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원주군>학술답사 보고서
인사대 국어국문학과 학술조사반
<目 次>
Ⅰ. 개관
Ⅱ. 설화부문
Ⅲ. 민요부문
IV. 방언부문
Ⅴ. 민속부문
VI. 참고자료
Ⅰ. 개 관
1. 조사개요
본 보고서는 본교의 국어국문학과 학술조사반이 1990년 7월 9일부터 12일(3박4일)까지 원주군에서 조사•채록한 구비문학, 방언, 민속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이번의 조사도 국어국문학과에서 1983년부터 매년 실시해 오고 있는 연례행사의 하나로 시행 되었는데, 제 1차一평창군, 제2차一정선군, 제3차一삼척군, 제4차一명주군, 제5차一영월군 , 제6차一양양군, 제7차一인제군에 뒤이은 것으로 제8차 조사가 된다.
이러한 조사활동 및 채록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구비•민속문화의 실상을 확인하면서, 변이•소멸되어 가고 있는 설화, 민요, 방언, 민속 등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1차자료를 활용하여 구비문학이나 민속문화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 때 그 의의는 더욱 크다.
금번의 조사는 다음과 같이 4개 반으로 나누어 시행하였다.
○ 설화반一학생 11명(지도교수 최웅•김용구)
○ 민요반一학생 7명(지도교수 김훈, 유태수)
○ 방언반一학생 10명(지도교수 최윤현, 남기탁, 손주일)
○ 민속반一학생 13명(지도교수 김의숙, 김영)
2. 원주군의 연혁
상고시대(上古時代)는 마한(馬韓)영역의 제일 동쪽 끝이었는데 백제(百齊)가 일어나서 마한 땅을 병합할 때 원주(原州)도 그의 판도 안에 들어갔다.
그후 고구려(高句麗) 장수왕(長壽王)때 그의 영토(領土)가 되었고 고구려는 여기를 469년(長壽王57년)에 평원군(平原郡)이라고 하였다. 다시 신라(新羅)의 북상으로 진흥왕(眞興王)당시 그 의 영토가 되었다. 678년(문무왕 18년)에 여기에다 북원경(北原京)을 설치하였다.
그후 통일신라가 전국을 9주5소경(九州 五小京)으로 구획(區劃)할때 원주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오소경(五小京) 중에 하나인 북원소경(北痕小京)이 되었다(小京은 오늘날의 직할시와 같은 것). 고구려에 와서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원주(原州)라고 개칭하게 되었다. 다시 995년(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十道)로 구획할 때 원주는 중원도(中原道:현 충북)에 속한 후 1394년(이태조 3년)까지는 강원도 지방과는 다른 행정구역에 속하여 주지사(州知事)가 통활(統 轄)하고 있었다. 그러나 1258년(고종 45년)에는 이 고장 사람 송필(宋弼)의 반역(反逆)사건으로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 개칭되었다.
1269년(원종 10년)에는 공신(功臣) 임유무(林維茂)의 외가집 시골(外鄉)이라고 해서 정원도 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昇格)하였다.
1291년(충렬왕 17년)에 합단적(哈丹賊)의 침입(侵入)때 향공진사 원충갑(鄕貢進士 元沖甲)이 합단의 무리를 물리친 공으로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년)에는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하여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310년(충선왕 2년)에 다시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성안부(成安府)로 되었다가 다시 1353년 (공민왕 2년)에 치악산(维岳山)에 왕자의 태(胎:치악태실)를 봉안하고 원주목(原州牧)으로 회 복되었다.
1395년(이태조 4년)에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원주는 강원도(江原道:강원도라는 명칭이 이때 처음으로 생기면서 원주가 수부였다)에 귀속되면서 강원도관찰부(江原道觀察府)가 신설되면서 강원감영(江原監營)의 소재지로서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 행정구역으로는 1부(府), 3 군(郡), 3현(縣)과 주천(酒泉)은 원주 속현이었다.
1638년(숙종 9년)에 이 고장에서 여인(女A)이 남편을 도끼로 찍어 죽인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원주는 학성현(鶴城縣)으로 강등(降等), 격하(格下)되었다가 1692년(숙종 18년)에 다시 원주목으로 회칭 복구되었다. 1728년 4월(정조 4년)에 정무중(鄭茂重)의 모반사건으로 강등 원성현(原城縣)으로 개칭 되었다가 1738년(영조 14년)에 다시 원주목으로 회칭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전국의 도를 없애고 23부 331군으로 구획할때 원주는 다시 충주관찰부(忠州觀察府)로 속하게 되었다가 그 이듬해에 전국을 다시 13도로 개편할 때 강원도로 귀속되면서원주군(原州郡)으로 되었고 강원도청은 춘천으로 이전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21개 면촌(面村)을 행정구역으로 하고 있었다.
1913년 3우러1일자로 시행된 행정구역 변동에 따라 원주군에 속해 있던 강천면(康川面)을 경기도 여주군(京幾道 驅州郡)으로 이속시키는 한편 서원면(書院面)을 횡성군(横城郡)으로 주천면(酒泉面)과 수주면(水周面)은 영월군(寧越郡)으로 이속 시키면서 작은 면촌을 통합하여 10개면으로 축소한 것이 원주군의 행정구역이었다.
1929년에 원주 본부면을 폐합하면서 원주면(原州面)을 원주읍(原州邑)으로 승격시키므로 원 주군(原州郡)은 1읍 9개면이 되었다.
그후 인구증가에 따라 1955년 9월 1일 원주읍(原州邑)이 시(市)로 승격됨에 따라 원주군이 원주시(原州市)와 원성군(原城郡)으로 고쳐지면서 원성군은 9개면을 관할하기에 이르렀다. 따 라서 1961년 10월 1일자로 원성군이 기초적인 지방자치단체로 발족했다. 원주군은 동경 127도 북위 37도 21분에 자리잡고 총면적 743.3㎢ 로써 관내 일순 거리는 17.153㎞로 되어있다. 또한 군은 강원도의 서남방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은 횡성군(橫城郡) 서쪽은 경기도 여주군 동쪽은 영월군 동남방으로는 충청북도 제천군(忠淸北道 堤川郡)남쪽은 충청북도 중원군(忠淸北道 中原郡)에 각각 입접하고 있으며 중심부는 원주시(原州市)가 자리잡고 있으나 군청 소개지가 원주 시내에 있으므로 군관내는 4㎞〜6㎞ 정도 떨어져 있다. 산하(山河)로는 횡성군 태기산(泰岐山)을 상류로 하는 섬강(蟾江)이 있어 소초(所草) 호저(好林) 지정(地正) 문막(文幕) 부론(富输) 등의 면(面)을 관통하는 오대산(五台山)을 '상류(上流)로 하는 영월천(寧越川)과 섬강이 합류하는 남한강(南漢江)이 부론면을 포류하고 있는데 현재 원주군은 9개의 법정(法定) 면(面)으로 면모를 갖추고 있다.
Ⅱ. 설화부문(說話部門)
1. 제보자
김만복(남•70세 : 문막면 동화2리)
이돈기(남•61세 : 문막면 동화2리)
이림수(남•65세 : 문막면 동화2리)
원경식(남•83세 : 문막면 취병리)
황재순(여•74세 : 문막면 취병리)
2. 조사내용
채록된 설화를 편의상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효행설화一①황효자 부부 ②황효자와 호랑이
(2)유래설화一①건등산 전투 ②원천석과 노고소 ③감사 욕바위 ④장사우물
(3)예지설화一①황정승의 유언
(4)장수설화一①힘센 최진사 오누이
(5)호랑이설화一①,②호랑배미 ③호랑이 비석 ④포수와 우둔한 호랑이
(6)여워설화一①꾀 많은 여우 ②둔갑한 여우
(7)도깨비설화
(8)시집살이설화
(9)기타 설화一①업구렁이 ②적선 ③지네 이야기 ④나도 마누라 있다 ⑤빈대껴 망한 절 ⑥중국을 구한 인재 ⑦깨끗한 음식
(1) 효행설화
① 황효자 부부
문막에 황효자가 있었는데 기과(제사)가 있어서 며느리가 적(부치기)을 부치려는데 이제 그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같이 부엌에 있었지. 어머니가 지름(기름)을 오줌인줄 알고 그 시어머니가 지름통을 보리밭에 쏟아 버리더래. 근데 지금같으면. 어머니 저저 맘이 돌았나 할꺼여. 근데 효자니까 자 이리주세요 제가 치울께요 달랬단 말이야. 한 번쯤 남은걸 아 웬만한 사람이면 큰 소리치지. 망녕들었다 할꺼 아녀? 근데 얘길 안했단 말야. 그러니까 효자지.
