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1.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어요
2. 온 천하 만물은 그림책 같으니 그 고운 그림 보아서 그 사랑 알아요
3. 저 고운 화초밭 비 오다 개이면 하늘에 뻗친 무지개 참 아름다워요
4. 저 푸른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주 하나님의 사랑을 늘 속삭이지요
이 찬송은 주로 유년주일학교에서 많이 불리지만, 찬송시의 내용이 신학적으로
아주 깊이가 있고, 한글로 옮겨진 것도 매우 깔끔하기 때문에 어른이 불러도 훌
륭한 찬송이 된다. 한 예술작품이 그 작자를 반영해 주듯이, 만물도 그것을 지
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보여 준다(롬1:2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되는 지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그 마음이
청결하고 순지해서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될 때에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에 들어가려면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할 뿐이다.
302.
이 찬송시의 작시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지 바가 없다. 시의 내용을 살펴 보면
젊은 청년들을 향하여 주님께 헌신할 것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도서
12:1의 말씀을 보면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나타나 있다. 과연 청
년의 시기는 그 날들을 기뻐하며 즐기는 때요,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눙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기가 쉬운 때이다. 그러나 청년기의 패기와 끓는 피를 가지고 쾌
락을 추구한 젊은이들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결단
코 잊어서는 안 된다(참조. 전12:9-10).
303.
작시자 반병섭 목사는 청년의 기상을 자신이 살아 가면서 큰 인상을 받았던 자
연 만물의 웅장함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있다. 1절과 2절에서는 검푸른 태양과
출렁거리는 파도가 나오고 있륚느데, 이는 그가 젊은 시절 해군 군목 생활을 하
면서 바다를 통해서 받은 인상들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3절에 나타난 타오르
는 화산은 일본 구주에 있는 활화산 아소산에서 받은 가명이, 폭포는 그가 만주
에 있을 때 경박호 폭포에서 받은 인상이 배경이 되었다. 4절의 광활한 댜지는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만주 대륙의 광활함에서 받은 인상이 배경이 되고 있다.
304.
주요한 박사는 잠언 1:8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여 작시하였다. 그는 이 시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회고하고 이다(1절). 그는 어머
니의 손 때 묻은 성경을 볼 때마다, 성경 말씀으로 훈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2절). 또한 그는 괴롭고 외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과거 어
머니가 들려 주신 찬송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려 오는 것을 느끼고 힘을 얻는
다고 한다(3절). 결론적으로 그는 평소에 어머니께서 교훈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을 따라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4절).
305.
이 찬송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노래하는 것으
로서, 전영택 목사가 사고로 하늘에 불림받기 바로 전이 1967년에, 개편 찬송가
가사위원으로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모신 가정을 일년 내내 봄
바람처럼 훈훈한 사랑이 감돌며 부모와 자녀, 동기들 간에 애정이 넘치는 가정
이라고 한다. 그러한 가정을 비록 마른 떡 한 조각 정도밖에 없어도 화목할 수
가 있으며, 고기가 가득하면서도 싸우는 집안보다 훨씬 행복하다(참조.
잠17:1). 주 안에서 훈계하며 순종하는 부모와 자녀가 있는 가정은 천국과 같은
가정이다.
306.
작시자 알포드 목사는 19세기의 교회 지도자 중 천부적 은사를 가장 많이 소유
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추수감사절 찬송으로 쓰려고, 시편
126:6의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로 돌아 오
리로다"는 말씀을 배경으로 찬송시를 지었다. 원래는 7절로 되어 있으나, 오늘
날에는 4절까지만 부리고 있다. 1절에서 알포드는 하나님의 뱍성들에게 하나님
의 성전에서 함께 감사 찬송을 부를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2-3절에서는 마
태목음 13:24-30, 36-43에 나타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과 그 해설을 싣고 있
다.
307.
이 찬송은 추수감사절 찬송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비록 이 가사에는 추수에 대
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어떠한 태도로 살아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가사는 마태복음
6:25-34의 말씀을 찬송시로 바꾼 것이다. 우리들에게 창조주·보호자·섭리자이
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물질적인 것들로
대체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물질로 인한 염려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염려와 근심은 우리를 혼란케 하며, 이성을 약화시킬 뿐이다.
308.
