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중가요 역사 시리즈는 현재 제 블로그인 “JOHN CENA의 WWE 프로레슬링”에서 연재를 진행하고 있으며 각 커뮤니티와 메타 블로그에서도 동시에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가요계의 세대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고착화되었으며, 젊은층이 주도하는 신세대 가요 부문은 다시 대중과 매니아로 양극화 되는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여전히 댄스와 발라드가 대중가요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인디 ROCK 밴드”와 “언더 힙합씬”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매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은 1990년대에 비해서도 더욱 가요계에서 소외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태진아와 송대관, 두 사람은 여전히 “국민가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가운데 박상철, 장윤정, 박현빈 등의 “신세대 트로트가수”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습니다. 한편 90년대 가요계의 빅3로 불렸던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음반시장 자체도 유례가 없을 만큼 침체기였고, 이전 시대와는 달리 특정인의 1인독주 체제가 거의 불가능한 시스템이 정착되다시피 했습니다. CD 판매는 10만~20만장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할 만큼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지만, 그 대신 온라인 음원시장이 새롭게 대두되었습니다. 국내 음반시장은 침체됐지만, “한류열풍”에 힘입어서 해외 진출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졌습니다. 또, 200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스타를 어느 한 팀으로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가장 활약이 돋보였던 스타라면 조성모, 보아(BOA), 비(Rain), 동방신기가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보아(BOA)"는 2000년대 초반 일본 무대에서 오리콘 차트 1위와 함께 연말 “홍백가합전”에 여러 해 동안 출연하면서 최정상급 스타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많은 남성팬의 지지를 받는 동시에 여성팬들에게도 가장 닮고 싶은 스타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활동에 전념하며 “아시아의 대표 스타”로 군림하다가 2008년 이후에는 미국 진출을 통해서 "월드스타“로 거듭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보아(BOA)는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출신 가수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에이스로 꼽히고 있으며, “월드스타” 보아(BOA)와 “아시아의 대표 한류스타” 동방신기는 SM의 간판스타로서 확실한 투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Rain)”는 가수와 탤런트, 영화배우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시아권 전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고, 이에 힘입어서 미국 진출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월드스타”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미국 진출에서는 영화배우로서의 활약에 주력하는 가운데, 국내와 아시아권에서는 가수활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국내 가요계 선배들 중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명성을 떨쳤던 인물들은 1970년대에 가수 겸 영화배우로 왕성한 활약을 펼쳤던 남진과 1980년대에 “한국의 성룡”으로 명성을 떨쳤던 전영록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월드스타”로 떠오른 비(Rain)가 그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비(Rain)는 순수하게 가수로서의 활동만을 놓고 볼 때는 과거의 대선배들에 비해서 활동실적이 다소 미약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배우로서의 활동은 가수활동보다도 훨씬 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월드스타”라는 타이틀 역시 배우로서의 활동으로 이룬 성과에 더 가깝지만, 그의 본업인 가수로서의 활동에도 막대한 홍보효과와 상징성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동방신기는 2000년대 중~후반에 국내 최정상의 아이돌 그룹으로 등극하며 가요계를 석권한 동시에, 일본 무대까지 진출해서 오리콘 차트에서 실적을 올리고, 연말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동방신기는 이미 “제2차 아이돌 전성시대”의 주역으로서 역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꼽히고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과 중국 등지로 뻗어나가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류스타”로서 성장했습니다. 동방신기는 국내 가요계에서도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HOT, GOD의 계보를 잇는 “2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으며, 일본 진출에서는 보아(BOA)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에서 간판스타로 내세운 가수들 중에서도 보아(BOA)와 동방신기는 확실한 투톱을 형성하면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1차 아이돌” 시대가 개막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제2차 아이돌 시대”가 개막된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들은 가요계의 전설로 꼽히는 대선배급 가수들에 비해서 평가절하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애초에 아이돌 그룹들은 수명 자체가 짧고 지지층이 특정 세대와 특정 계층에 편중된 “그들만의 리그”로서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도 “1세대 아이돌”에 비해서 “2세대 아이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방신기만큼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팬덤의 영향력에 힘입어서 국내 가요계를 휩쓸고 일본과 그 외의 아시아 권역에서까지도 그 위력을 떨침으로서, 최소한 아이돌 그룹끼리의 경쟁구도인 “그들만의 리그”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의 국내 가요계의 판도가 “아이돌 전성시대”라 불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요계의 최강자로 등극한 이들은 아이돌 그룹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솔로가수였습니다. 여자 솔로가수 보아(BOA)는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대표 한류스타”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며 국내 가요계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같은 소속사의 후배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보아(BOA)의 발자취를 따라갔을 때 즈음에는 이미 보아(BOA)는 미국으로 활동역역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월드스타”로 지위가 격상되었습니다. 