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섭리로 본 참부모님의 위상과 가치”라는 교재를 통하여 기독교의 본질은 독생녀 참어머님을 이 땅에 탄생시키고 재림주와 어린양 혼인 찬치를 성사하고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결혼을 못하셨으니 기독교 신도는 어디까지나 “양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있어야 인류는 다시 태어날 수 있고 하늘의 “친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내용을 기독교 신도들에게 전해서 참어머님께 연결하는 것이 우리 축복가정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부족하여 한시가 급한데도 순조롭게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 보다 남에게 본질을 알아달라고 하기전에 나 자신이 참부모님의 귀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축복가정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원리나 참부모님의 말씀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단체에 끌어간 식구는 자신도 모르게 섭리를 방해하는 입장에 서기까지 한다 합니다. 참부모님을 중심으로 몸과 마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왠지 기독교처럼 분파로 나누어져 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천보수련원 이기성 원장님께서 늘 “쇼를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정성을 드려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성을 드린 식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유상 강사님도 “(참어머님께서 지시하신) 일천번 호명기도도 간절한 마음이 없이 그냥 숫자만 세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고 합니다. 즉 형식적인 정성은 정성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과 대화를 나누는데, 남편도 외적 신앙만 열심이 하는 자세를 지적합니다. 일본식구는 (물론 모든 일본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 때문에) 윗사람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려고 하고, 그 지시를 어기면 큰 탕감이라도 올 것 같은 공포심으로 신앙하고 있는 것 같아 합니다. 그래서 단체의 책임자가 하늘과 하나되고 있으면 한 마음이 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얻지만, 책임자가 궤도를 벗어나면 함께 나가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어머님께서 교회 예배인원 3배화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진의(眞意)가 어디에 있는가를 우선 기도를 하여 하늘에 문의해야 정상인데, 그냥 사람을 동원하여 자리를 메웠다 해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나옵니다.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동원으로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뭐 때문에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동원만 하니 피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피곤하니 편하게 원리를 해석하는 단체에 끌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남편의 주장입니다.
참어머님께서 그도록 ‘가정’을 강조하십니다. 가정을 승리하기 위해 우선 개인이 제대로 완성해야 하니 참아버님의 집무실이자 참어머님의 복중(腹中)와 같은 천심원에서 나날이 새롭게 탄생하여 그 기반 위에서 구체적인 전도를 한다면 세상사람들이 자석처럼 따라 붙여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는 새식구를 계속해서 교육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유상 강사님께서 설교로 “이제는 교회전도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믿음의 자녀’의 대한 개념입니다. 교회서 자신의 믿음의 자녀만 챙기는 식구가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나의 믿음의 자녀를 간섭하지 말라.” 라는 발언을 하는 식구도 있다 합니다. 그런 문화를 바꿔서 교회 식구는 모든 새식구를 나의 믿음의 자녀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일본에 있을 때 전도대원으로 나날이 길가에 나서서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전도한 대상자는 교육을 담당하는 식구가 잘 챙겨줘 정식구로 만들어졌습니다. 정성껏 양육하는 후에 교육담당자는 “당신의 믿음의 부모는 첫 인연을 가진 사람(나)이다.” 고 증거해줍니다. 덕분에 나는 모국에서 13명 전도를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교육을 담당했던 식구는 얼마나 사랑의 감소감을 느꼈나 생각합니다. 조직으로 움직이니 자신도 전도를 담당하고 싶겠지, 남의 전도대상자를 키우고 싶겠습니까? 그러다 공적인 장에서 “몇 명 전도를 했어?’라고 책임자가 물어볼 때 그 식구는 부끄럽게 “아직 없다.”고 답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실은 내 것이 네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원래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믿음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연결했다 해서 영계서 만날 수가 있나요? 부모자식 간에서도 서로 그리운 마음이 없으면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부모님께서도 얼마나 전도했나? 고 우리에게 물어보실 때, 숫자를 물어보시는가? 얼마나 남을 사랑했나? 자신의 목숨보다 남을 사랑했나? 는 것을 물어보실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서 얼마나 나를 닮았냐? 라는 것이 참부모님의 진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혹은 전체가 승리하기 위해 선의 경쟁을 해야 함께 성장하니 “얼마나 전도했나?”고 침부모님께서 물어보시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