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안 폰카 산책
몇년 전만 같애도 세월이 유수와 같다느니 화살과 같다느니 하는 옛 어른들의 말이 도무지
실답잖게 들렸었다.
지난 4월중순에 부산에 나들이 했을 때 문득 해운대 달맞이고개가 생각 났다.
일요일이면 차를 몰고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자주 갔던 곳이다.
그 때만해도 약간은 길다 싶은 이름이 제법 낭만스럽고 해운대 앞바다를 내려다 보는
여유로움이 잔잔하게 내 마음을 쉬게 해 주던 코피숖이 있었고...........
좀더 윗쪽에는 "여명의 눈동자"의 인기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추리문학관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해도 그곳이 요즘 같은 북카폐였다는 것을 모르던 때이였다.
택시에서 내렸다.
좀 큰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락을 테마로 하는 콩크리-트 덩어리 건물인 코피숖에
들어가 보았자 최신 인테리어의 파퍼먼스 그 자체다.
달맞이고개라는 이름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에다 해운대 앞바다를 내려다 보는 멋
같은 것은 아예 옛말인성 싶다.
고작 10년도 못된 세월인데 말이다.
온통 상전벽해(桑田碧海)이기보다 차라리 桑田이白灰로 묻힌 꼬락서니다.
그래서 세월이 화살과 같다고 탄식햇든 모양이다.
그당시 내가 살던 부산의 모습은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의 벗꽃나무 말고는 도무지 낯선
풍물뿐이다.
옛을 돌아 보는 애틋한 추억도 가끔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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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삼일로 대로 위에 세워진 낙원동 악기 상가
동창회관에서 바둑 한판 두자는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두시간 남짓 남아 있다.
남는 시간을 고궁이나 공원에 가는 것도 좋지만 얼마 전 부산 달맞이고개에서 식상한 기분을
달랠만한 이벤트가 가 없을까 새각해 보았다.
옳거니~
전철 5호선 3가역 제일 뒷쪽에서 내렸다.
바로 낙원동 낙원떡 저자거리로 나오는 길목이다.
종로통을 기준하여 그나마 가장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낙후된(?) 동네이다.
양팔을 벌리면 이쪽 저쪽이 닿을듯 좁디 좁은 골목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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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악기상가 건물아래를 지나는 3.1로를 기준하여 좌우 전후 500m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지나치는 법정 행정 동(洞)이 자그마치 10개가 넘지만 인사동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가 있는 곳이 관훈동인줄도 모르고 낙원동 떡가개가 견지동인 줄도 모른다.
나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이 동네를 거닐어 본다.
옛날 삼청동 K중학 다닐 때 전차타고 종로 2가에 북쪽으로 걸어 가던 그 시절의 서울 장안의 서민
들의 동리이다.
좁은 쪽문사이로 드나 들던 서울 사람들이 좀 마음 씀씀이 크지 못한 것은 고작 20여평 좁은
집터에 힌칸짜리 문간방에 커 봐야 3~4평짜리 안방에 거처했기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호기심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문 옆에 붙은 번져 퍼진 문패 들여다 보다 보면 문간방에서 도란
거리는 말소리가 새어 나오고 추운 겨울에는 안방에서 들리는 듯한 기침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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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문이 아닌 대문달린 집 정도라면 인사동이나 관훈동 골목 같으면 이미 2~3만원짜리 한정식
집이나 4~5천원짜리 민속 국산 찻집으로 개조 되었을 법한데 이 곳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간간히 식당처럼도 보이지 않는 집 기둥에 우스꽝스런 횟밥이나 비빔밥집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한두 해 지나면 여기도 피막골처럼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른지도 모르고 아니면 인사
동이나 관훈동 같은 먹거리 마을이 될른지도 모를일이다.
3.1로 대로에 나가면 100년을 훌쩍 넘는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이번에 22명이 졸업하고 7명의 신입생이 취학했단다.
가까스로 폐교를 면하고 연기된 학교지만 배후 인가조차 떠나고 장사를 위한 세입자가 있는 이 곳
초등학교가 명맥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 같아 좀 쓸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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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와 담벼락 위로 연록색 은행나무가 열리고 가을을 수 놓을 단풍나무가 푸르다.
60년 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이 담밑을 내가 지금 거닐며 올려다 본다.