한편 남자 솔로가수인 비(RAIN)는 2000년대 중반에 국내 가요계에서 가수 겸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린 뒤, 2007년 이후로 미국 무대에 도전하면서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월드스타”라는 스포트라이트에는 다소 거품이 있다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보아(BOA)와 비(RAIN)는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가요계에서도 “귀하신 몸”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가수로서의 활약에서는 보아(BOA)가 해외진출 성적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었고, 비(RAIN)는 가수로서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경향이 있지만, 영화배우로서는 톱클래스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국내 가요계에서의 성적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2000년대 가요계에서 가장 눈부신 성적을 올린 톱스타는 단연 조성모였습니다. 조성모는 2000년대 초반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발라드의 황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최전성기였던 2000년에는 두 장의 앨범을 모두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혼자서 음반판매 1, 2위를 독식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통산 음반 판매량에서도 조성모는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에 이어서 통산 1000만장을 돌파하며 역대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일음반 판매 기록에서는 김건모에 이어서 역대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성모가 전성기를 누렸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도 “아이돌 전성시대”였고,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였던 HOT와 GOD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성모는 아이돌 그룹들을 압도하는 전성기를 누리며 1999년과 2000년의 2년에 걸쳐서 연말 가요대상을 싹쓸이하는 등, 2000년대 이후의 국내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습니다.
조성모는 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가요계의 대표주자인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와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내리며 레전드(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조성모에게는 “더블 밀리언셀러”, “마지막 국민가수”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조성모는 “골든디스크 대상”을 3차례나 수상하고 “서울가요대상”, “KBS 가요대상”, “MBC 10대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가수” 등을 휩쓸면서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압도적으로 석권했습니다. 10대~30대까지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조성모는 한때 신승훈과 김건모를 능가하는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후배 가수들과의 경쟁에서도 고전중입니다.
조성모는 1999년에 “새로운 발라드의 황제”로 떠오르면서 기존의 “발라드 황제”였던 신승훈의 비교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2000년 가을에는 조성모의 대표곡인 “아시나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비슷한 시기에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로 컴백하면서 조성모와 서태지의 대결구도가 가요계의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2년간 상승세가 주춤해졌던 조성모는 2003년에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는데, 이때는 김건모와 조성모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1999년과 2000년에 걸친 2년간은 조성모의 전성기가 최대의 절정을 이뤘던 시기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조성모가 독주체제를 형성하는 가운데 1990년대의 톱스타 출신인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태진아, 송대관 등의 선배가수들이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한편,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GOD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20~30대까지 폭넓은 팬층을 형성하며 “국민그룹”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GOD는 2000~2001년 사이에 “GOD 열풍”을 일으키며 한때 조성모의 상승세까지 잠재우고 가요대상을 휩쓸었습니다. 유승준은 조성모, GOD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 연말 가요대상을 놓고 해마다 각축을 벌였습니다. GOD와 라이벌 관계였던 신화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약 10년 가까이 롱런하면서 오랜 생명력을 자랑했습니다. GOD와 신화는 “10년 단위의 연대 구분”에 의할 때는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실질적으로는 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HOT, 젝스키스와 함께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1세대 아이돌”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2세대 아이돌”의 시대가 개막되기 이전까지, 과도기를 형성했던 2000년대 초~중반 무렵에 남녀 솔로가수 부문에서는 비, 휘성, 세븐, 김종국, 보아, 이효리, 장나라, 이수영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2000년대 중반과 후반 들어서는 “제2차 아이돌 전성시대”가 막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동방신기가 유일한 아이돌 그룹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가 점차적으로 SS501, 슈퍼주니어, 빅뱅 등의 라이벌 그룹들이 연이어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의 “제1차 아이돌 시대”에는 HOT, GOD, 젝스키스, 신화, 핑클, SES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제2차 아이돌 시대”에는 동방신기, 빅뱅, SS501,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SG 워너비, 빅뱅, SS501은 동방신기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아이돌 그룹”의 대표주자인 동방신기와 “소몰이 창법”의 대표주자인 SG워너비가 가요계를 양분하는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는 아이돌 그룹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으면서 10년 만에 아이돌 전성시대가 부활했습니다.
