 처음 성당에 들어온
날이라든지.."
"있지만.. 그건 내가 싫어.. 억지로 생일은 정할 필요까진 없어."
"정할 필요 있어. 넌 내 생일에 맞춰. 우린 같은 날 태어난 걸로 하자."
연화는 혜성의 이마를 있는 힘을 다해 팍 치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랄!"
"이야~ 그 연환지 뭔지.. 그 수녀도 한 성격했구먼!! 너같은 애가
또 있었네?"
진은 눈을 똥그렇게 뜨며 웃었고 벌컥 짜증을 낸 혜성은 삿대질을
하며 성질을 부렸다.
"이 사람이!! 저기요! 사람이 말할땐 좀 끊지 말고 잘 들어욧!"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우정★
[퍼옴]해피:
혜성수녀 오늘도 울다 -145-
스위트진☆
추천 0
조회 24
03.09.21 17:2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