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흐려서 [김미량]
램프를 켜놓고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램프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 깜짝 놀란다
불을 켜고 마주앉아 먼저 말을 꺼낸다
꿈속은 여름이었고
꿈같은 여름이었고
예쁜 버섯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축축해서
장화를 버렸는데
두고 온 것은 장화뿐인데
눈이 퉁퉁 부었다 나는 어디를 다녀왔을까
버릴 게 많은데
미처 버리지 못한 것들은
귀가 되고
귀고리가 되어 걸리고
머리핀이 되고
커다란 모자가 되어 나를 장식한다
당신은 겨울에 떠난 사람
당신의 무덤은 당신 것
내게 떠민 미처 지우지 못한 기억까지도
살아서 지켜야 하는 나도
엎드려 울고 있는 무덤이다
곁에 당신이 있다고 치자
손이 나타나 가만히 덮어주는 이불
그래, 가만히 덮고 늙어가는 마음
꾸짖는 당신을 놓친
꿈이 흐려서 비가 내린다
-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달아실, 2023
* 겨울밤이 길어서일까, 무슨 꿈을 그리 꾸는지 모르겠다.
깨고나면 명료함이 사라져서 도무지 스토리를 기억할 수 없다.
그냥저냥 꿈은 꾸었는데 흐릿해지는 게 좋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