작시자는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는 곡식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추수할 일꾼을 보
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추수의 때에 열심을 다해 추수하게 해 달라고 말
하고 있으며, 장차 천국에서 베풀어질 영원한 잔치를 소망하고 있다. 이 찬송은
직접적으로는 오곡 백과의 추수를 감사하는 것이지만, 더 아나가서 천국의 추수
를 노래하고 있는 찬송이다. 배경이 되는 말씀은 마태복음 9:37-38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 주소서 하라"는 말씀
이다. 이는 복음 전파에 많은 일꾼의 수고가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309.
1절은 추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권하고 있다. 2절은 하나님의 축복
으로 인하여, 황무지에서도 열매가 맺게 됨을 감쳾하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3절은 추수한 곡식을 인하여만 감사하지 말고, 생명과 구원을 주신 사실에 대해
서도 감사하라고 한다. 이 시의 배경은 이사야 9:3인데,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추수하는 즐거움'을 더해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양
식을 풍성히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보다 중요한 추수, 즉 뭇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영혼의 추
수이다.
310.
이 찬송시는 작시자 클라디우스의 시집에 실려 있는 '농부의 노래'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래 '농부의 노래'는 17절로 되어 있으며, 추수를 마친 이후 추수 감
사의 축제에 즐겨 불렀으며 후에 감사절 찬송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가사를 살
펴 보면, 1절은 농부들이 씨를 뿌린 뒤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으로써 풍성히
결실하게 하셨다고 노래하고 있다. 2절에는 들의 꽃과 공중의 새를 보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돌보심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저뀳
에는 주님이 풍성하게 주신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 드릴 것을 권
유하고 있다.
311.
작시자 임옥인 여사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이 찬송시를 작시하였다.
그리하여 이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활르 보는 듯한 기분
을 느낄 수 있게 된다. 1절은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아름다움과 황금 빛으로 물
든 논밭을 묘사한다. 2절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논밭과 과원에 풍성한 결실을 주
셨음을 노래한다. 또한 3절은 땀 흘린 농부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열매로 보상
해 주심을, 4절은 풍성한 추수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을 노래한다. 거
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계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지 못한
다.
312.
이 찬송시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당연히 감사해야 할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작시자 피어포인트는 이 시에서 먼저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찬송드릴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 하늘 그리고
산과 들의 초목, 달과 별의 광채 등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들인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가 누리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기쁨에 대해서도 감사할 것을 말
하고 있다. 그러한 기쁨은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간의 우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기쁨인 것이다.
313.
이 찬송은 본래 루트 박사가 어린이용 찬송으로 지은 것이었으나 오늘날은 성인
들도 결신과 헌신을 촉구하는 찬소응로 널리 부르고 있다. 배경이 되는 성구는
시편 32:8의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는
말씀이다. 이 찬송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말씀 안에서 밝히 나타내 주시
니, 더이상 지체 말고 주께 나오라고 촉구하고 있다. 구주께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오라고 부드럽게 부르고 계신다. 우리가 모두 그 음성을
듣고 주께 나아가면 참으로 즐겁고 기쁜 만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314.
작시자 커싱은 성실한 목회자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래를 우연
히 듣게 되었는데 그 곡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유능한 음악
교사 루트 박사가 혼혈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은 곡이었다. 이 멜로디는 커
싱 목사의 뇔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악한 사람 하나가 개
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로 그때 루트의 곡에 붙여
부를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회개한 죄인이 천국에 이르면 천국 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그를 환영할 것을 연상하며 이 시를 지었다.
315.
게이츠 여사의 시집 「당신의 사명」(Your Mission)에 실린 시(詩)에 작곡가 돈
이 곡을 붙인 것이다. 작시의 배경이 되는 누가복음 15:11-24은 흔히 '탕자의
비유'로 일컬어진다. 특히 20절의 "이에 일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니라"에서
작시의 염감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 그가 이미 회개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옛 일을 회고하며 측은히 여긴다. 아버지가 젊었을 리 없
건만 그러나 그는 달린다. 이미 그의 아들을 용서하고 목을 안는다. 아버지의
진한 사랑으로 아들의 입을 맞춘다. 달리 어떻게 표현되겠는가?
316.
이 찬송시의 뱌경을 이루는 성구는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하나는 샘
물이 되리라"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수가' 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갈증을 영원히 풀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생명
의 샘물이 되는 주님 밖에 없다. 이 찬송은 바로 이러한 샘물, 즉 영원히 목마
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앞으로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317.
