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리(玉溪里)
옥계리(玉溪里)
①연혁
본래 星州郡 인곡면의 지역으로서 고종 광무 1906년에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릉동을 병합하여 옥계동이라 하여 덕곡면에 편입하고 1988년 5월 1일 洞이 里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②유래
위끼, 옥계(玉溪) : 덕곡면 木里 골짜기. 제일 위쪽 산골마을인데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계곡의 물이 옥같이 맑은 계곡이라 하여 옥계라 하고 또 大伽倻 마지막王 16代 도설지가 신라에 망해 문수산 계곡을 따라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옥띠를 풀었다 하여 옥계라 하고 옥계가 변하여 위끼라고 불리운다.
쐐, 씨애, 소아(蘇野), 무릉동(武陵洞) : 옥계에서 東쪽으로 약 120m 떨어진 마을로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 중국의 武陵桃源(무릉도원)과 같다고 무릉동이라 하고 또 옛날 이곳에 "조"를 많이 심어 차조기소(蘇)자를 써 소야라고도 했는데 음이 변하여 쐐 또는 씨애가 되었다.
모리터, 모리티, 모노현(毛老峴) : 덕곡면 옥계리 본 마을에서 약 3km 산길을 따라 올라 정상 부분의 마을로서 이 마을의 반은 경북 고령 덕곡 옥계리이고, 그 반은 경남 합천군 야로면에 속한다. 이곳에 가려면 재가 깊고 높아 머리털이 희게 변하여야 다달은다 하여 모노현 즉 털이 늙어 변한 고개라 하여 모노현(毛老峴)이라고 하는데 그 음이 변하여 모리터, 모리티가 되었고 또 다른 유래는 한강 정구선생과 래암 정인홍 선생은 퇴계 선생을 퇴계 선생을 함께 찾아가 수학을 원했으나 퇴계선생은 한강 정구선생을 제자로 맞고 래암 정인홍 선생은 맞지 않아 래암은 남명 조식선생을 찾아가 제자가 되어 갈리워졌다. 정구선생이 星州郡守가 되어 옛정을 못잊은 래암선생이 찾아가자 친구의 옛정을 못잊은 한강선생이 술을 금한 國忌日에 술대접을 하자 래암선생이 먹지 않고 돌아가자 國法을 어긴 한강선생이 래암선생의 어머니를 찾아 뵙고 國法을 어긴 것을 아뢰고 용서를 구하니 래암의 어머니가 래암선생을 불러놓고 용서를 구하니 래암이 이르기를 "제놈은 모릅니다"라는 말이 연유가 되어 모리터, 모리티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을 모르고 전자가 가깝지 않나 한다.
첫댓글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다만 설화일 뿐인 것 같습니다. 정한강이 '성주군수가 되'었다는...'래암과 한강이 퇴계를 찿아 갔다'는 부분은 후에 조작된 이야기 인 것 같습니다. 근거가 희박한 설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