처음 데뷔할 무렵에 동방신기의 라이벌로 주목받았던 그룹은 SS501이었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 동방신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며 가요계를 양분한 그룹은 빅뱅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이후의 “제1차 아이돌 시대”와 “제2차 아이돌 시대”의 주역이 되는 그룹들은 각각 비교대상으로 "H.O.T-동방신기”, “GOD-빅뱅”, “젝스키스-SS501", "신화-슈퍼주니어”, “핑클-원더걸스”, “SES-소녀시대”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1세대 아이돌”의 시대에는 H.O.T, GOD, 젝스키스가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 균형을 이룬 반면에 2000년대 중후반의 “2세대 아이돌”의 시대에는 동방신기가 일방적인 독주체제를 형성하는 가운데 빅뱅이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발라드 가수인 조성모가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가요계를 석권했지만, 조성모와 같은 소속사 출신인 발라드 그룹 SG워너비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아이돌 그룹들과 경쟁하다가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났습니다.
“1세대 아이돌”의 시대에는 국내 음반시장 전체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상황에서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HOT와 GOD가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솔로가수인 조성모는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2세대 아이돌”의 시대에는 음반시장이 전체적으로 불황에 빠진상태에서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동방신기가 유일하게 5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경쟁그룹들을 압도했습니다. 국내 음반시장이 불황에 빠진 반면에 일본과 중국, 대만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전역에서의 “한류” 열풍은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특히 일본과 미국 무대를 노크한 솔로가수의 대표주자인 보아(BOA), 비(RAIN)는 아이돌 그룹들보다 더욱 높은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과거와 같은 “국민가수”들이 자취를 감춘 대신에 아이돌 그룹들의 활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2세대 남녀 아이돌 그룹의 대표주자인 동방신기와 원더걸스는 1세대 남녀 아이돌 그룹의 대표주자였던 H.O.T와 핑클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최고의 “한류스타”,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9년 이후에는 “걸그룹 전성시대”의 선봉장으로 떠오른 소녀시대의 상승세가 두드러졌습니다.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H.O.T, GOD, 핑클이 국내 가요계에서의 대중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2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는 해외 진출 성적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남자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와 빅뱅은 2008년까지 국내 가요계를 석권한 뒤 2009년 이후에는 일본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SS501은 국내 가요계와 일본 활동에서 모두 동방신기, 빅뱅에 비해서 큰 격차를 보이며 고전중이지만, SS501의 간판스타인 “꽃남”(F4) 김현중은 남녀 아이돌 그룹을 통틀어서 멤버 개인 자격으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실 1세대와 2세대의 아이돌 그룹들을 통틀어서 HOT, GOD, 동방신기, 빅뱅으로 대표되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의 팬덤이 여자 아이돌 그룹들의 팬덤에 비해서 압도적인 결집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걸그룹 전성시대”라는 수식어가 표현해 주는 것처럼 가요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트렌드에서는 여자 아이돌 그룹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돌 그룹인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걸그룹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원더걸스는 2007년과 2008년에 “텔미”와 “노바디”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핑클 이후로 최고의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 떠올랐습니다. 원더걸스는 2008년에 “서울가요대상”의 대상을 수상하면서, 핑클 이후로 9년 만에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서 가요대상 수상의 영예까지 누렸습니다. 원더걸스는 데뷔 3년차를 맞이한 2009년에는 미국에 진출한 아시아 가수 중에서 최초로 빌보드 메인차트 100위권에 진입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원더걸스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펄 씨스터즈, 핑클의 계보를 잇는 최고의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고, 여자 아이돌 그룹의 역사에서는 핑클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원더걸스가 국내 최고의 여자 아이돌 그룹에서 월드스타로 거듭난 가운데, 라이벌 그룹인 소녀시대는 2009년 가요계의 핫이슈였던 “걸그룹 전성시대”의 선봉장으로 떠올랐습니다. 소녀시대는 2009년과 2010년에 “Gee”, “OH”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서 연말 가요대상을 휩쓸었습니다. 