한국 보금 찬송의 대표적인 이 찬송은 박재훈 씨가 전영택 복사에게 작시를 부
탁하여 곡을 붙인 것이다(1943년). 방탕한 자식을 향하여 돌아올 것을 호소하는
이 찬송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래한다. 1 절은 아무리 많은 낥를 지었어도 주니께서 다 용서해 주시는 돌아
오라고 호소한다. 2절은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안타까운 마음
으로 기다리는 어버지의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절은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
여 더 멀리 피하지 말고 차라리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는 편을 택하라는 말씀
이다.
318.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찬송은 '오하이오의 음유 시인'으로 일컬어지던 톰슨의
작품이다. 대(大)전도자 D.L. 무디의 임종시에 평소 친분이 있던 톰슨이 방문했
다. 무디는 침대에 누워서 이 음유 시인을 바라보며 "나는 일생 동안 많은 일들
을 해 왔지만, 차라리 '예수가 우리를 부리는 소리'를 작곡한 자네가 부럽네"라
고 말했다. 이처험 이 찬송은 무디의 대전도 집회에서 초청의 노래로 널리 불렸
으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예수의 부르심은 간곡하고도 부드럽지만, 충
분히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부르심이다.
319.
이 찬송시는 조인들을 향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기를 그만둘 것을 열정적
으로 호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절은 예수께서 죄인드르이 마음 문을 끈질
기게, 그러나 부드럽게 두드리고 계심을 표현하고 있다. 2절은 우리 마음 주심
에 들어오시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를 보여 주고 있
다. 3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버리고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주께서는 끝까지
변치 않고 우리를 도우시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4절은 보다 더 적극적인 권면이
나타나 있다. 후렴에는 마음 문 앞에 와 계신 하나님을 자꾸 멀리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320.
이 찬송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에 우리가 주님을 박
대하지 않고 영접하면 복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그
목사가 지은 원가사를 살펴 보면,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태도가 참으로 온화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응답하여 마음을 개방하길 기다리시며, 결코
강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원가사에는 주님께서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표현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모든 영
역에 관여하시고 우리의 일생 전체를 다스리시기를 원하신다.
321.
조지 스테빈스는 1833년 무디 선생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복음 전도 여행을 마
치고 돌아온 뒤 이 찬송을 작곡하였다. 가사와 곡은 「복음 찬송」이라는 그의
저서에 처음 소개되었다. 「자서전과 회상록」에서 스테빈스는 이렇게 말하였
다. "내가 이 찬송을 작곡한 특별한 동기는 없었다. 단지 초청 찬송으로 쓰일
만한 찬송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고이 대단한 반응을 보이
고, 수년 내에 이처럼 널리 알려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작고자의 말
대로, 불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청하는 찬송이다.
322.
위그너는 이 찬송을 1871년에 작시하였는데, 그의 부친이 1880년에 편찬한 침례
교 찬송가 증보판에 실려 처음 소개되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많은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그것은 구원, 사랑, 땅 위의 기쁨,
그리고 하늘의 안식이다. 이런 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주님께 나와
진심으로 죄를 자복하고 주님 앞에 무릅 꿇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1절). 한편,
우리는 2-3절을 보면서 주님께서 부르시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323.
제목 '단 할 걸음만'(Only A Step)이 말해 주듯,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
에서부터 모든 삶을 헌신하는 일에 결단하도록 요청하는 찬송이다. 1절과 2절에
서는 한 걸음 회개의 발걸음을 결단하라고 말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라. 그리
하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지체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는 사랑스레 용서
할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3절에서는 죄이서 은혜로 한 걸음 내
딛기를 미루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새월은 빨리 흘러가 버린다'고 말한다.
이 결단의 급박성을 강조한다. 사실 신앙은 '지금, 여기'(Now and Here)의 문제
이다.
324.
이 찬송시는 요한계시록 3:20을 소재로 작시되었다. 찾아 오신 주님은 가시관을
쓰셨다고 말한다(1절). 윌러엄 하우스는 그 찬송시 '주 예수 대문
밖에'(325장)에서 '문 드리리스 손은 못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라고 묘사했다. 죄인을 위해 그처럼 큰 고난을 받으신 주님께서 우리 마
음 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시기 위
함이다. 그러나 그 지배는 사랑의 지배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헛된 교만을 버
려야 한다(2절). 그는 우리를 위해 몸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셨다.
325.
이 찬송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Light of the World)이라는 홀만 헌트의 그림
을 떠오르게 한다. 등불을 들고 어느 문 앞에 서 계사는 예수님의 모습을 요한
계시록 3:20에 근거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찬송시는 간혹 오해를 불
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20의 이 말씀을 불신자 전도용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찬송에서 언급되는 주님이 서 계시는 문은
성도의 굳게 닫혀진 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찬송 또한 불신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치 아니한 성도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326.
