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들이 오랜만에 만난 백마고지역은 현재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는 철도역이다. 한국전쟁 중 철원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당시 치열했던 공방전을 기념하기 위해 역이름으로 명명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북한군과 중공군 약 1만 명, 국군과 연합군 약 3,500명이 전사하였다. 백마고지역 주변에 백마고지 기념탑이 있으며 철원 노동당사도 인근에 있다.
어느새 평화누리길 카페 회원들의 긴 행렬이 역고드름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은 추위와의 전쟁은 없지만 미세먼지가 조금은 아쉽다. 시야에 고대산이 얼굴을 들어낸다. 금강산 가는 길목, 경원선 철도가 끊겨 있는 철도중단점인 연천군 신탄리역에 인접한 고대산(832.1m)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고 등산으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고대산의 유래는 "큰고래" 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보이며 "방고래"(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하고 함)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이라고 한다.
지형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 는 뜻과 의미가 담긴 곳이라 하여 고태(高台)라고도 표기하였다. 고대산은 옛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말미암아 임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목재와 숯을 만드는데도 적합한 곳으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여 신탄막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실질적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이 유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1907년 11월 4일 의병진 150명과 임진강에서 의병들을 토벌하러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 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 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서,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탄천 예전 경원선 교량을 만난다. 경원선은 서울~원산 간 223.7km를 잇는 철도이다. 1899년 6월 17일 국내 철도 용달회사가 철도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 사정으로 착공하지 못하던 중 러, 일전쟁으로 군사상의 필요성을 느낀 일본이 강압적으로 철도부설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이관 받아 경술구치 직후인 1910년 10월 철도 공사에 착공하여 1914년 8월 14일 완공하였다. 차타천 구경원선 교랑은 경원선의 119개소의 교량 중 한 곳이다.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차탄천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휘어져 남쪽으로 흐르는데, 차탄천을 따라 진행하는 경원선 철도는 이곳에서 차탄천을 횡단하는 교량을 통과해 북쪽의 철원 지역과 연결된다. 교량 다리는 철근코크리트 구조이나 외부에 연천과 철원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현무암을 네모나게 다듬어 쌓아 미려하게 마감 처리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의 종점인 경기도에 들어선다. 그리고 일 년 만에 만나는 역고드름이 자라고 있는 폐터널로 다가선다. 경기도 연천구 신서면 고대산 자락에 위치한 페터널에 일제 강점기 시절 용산과 원산을 잇는 공사로 진행되었던 터널이 일본의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탄약 창고로 사용하면서 미군이 폭격을 받게 되었고 그러한 폭격으로 인해 위쪽에 생긴 틈과 톡특한 자연현상이 맛물리면서 역고드름이 생성되어진다. 길이 100m, 폭 10m의 터널 바닥에는 역고드름 수백 개가 솟아올라 있는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가 매우 다양하며,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올 겨울 큰 추위가 없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역고드름을 뒤로 전쟁의 잔상과 자연속에 새겨진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걷다보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중단점이다. 현재 공사로 멈쳐섰지만 지난해까지 이용했던 백마고지역 통근열차는 예전에는 이곳이 철도중단점임을 말해 준다.
신탄리로 들어선다. 예전부터 이 마을은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으며, '새숯막'이라 불렸다. '여지도서'에도 “新炭”이라 적혀 있으며, 철도가 부설된 뒤로는 숯가공이 더욱 번창했다 한다. 또, ‘새숯막’이라는 지명이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 하여 '새술막(新酒幕)'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자로 지명을 옮기는 과정에서 '술' 을 ‘숯(炭)'자로 잘못 표기하였다는 설도 있다.
신탄리 고대산 산촌마을이다. 고대산 산촌마을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여행가기 좋은 우수 산촌생태마을' 10곳 중에 하나다. 고대산산촌생태마을은 고대산의 청정자연과 자연학교 및 별자리 이야기, 미션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한다.
신탄리역이 자리하고 있는 신탄리는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으며, '새숯막'이라 불렸다. '여지도서'에도 “新炭”이라 적혀 있으며, 철도가 부설된 뒤로는 숯가공이 더욱 번창했다 한다. 또, ‘새숯막’이라는 지명이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 하여 '새술막(新酒幕)'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자로 지명을 옮기는 과정에서 '술' 을 ‘숯(炭)'자로 잘못 표기하였다고 전해 온다.
평화누리길 2020년 1월 정기 걷기 모임 행사는 신탄리역 광장에서 오전행사를 끝내고 옥계리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그리고 옥계리 부녀회에서 마련한 점심과 이벤트....
오후 행사가 시작하는 신망리로 향한다.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신망리역은 만나지 못했지만 신망리역은 승무원도 없고, 기차를 기다리는 손님도 없을 정도로 한적한 역이었다. 역사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다. 예술지기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까지 하는 곳이다.
망곡산 등산로 안내판이 마중나온다.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 청화산과 망곡산 구간의 등산로 들머리다. 이 구간의 거리는 약 4.5km정도이며 야산의 소로길을 이용하는데 특히 망곡산에는 사색의 오솔길이라는 자그마한 산책길과 체육공원 정상의 팔각정 등이 조성되어 있어 일상의 상념에서 벗어나기에 부담이 없는 코스이기도 하다.