소녀시대는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서 핑클, 원더걸스에 이어서 통산 3번째로 “서울가요대상”의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특히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걸그룹,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연달아서 가요대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한편 핑클 출신의 이효리는 2000년대 들어서 솔로가수로 전향하면서 그룹 시절을 뛰어넘는 전성기를 누렸고, 심지어는 후배 걸그룹인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과도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역대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던 핑클,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성적을 비교할 때, 그룹으로서의 성적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모두 핑클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핑클 출신의 이효리는 역대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솔로가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핑클이라는 그룹 시절의 성적만을 놓고 보더라도 조성모, H.O.T, GOD, 유승준 등의 남자 톱가수들과의 경합을 통해서 따낸 1999년의 가요대상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핑클 이후로 최고의 걸그룹으로 떠오른 원더걸스는 국내 가요계를 석권한 동시에, 미국 진출에서까지 “빌보드 메인차트 TOP 100”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원더걸스가 동방신기, 빅뱅, SS501 등으로 대표되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과의 경합을 통해 따낸 2008년의 가요대상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2009년 이후에는 기존의 “남녀 아이돌 빅3”를 형성했던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가 모두 해외활동에 주력하는 가운데, 국내 가요계에서는 걸그룹인 소녀시대가 독주체제를 형성하는 가운데 남자 아이돌 그룹인 슈퍼주니어, 2PM 등이 뒤를 쫓는 판도를 형성했습니다. 소녀시대는 2009년과 2010년에 연이어서 국내 가요계를 석권한 데 이어서, 일본 진출에서도 오리콘 차트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리는 등, 무서운 상승세로 핑클과 원더걸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국내 가요계에서 “걸그룹 전성시대”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 이어서 각각 미국과 일본 진출에서도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며 “월드스타”(원더걸스)와 “아시아 대표 한류스타”(소녀시대)로 지위가 격상되었습니다.
[ "제2차 아이돌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동방신기와 SS501은 2009년과 2010년에 차례로 사실상의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제1차 아이돌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젝스키스와 HOT가 2000년과 2001년에 나란히 해체된 것과 비슷한 수순을 밟았습니다. 특히 동방신기가 해체되고 소속사를 탈퇴한 멤버 3인이 “JYJ”를 결성하는 과정은 HOT가 해체되고 소속사를 탈퇴한 멤버 3인이 “JTL”을 결성하는 과정과 여러 모로 닮은꼴로서 비교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경우에는 소속사에 남은 2명이 그룹의 이름을 존속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계획을 밝혔지만, 기존 동방신기 팬들의 대다수는 탈퇴한 JYJ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HOT가 해체될 당시에는 주로 국내 가요계에서의 이슈에 집중되었고, “한류열풍”이 막 싹트고 있던 중국 등의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약 10년의 세월이 흘러서 동방신기가 사실상 해체될 때는 국내 가요계에서만 이슈가 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한류열풍”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절정에 이르렀던 상황에서 일본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아시아 대표 한류스타” 동방신기의 불협화음과 사실상의 해체는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HOT가 해체된 이후에 GOD가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빅뱅은 동방신기가 사실상 해체된 이후에 최고의 아이돌 그룹의 지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또한 신화가 “1세대 아이돌” 중에서 가장 꾸준한 생명력을 자랑했던 것처럼, 슈퍼주니어는 “2세대 아이돌” 중에서 가장 꾸준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세대 아이돌” 시절에는 남자 아이돌 그룹인 HOT, GOD, 젝스키스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서 핑클이 선전하는 구도였던 데 비해서, “2세대 아이돌” 시절에는 “걸그룹 전성시대”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여자 아이돌 그룹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남자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와 빅뱅이 양대산맥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걸그룹인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상승세가 두드러지며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한편 남녀 아이돌 그룹 부문의 후발주자였던 2PM과 2NE1은 2009년 이후로 상승세를 견인하면서 기존의 아이돌 강자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
한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ROCK 음악과 힙합 음악이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ROCK 음악의 경우는 전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대표적인 음악장르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 가요계에서만큼은 비주류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국내 가요계에서는 트롯트, 발라드, 댄스의 3대 장르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ROCK은 1970년대 이후 주류 가요계와 언더그라운드를 통틀어서 꾸준히 발전해오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인디 ROCK밴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그룹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대표적인 인디 ROCK밴드로 각광받아왔고, 2009년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적으로도 친숙하게 접근했습니다.
