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가 얻은 행복.』
함인숙
새벽 3시인데 눈까풀이 가볍다. 곤한 새벽잠에 떨어진 남편이 깰세라 고양이 걸음으로 침구에서 나온다. 언니와 동생 세 자매 부부가 남해안 2박 3일 여행 약속이 있기에 며칠 전부터 행복 수치가 용솟음친다. 김밥을 말기 위해 세시부터 서둘렀다.
치즈김밥 열 줄. 이것저것 넣었더니 굵기가 만만치 않으나 무슨 상관이랴 오색 찬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구름 사이로 살포시 얼굴을 내민 해님이 오늘따라 더 곱게 보인다. 동해에서 출발하여 중앙고속도로와 중부, 경부, 호남 고속도로를 통과하려니 몇 며칠 이어지는 황금연휴라 차량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고 휴게소 마다 아수라장이다.
일곱 시간 소요된다던 첫 목적지인 여수 돌산대교 해상케이블카에 도착해보니 열두 시간이 결렸다. 서울에서 막내아우 내외는 다섯 시간 전에 도착하여 운행 티켓을 구입하고 숙박할 콘도까지 예약 해 놓았다.
긴 가뭄 끝에 꿀 같은 비가 내린다. 모처럼 떠난 여행이라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는 빗줄기지만, 갈증으로 비틀어지는 농작물을 보니 사랑스럽다. 해풍과 동행하는 가랑비는 해상 케이블카에서 맛볼 광경을 베일로 막는데 방방곳곳에서 모여든 행객들은 유리창과 얼굴을 맞대고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돌산공원에서 자산공원까지 케이블카 타는 시간은 십분 내외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나그네들의 구구절절 사투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많은 체험을 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오동도까지 거리는 1km 정도란다. 형부와 제부, 남편 삼 동서는 더 이상 볼거리를 포기한단다, 하기야 빗물이 줄줄 가슴을 타고 내리는데 그럴 만도 하다. 다행히 왕래하는 동백 관광열차가 있었지만, 며칠 전 서울하 프마라톤에 완주한 아우와 매일 만 보 이상을 걷는 바지런한 언니는 군소리 없이 돌직구로 앞장서 이끈다.
섬 전체를 에워싼 동백나무는 꽃송이를 몽땅 낙화시켜서 어쩜 노처녀 딸을 시집보낸 엄마의 마음처럼 시원섭섭한 모습으로 보인다. 수박 겉핥기로 대충 둘러봐도 해 저문 지 한참 된 터라 발도 피곤함에 지친다.
이튿날 일곱 시가 지날 때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 순천 국가 정원과 갈대 습지로 갔다. 33만 육천여 평의 대지에 한국을 비롯한 영국 중국 독일 등 11개국의 정원이 모티브로 조성되어 있었다. 너무나 광범위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정성과 섬세함이 풍겼다. 자연과 예술이 어울려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 느낌, 어쩜 미술과 문학, 문화를 연출한 듯 했다.
특히 생태 보전을 위해 전기에너지를 사용해서 무인 모노레일(스카이큐브)을 운영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같았다. 그 중 한국 정원은 아담한 정자의 지조, 그리고 절개를 뜻하는 대나무, 번영과 장수의 상징이라는 소나무를 주변 경관에 맞게 구성해 놓은 것은 고품격의 멋짐이었다. 금상첨화라 할까?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들이 유혹하는 곳을 때론 외면하며 관람했으나 시간은 비호같이 지났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는 조선시대 읍성인 낙안읍성으로 갔다. 이곳은 군사 방위적인 목적도 있지만, 주민의 보호로 만든 성곽이라 그런지 성내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 체험 장소도 꾸며 놓았다. 내부에는 조선시대나 근, 현대 생활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과 천연염색 전통 의상 전시장도 있었다. 특히,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의 피륙과 삼베의 길쌈하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가 남기신 삼베 홑이불과 보자기, 모시 한복의 보물같은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아담한 초가를 여행객들의 숙박 장소로 대여해 주는 것도 있었는데...., 내부 시설을 현대식으로 꾸며 놓은 점은 좀 아쉬웠다. 성내가 워낙 넓어 몸의 무게도 가누기 힘들 정도였지만, 남해안 볼거리에 매료된 세 자매는 벌교 태백산맥(조정래) 문학관과 현부자 집터를 보고 고흥 녹동항에서 짐을 풀었다.
셋째 날 거금도 생태공원을 거쳐 소록도 한센인 마을로 향했다. 환자들의 생활상을 해설사의 설명으로 참고하며 변산반도 국립공원과 채석강을 둘러보는 것으로 세 자매 부부 여행의 행로를 마감했다. 이박 삼일, 막간을 이용해 모델이 되고 쉴 틈 없이 움직인 탓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고 나니 세 자매의 행복의 수치가 극도에 닿았다. 내년에 갈 곳을 미리 정하고 헤어지려니 그 동안 못다한 조잘댐을 막내아우와 한동안 통화로 해산의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