존 스탁턴 목사가 작시·작곡한 이 찬송은 1874년 그가 지은 책 「구원의 멜로
디」(Salvation Melodies)에 5절로 처음 발표되었다. 스탁턴이 원래 지었던 후
렴은 다음과 같았다. '예수께 오라, 예수께 오라. 이제 예수께 오라.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지금 널 구원하시리. 그가 지금 널 구원하시리.' 그런데 아이
라 데이빗 생키가 무디 성생과 함께 영국으로 전도 여향을 가면서 약간의 수정
을 가하였다. '예수께 오라'(Come to Jesus)라는 구절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대
신 예수께 나오는 방법을 말하기 위해 '다만 의지하라'(Only trust Him)로 바꾸
었다.
327.
모리스 여사가 메릴랜드 주의 마운틴 레이크 파크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였을
때에 지은 찬송이다. 집회가 한창이던 주일 아침에 설교자인 베이커 목사가 회
중들을 향하여 구원의 초청(Invitation)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강단 앞으로 나와 무릅을 꿇었다. 그때에 아직도 회중석에 앉아 머뭇거리며 갈
등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모리스 여사는 그곳에서의 집회가 끝나기 전에 자기
가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바로 이 찬송가를 작시·작곡하였다.
이후에 이 찬송은 머뭇거리는 수많은 영혼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찬송이 되어 왔
다.
328.
루터파 목사 아르크만 노이마으스터가 누가복음 15:2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
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말씀을 배경으로 지은 찬송시이다. 원래는 6행 8절로
되어 있었으며, 엠마 베반(Emma F. Bevan) 여사가 번역하여 그의 「영생의 노래
」(Songs of Eternal Life)에 실었다. 이 찬송은 죄 가득한 사람도 모든 흠과
얼룩에서 씻음받아 주와 함께 천국 들어간다고 노래한다. 예수께서는 당시에 버
림받고 소외당하며 멸시의 대상이던 죄인들을 영접하셨다. 오늘도 여전히 죄인
을 영접하신다. 이같은 희망의 소식을 널리 전하라고 이 찬송은 말한다.
329.
조지 프레드릭 목사가 작시·작곡한 찬송으로서, 죄인들을 예수 앞으로 부르는
초청 찬송이다. 예수님을 떠나 있으면서 그 앞으로 나아오기를 지체하는 사람들
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루트 목사의 원시(原詩)는 명확하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찬송에는 죄인을 기다리는 예수님과, 그와는 달
리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를 지체하는 죄인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잘 표현
되어 있다. 예수님 밖에는 죄인을 구원할 이 없으며, 이 구세주께서는 축복하시
려고 갈망하시는 지체하지 말고 주께 나오라고 노래한다.
330.
이 찬송의 작시자 슬리퍼 목사와 작곡가 스테빈스는 찬송을 통하여 서로 깊은
교분을 맺고 있었다. 슬리퍼 목사는 가정 선교 사역에 헌신하여 홀로 믿는 성도
들의 가족 복음화를 위해 봉사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역을 하면서 믿지 않는 가
족들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위로해 주기 위하여 이
찬송을 작시하였다. 슬리퍼 목사는 자신의 찬송시를 스테빈스에게 보내어 곡조
를 의로하였고, 이에 스테빈스는 감동적인 마음으로 이 영감 넘치는 찬송가를
탄생시켰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시편 71:4 말씀이다.
331.
펜실바니어 로린스빌 캠프 집회에서 커크패트릭 교수가 찬송을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집회에서 매일 밤 아름답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독창을 하는
한 청년 가수가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청년을 예수를 믿이 않는 직업
가수였다. 안타깝게 생각한 커크패트릭 교수는 집회 기간 동안 이 청년의 영혼
을 위해 계속 기독했다. 그가 이 문제를 놓고 온 밤을 새워 기도하는 중에 문든
한 찬송시가 떠올랐다. 그는 즉시 그 시를 지골하여 곡을 붙였다. 결국 그 청년
은 이 가사대로 주의 사랑 앞에 돌아오게 되었다.
332.