그 전에 원주군청에 다니는데 즈 어머니래든가 아버지래든가 팥죽을 좋아했지. 그래 집에 갈려면 팥죽을 사가지고 간데 호랭이가 와서 타고 다녀 팥죽이 식지도 않고 업지러지지도 않고 호랭일 타고 다녀(호랑이를 타고 다녔다구요?) 그치 호랑일. (근데 기 집이 망했다면서요?) 그치. 효자가 나면 그집이 망한다는거야. 왜 망하느냐, 그 명기를 쪽 빼거든.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할머니 : 다 망했나 그 집안이?) 시방 집 져놓고 모시고 있어. 당이지 그래 당. 이건 거짓 말 아냐.
②황효자와 호랑이
반계 3리에 황씨라는 마을이 사는데 황효자, 황효자 하는데 저 어머니, 아버지가 노상(늘) 편 찮으셔 약을 지러 원주를 다니는 거라. 약을 저다 드리고, 정성이 있어 호랭이가 문턱에서 어흥하고 엎드려 있더래 등에 타라구. 그래 원주로 약을 지러갈 때 타고 가니까 순식간에 원주로 갔대. 그래 약을 지어다가 다려 드리고 호랭이를 타고 다니는 거야 황효자가. 하루는 동네 사람이 그 호랭이를 잡으려고 함정을 파 놓고선 함정에 호랭이가 빠졌네(예)아, 그래 뭐 잡으려고 하니 세상에 그걸 누구하나 사람이 근접을 못해. 그래 황효자가 가보니깐 저타고 다니던 호랭이가 빠졌더래 가니깐 눈물을 뚝뚝 떨구고. 호랭이가 황효자를 보더니 눈물을 떨구고 울드랴. 그래서 호랑이를 끌어안아서 내놔 줬어요. 호랭이를 살려주구. 그래서 인제 황효자가 호랭이를 타고 다니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병 공경을, 약을 져다 낫게 했어. 그래서 황효자를 갔다가선 거기다 성불을 해 놓구선 비를 세우고 시방 거 전설에대 내려왔어(황효자요?)응. 황효자 전설에 다 있다구 그래서 거기 아주 황서방네가 호랭이 비를 해 세우고 시방(지금) 거기 가보든 경장해 여, 거기다 법당까지 지어놨어, 그래서 황효자가 호랭이 타구 다녀서 약을 지어다가 즈 부모를 공경했대.(예)
(2) 유래설화
① 건등산 전투
저기 왕근(왕건)이가 전투하던 큰 산이 있어.(예) 저게 건등산이거든.(예) 저게 건등산, 건등산인데 근데 왕근이하고 견흔(견훤)이 하고 있잖아? (예) 저 위에서 전장을 하는데 그때 양식 들이 떨어졌는데 양짝이 다 군대가 여기는 자꾸 패배만 한단 말야 견흔이가 그래 생각에 여기 서 활을 자꾸 쏘니까 더러는 죽었겠지 하는데 저긴 씽씽하거든. 여기 강이 있어 그때 석회라는 것이 있어(예) 사람이 먹으면 죽거든 거기다 풀었단 말이야 그 강에. 그래 가지고 뭐시기. 저기는 쌀 씻쳐서 밥을 하니까 우린 쌀 뜬물이라도 먹자고 아 견흔이 군대가 다 강물에 엎드려 가지고선 먹었대. 그래가지고선 몰살했대. 왕근이가 승리한거여 (그것을 무슨 전투라고 그래요?) 응. 그게 지형과 갈지. 무찌를 건자, 건둥이 둥자거든. 건등산 전투여. 요 앞강 있지? (예)그래 시방도 그 강이 흐르거든. 왜 같온 한민족끼리 싸우는 거야.
[건등산은 견훤을 이겼다고 하는 甄騰山이 아닌가 한다.]
② 원천석과 노고소
저기가 우리 선조께서 계신 원씨 묘자린데 맨 땅에 산이 병풍처럼 푸르다해서 취병리라. 그때부터 자릴잡고 살았어.(아, 예)
태종때 애긴데 여기 원주 치악산이 있잖아? 우리 선조가 있는데 거기서 은거를 했어. 이성계 가 찾아와서 벼슬을 주려고 했지. 그 시절 시조가 있지.
‘흥망이 유수로다, 만월대도 수수로다
녹조에… 응 잊어버렸네
(이성계가 말입니다. 내려와서 선조께서 은거 중일 때 전해지는 어떤 이야기들은 없습니까?)
태조가 내려와서 선조를 찾아다니니까 노고소 부근에서 혼자 피해 다니며 살았지. 빨래를 하 다 보니까 바위 같은 게 이상한 게 오드래. 그래서 바위야 물렀거라 했대. 자세히 보니까 왕이 오더래. 그래서 그 소에 빠져 죽었대. 노고소라하지. (그 선조 이름이 뭐예요?) 운곡(雲谷), (운곡이 호 아네요?) 운곡이 호지. 하늘천자에 석자야 원천석(元天銀)이야.
③ 감사 욕바위
이건 오래 된 건 아니야. 이조 말엽 21대 아마 철종 때나, 아마 이렇게 될거야. 여기서 빤히 들여다 보여, 낮이면 산을 애 업은 거 마냥 바우가 있다고 산이 뼈죽하게 됐는데, 순 바우로 된 바우봉인데, 꼭 애 업은 것 같다고. 그걸 욕바우라 그런다고. (욕바위요?) 그런대 지금은 조금 그거를 간략하게 해서 욕바우라 하는데. 원래는 감사 욕바우라고 그래. 아마 그 전에 원주에 민란이 일어나고 했는데, 그 전인지 모르겠어. 그 전엔 원주가 국도가 이렇게 나 있지만, 서을 갈려면 그리 해서 가. 안청이라 하는데. 안청으로 해서 양평으로 일 간다고. 그 때는 국도야, 이조 말까지는. 그래, 감사가 그길 지나가는 걸 감사 곁에선 욕을 못하잖아. 잡혀죽어니깐. 굉장히 험하거던 못을라가거던 저 짝 바람벽같이 절벽이 됐거던. 굉장히 놉지. 아마도 평지에서 그기서 쭉 벽같이 을라가는데. 아마 이삼백매다 쯤 될거여. 직각으로 그렇게 높다고. 그래 거기 을라가서, 그기 사람이야 아마. 욕을 했다고 감사한테. 막 욕을 하니까. 이걸 쫓아 을라가야 할텐데. 쫓아을라 갈 수가 있나. 그 앞만 군졸들 포졸들이 말이야. 을라가 잡았심 좋겠는데. 그 길 을라가려면, 어디가 숨었는지 알아. 그래 길에서 빤히 보이는데. 그래서 거기서 돌을 굴리며 바로 길에 떨어지는 곳이지. 그래 막 욕을 했다고. 감사를 욕을 하니까. 감사가 화가 이렇게 나가지고. 그래도 감사라면 뭐야. 정 삼품인가, 무슨 참판 비슷한 것인데. 지금 도지사 격이니까. 원주진영 감사가 있잖아. 원주 관영 아니야. 아 그래 포졸들이 좇아 을라갔어. 쫓앙아을라가긴. 사다릴 바우 위에 을려놓고 을라가는데. 차, 사다릴 위에서 끌어당기네. 그래 대고 욕을 하는거여. 가만히 보니깐. 감사가 자기 체면이 있거던. 그 군졸 포졸 나졸, 쭉 따라가는데. 수 백명 따라가는데. 욕을 해대는데. 그놈 붙잡히진 않고, 널다란 바우 위에서 사다릴 끌어을렸지. 잡지 못하지. 거기서 조금 지체하다가. 욕만 얻어먹고. 체면만 안서거던. 에이, 얼른 가자고. 미친 놈이라구 말이야. 그래, 미친놈 된 녀석은 무사 했어. 붙잡히지도 않고. 거걸 악짝같이 붙어면 잡지. 아, 이틀 사홀 굶어죽을 거야? 밑에서 지키고 있으면 잡는다고. 그런게 있어. 감사 욕바운데. 지금은 약해서, 감사를 빼고. 욕바우라고 한다고.
④장사우물
칠월 백중에 저쪽하고 이쪽 취병하고 씨름을 하면 못당해. 저기 사람이 여기 사람을 못당해 시방도 청년들이 여기를 꼼짝 못해.
(예기사람이 다 세요?)다쎄.
(장사마을이네요.) 저기 우물이 하나 있는데 곱새가 한달을 방을 얻고서 그 우물로 밥을 해 먹고 거뜬히 낫대(그 우물이 지금도 있어요?) 시방도 먹고 있어. 요기가면 있지.