힙합은 국내 가요계에서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댄스음악의 하위장르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드렁큰타이거(타이거 JK)가 등장하면서부터 국내 가요계에서도 “힙합”이라는 장르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힙합은 ROCK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의 양대세력을 형성하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드렁큰타이거가 이끄는 힙합 패밀리 “더 무브먼트”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동시에 소속 그룹인 에픽하이 등의 활약에 힘입어서 대중적으로도 좀더 친숙하게 다가섰습니다. 아직까지 국내가요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는 비주류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주류 가요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댄스음악은 과거에 비해서 힙합적인 색채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세계적으로도 2000년대 이후부터는 힙합, R&B로 대표되는 흑인음악이 상승세를 타면서 전통적 장르였던 ROCK을 제치고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서 국내에서도 힙합과 R&B로 대표되는 흑인음악이 2000년대 들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뿐만 아니라 기존 댄스가수들과 아이돌 그룹들도 “댄스 + 힙합”, “발라드 + R&B”를 접목한 퓨전 장르를 선보이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YG 엔터테인먼트”는 대표적인 힙합 기획사로 꼽히는 동시에 아이돌 기획사이기도 한데, 소속 그룹인 빅뱅, 2NE1 등을 통해서 좀더 힙합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는 댄스음악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2000년대 들어서는 가요대상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공중파 방송 3사인 MBC, KBS, SBS는 모두 가요대상을 폐지했습니다. 그 대신에 케이블 TV인 엠넷에서는 “MKMF”(나중에 MAMA로 재출범)라는 시상식을 신설했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는 “멜론뮤직어워드”(MMA)를 신설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과 평론가 집단에서는 주류 가요계와의 차별화를 위해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시상식을 신설했습니다.
엠넷에서 주관하고 있는 가요 시상식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는 국내 가요계에서 권위 자체는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규모와 인지도 측면에서는 아시아 전역에 방영되면서 가장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기존 가요대상 중에서는 “골든디스크”가 최고 권위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디스크 대상”과 “디지털 음원대상”을 나누기 시작하고, 공정성 여부에서도 잡음에 시달리면서, 1990년대에 비해서는 권위가 크게 추락했습니다. 한편 “서울가요대상”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다지 높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유일하게 남은 “남녀통합 단독 가요대상”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희소가치를 얻게 됐습니다.
