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인물 한국사]
황희 정승, 누가 나보고 청백리라고 그랬어?⑤
총신(寵臣) 황희를 지키지 못해 가슴 한 구석에 휭 하니 구멍이 뚫린 세종.
"젠장…황희 그 자식, 받아먹어도 좀 적당히 받아먹을 것이지 이게 뭐냐고,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세종으로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다. 세종 행정부의 중심축인 황희의 부재는 세종에게 있어서는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방금 전에 잘라 버린 황희를 다시 복귀시킬 수도 없는 일. 세종은 여기서 '꼼수'를 쓰게 된다.
"에, 그러니까 이건에 대해서는 전(前) 좌의정 황희랑 상의해서 일처리를 해라. 알았지?"
"저기 전하, 황희는 파직당했는데요?"
"그래서? 파직 당한 사람한테는 의견 물으면 안 되는 거야?"
"그건…아니지만…."
"야, 네들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잖아? 걔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쌩 까냐? 걔가 좀 뒷돈을 밝혀서 그렇지 일 처리 하나는 작살이야. 가서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 거야."
그랬다. 세종은 조정의 대소사를 처리할 때면 '전(前)' 좌의정을 언급하며, 그의 자문을 구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헌부 관리들은 눈을 치켜 뜨게 된다.
"아니, 뇌물수수 혐의로 자른 놈한테 가서 뭘 하자는 거야? 아무리 황희가 좋다고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증거가 없어서 그래. 증거가…저게 솔솔 냄새는 풍기는데,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그러는 거야. 분명 무신년에도 분명 받아 먹었을 텐데…."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그랬겠어? 박유는 또 어떻고?"
세종 10년(1428년) 무신년의 황희는 그야말로 뇌물로 얼룩진 한해였었다. 그해 1월에 첨절제사(僉節制使) 박유가 청각(靑角:바다 녹조식물 중 하나인데, 사슴뿔처럼 생겼다 하여 청각채, 혹은 녹각채라 부르기도 했다) 두어말을 황희에게 건네다 걸려 파직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흘러가는 에피소드로 봐도 되겠다. 진짜 사건이 터진 건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난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역리(驛吏)였던 박용(朴龍)이 인수부 판관 조연(趙憐)과 시비가 붙었다. 조연이 역에 있던 역인을 패는 걸 보고, 박용이 아들과 함께 조연을 두들겨 팼던 것이다.
"이색희가…내가 누군지 알아?"
"누구면 뭐? 이 자식아 난 마 서울에 있는 높은 사람이랑 형 동생하는 사이야. 이거 왜 이래?"
"뭐…누구?"
"누구긴 누구야. 황희 형님이지, 그 형이 나라면 껌벅 죽어!"
"이색희가 어디서 구라를 치고 있어? 너 이 자식 콩밥 좀 먹어봐라."
조연은 박용을 붙잡아 임진현(臨津縣)의 현감에게 넘기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우리 좋게 좋게 갑시다."
"예? 사또! 저놈은 아전 주제에 절 팼습니다. 게다가 황희정승을 판 놈입니다."
"아니…그건 아는데, 나도 저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어서…쟤가 빽이 보통 빽이 아냐."
"…그래서 지금 저놈을 놔줄 겁니까?"
"아니…그건 아니고, 어이 박용! 너 네 빽한테 전해서 편지 한 장 받아와라. 그럼 내가 너 풀어줄게."
"정말입니까?"
"그래."
현감 이근완(李根完)의 말을 들은 박용은 마누라를 시켜 말 한필을 들고 황희에게 들고가게 한다. 물론, 그 말은 황희에게 건넬 뇌물이었다. 황희는 이 말을 받고는 잘 봐달라는 청탁성 편지를 박용의 아내에게 써주게 된다. 당시 박용은 역리라는 신분을 십분 발휘해 말을 키웠고, 이 말들을 뇌물로 보냈던 것이다. 사헌부가 당연히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러나 세종은 이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 자식 말을 어떻게 믿냐? 딱 봐도 구라치게 생겼구만…."
세종의 적극적인 비호와 황희의 눈물어린 호소(억울하다며 사직을 청했다)로 이 사건 역시 유야무야 되었다. 황희의 강력한 요청으로 박용이 의금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언제까지 황희가 뇌물 받아먹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아무리 일을 잘하면 뭐하냐고? 뇌물이라면 환장을 하는데."
"이 참에 아예 조정에서 퇴출시켜 버려야 해."
"퇴출? 지금 잘랐잖아."
"자르면 뭐하냐고, 전하가 심심하면 사람 보내서 의견 구하라고 하잖아. 지가 무슨 플레잉 코치야? 선수로 뛰다가 벤치 가서 코치하고 앉아 있게?"
"그럼 어쩌자고?"
"아예 조정에 발을 못 붙이도록 만들어야지."
"야야, 그게 말이 되냐? 황희라면 껌벅 죽는 게 우리 전한데…몇 달 있다가 다시 복귀할 거야. 두고 봐"
"올 때 오더라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그머니 돌아오는 꼴은 못 보지. 전하가 다시 황희를 부르면…그때는 이판 사판 공사판이야."
사헌부 관리들의 비장한 결의. 과연 그들은 부패관료 황희를 내쫓을 수 있을 것인가…초특급 대하 울트라 사극 '누가 나보고 청백리(淸白吏)라고 그랬어?'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