(3) 예지설화
① 황정승이 유언
(옛날 황희정승이 죽자 중국에서 조선에 인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 보려고 공작을 보내 키 우게 했다.) 중국에서 공작을 보냈는데. 먹지도 않고 탈났단 말이야. 그래도 이제 말하자면 큰집에서 보냈는데. 이 걸 잘 맥여 키워야겠는데, 아 이 탈났단 말이야. 그래도 이제 사신을 황해(황희), 황정승은 죽었지만 그래도 황정승이 무슨 얘기가 있을거라고. 황정승 집으로다가 사람을, 사신을 보냈거던. 그래, 보내가지고설라무네. 그 아들은 아마 그래도 집에서 농사나 짓고, 아마 그시기(벼슬자리)에 참여를 안했던 모양이여. 집에 있는데, 정승님이 돌아가실 적에 뭐라고 말씀이 있었느냐고 그러니까. 아 그저 아무 말도 없고, 저는 어떻게 먹고 살라고 돌아가시느냐고. 이러고 하니까 아 공작이래 낮개미 먹고 살겠느냐고. 그 이 한마디 하시고 운명을 해셨느라고. 아 그 사신이 가서 나라에다 얘길 그렇게 보골 하니 아 낮개미(날개미)를 잡아주니 잘 먹거던. 그래 공작은 낮개밀 먹고 살거던. 그래 중국서 야중에 알아보니까. 아 공작을 잘 맥여서 잘 키워서, 아 야중에 중국으로 보냈단 말이야. 그래서 아 아직도 조선에 인재가 있었구나 이랬다는 거야. 그래, 황정승은 죽어면서도 나랄 위한 거지.
(4) 장수설화
① 힘 센 최진사 오누이
최진사라고 해. 평남 최씬대 요기서 조금 내려가면, 시물리라는 곳이 있어. 속칭 시물린데, 그 동네에 최씨가 조금 많이 살아. 그 자손은 여기 안살고 딴 데 가서 살아. 그 자손 6, 7대 손이 있다구. 여기선 최진사고 해, 원래 진사니까. 어렵게 살고 그냥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근력이 좋아. 좀 세긴 했었나 봐. 많이 세었겟지. 이 양반이 여러가지 얘기가 있는데. 서울서 어떻게 하다가 살인을 쳤다고, 사람이 악해서 친 것이 아니야. 어떻게 하다가.(우발적으로요?) 그렇지., 불잡히면 죽는거야. 그 때 살인은 바로 사(死)야. 지금이야 한 몇년 살면 되지만. 그래가지고, 서울서 불잡히면 죽는거 거던. 여기 온거야. 서울서 이백 사십리니까. 원주까지. 여기가 한 이백리는 넘지. 서울서 밤중에 아마 뭐 놀다가 술먹고 놀다가 그런것 같아. 서울서 밤중에 달아나 새벽에 여길 은거야. 그래. 그 집이 잘 못사니까. 찌그러저가는 상판집이야. 아마 이엉은 그 전에 엮어 놓았던 모양이지. 짚을 해요. 식전에. 그리고 마침 날이 흐리거던. 그래 동네 사람들이 자넨 서 울갔다더니 언제 왔나. 아 어제 저녁 때 왔네. 아 비가 오겠으니 식전에 짚을 해놓으려고 그래. 서울서 새벽녘에 와가지고. 말은 새벽에 떠났다고 하지만 아마 초저녁에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그러니까. 알리바이를 성립하는 거지. 식전에 삼칸집을 다 이었대요. 이틀인가 헌데. 그 이튿날인가. 원주서 포졸들이 잡으러 왔드래. 살인자라고 말이야. 그렇지 않다고 그 사람이 식전에, 그 저께 와가지고서 어제 짚을 이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인정하네. (못잡아 가겠네요?) 아, 못잡아가지. 성립이 되는데 어떻게 잡아가. 그래서 살인을 면했고. 거기가 사물리라는 동넨 데 속칭 사물리야. 이게 지금 포진. 그리고 행정구역으론 포진리고. 속칭사물리인데. 아 거기서 10리되는데. 놀러다니는데 멀지 뭐.
한 번은 놀러가다가. 나막신을 신고 밤에 놀러가다가 용변이 메려와서 뒤를 보는데. 아 뭐 뒤에 송아지 같은 놈이 엉금 앉는다 말이여. 아마 이렇게 어시렁 밤이었는가 봐. 용변보니까 개가 그걸 잘 먹으니까 갠가 보다하고. 아 그런데 개치고 너무 커. 지금은 도사도 있고 그렇지만. 옛 날에는 똥갠데. 개는 아니란 말이야. 가만히 보니까. 호랭이건던. 아 이놈 잘 만났닥. 이레구 놓다가. 한 손으로 이렇게 붙잡아 가지고선. 이래 앉아 누는거야.밑에다 요렇게 모가지를 여기다 쩡겨서 다누었어. 그런데 요놈이 발끈발끈 한단 말이야. 죽을라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거야. 빠져 나을려구. 그런데 나막신을 신었으니 나막신이 다롱 다롱 들리거던. 그래서 인제 하 그 놈 맹랑하다고 말이야. 아, 볼 일을 다 보고 나니깐. 죽었어. 그래 숨이 맥히게 목을 꼭 죄었으니 말이야. 그래 집에 와서 대추나무가 마당에 있는데. 대추나무 가닥에다가 호랭이를 갖다 찡겨 났단 말이여. 아, 식저에 동네사람들이 보니까. 왠 대추나무에 호랭이가 목을 매달아 죽었거던. 하, 최 진사댁의 대추나무에 호랭이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사람들이 모여서 난리가 났지. 소문이 금방 금방 퍼지잖아. 그래서 그 호랑이 힘이 얼마나 센가 하고 동아바를 가져 오라고 해서 자기는 나막신을 신고, 뭐여 본당에 이러구 앉아서, 뒤보는 것처럼 앉아서, 동아바 한쪽 끈을 쥐고 장정 스물이 잡아 다니니, 말이여 나막신 뒤끝이 달롱 거리드래 아 호랭이가 하나가 사람 스물의 기운이라고 말이여, 그래서, 그 동네를 스물리라고 지었다고 그런데, 누이가 힘이 더 세드래. (최 진사의 누이가요?) 응 최진사는 댈것도 아니래. 힘을 안쓰지 힘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지. 최진사가 식전이면 그러니까, 조깅을 하는거지. 식전이면 일어나서 어디가서 이실이 후줄해서, 돌아 오곤 한단 말이야. 아 그래서 동생이 무얼하러 다니나 하고 누이가 뒤를 슬슬 밟아서. 거기 어디에 묘비가 있는데, 그 비석 망부석을 그 거를 빼서 역기를 하는 거지. 던졌다 받기도 하고, 그리고, 또 세워 놓고 그러거든 그래 누이가 보니 몰래 본거지. 이게 소문이 나거나 주인이 알면, 주인이 혐의 할테고 남의 묘비를 막 빼서 막 집어 던지고 하니 말이여. 관가에 고발하면 묶여 들어가는 거라고, 그래서, 버릇을 고쳐놔야 겠다고. 그때 까지는 지 누이가 힘이 더 좋다는 것을 몰랐거든. 낮에가서 슬며시 가서., 그 놈의 망부석을 번쩍들어서 땅에 탁 말뚝 꽂듯이 쪽들 어가고 쪼끔만 남네, 위가 그러고 시치미 뚝 떼고 집에 가있는 거지. 그래서 최진사가 그 이튿날 또 조깅을 가 가지고, 아 보니까 누가 쾈 박아 놨단 말이야. 땅속에다 이놈을 뺄라고 아무리 힘을 줘도. 빠지얀 말이야. 힘이 모자라니. 그래, 그 최진사 누이가 다가가서. 거 뭐 그리 야단이 야 하니. 누님은 어제 오셨어요. 니가 나가서 안돌아와서 조반먹으라고 왔다고. 아니 망부석이 땅에 박혔는데. 아무리 빼려해도 안 빠진다고. 여지것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장난을 했는데. 이게 소문나면 내가 그랫다고 할건데. 이거 큰일났다고 말이야. 땀을 뻘뻘 홀리며 빼니, 빠지냔 말이 야. 그까지걸 뭘 못빼가지고, 그 걸 가지고 무슨 힘을 쓴다고. 그러느냐며. 아, 누이가 가서 땅을 조금 파서, 쑥 힘 안들이고 쑥 잡아 빼놓커던. 절대 힘자랑하지 말라고. 힘자랑 하다간 잡혀 죽어. 역모에 몰려 죽어.
(5) 호랑이 설화
① OOOO
이 동네 문막면 구청에서 이사온 사람이 있는데 그 마을 부인네가 산에 나무를 하러 을라갔 는데 강아지 새끼처럼 귀여운게 있더래. 그래서 ‘아이 너 참 이쁘다’그랬대. 처움에 무슨 짐승인 지 몰랐는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까 무서운 생각이 들어가는데 벌써 틀리거든 금과 호랑이는 처음 봐도 안대는 거야. 그 다음엔 데리끼를 던지고 그제서 무서워서 신도 버리고 집에 왔는데 집에 오니까 벌써 데리끼하고 고무신이 벌써 어떻게 갖고 왔도래. 에미가. 근데 나쁘다고 해꼬지를 했으면 그 여자도 혼났지.
내 새기 이뻐하면 짐승도 다 알잖아. 고마워서 벌써 갖다놨더래. 그건 거짓말아냐. 그러니까 아주 고맞다 그거지. 지 새낄 위해주니까 고마워하지. 그걸 누가 때려. 사람도 그래요. 지 새끼 를 누가 때려봐 그걸 부모가 좋아하나.