작시자 월터 스미드 목사의 찬송시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주제를 주로 다루
고 있다. 그는 거듭난 성도들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부딛치는 문제들을
시로 다루기 때문에, 이는 부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공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의 찬송시는 신학적 논리가 정연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시편 51편을 배
경으로 작시된 이 찬송시도 죄악에 빠져서 심히 애통하는 성도의 심정을 잘 표
현하고 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서
그 죄를 지적할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지은 시이다.
333.
작시자 드아르몽 부인은 일생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슬하에 8남매를 남겨 놓고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난 일이었다. 드아르
몽 부인은 혼자 된 몸이었지만 자녀들 앞에서 강인하고 헌신적으로 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 냈다. 그녀의 딸 린다는 어머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용사처럼 고된 일을 해치워 나가셨다. 그
렇게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항상 어머니는 유쾌하고 행복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
다. 이렇게 고된 생활을 기도로 이겨 내셨으며 그 결실이 찬송시가 되었다.
334.
작시자 레이 팔머 목사는 자신이 작시한 찬송시를 매우 아꼈다. 자기 작품에 일
체의 수정이나 퇴고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그 대신 자기 작품에 대한 판권을 전
햐 주장하지 아니하고, 어떤 출판사든지 무료로 자기 작품을 출판하도록 허락하
였다. 그는 유명한 청교도 윌리엄 팔머의 후예이며 명문의 가장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언제나 겸손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가누하
는 삶을 사았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시편 119:176으로 다윗이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슛겨다닐 때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르짖은 내용이다.
335.
이 찬송시의 배경은 베드로전서 2:25이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
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이게로 돌아왔는니라." 작시자 보
나 목사는 이 시에서 구원의 위대한 진리를 어린 아이들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
을 정도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한편의 감동적인 드
라마를 보는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1절네는 목자의 품을 떠나 제멋대로 방
황하는 양의 모습이, 2절에는 그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상하고 찢기어진 목자의
희생이 나타나 있다. 이 찬송을 통해 주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336.
로버트 로우리 목사는 전문 음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찬송가 작가보다도 설교
가로 알려지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문적인 찬송가 작가도
아닌 그가 지은 찬송들이 모두 주옥 같은 걸작들이었기에 지금까지 널리 애창되
고 있다. 그가 작시, 혹은 작곡한 찬송으로 '울어도 못하네'(343)를 비록하여
11곡이 통일 찬송가에 실려 있다. 이 찬송시는 누가복음 15:15-20을 배경으로
작시되었으며, 믿었던 신자가 타락하였다가 다시 그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을 때
감격하여 부르는 내용의 찬송이다. 회개에 아무리 고통이 따른다 해도 회개해야
한다.
337.
윌리엄 하워드 돈은 이 곡을 작곡해 놓고 이에 맞는 찬송시를 찾고 있었다. 거
런데 그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즉시 자신의 곡에 크로스비의 시를 붙여 이 찬송가를 탄생시켰다. 이 찬
송이 발표된 후부터 패니 코로스비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부터 이 찬
송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결단을 불러 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해
를 돕기 위해 원사의 일부 내용을 소개해 본다. '오 자비하신 구세주여, 나의
비천한 애원이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마시고 들어 주시옵소서. 나를 지나쳐
가지 마옵소서.'
338.
영국에서 일어난 감리교 신앙 운동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협력으로 이루
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형인 존은 능력있는 설교로 영혼을 감화시켰으며, 동생
찰스는 영감 있는 찬송으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찰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감리교 신앙 운동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찰스
웨슬리는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밭에서나, 또는 말을 타거나 거리를 걸으면서도
찬송시를 썼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앙적 경험을 시로 쏟아 놓을 수 있는 재능
을 천부적으로 타고 난 사람이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누가복음 15장이다.
339.
엘리옷은 32세 때 중병을 앓고 건강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
과 갚은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생의 전환점이 될 만남이 있었다. 스위스
의 유능한 복음 전도자 말란(Caesar Malan) 목사가 그녀의 집에 초대되었던 것
이다. 말란 목사는 그녀의 영적 문제에 관해 상담하면서 "당신은 있는 모습 그
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요"라고 했다. 메시지를 듣고서 그녀는 온전히 하나님께
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날을 영적 생일로 기념하여 해마다 생일파티를 열었다
고 한다.
340.
이 찬송의 작시자인 스테드 여사의 남편 스테드는 물에 빠진 한 수년을 구하려
다 불행하게도 익사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 엄청난 비극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
르고 비탄에 빠졌었다. 그러나 순탄한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잘 배워 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를 의지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가 말
씀하신 그대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의 약속대로 그를 신뢰하며 말씀하신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일이다"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이 찬송시를 쓰게
되었다.