망곡산은 구한말 고종 황제와 순종 황제가 국상을 당했을 때 관내 유림과 향민들이 이산에 올라와 궁궐이 있는 서울 쪽을 바라보며 시들어만 가는 국운을 애태워하며 통곡하였다하여 망곡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청화산은 고려말의 충신인 이양소 선생이 매일 개성을 향해 예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러한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태종이 청화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평화누리꾼들의 긴 행렬이 등산로를 가득 메우며 걷는다. 청화산, 망곡산 산책로에서 내려다 보는 신망리 풍경 그리고 우리의 산줄기는 볼수록 아름답다. 잠시지만 정맥길을 누비던 옛 모습이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누가 그랬던가? 호젓한 임도의 소나무 숲길 그리고 만나는 자작나무 군락지도 아름답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자작나무는 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이것으로 명함도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다. 그 껍질은 거의 기름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지 않으므로 신라시대의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로 쓴다. 결혼식을 화촉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옛날에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용했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해서 조각재로 많이 쓰이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보 팔만대장경의 일부가 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져서 그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벌레가 먹거나 뒤틀리지 않고 현존하고 있다.
망곡산 임도를 따르던 평화누리길 12코 통일이음길은 옥계리로 내려서기 전 방향을 바꾸어 연천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연천역으로 내려서면서 먼저 길동무들을 마중나온 연천역 급수탑이다. 연천역 내에 있는 옛 급수시설은 2003년 1월 28일 등록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어 한국철도공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1914년 경원선(서울~원산 간) 개통 당시부터 1967년까지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한 2개의 급수탑이다. 각기 원통형과 상자형으로 외관이 다르다. 상자형 급수탑은 콘크리트조로 기단, 몸통, 처마가 구성되어 있으며 줄눈을 이용하여 조적조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출입구 부분에 아치이맛돌을 두었는데 보존 상태가 좋다. 높이 23m의 원통형 급수탑 내부에는 출입구 반대쪽에 계기 조작판이 있으며 3개의 급수관과 기계장치가 있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머리 부분에서 다시 넓어지는 모양이다. 탑 외부에는 6·25전쟁의 흔적인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도 담겨 있다.
오늘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긴 연천, 연천이라는 지명을 보면 다른 지역과는 특이한 느낌이 든다. 눈물 흘릴 연(連)자에 다가 내 천(川)자이다. 이 지명이 생기게 된 것은 고려 진사 이양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조선 태종은 친구 이양소를 조선왕조에 참여 시키려고 무려 다섯 번이나 연천을 찾았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시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 삼고초려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지만 태조 이방원은 오고초려 하였으나 이양소는 고려진사라는 이유로 끝내 응하지 않았다. 이에 태종은 거듭하여 불렀으나 이양소의 거절과 사양에 돌아서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연천을 눈물 흘릴 연에 이 지역이 원래 내가 많다보니 천이라고 하여 연천이라고 하였다 한다
길동무들이 강화나들길에서 잠시 벗어나 평화누리길에서 함께 만들어 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새해 첫 정모걷기를 시작하셨네요
모두들 수고많이하셨습니다
함께하면 늘 즐겁지요. 설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그리고 2월 동행도 한 번쯤 만들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읍니다. 수명산 님.
평화누리길 위에 비쳐지는 길동무님들의 밝은 모습이
가장 돋보이는 순간들이 팀장님의 수고로 인하여
또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듯 싶네요.
감사합니다. 지나고 나니 또 추억이 되는 군요.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훗날 우리들의 걸음거리가 추억이 되겠지요^^*
즐거움이 가득한 길동무팀.
더 즐거운 길나섬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곳에 벨로스 부부가 있지요. 감사합니다^^*
길동무님들과 신나고 가벼운 발걸음이였습니다
많은 행렬중에서 멋진모습들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요. 함께하면 행복하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길동무가 여기저기 사분오열 되기 쉬운데, 많이들 같이 다니셨나 봅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이네요. 그리고 부부팀도 많이 참여를 하셨군요. 제가 아는 것도 길동무에 4팀. 푸른님, 감꽃님, 환경님, 그리고 복돼지님 등. 걸음을 통해서 금슬도 좋아지고, 또한 건강도 챙기고. 일거 양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가 봅니다. 한쪽 분들이 준족이고 배우자의 다른 한분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 이런 정모는 그것을 어느 정도 평균적으로 잡아 줄 수 있는 행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믿고 보는 선생님의 후기와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어제는 몇몇을 빼고는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지난 정모와는 달리 많은 길동무들이 참여 하지 않았더군요. 그래도 많은 부부 팀들이 함께여서 즐거운 동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명산님!
평화누리길 정모의 자세한 후기와 사진들을 즐감하였습니다~
어찌 이리도 상세한 조사를 하셨는지요 ~
수고 많으셨습니다 ~
설 명절 연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
정모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다른 일정이 있었군요. 설 명절 연휴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