② 호랑배미
이건 옛날 애긴데 어떤 사람이 소를 타고 나무하러 가는데 서낭 고개가 있어 저 건너가 건등 면 석진데 여기서 빨래를 거기가서 해했지. 빨래를 하는데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닥치더라는거 야. 그래가지고선 소에서 내려 호랑이랑 싸워서 호랑이를 잡았어. 에, 호랑이를 잡으면 금방 소문이 나거든. 근데 그 사람이 그 놈을 잡느라고 며칠 않았단 말이야.
그때는 관가에서 감찰관인가?(네)관찰관에서 알아서는 사람을 시켜 포승을 해서 잡아오라 했지. 그래가지고는 볼기를 어떻게 두들겨 맞았는지(볼기를요?)그래, 호랑이 잡은것도 다 갖다 바치고 그래서 나와서는 아파서 누워 있는데 아 나중에 관가에서 또 부르지 않겠어? 그래 갔더니 상여금을 주더래. 용감하다고 말이야. 무식한 농군이 용감하다고 말이야.
그래서 그 돈을 갖다가 땅을 샀어, 닷 마지기. 닷마지기면 한 700여평 되지. 옛날에 그런 양반 이 있었어. (그 사람 존함은요?) 그 사람 원용준이야 (원웅준요?) 원여엉준(원영준요? 참 용감한 분이네요.) 웅 용감하지. 그 논 이름이 호랑배미야. 그 상여금을 타다가 땅을 샀단 말이야. 그래 호랑배미라고 유명해. (이게 언제 얘기예요?) 그게 응. 세종대왕때 일꺼야. (아주 오래 됐네요.)
③ 호랑이 비석
한 30년젼에 사당뒤 골짜구니에다 저수지를 막았어. 수리조합에서 지금은 농지개량조합이지. 사변에 시작해서 사변 후에 메꾸었는데 그 효자산 그러니까. 거기가 좌청룡이지 청룡등을 깠단 말이야. 그런데 아주 청룡은 아니여, 근데 산소는 그 앞에 있고 여긴 아주 얕은데 사당 뒷산이지 거길 까서 둑을 만들었는데 언둑을, 저수지 둑을 그런데 호랭이가 나오네 말이여 사람눈은 별로 못보고 식전에 자고 나면 집집이 밟혀 있어. 마당에 호랭이 발짝이. 그리구 울음 소리를 듣구 사람 눈은 못 보고 그런데 발짜국은 분명히 있거든 개발자국 같은게 분명 큰 건 호랭이거든.
그리고 여자가 둘인가 셋이 미쳤어.(호랑이를 봤기 때문인가요?) 괜히 하나가 미치더니, 보문(보면) 또 하나가 미치고 미치고 곤치긴(고치긴)곤쳤는데 우정 서울에서 무당을 한 댓씩 해서 동네 굿을 한달 이상 했다고(예)근데, 미친게 이상하게 미쳤어 오늘 군수가 나온다 이눔의 새끼 나오면 혼내킨다고 말이야 그런대 마침 군수가 나온단 말이여(이거 실지여) 그래서 사당에 추후에 호랭이 비석을 세웠단 말이야. 지금 있다고. 그래서 호랭이가 없어졌어, 호랭이가 안나타나. 그래서 마을이 황효자가 타고 다니던 호랭이 혼신이다 하지. 그래서 비석을 해 세웠지. 그런데 하나는 완전히 미쳐 나갔다지(두 사람이 미쳤는데요?)셋인가 미쳤어 그동네가 여기서 가깝기도 하고 또 여기 이사람네 외이가가 황씨네거든 그래 사정을 잘 알지(그 동네 이름이 뭐죠?) 문화계라 하는데 반계리라고 하지. 반계3린데 거리가 한 이십리 되지.
④ 포수와 우둔한 호랑이
거짓말인지 모르는데 옜날 노인네들한테 듣고 하는데 원주 치악산이라고 있거든 (예) 치악산에 우틱해서 (어찌어찌하여) 사냥을 나갔어요. 사냥을 댕기는데 날이 저물어서 영, 두달 째 사냥을 댕기다보니까 캄캄한 밤에 어디가. 찾아가 잘 데도 없구. 근데 한 집이 불을 깜빡깜빡 하더랴. 그리 그집일 갔어요. 여보, 여기 하룻밤 자고 갑시다 하니까 자구 가는건 문제가 아니요 우리 식구가 다 호랭이 한테 물려갔수. 하룻저녁 하나씩 자꾸 호랭이가 물어간다고 그래 포수가 있다 가서 정말 그러냐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그러드래. 포수가 자더니까 참, 호랭이가 쿵닥쿵닥 하고 들어오더래 으一흥 하고 그리더니 사람을 또 데리러 왔더랴. 그래 주인을 마저 잡아갈 판이니 대신 가야지 포수가. 포수가 노나끈을, 끈아플을 한다발은 되게 해가지고(무슨 끈이요?)노나끈. 한 발은 되게 을감질을 해갔고 호랭이 한테 업혀 갔다 말이야. 가보니까 호랭이가 사람을 끌고 가선 꽁무니를 굴이다가 디밀구 까꾸로 뒤로 들어오더래. 그래 이놈의 늙은이가 호랭이 굴에 들어 앉았데. 새끼가 우물우물 하더래. 호랭이 새끼가 그래 호랭이가 또 까꾸로, 뒤로 들어오드래 그래 홀감질을 해 가지고 불알을, 호랭이 을감질을 배짝 잡아 다니니까 호랭이는 아파 죽겠지 뭐 괜히뭐. 호랭이가 낑껑거리니 장지에 을감질을 불알을 흘겨 잡았으니 제깐 놈이 용을 쓰나 뭐야. 이놈의 호랭이가 도로 나갈려고 허니 점점 잡아 댕겨 호랭이가 불알을 움켜 잡아 죽었어(예) 그래서 끌어내다 놓고 보니 호랭이 새끼가 서너마리 있더려. 내 이놈의 호랭이 새끼 다잡아 죽여야 겠다고. 그 노인네가 호랭이 새끼 세마리. 에미까지 잡아서 네마리를 죽였대. 그래서 그 치악산에는 호랭이 굴 옆엔 시방두 가질 못한대 그래 호랭이도 사람 꾀만 못하단 말이 야 그놈이 뒤로 들어오지 않고 앞으로 들어왔으면 사람이 꼼짝 못하고 물려 죽었을텐데 뒤로 들어 왔으니 불알을 화다딱 구겨당하지. (웃옴)
(6) 여우 설화
① 꾀많은 여우
부모를 산소에 갔다 묻었는데 여우란 놈이 자꾸 그 굴을 파네나 하그니 여우시팔노무꺼 잡아야지. 오늘 우리 어미 산소를 자꾸 파니 여우를 잡아야 겠다고 그래 한번 삽을 가지고 지 어미 산소에 여우를 잡으려고 갔네. 가서 들여다보니깐 아 이 눔의 여우가 걸레쪼가리, 옛날 죽으면 걸레하고 옷을 모두 싸서 송장에다 파묻지 않나. 그 여우가 꾀가 많아서 사람 놀리킬려구. 걸레짝하구 피하구 확 내낄질 하네, 그래서 벌떡 놀랐데나. 이 눔의 여우가 얼마나 꾀가 많은지. 그래서 여우를 잡으려다 못잡았어요. 하 이눔의 여우틀 잡긴 잡아야 겠는데 우리 어머니 산소를 파니 잡긴 잡아야 겠는데 아 이걸 차 을려오니 치나(拓) 잡을 려면 숨길 구멍을 걸레와 피와 송장썩은 피하고 확 내비리니까 거기에 놀라서 그래서 여우한테 못당한댜. 그래서 여우를 못잡았어.
② 둔갑한 여우
옛날에 시집을 가믄(가면) 가마타고 갔어(예) 그런데 샥시(색시)가 둘이라네(왜 둘이예요?) 여우가 중간에 둔갑해서 탔어(예 탔는데 자, 어는게 내딸인지 어떤게 내 딸인지 모른단 말이여 똑같으니. 근데 딸가진 사람은 딸의 어디 흠집이 있는 걸 알잖아(네) 근데 어떤게 내딸인지 구별을 못하니까 이제 샥시 어머니가 우리딸은 저드랑이에(겨드랑)훔집이 있는데 그 무슨 홉집이 있느냐 인두에 디어서 그 저드랑이에 났다 이거지. 그래 우리 딸을 꼭 찾아야 겠는데 어떤게 내 딸인지 어떤게 여운지 알아야지 옷을 샥시를 다 벗겼어 그날 혼사를 치러야 할텐데 대를 치러야 할텐데 삭시가 둘이니 어떤거 하고 총각하고 잔치를 시키느냐 이겨여. 내딸 찾기 위해서 옷을 벗기구서 보니까 제딸 저드랑이에는 반드시 인두자리가 분명히 있구 여우는 인두자가 없드려 그래서 여우를 총으로 왔어 삭시를, 여우를 총으로 쏘니깐 여우가 됐단 말이야. 암만 샥시지만 총으로 쐈지, 제 딸은 여기 인두자리가 있으니깐 제딸은 안 쏘고 흠집 없는 놈을 쐈지 여우로 알곤 쐈단 말이야. 그러니 그놈이 벌떡벌떡 뛰더니 여우가 됐단 말이야. 그래서 여우를 잡았단 말이야. 그래서 여우가 뒨갑한다는 거여 뒨갑. 그 사람이 그 총각과 혼인하여 9남매를 낳는지 10남매를 낳는지 낳고 잘 살았대.