341.
게오르크 노이마르크의 독일어 찬송시를 윙크워드 여사가 영역하였고, 이것을
우리말로 다시 번역한 찬송이다. 노이마르크는 많은 역경과 고통을 믿음으로 인
내하여 승리한 사람으로, 그 대부분의 찬송시를 고남의 시기에 썼다. 그는 대학
진학시 학비를 강도에게 빼앗기고 난 후 방황과 걸식으로 전전했다. 그러나 어
려움 속에서도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심정을 찬송시로 표현
했다. 바로 이것이 독일 시문학사에 걸작으로 빈나는 본 찬송시이다. 그는 드디
어 대학에 진학할 자금을 마련하여, 1643년 대학에 진학을 하였다.
342.
성경의 인물 중 욥보다 큰 시련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욥처럼 시
험을 참으며 승리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욥은 수많은 성도들에게 신
앙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찬송의 작시자 스타이티스도 욥기를 통하여 큰 은혜
를 받고 이 시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타이키스는 이 시를 신문에 게재하였는
데 무디가 이 시를 보고 생키에게 부탁하여 곡을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 찬송은 생키가 출판한 「복음 찬송가」의 제2권에 '예수를 의지함'(Trusting
Jesus)이라는 제목으로 실리게 되었던 것이다.
343.
본 찬송의 성경적 배경은 에베소서 2:8-9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
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
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사람들은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각자 구원얻기
위하여 노력한다. 혹은 과학으로, 혹은 윤리로, 혹은 철학으로, 혹은 종교로 구
원의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타락한 인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구
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344.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그 사
실을 의심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 보게 하셨다. 이에 도마는 완전히 굴복하고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20:29).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
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고후5:7). 또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하였다(벧전1:8).
345.
본 찬송의 성경적 배경은 시편 56;4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오리까." 이시를 쓴 다윗은 온갖 염려와 두려움에서 용기를 얻고 있
다. 이것은 심한 투쟁을 겪고 난 후에 얻어진 것으로서, 큰 고통을 겪고 그것을
이기기 위한 노력 끝에 오는 것이다. '찬송하올지라'는 '영화롭게 하다' 또는
'자랑하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다윗이 확실한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는대 그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346.
몬 찬송의 성경적 배경은 마가복음 14:3-이이다. 손님들이 식탁에 있는 동안
"한 여자가 예수께 나아왔다". 이 여자는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였다. 그녀의 손
에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살아 계
시는 예수님의 바로 뒤쪽으로 갔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마
리아는 향유와 더불어 감사와 헌신으로 예수님께 그녀의 마음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다. 이러한 그녀의 행위는
자신의 생명은 물론 인격 전체를 바치는 헌신의 자세였다.
347.
글래든 목사는 미국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회 정의 구현에 앞장선 목사라 할 수
있다. 그는 "복음은 미국과 전세계의 사회·정치·경제에 영향을 미치도록 적용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설교로써만 아니라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며 직접
사회 정의 구현에 앞장섰다.
348.
천재 찬송 시인 해버갈은 세상을 떠나가기 5년 전이 1874년에 에렐리 하우스를
방문한 후 이 찬송시를 짓게 되었다. 그녀는 손과 발, 음성과 입술, 금과 은을
다 드려서 주님을 섬기겠으며, 마지막으로는 주님께 사랑을 쏟아 붓고 자신을
온전히 주님만을 위해 바칠 것을 다짐한다.
349.
어느 한 소녀가 무디의 부흥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이 소년느 구원의 확신
에 관한 문제로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소녀는 자기 교회의 목사를 찾
아 갔다. 목사는 이사야 53장을 읽어 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녀는 성경을 읽
을 줄도, 기도할 줄도 모른다고 슬프게 대답하였다. 이어 그 소녀는 애절한 목
소리로 "주 에수여,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외쳤다. 무디는 이
소녀의 이야기를 자주하면서 "그 소녀는 이미 구원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
기를 들은 해밀튼 여사는 그 소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 찬송시를 지었다.
350.
이 찬송은 제목 '통로로만'(Channels only)이 말해 주듯이, 주 예수를 위한 도
구로만 쓰이고자 하는 헌신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2:21의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는 말씀이
배경이다. 주님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는 감추어지고 오직 자신
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길 밖에 없다. 이 원리는 다음의 말
씀에 요약적으로 밝혀져 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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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해설 301 - 350장
지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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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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