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제사는 안지네고
돌아가신 제사만 지네겠다고 남편 유택에 가서 고하고
왔는데도 마음에 갈등이 와 불편한 심기를 않고 옆집 언니가 오셨다
슬하에 아들만 셋 다 서울살이다.
이번엔 언니가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자녀들과 합의 자녀들은 어머니 뜻에 따르겠다고
헸지만 며느리 셋 얼굴을 보니 환하게 웃는 것 같이 보여
요것들이 시골 내려올 때마다 불편했구나 싶은 생각에 좋은 마음이 아니더란다.
조상님 시어른 남편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던 옛말
친정어머님은 정성껏 깨끗하게 모셔야 조상에 대한 예라고 목욕하시고 머리에 수건 쓰시고
눈부시게 흰 앞치마 허리 끊을 양 점하게 메시 던 아머니
철없던 시절 광목으로 휘장 친 지청 조석으로 제 상 올리시던 어머니
나는 지청 안이 무서워 마루 끝만 봐도 덜덜 떨렸던 기억이 흐미하다
옛적 세월은 가고. 변천변천. 돈만 있으면 제사음식 주문만 하면 집까지 배달
미리미리 시장 보아다. 생선 손질 나물손질 옛날에는 집에서 술도 담고 떡 엿기름 길러 식혜 등등
지금은 노년에도 건강만 하면 일자리 수익 올릴 수 있는 장사 하다못해 폐지 줍는 것도 돈대는 것이면
가리지 않는다 노년에도 움직어 생활의 여력을 찾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시대에 맞추어가는 것 같다.
왠지 옛적 사고방식에 메어?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내린 결단인데
차례상을 안 차리고? 자기만 애들 힌태 호강받는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하다는 언니에게
세월 따라가는 우리네 " 이번이 처음이라 그래요 ". 갔다 오시면 잘 헸구나 하실 거라 위로해 드리며
나도 그래볼까? 하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다 깔끔하게 늘 하듯 제수를 장만하여
하늘 부지로 솟은 가격에 작은 숫자로 대체한 명절이었다.
"애 나 죽으면 제사 지네지 마라 싹 지워 버려라"
아직은 거이 내 손으로 하는데도 설거지하는 며느리가 미안
가는 손에 수고헀다 봉투하나 주어 보네며 음식은 내가 가져갈 만큼 가져가거라
나는
현명하려 하지만 딸하나 아들하나 이태전부텨 딸은 명절엔 친정 못 내려온다..
시어머님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가시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일가친척이 변변이 없는 우리 집 살림 늘 명절이면 절간 같은 집
나 스님이? 되어 우리 집만의 절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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