(7) 도깨비 설화
도깨비에 흘려서 죽은 이도 있어 낭그(나무)속에 있는데 남잔데 이(李)간데 하도 앓아서 점 쟁이를 데려다 놓구서 하잖아 그러니까 도깨비가 어후 돼지 대가리를 놓구 했어 문앞에다. 저 은행나무에서(어디 은행나무가 있어요?) 저기 있지 거기 굴이 이렇게 있어. 돼지대가리를 사다 놓고 에이 경칠 놈들 아이구 때때기만(뼈다귀)갔다 놨어 앓느니, 아무도 안가 봤는데 도깨비가 (도깨비가 와서 뼈다귀만 놓았다고 화냈어요?) 그럼. 우리집엔 이렇게 열매가 달리면 애들이 따서 모여서 냄새가 난다고 도깨비 시늉을 해서 했지. 그래니까 누가 떡을 가지고 왔대요 옛날엔 떡을 해서 고사를 해서 노놔(나누어)먹어 시방은 안그래. 그런데 거기 따라왔대요. 다 떡을 주고 난 안주더라고 그래요 도깨비가(도깨비만 안 준다고요?)응, 그 길로 그래 죽었어. 도깨비를 구박해서(그 굴안에 도깨비가 살아요?) 전에 옛날에 그랬지, 지금엔 없어.
(8) 시집살이 설화
열세살에 요 아래 같은 마을로 시집을 왔지, 이웃 사람이 와서 사주는 우리 어머니 보는데 숯 위에 얹어 허락을 혔구만 그러더니 신랑이 상투를 이만큼 틀어서 예전에 잔치하기 전에 미리 짜. 상투짜구 장모한테 절하러 왔지. 며칠 있더니 또 애들이 뭐 알아 챙도치고 젯상도 갖다 놓고 그래 대례하려고. 부모는 죽겠고 대례하네, 옷이나 시집에서 해줘 친정에서 못해주지 다 싸 데려왔어 광목천 요만하게 해고 또 바지 요만하게 해서 광목에다 물푸레 저고리 하고 또 고모가 하난데 우리 아버지가 나더러 아주 이걸 입고 어떻게 절을 하냐고 그러니까 이웃 사람들이 옷을 해 입혀 대례하구 그래 데려왔다구. 그렇게 불쌍할 데가 어딨어.(할머니 13살때 시집오니까 시어머니 계시죠, 시어머니 계시죠, 시어머니 무서웠어요?) 시어머니가 아주 무서워(어떻게 무서웠어요?) 아휴 무서워 밥 잘못해도 작대기로 막 두들겨. 예전에야 뭐 밥이 적어 쌀이. 쌀 갈어 수수쌀 뭐 이런거로 밥을 했지. 그래 그런거 밥을 하면 밥이 잘되나, 배가 안찼어 그게 생각이 나 많이. 여부케 그래나. 그러고 패주고 그래지(작대기로요?) 여기 흠집이 다 나지(오, 세상에, 신랑이 가만 있어요?) 신랑이 뭐 시방 갓 스물 넘은 손주 같은데 뭐 알아. 아주 조끄마할때 나무를 해러 갔다 오든 그냥 패줄라고 앉았어 저(저기). (나무도 했어요 할머니가) 그럼 나무해 오래지, 신이나 있나(신도 없이 그냥 가세요?) 삼어 짚으로 삼는걸, 해서 고무신이 그땐 웁어서(예) 그리구 나무를 해오구 그랫어. 아휴 말도 못해 이루 말을 어떻게 댜해.
저녁에, 저녁을 호밀을 갈아 수제비를 해먹었는데 화로 이지렁개를 여기다가 툭 떠나 그래 이제 그거틀 감자를 내가 하나 갔다가 구웠어 허연 감자를 이만해, 아휴 벼룩이를 좀 떨어야 한다고 그걸 봐서. 감자굽는걸 봐서 벼룩이를 떨어야 한다고. 그래고 벼룩이가 화로에 떨어지나. 그걸 꺼내놓구서 그 이름날 신랑 뵈키고 시아버지 뵈키고 시동상(시동생)뵈키고 아주 시커먼 걸 꺼내놓구서 그 이틈날 저녁 마실꺼 오면 또 뵈키고 그리고 그랬어. 조반을 상을 못 가지고 나갔어 부끄러워서 감자궈서 끄네 논것 땜에(어머, 진짜 너무 안되셨어) 저녁을 채렸는데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데(예) 네 식구에 저녁을 먹는데 시동상이 간이 이것 빼기(밖에)없나. 이래니까. 즈 성이 “아 고추장임 밥먹지 뭐’’그랬다구 지 여편네 역네(역성)했다고 막 두드려 아돌도 두드리고 나두 두드리고 쬐겨가 메칠씩 가 있다가 들어와. 여편네 역네했다구 고추장임 밥먹지 그때 그 소리에 왜 패줘.
(아주 미워 하셨군요 ㅅ어머니가)응, 이불도 못덥고 자다가(이불이요)응, 이불도 못 덥고 자 다가 열여덟엔가 이불을 덮었어. 열 여덟에.(아이구 5년동안 이불도 못 덮으셨어요!)사뭇 이불 없이 살았지 친정에도 없지 시집에도 없지 이래서. 열 여덟에 이불을 해 덮었지(겨울엔 추워서 어떻해요?) 그냥 자지 뭐 치마 이렇게 뒤집어 쓰고(치마를 뒤집어 쓰고 그냥 주무세요?) 웃방에서 자 옷방에서 옷방.(불은 넣었어요. 방은 따뜻했어요?) 방은 차지 않았어. 그방 여태 있어. 동네 사람이 죄 나한테 잘한다고 해(잘한다구요)그럼 칭찬이 자자했지. 그렇게 해도 안내빼구 동네 낯 안깬다구.
(9) 기타 설화
① 업구렁이
어떤 사람이 쌀 한말 꿔 달래도 안 꿔주고 어떻게 긁어 모으려고만 하는지 그래 쌀 한 말 꿔 달라고 하니까 안꿔주더래.
그래 나물이라도 뜯어서 쌀과 바꿔먹어야지 하고 그 아주머니가 며칠 굶었으니까 간신히 다 리를 옮겨 나물을 뜯으러 산에 을라가니까 큰 구렁이가 이만한게 딱 막았단 말이야.
근데 그 아주머니도 무섭지 않았대. 그래 니가 왜 내길을 막고 있느냐 그랬더니 가만 있더래. 근대 구렁이가 데리끼(나물을 캐서 담는 바구니)안으로 스스로 들어간단 말이야. 그래 나물이고 뭐고 행주치마를 벗고서 그걸 덮고서 집에 왔더래. 근대 어떻게 된 일이 쌀한말 꿔 달래도 안 꿔주던 사람이 자네 쌀 없어? 배고프디 몇말 갖다 해 먹게 하길래 갖다 지어 먹었대.
아 그제서 부터는 인제 괜히 나 저기 땅이 몇 마지기 있는데 자네 돈이나 몇푼 갖다주고 거 기가서 살게, 그 집 재산이 몇해 안에 싹 그집으로 들어갔어. 그니까 하도 긁어 모으려고만 하니까 하늘 땅이 벌써 밉겠지. 부자네 재산이 다 다른집으로 넘어간거야. 그 집이, 그 큰 놈의 재산이 그 사람한테 싹 넘어왔어. 구렁이가 업이여. 그 집에서 나온거야(부자집이요?) 그래. 거기서 나온거여(할머니 : 구렁이가 칠성님아니여 칠성님) 벌써 그 사람이 하도 무섭게 하니까. 근데 있는 사람이 쌀 몇말 줘도 괜찮거든, 그 집은 싹 망하고 만거여. 그니까 옛날에도 업이 있다는 기여. 그니까 거짓말 아니여.
② 적 선
기린면이라고 있지?(네.)
그때 뭐야 가물어 가지고는 먹을게 없어서. 그때 뭐 사람들 다 잡아먹고 그랬거든. 그런 얘기 흔히들 들었겠지?(아. 네)
그래서 증조 할머닌가! 아버지한테 증조할머닌지 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하여간 얘길해. 기 미년에 할머니가 딸네 집에 가는데 사윈가 딸인가 칼을 갈더래. 정신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환장한거지. 그래가지고서 그때는 저 위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아마 살기가 동네로 몇 째 안갔나 부지? 그래서 우리 할머니가 가마솥에다가 팥죽을 써서 가지고는 그저 언네(어린아이)를 안고 멕이는데 읃어 먹으러 오는 사람을 한 그릇씩 다 퍼주었대. 그때 관가에서 알아서는 상금을 줬대.
