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봄을 기다리며
春風疑不到天涯(춘풍의부도천애),
봄바람이 하늘 끝 이곳까진 불어오지 않는 듯,
* 天涯(천애) : 하늘 끝. 아득히 떨어진 타향. 당시 구양수는 이릉(夷陵)으로 좌천되었으므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이다.
二月山城未見花(이월산성미견화)。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
* 山城(산성) : 이릉(夷陵)을 말한다. 구양수는 당시 협주 이릉현의 현령이었으며 이릉이 강을 면하고 산을 등졌으므로 산성이라고 한 것이다.
殘雪壓枝猶有桔(잔설압지유유귤),
잔설이 가지를 눌러도 귤은 아직 매달려 있고,
* 桔(귤) : ‘橘’의 속자(俗字).
凍雷驚筍欲抽芽(동뢰경순욕추아)。
겨울 우렛소리에 놀란 듯 죽순이 싹트려 하네.
* 凍雷(동뢰) : 추운 날의 우레.
夜聞歸雁生鄉思(야문귀안생향사),
밤 기러기 소리 들으니 고향 생각 간절하고,
* 鄉思(향사) : 고향 생각.
病入新年感物華(병입신년감물화)。
병든 몸으로 새해 맞으니 만물의 변화가 새록새록하다.
* 感物華(감물화) : 사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物華는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
曾是洛陽花下客(증시락양화하객),
한때는 낙양에서 고운 꽃 즐기던 이 몸,
* 曾是洛陽花下客(증시락양화하객) : 구양수는 1030년부터 1034년까지 낙양에서 유수추관(留守推官)의 직에 있었다.
野芳雖晚不須嗟(야방수만불수차)。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
―‘정원진에게 답하다(답정원진·答丁元珍)’ 구양수(歐陽脩·1007∼1072)
* 元珍(원진) : 정보신(丁寶臣). 자(字)가 원진(元珍)이다. 인종(仁宗) 경우(景祐) 원년(1034) 진사(進士)가 되어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섬현(剡縣)을 다스렸다. 구양수(歐陽脩)와 아주 두터운 교우관계를 맺었다. 당시 협주군사판관(峡州軍事判官)으로 있었다.
✵ 歐陽脩(구양수) : 1007~1072. 字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구양문충공집》등이 있다.
✵ 丁寶臣(정보신) : 1010~1067. 송나라 상주(常州) 진릉(晉陵) 사람. 字는 원진(元珍)이다. 인종(仁宗) 경우(景祐) 원년(1034) 진사(進士)가 되어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섬현(剡縣)을 다스렸다.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옮겨 제기현(諸曁縣)을 다스리면서 폐단을 없애고 산업을 일으켜 월(越) 사람들이 순리(循吏)라 칭송했다. 관직은 비각교리(秘閣校理)와 동지태상례원(同知太常禮院)까지 올랐다. 영종(英宗)이 인물을 논할 때마다 항상 그를 들어 칭찬했다. 구양수(歐陽脩)와 아주 두터운 교우관계를 맺었다.
낙양에서 남쪽 지방 한 고을 수장으로 좌천되어 온 시인, 변화무쌍한 자연의 조화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병든 몸으로 맞는 객지의 새봄, 현실에 대한 낙담과 앞날에 대한 기대가 뒤엉켜 마음이 심란하다. 2월이 되도록 화신(花信)이 없는 건 춘풍이 이곳 벽지까지 넘어오지 않은 탓이려니 싶어 소외감은 더 깊어 간다. 춘풍은 외지로 밀려난 관리가 고대하는 나라님의 훈훈한 은혜. 춘풍이 아예 끊어졌다는 단절감이 엄습할 즈음, 시인은 애써 위안거리를 찾아낸다. 잔설 덮인 가지에 매달린 귤, 추위를 견디고 싹 틔우려는 죽순에서 생기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고 병까지 얻은 몸이지만 지난날의 영화를 생각하면 춘풍은 기어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부푼다. 하니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라던 초조한 기색이 마침내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는 느긋함으로 바뀐다.
연(聯)마다 시인의 감정 기복이 심하다. 소외감에서 출발하더니 한 가닥 희망을 거쳐 다시 타향살이의 쓸쓸함, 그리고 결국은 기대 어린 낙관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다. 스스로 안위를 찾으려는 좌천된 관리의 상실감과 불안이 엿보이는 노래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3월 22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