이는 “서울가요대상”의 권위가 상승했다기보다는 “골든디스크”와 “MAMA”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두 시상식이 “반쪽 시상식”으로 전락한 데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특히 2009년 이후로는 특정 기획사가 특정 시상식을 보이콧하거나, 특정 시상식에서 특정 소속사의 가수들을 모두 제외하는 현상이 노골화되면서 연말 가요 시상식 자체의 의미가 예전에 비해서 많이 퇴색된 상태입니다. “MAMA”에서는 대체로 SM 소속 가수들이 대거 불참하고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한편, “골든디스크”에서는 YG 소속 가수들이 대거 불참하고 수상자 명단에서도 제외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서울가요대상”은 역사와 전통에서는 과거의 공중파 방송사(MBC, KBS)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잡음이 없는 거의 유일한 시상식이라는 자체만으로도 그나마 간신히 제구실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9년 이후부터는 “가온차트”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디스크 부문”과 “디지털 음원 부문”의 음반, 음원 판매량을 체계적으로 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속사의 “자진신고”에 의존하는 기존 관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음반관련 통계자료는 여전히 100% 신뢰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직까지는 기존의 “음협”(음반협회)의 음반판매량 집계와 “가온차트”의 통계자료에서 뚜렷한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초 미국의 “빌보드 차트” 또는 일본의 “오리콘 차트”와 같은 권위의 차트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가온차트”이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권위와 공신력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거대 기획사의 영향력도 2000년대 들어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과거에도 “박춘석 사단”, “신중현 사단”이 존재했고, 길옥윤, 이봉조 등의 작곡가들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김창환 사단”이 한동안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아이돌 기획사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습니다. “SM 엔터테인먼트”(이수만)가 굴지의 연예 기획사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DSP 엔터테인먼트”(이호연)가 라이벌 기획사로 떠올랐고, “GM기획(김광수)”이 그 틈새를 비집고 경쟁체제에 합류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SM의 일방적인 독주체제가 이어지다가 “JYP 엔터테인먼트”(박진영), “YG 엔터테인먼트”(양현석)가 급성장하면서 SM(이수만)과 함께 3대 기획사로 등극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한때 DSP(이호연)가 SM(이수만)과의 라이벌 체제를 복원시키고, 엠넷미디어(김광수, GM기획)이 중흥을 이루는 듯했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SM(이수만), JYP(박진영), YG(양현석)로 대표되는 “빅3” 기획사의 가요계 장악력은 더욱 공고해졌고, 엠넷미디어(김광수)도 사업을 확장하면서 거대 기획사로 성장한 가운데, DSP(이호연)은 이들 대형 기획사와의 경쟁에서 다소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0년대 가요계에는 과거와 같은 “국민가수” 또는 “황제”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가수를 한 명, 또는 한 팀으로 압축해서 말하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음반시장의 불황이라는 측면과 한류열풍을 감안해서, 국내활동과 해외 진출에서 모두 준수한 성적을 올린 “보아(BOA), 비(Rain), 동방신기”가 대표적인 한류스타로서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동방신기는 “아시아 대표 한류스타”, 비(Rain)와 보아(BOA)는 각각 “월드스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동방신기는 역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최고의 성공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미 2000년대 후반의 국내 가요계를 석권한 상태에서 일본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80만 카시오페아”로 상징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팬클럽을 보유중입니다. 비(Rain), 보아(BOA)는 2000년대 중반에 국내 가요계에서도 전성기를 누린 뒤 아시아권과 미국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월드스타”로 부각되면서 사회, 문화적 이슈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기획사 사장으로서 이들을 스타로 키워낸 이수만(보아, 동방신기)과 박진영(비)도 최고의 제작자로 명성을 누렸습니다. 비(Rain)는 가수보다도 영화배우로서 좀더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면서 “월드스타”로 가장 홍보효과가 부각되었고, 순수하게 가수활동 부문에서의 활약만으로는 보아(BOA)가 가장 뛰어난 해외진출 실적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국내 가요계에서의 성적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2000년대 가수 중에서는 조성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음반판매 실적을 올렸고, 가요차트와 가요대상을 석권하면서 유일하게 “국민가수”라는 별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성모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절정의 인기를 누린 뒤 몇 년간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군 제대 이후로 스스로 컴백음반의 제목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가수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어느덧 가요계 대선배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2000년대 가수 중에서 1990년대의 전설이었던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송대관, 태진아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가수는 사실상 조성모가 거의 유일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 비록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서 “아이돌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1세대”와 “2세대”의 아이돌 그룹을 통틀어서 동방신기, HOT, GOD,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젝스키스, 핑클, 신화, SES, SS501, 슈퍼주니어, 2PM, 2NE1, 베이비복스, 카라 등등... 