③ 지네이야기
옛날에 살더니까는 시나비(시나브로)몸이 아프네 하 몸이 아프니 약을 각채가 지어 먹어야 났나 세상에 났나. 얼굴이 자꾸만 노란이 그러더군 하 그 이상하거든 그니까 한 사람이 뜩 놀라 가느데니껀 대구 알터래. 자네가 알잔어 용부자라는 용부사가 자꾸 그냥 내려다 보구선 자꾸 노(독)를 드리는데 이렇게 몸이 아프다니깐 용부사가 뭐 용부사여 천정에 보니까 지네가 그 대들보에 떡 붙어 있더라네(지네가요?) 지네가 얼마나 큰지 용부사만 하데 그래 그사람은 용부사로 눈에 보였거든, 지네가 노을을 들여가지고 이눔이 인병아 하드래 이 사람아 자네 천장에 그 용부사가 아니여 그 지낼세 저 지네를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허니까 지네를 내 손으로 환자가 잡을수가 없어서 자네가 잡아주게 그래 이사람이 닭을 한마리를 가져가서 (예) 노를 지었네. 닭이 가서 노를 지니까 지네가 뚝 떨어지더래 그런데 이놈의 지네 뚜굴뚜굴 굴르더니 죽더래(닭을 놓으니까요?) 닭이 또 노틀 드리니까. 지네는 닭하고 아주 상극이야 그래서 시방 지네 닭을 해먹는다 보약을 해 먹는다 지네를 잡아다가 닭을 넣어 가지고서 과 먹는 것의 원인이 그래서 지네가 닭하곤 웬수여 그래서 지네닭을 해 먹는다 해선, 돈 있는 사람들이 지네를 사다가 닭을 사다가 해선 약을 해먹고 그러지 지네도 그 놈이 노을이 엄청나야 지네도 노을이 많고 사람을 해꼬치 한다.
④ 나도 마누라 있다
어느 노인네가 아들을 삼형제 뒀는데 제사틀 지낼려고 적을 부치더래. 근대 노인네니까 나모양으로 늙은이는 사랑을 쓰지.
적을 부치는데 생전 마누라 있으면 마누라, 할멈 있으면 할멈하고 부르는데 냄새를 맡는데 누가 적을 갖다 줘야지. 그때 멀끔히 담배만 피고 있는데 맏자식 소리가 저벅저벅 나는거야. 소리만 들어도 큰 놈인지 작은놈인지 알잖아.
인제 맡자식이 오니까 인제 내오지. 아. 이리와요? 거기서 먹는단 말야(그렇군요) 그래 먹고 나니 또 둘째 놈이 오니 둘째 며느리가 아, 이리와요? 한소당 잡숴요. 거기서 뜯어 먹는단 말야. 또 세째놈 역시 그렇단 말야 아 좀 괘씸하겠어? 그때, 느들도 자식을 나면 나갈을 꺼야. 서운하겠지. 아주 섭섭했어. 나 같으면 다 때려부술꺼야. 그데 할머니가 와서 느 시아버지 적 한소당 갖다 드렸니? 바빠서 못 갖다드렸어요. 아, 시장하시겠어요.
사랑문을 확 열고 얘들아 나도 마누라 있다. 그랬지. 나도야 마누라 있다 그랬더래.
⑤ 빈대껴 망한 절
옛날에 절이 있었는데 망할때는 어떻게 망했느냐?
동화산 뒷절에 나무하러 가면 벗섬을 쌓아 지은 별당이 있었어. 빈대가(빈대요?) 빈대(납작한 버러지)라고 알꺼야 아마(네) 그 빈대가 절을 휩쓸어서 망했다는 거여(빈대가 절에만 있었나요?) 아니 절에만 있는게 아니라 마을 전체에 꼈어. 빈대로 망했다는게 가짓말은 아닐꺼여.
⑥ 중국을 구한 인재
그 전에 어느 대신이 나라에 가서 일하고 있는데. (중국에서〉하늘에 비가 안와서 백성들이 굶어죽게 된다고 아주 소동이 야단이고 그렇단 말이야. 아, 그러니 아마 예전에는 중국하고 조 선하고 형제국이라고 그러는 모양이었지. 그러니 아마 중국이었지. 조선에 인재가 났다고 하니. 아 인재를 한 번 보자 그러거던. 그래 거기 갈 적에, 중국을 가는데 어렵다 이거야. 그래 할 수 없이 배를 하나 장만하여 중국을 갔어. 가는 도중에 아, 가다가 용을 만나서. 용을 만나 용궁을 가서 용한테 가. 그 아무 나라에 그기는 비가 안와서 백성들이 굶어죽게 됐다고. 비가 안와서 백성이 굶어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했단말이야. 그래가설라무네, 용하고 그기가서 비가 막 오게 했단 말이야. 그래, 비가 오게 하니까. 아, 뭐 그나라 백성들이 아주 조선서 인재가 오셨다고. 아주 우리 인제 백성들 잘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제 그렇게 하는데. 아, 인제 그 때도 말할 것 같으면 말할것 같으면 인제 천자가 서울에 있어면, 이런 댄 조그만 고을이니까. 쪼그만 고을에서 하는데. 아, 그저 조선서 인제가 와서 아 그렇게 했다고 그래니까. 아 그럼 불러서 그래 불러서 병풍에다 글을 지어설라무내 전부 붙었어. (천자가요?) 어, 천자가. 그래, 그러니 인재가 들어오니까 병풍을 얼른 얼른 넘기면서 아, 이제 보라고. 글을 아니 보라고. 그래 들어을새 없이 자꾸 넘긴단 말이야. 자꾸 넘기니까. 그 넘겨가설라무네 들어가 서니. 들어 오다가 글을 보았느냐. 아 보았습니다. 거걸 외겠느냐. 아 그래 제다 외더니. 한자가 안외거던. 그 어쩨 한자를 안외는냐. 그러니까. 아 그건 젭혀서 보지 못했습니다. 아 가 보라니깐. 아 이렇게 종이때기가 한 쪽 이 젭혀있더래. 아, 그런 인재가 조선에서 예전에는 많이 나고 그랬는데. 시방은 쌈하는 인재만 나요. 탈이여. 탈….
⑦ 깨끗한 음식
그 전에 음식을 장만해서 그저 임금한테 바치고 그러잖아. 그래, (임금이) 떡, 용상에 앉아서 보니까는. 아 이 아홉 궁녀들이 음식을 맨들다가. 아 그 음식이 땅에 떨어지니, 떨어지니까 아, 얼른 집어서 샛바닥(혓바닥)으로 핥아서 상에다 도로 을려놓는다, 이거여. 아 그걸 보니까. 그 좀 마음이 좋지 않다 이거여. (왕이 말입니까?) 아, 그럴거 아니여. 음식을 깨끗하게 해서 을린 다는 것이 그렇게 한다 이거야. 아, 그거야 어떻하나. 그 이걸 할수가 없어. 아, 그걸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어설라무네 신하들을 모아놓고서. 말을 물었어. 뭐라고 물었나하면, 음식은 어떻게 해야 깨끗하나 물어보니까. 다 모르데, 한 신하가 하는 말이 그저 음식은 맨들 때 보지 않는 것이 제일 깨끗합니다. 이러다는 거야. 그래 설라무네 참, 경에 말이 옳다고.
음식을 맨드는 걸 보면 사실 지저분하지, 그러니까 보지 않는 것이 깨끗하다 이래는 거야.
Ⅲ. 민요부문(民謠部門)
1. 개 요
민요는 민중이 그들의 생활터전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의식을 특별한 기교나 꾸밈없이 진솔하게 불러 온 노래로서 민중의 생활 단면들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구비문학 장르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모두 18편의 민요를 채록하였는데, 기능요가 10편, 비기능요가 8편이다.
기능요에는 논매기노래 중 두벌매기노래가 4편으로 가장 많았고, 그외에 소몰이노래 2편, 방아타령, 상여소리, 희다지소리 각 1편이 조사되었다.
비기능요에는 아리랑 2편, 뱃노래 2편외에 사랑가, 유산가, 희심가, 품바타령 각 1편이 채록되었다.
채록한 민요는 크게 기능요와 비기능요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제보자의 발 음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가창자는 다음과 갈다.
①노상호(남•61세 : 부론면 법천리)
②최봉천(남•67세 : 부론면 법천리)
③이우술(남•84세 : 부론면 법천2리)
(*뒤에 제시한 민요 끝에 불인 번호는 가창자의 번호이다.)