경운학교와의 사이에 아람드리 단풍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넉넉히 100년을 지켜 본 두 장정 팔로 안아야 할 만한 단풍나무 속성상 보기 드문 고목이다.
회관에 가기 위해서는 건널목을 지나야한다
맞은 편에 우뚝한 90년 넘은 천도교 본부 건물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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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선생의 어린이날 선포 흔적이 새겨진 표석이 천도교 입구에 있다.
3.1 운동의 효시요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든 자리가 바로 이 곳이련만 90년이 넘은 지금~
자주독립에 대한 절실함을 뼈아프게 여기는 마음이 흐려져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 안고 경내를
돌아 본다.
명동 성당과 지금은 이미 사라졌지만 총독부건물(옛 중앙청) 그리고 이 천도교 본당이 100년 전을
전후하여 독일인이 설계한 현대식 3대 건축물로 기록 되어 있었지만 일제 잔재를 없앤다는 지극히
애국적인 발상으로 구 총독부 건물을 없애버렸다.
총독부 건물을 없애야만 민족정기가 살아 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과거라 할찌라도
역사는 엄연히 제대로 기록 되어 있어야하고 설령 잘못된 과거라 할찌라도 후진을 위하여서는
그 이상 훌륭한 웅변같은 교육이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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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이 한 30분이 남았다.
건너편의 운현궁은 다음으로 미루자
운현궁 정문 바로 앞에 우리들의 마지막 요람인 동기동창회관이 있는 오피스텔이 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지난 가을 이래 몇 달동안 잊고 지나쳤던 옥상으로 올라 보자
이상스러울 정도로 도시 한복판에서 공해에 찌들리고 녹음에 소외된 사람들이 찾아야 할 옥상
녹음 공간을 거의 찾지 않는다.
동창회관을 찾는 연인원 6~7천명의 동문중 여기를 올라 본 친구가 10명이 될까?
여전히 이 곳도 역시 나만이 찾는 조용하고 외로운 나만의공간이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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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산행에서 넉넉한 진달래를 보지 못했다.
마음을 물들여 줄만한 진달래가 이 곳에 있다.
때 맞지 않는 붉은 단풍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콩크리-트 덩어리 위에 독야청청하는 소나무 조차
갓쓰고 자전거 타는 모습 같지만 시들지 않고 늘푸른 모습이 은근히 든든하다.
통로를 돌다 보면 적어도 족히 1,000m를 넘는 산책 길이다.
멀리 남쪽으로 남산 타워가 보이고 동쪽으로 종묘와 창경궁 녹지대~ 북쪽으로는 북촌 한옥마을 넘어
북한산의 장엄한 삼봉이 흐릿한 안개 속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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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보이는 운현궁은 결코 한말 족벌 김씨에게 궁상 떨던 대원궁 이하응의 사저라기에는 도무지 실감이 안들고
남쪽으로 뻗은 3.1대로가 묘하게도 낙원악기상가 밑을 통과하여 빠져 나가니~
길이 잘 못 되었는지 상가 건물이 잘 못 지어 졌는지?
아마도 당시 5,16 군사 정권만이 아는 미스테리인가 싶구나.
카메라 대신 폰카를 휘두르는 가운데 요란스런 진동이 느껴진다.
"시간 다 되었는데 왜 아직 안오냐?"
"어쭈 ㅎㅎ 제법 큰소리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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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가는 길은 5호선이 내 득의의 교통수단이다.
경운동 회관에서 나와 견지동에 들어 선 골목 길 따라 마주친 익선동 지하철 입구는 여전히 3가역 바운더리~
좁은 골목길에 할매 칼국수가 유명하고 골목길 세 갈래는 월급장이의 호연지기를 구가하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릴 가장 편리한 노천 카폐인성싶다.
테이불 하나에 양해 없이 앉자 마자 요란스레 올려 놓는 "처음처럼" 한병에 주문도 하지 않은 돼지 갈비 두대가 올려 진다.
"야! 임마~ 그따위 시언찮은 바둑실력 가지고 나한테 전화하지 말어!"
"야! 너도 나 만큼 늙어 봐라. 나도 너만큼 젊어 봤어 임마. 까불지 마라."
오늘은 이렇게 폰카를 휘두르며 11개동 산책을 종주했다는 기록을 남긴다.
서울의 찬가 / 패티 김
- 글 / 日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