으로 대표되는 그룹들이 최고의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이들 아이돌 그룹들은 “10대 청소년” 중에서도 특정 팬덤에게 지지가 편중된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연령대의 청소년 세대에서조차도 아이돌 그룹들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해지면서 상당한 수준의 안티가 형성되었고, 이들 청소년 세대 사이에서도 아이돌 그룹들은 대체로 평가절하 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게다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가요계에 대한 관심도나 열기가 과거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을 감안한다면 아이돌 그룹들의 경쟁구도 자체가 아무리 양적으로, 상업적으로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태생적 한계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가요계 역사에서의 “아이돌 시대” 자체를 있는 그대로 실체로 인정하고,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의 대부분을 아이돌 그룹 위주로 서술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레전드”에 해당하는 솔로가수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평가절하는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HOT와 “2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동방신기 정도가 그래도 간신히 명함을 내미는 정도라고 불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아이돌 전성시대”라는 특정시기의 경쟁구도에서조차도 결과적으로 국내 가요계에서 최고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대표적인 톱스타는 결국 조성모, 보아(BOA), 비(RAIN)로 대표되는 솔로가수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
사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대표주자를 “무조건 시대순으로 한 명씩만 나열”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1940~50년대의 남인수, 백년설, 현인”, “1960년대의 이미자와 패티김”, “1970년대의 남진과 나훈아”, “1980년대의 조용필”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국민가수”로서 모든 세대에게 최고의 전설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한명씩만 대표적으로 꼽는다면 “남인수->이미자->나훈아->조용필”이 “가요계 황제”의 계보로 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중에서도 조용필은 “모든 세대의 대중에게 사랑받은 국민가수”인 동시에 “매니아층과 평론가 집단에게도 최고로 인정받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이러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국민가수”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레전드”라는 칭호를 듣는 가수도 빅3에 해당하는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에다가 트로트계의 전설인 태진아와 송대관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조성모 이외에는 “90년대 레전드”와 견줄 만한 가수를 찾는 것조차도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2000년대 가수 중에서 “레전드”에 근접한 가수를 단 한 명만이라도 꼽을 경우 조성모는 레전드(전설)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근접한 가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 다소 불합리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10년 단위로 시대별 대표주자를 단 한 명씩만 시대순으로 나열할 경우”에 1990년대의 서태지에 이어서 2000년대에는 조성모가 그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성모의 “아시나요”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물론 가요팬들 중에서 “기성세대”에 속하는 연령대의 팬들은 “조용필”과 함께 그 이전에 전설적인 국민가수로 군림했던 나훈아, 남진, 이미자, 패티김, 현인, 남인수, 백년설 등의 선배가수들을 최고로 인정하고 “조용필 이후”에 등장한 가수들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신세대”에 속하는 연령대의 팬들은 “조용필”까지는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그 이전의 전설적인 선배가수들에 대해서는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상 “조용필”이라는 공통분모를 경계선으로 해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확연하게 양분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날의 “신세대” 가요팬에게 옛날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현상 자체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 조용필이라는 최고의 전설이 있었다”는 사실과 “조용필 이전에도 전설적인 국민가수들의 존재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듯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신세대” 가요팬에게는 당연히 “조용필” 이후에 해당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의 가수들에 대해서 관심도가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용필 이후”에 전성기를 누린 후배가수들 중에서 최고의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 있는 가수들을 꼽는다면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태진아, 송대관, 조성모... 정도의 가수들이 첫손에 꼽히고 있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출처: 과거 신문기사와 TV 방송 등을 기본 토대로 해서, 인터넷 검색(네이버, 다음, 가수 홈페이지)을 통해서 얻은 정보들을 참고했습니다. 특히, 옛날 가요 부분은 네이버 지식인,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 등의 자료에 더욱 많은 부분을 의존했습니다.}
** 원문출처 => http://johncena07.blog.me/70098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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