2. 민 요
1) 기능요
(1) 논매기노래
에〜하 을씬 탄호리야
단헐에 단참에 못넘어간다
오〜하 읍씬 탄호리야
이 논베미를 얼른 다 메고
장고베미로 넘어가세
오〜하 을씬 탄호리야
단헐에 단참에 못넘어 간다
오〜하 을씬 탄호리야
서산에 해는 지고
월출동녘에 달이솟아
오〜하 을씬 탄호리야
(2) 두벌논매기 노래
[1] 얼럴럴 상사디여라 얼럴럴 상사디여라
상사부사가 동부사라 얼럴럴 상사디야
여기 북치고(북동고) 저기 메고 얼럴럴 상사디야
애논은 어떻게 메느냐
이 논 두벌 훔치는 품이 얼럴럴 상사디야
얼럴럴 상사디야 상사부사가 동부사라
얼럴럴 상사디야
이 논배미를 얼른 다메고 얼럴럴 상사디야
창구베미로 넘어가세 얼럴럴 상사디야
이 논베미를 다 댔는데 얼럴럴 상사디야
반달같이 남았구나 얼럴럴 상사디야
이 논배미를 얼른 다매고 막걸리 술을 한잔 먹자
얼럴럴 상사디야 상사부사가 동부사라
(자 농부님들 혼났습니다. 야 이 논배미를 다 맸으니까 자 휴식도 하고 술도 한잔 먹고 자 컬컬한 막걸리 한잔 먹읍시다)
[2] 구르네 구르네 평이만 슬슬 굴려라
에에에 해에 구르네 괭이만 슬슬 굴려라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논배미를 얼릉 매고
구르네 구르네 평이만 슬슬 굴려라
에에에 에에 구르네 괭이만 슬슬 굴려라
[3](사설)여보시오 농부님네〜
우리 심심한데 논매기 소리나 한마디 하고 술이나 먹읍시다
그럼 내가 선소리를 줄테니 따라서 해십시오 (예에)
자 그럼, 시작합시다
오호 심든 허리야 오호 심든 허리야
여보시오 농부님네 〃
이 내 소리를 드리는대로 〃
먼데 손님은 듣기도 좋고 〃
곁의 손님은 보기도 좋게 〃
논 잘 매고 소리 잘 하고 〃
천하지대본은 농사로다 〃
일시 연극은 끌났시니 〃
이 세속에 머물동안 〃
서로 애써 또 잇느냐 〃
이 세상을 탄생함 때 〃
누구 덕으로 태어났느냐 〃
하나님전 은덕으로 〃
어버님전 뼈를 빌고 〃
어버님전 살을 내어 〃
해선님전 영(靈)을 빌고 〃
칠성님전 명(命)을 빌어 〃
석가여래 지(智)로하야 〃
인생일신 탄생하니 〃
한 두살에 철을 몰라 〃
부모은공을 모르다가 〃
이 삼십이 당도해서 〃
애윽하고도 고생살이 〃
부모은공 갚을소냐 〃
인간 백년 다 살아도 〃
잔득 늙이 병든 나를 〃
단 사십이 못된날에 〃
어제 오날 성튼 몸이 〃
저녁나질 병이드니 〃
실날갈은 이내몸이 〃
태산같은 병이드니 〃
찾넌 건 냉수요법 〃
부르는건 어머님이라 〃
인삼녹용 약을 쓰니 〃
명사십리 해당화야 〃
꽃이진다 설월마라 〃
명년 삼월 봄이되면 〃
꽃은 다시 피려니와 〃
우리 인생 한번 가면 〃
어느 때에 돌아 을까 〃
여보시오 두 농부님네 〃
목도 마르고 땀도 나니 〃
잠깐 쉬어서 한잔 먹고 〃
이 논배미를 마저 맵시다 〃
[4] 오호 신 댄허리야
노세노세 젊어 노세 오허 신 댄 허리야
늙어지면 못노나니 〃
여보시오 소년들아 〃
이내 말씀을 들어보게 〃
어느춘색 지나가고
해는 첩첩 춘봉이요 물은 술렁 요조수라
(*메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따로 있어야 하는데 혼자 하시니까 힘드시다고 중간에 그만 두시었다.)
(3)소몰이 노래
[1] 어디여 어디여 뎌뎌 어리여 들으시려므나 어디여 뎌뎌
워어 워어 워워워 이려〜
어서가자 가자 가자 어서야 가자 이려~
어디여 어디여 어뎌 뎌뎌뎌 어디여 어뎌 어디여 어디여
[제보자](이렇게 반복해 나가는 거예요)
[2]에〜
어뎌 어더 어뎌 어디어러(돌아서) 어뎌러~어뎌 어뎌 어뎌
일락서산 해는 지고 월출동녘 달이솟고
석영(석양)은 넘어가고 밤은 길고 길어라
(어서가자 이랴)
어뎌 어뎌 어디어러 어뎌 어뎌
(이랴)어뎌 어서가자
(워워워 돌아서 이랴)
어〜어디어러 어뎌 어뎌(거기서 어이 이 놈에 소가 어디로 가냐 이랴)
어디어 어뎌 어뎌 이랴(바로돌아)
어뎌 어뎌 (워워 돌아돌아 이랴 어뎌 어뎌 이러)
어뎌어뎌 어뎌어뎌 어디어러 이에
명사십리 해당화 꽃이 진다 설워말고
일락서산 해진다고 너 아니 할 일 못다하면
다시 놀던 못하리라
(이랴 가자 어서가자 휘이 워워 돌아서)
(4) 방아타령
에~
어하 둥둥 방아로다 이 방아가 뉘 방아냐
강태공에 해도 처량하구나
얼씨구 좋고 지화자 좋네
전혀 허물지는 못하리라
일락서산 해떨어지고 월출동녘에 달이 솟아
저 달이 가면은 나는 언제 가고
너는 상여는 내가 언제 가냐
얼씨구 좋고 질씨구 지화자
(5) 상여소리
어허어 어허야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어 어허야
꽃은 펴서 질로 지고 〃
잎은 피어서 만발할제 〃
이제 가면 언제오나 〃
해당화야 해당화야 〃
이내진다 설워말게 〃
(6) 회다지 소리
아~
(여보시오 군방님네 자 우리 일합시다 자〜 회데기 안주 회데기 술 회데기 담배 가져오슈)
야 호리 다 갈고 에야 호리 다 갈고
천제 환영 생긴후에 〃
일월 영생 생겼어라 〃
논물이 번듯한데 〃
어이갔단 말가 〃
공부잘해 데관이요 〃
어이〜(?) 〃
일월삼경 이특할제 〃
어머님 날불들고 〃
공부잘해 대관이요 〃
얼굴은 팔월이요 〃
풍체는 이목구비라 〃
한살먹어 걸음마 하고 〃
두살먹어 인사하니 〃
세살먹어 말(?)하니 〃
네살먹어 공부하니 〃
다섯살 먹어 일하니 〃
과게(과거)가고 봉이오니(?) 〃
알쌩급제 (알성급제)하였나니 〃
(어〜 (?)) 〃
사서삼경 읽을직에 〃
(여보시오 군방님네 자 이렇게 됐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자 어떻게 해야하나 한잔 먹고 해야되나 더 닫자고 그래 더해요)
에야 호리 다 갈고
(?)
