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천하를 얻은 신라 여인
1억원 고료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김별아의 《미실》이 출간되었다. 김별아는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소설집 《꿈의 부족》 등을 통해 개인적 체험과 경험적 사실을 허구로 가공하여 보여 주는 글쓰기에서 탈피, 자기를 떠난 소재를 통해 말하기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통해 열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 심화시켜 왔으며 부단한 자기 성찰을 계속해 왔다.
《미실》은 신라의 전성기 때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의 영웅호걸들을 미색으로 녹여 낸 신라 여인 미실을 통해 현대와 같은 성 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묻혀 있던 신비스러운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 한 서사 구조 속에 형상화해 냄으로써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살아있는 귀신
아름다움은 마치 높고 날카로운 삶의 비명과 같다. 아름다운 것들은 처음부터 조용히 자신을 묻고 숨어 살 수 없다. 늠름하게 잘생긴 소나무, 난연하게 활짝 핀 꽃, 깃털이 다채롭고 울음소리 고운 새, 미모의 남녀가 모두 그러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들에게 끌려 축원을 바치고 신명을 찬양함은 배워 익혀 그리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염원하고 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이 그저 받아들이기에 족한 절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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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이 도와주시오. 색을 통하여 황후를 위로하고 삶의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 주시오.」
미실의 말에 세종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펄쩍 뛰었다.
「도,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이 어찌 가당키나 한 일이옵니까?」
미실은 세종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차분차분 설명하여 타이르기 시작했다.
「황후께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을 베풀어 나눌 상대요. 마음 속에 고여 몸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랑이야말로 자기를 해치고 남까지도 상하게 할 치명적인 독소가 될 것이오. 전군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삼생의 벗이 되기로 약속한 사이로, 황후는 나요, 나는 황후이리다. 세상의 모든 여인이 미실이요, 미실은 사랑하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여인과 다르지 않소. 부디 전 군이 내 마음을 헤아려 간곡한 청원을 받아주시길 비나이다.」
세종은 자신이 아무리 거절해도 미실의 청을 거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음은 이미 정해진 숙명이다. 그녀가 지게 가득 갈비를 지고 산화 속에 뛰어들라 하면 그는 반드시 그리했을 것이다. 사로잡힌 이에게 탈출의 길이란 없다. 결딴이 나서 없어지거나, 죽거나, 끝장나거나, 그보다 더 나아질 방도는 없는 것이다.
세종은 결국 미실의 뜻대로 사도황후와 통하여 그녀의 괴로움을 어루만지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정사는 뜻밖에도 격렬했다. 그들이 핥고, 빨고, 깨물고, 더듬는 것은 상대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비루한 생애인 듯하였다. 그들은 몸을 함부로 다루었다. 혀가 따끔거리고 입술이 부르트고 가슴과 등에 뻘건 생채기가 부풀어 돋을 때까지, 그들은 마치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 깊이 즐겼다.
어쩌면 온화하고 진중하고 의로운 행실이 꼭 닮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다투듯 맞붙어 얼키설키 어우러지는 가운데 그들은 가슴속에 손발톱을 옹크리고 숨은 낯선 짐승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을 살리기 위해,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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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 단 소설집 <꿈의 부족>(2002)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1995) <개인적 체험>(1999) <축구전쟁> (2002)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2001) <환상소설첩>(2004) 등이 있음.
물앵두, 사라지다- 미실의 역사
벼랑 끝 꽃을 꺾다- 세종전군과 만남
불모지에 머물다-사다함과 만남
파랑새의 노래-다시 세종전 군
갈망과 재 앙-동륜태자
붉은 연못-진흥왕
몽중설몽-설원 랑과 미생
파 란, 그리고-동륜태 자의 죽음
남 자의 사랑-다시 세 종과 진흥왕
살아 있는 귀신-진 지왕의 폐위
만추(晩秋)-진평왕
사랑의 종언- 설원랑
첫댓글 머물고 갑니다.
즐감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