어 〜 세월은 가고 에야 호리 다 갈고
어〜 (?) 〃
(느리다고 어 그래 그래 빨리 채자 그래)
에야 호리 다 갈고
어하 춘색 만화방창 에야 호리 다갈고
어릴적에 짝지으니 〃
어쩌〜(?) 〃
임금의 북소리 괄도에 춤을추니 〃
어쩌다가 북을치니 〃
중간참이라도 쉬어가세 〃
오는장은 관운장이요 백마를 집어타고
제갈선생 찾아가니 에야 호리 다갈고
(여보시오 군방님네 자 목도 아프니 그만큼만 듭시다)
에야 호리 다리
2) 비기능요
(1) 아리랑
[1]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다 날 좀 냉겨주서요
정선읍내 물레방아 사구 삼십육 서른 여섯 바퀴에다
물만 가득가득 싣고 주야장차 밤낮을 모르고
빙글 뱅글이 잘도나 돌아가넌디
우리 집의 저 멍텅구리는 아랑곳 할줄을 왜 몰러
오동동 추야동동 달도 밝은데
정든님 생각이야 하루도 열 두번씩 나너라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러러리요
얼었다 녹아지는거 봄철이로구나
[2]어러리 어러리 어러리요 어러리 고개로 넘어간다
해는 지고 저문날에 어디를 갈라고 옷가설하나
처베 지베는 꽃반이요 나의 지베는 연못이라
꽃과 나비는 한철이요 연못의 금붕어는 사시사철
아라리 아라리 아라리요 아라리 고개로 넘어간다
남기라도 고목되면 오던 날새도 아니오네
꽃이라도 낙화지면 오던 나비도 아니오네
우리도 아차 늙으면 어느 시절에 놀어보나
(2) 뱃노래
[1]에야러야 어기어차 뱃놀이 가잔나
우투루루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공자 큰아기 담보짐만 싸누나
이랑 어랑 어허야
[2]에야로야 로야 에야로야로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나
만경칭파에 두리둥실 뜬 배야
출러렁 출러잉 노를 지어라 뱃놀이 갑시다
에야로야로야 이기여차 뱃놀이 갑시다
파도치는 물결소리에 단잠을 깨 보니
들려오는 노젖는 소리가 처량도 하구나
에야로야 로야 에야로야로 어기여차 뱃늘이 갑시다
으스럼 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
시집 못간 늙은 처녀가 안달이 났구려
에야로야로야 에야로야로 어기여차 뱃놀이 갑시다
(3) 사랑가
을유년 팔월 십오일 날은 해방기념일이 아니더냐
집집마다 태극기 꽂고 골골마다는 만세소리
남의 님은 나오시는데 우리 집의 정든님은 왜 못온나
평풍에 판계수자리 지고 울면은 오시것나
뒷 동산에 고목남긔 잎피고 꽂지면 오시것나
가마솔에 삶은 저 개가 어겅겅 짖어야 오시것나
이때 저따 다 아니오며는 북망산천을 가시엇나
못살것구려 못살것구려 당신이 없는 요런 세상에
누럴 믿고서 살어볼까
얼씨구나 지화자 좋구 아니 놀지는 못하령이라
(4) 유산가
화란 춘색하니 만화방책이라 때는 좋다 벗님네야
산천 경계로 구경가세
죽장망혜 단포대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만산 흥루건 일만이 또 다시 피어
춘색을 자랑노라 색색이 붉었는데
창송취죽은 창창 우러렀고 이화요초는 만만승희
꽃속에 잠든 나비 짝취고서 날아든다
유상향기는 편편금이요 화금잠은 군불소리라
상춘가절이 좋을시고(좋〜다)조화만발 경쟁홍이로구나
( )이어든 무릉도원 예 아닌가
제비는 물을 차고 기러기는 물에 젖어
허공 중천 높이떠서 눈아래 홀씬 패고
천리강산 먼 먼길에 어이갈까 슬피운다
운산은 첩첩 태산은 총총 괴암은 청청 장송은 낙낙
구부러졌다 평풍으로 졌네
저 건너 병풍속으로 우르릉 낄낄 흐르는 물이
은옥같이 흩어지네
(5)회심가
천제 천제 부난호에 사람화상 일어나서
세상천지 만물중에 사람에서 또 있는가
여보시오 시주님네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이 세상에 나간사람 뉘 덕으로 나왔는가
불 보살님 은덕으로 아버님전 피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석가여래 기도하고 인생일신 탄생하니
한 두살에 철을 몰라 부모은공 알을손가
이 삼십을 당도하니 애옥하고 고생살이
부모은공 못다갚아 무정세월 질로간다 무정세월 절로간다
이팔청춘 소년들아 늙은이 망녕 웃지마라
눈어둡고 귀먹으니 망령이라 승을 보며
구석구석 옷는 모냥 절통하고 분하구나
허릴없고 허릴없네
홍안백발 허였으니 다시젊진 못하리라
인간칠순 다살아도 잔득놁어 병도 늘고
걱정근심 더뎌하며 단 사십읕 못사나니
어제오늘 성턴몸이 저녁날로 병이드니
생생하고 약한몸에 태산같은 병이드니
부르나니 어머니요 다만 찾는 냉수로다
인삼녹용 약을쓰니 약덕이 있읍소냐
모여둘어 굿을하니 굿덕이 있을소냐
허릴없고 허릴없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꽃은 졌다 다시 피련마난
이내인생 한번가면 어느시절에 다시을까
불쌍하고 가련하다 언제 다시 돌아을까
(6) 품바타령
얼씨구 지지구 자리한다 품바하구두 자리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오호오 이 놈이 이래봐도 정승판서 자제로
팔도강산이 머다하고 각국 돌아왔네
찌구 지지구 자리한다 품바품바도 자리한다
네 선생이 누구인지 네 보다가도 자리한다
앉은 고리는 동꼬리 쥐는 고리는 문고리
나는 고리는 꾀꼬리 입은 고리는 저고리
지지구 지지구두 자리한다 품바품바도 자리한다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봐 일이송송 대송송 밤중 샛별이 뚜렷하다
이자를 들고나 보니 이행소리가 행소리 밤중 샛별이 들어온다
삼자를 들고나 보니 삼십먹온 노총각 장가못가 큰일났네
사자 한자를 듈고나 보니 사시사철 바쁜디 즘심참이나 늦어간다
오자를 들고나 보니 오륙행금 목소리 팔도강산이 호령한다
육자 한자를 둘고나 보니 육이어에 집을잃고 거러지 신세가 웬말이냐
칠자 한자를 들고나 보니 칠년대설에 환갑을 빗방울 오기만 기다린다
팔자 한자를 둘고나 보니 판문점에 포로교환 애국지사가 누구인가
구자나 한자를 들고나 보니 군인생활 구년만 갈매기 소경이 웬말이냐
십자 한자를 들고나 보니 시집간지가 십년만 아들에 자자 삼형제
천자 한권을 못가르켜 과거보기가 힘이든다
지지구 지지구두 자리한다 품바품바도 자리한다
V. 民俗部門
1. 머리말
민속은 민중의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의식주, 신앙 및 각종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이다.
민속반에서는 통과의례, 민간신앙, 민속놀이, 세시풍속, 민간의료, 풍수지리 등으로 나누어 원주시 행구동 국향사 입구 신월랑마을, 원주군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부론면 손곡리 등 3지역 에서 조사하였다.
이 조사에 도움을 주신 제보자들은 다음과 같다.
김부경(남•80세 : 원주시 행구동)
신건순(남•70세 :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
정태일(여•70세 :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 )
김택수(남•51세 :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
2. 지역별 민속자료
1) 원주시 행구동(국향사입구 신월랑마을)
행구동은 원주시로 편입되기 전에는 원성군 판부면 행구리였으며, 자연부락 이름은 신월(新 月)랑 마을이고, 6개 부락이 합하여 행구동이 됐다. 쌍다리를 건너서 치악산 쪽으로 중앙선 철로를 넘어서 산재한 마을들이 행구동이다.
유서깊은 국향사(國亨寺)는 이마을 소속이다.
(1)통과의례
①출산
신월랑 마을의 출산 관습으로는 혼례 후 시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들바위 돌탑에 돌을 던져 탑에 돌이 얹혀지면 아들을 낳고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는 풍습이 있다.
출산 후에 산모에게는 미역국 외에 특별히 다른 음식을 주지 않는다. 출산전 역시 특별히 금 기하는 사항은 없지만 오리고기는 아기의 손이 붙는다하여 먹지 않는다.
출산후 금줄은 다른 지방의 일반적 풍속과 마찬가지로 아들인 경우에는 고추, 숯, 솔가지를 달고 딸일 경우 솔가지만을 달아 여드레 동안 걸어 놓는다.
②혼례
이 마을의 혼례의식은 다른 지역과 유사하지만 암탉은 콩, 수탉은 팥을 먹이고 가래떡을 사용한다.
그리고 신방 엿보기 신랑 다루기의 풍속 역시 타지역과 유사하지만 신방 엿보기의 유래는 특 이하다.
옛날 어리고 무지한 신랑이 첫날밤에 신부를 벗겨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방에 칼을 가지고 들어가 신부의 살가죽을 벗겼다하여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연유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신랑 다루기도 매달아놓은 신랑이 이웃에 불이나는 바람에 타죽었다는 얘기와 함께 발목을 묶어 발바닥을 때리는 풍습으로 전하고 있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들어을때는 썩은 새(짚)을 뿌리고, 가마귀신이 못 달라붙게 하려고 불을 피워 가마메는 사람이 훌쩍 밟고 넘어온다고 한다.
신부는 시집와서 삼일 후에 부엌일을 시작한다. 신행은 삼일만에 신랑과 함께 간다.
③상례
이 마을의 상례는 다른 지역의 것과 마찬가지로 3일, 5일, 9일, 12일 장이 있지만 요즈음은 거의가 3일장을 지낸다.
상여 메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만이 멘다.
(2) 풍수지리
이 마을의 명당자리는 대표적으로 운곡선생(원천석)의 묘자리가 있다. 옛날 도선이 자리를 잡았다 한다.
(3) 민간신앙
①국향사 산신제
국향사는 지금부터 1150여년 전 신라 경순왕때 무착대사(無着大師)가 창건, 그후 600여년 전 이태조때 오악 중 동악산을 봉하여 원주, 평창, 정선, 영월, 횡성 등 5개 군수가 모여서 매년 제향(祭享)을 봉행하였으므로 사찰명을 국향사라 하였다.
국향사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조선조 2대 정종의 둘째딸인 희희공주가 폐병에 걸려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자 산 좋고 물 맑은 치악산에 머물렀다. 이곳에 온지 백일만에 씻은 듯이 공주의 병이 낫게 되자 정종임금은 이것이 치악산 신령의 보살핌이라 여기고 공주가 머물렀던 행구동의 고문암 곁에다가 국향사라는 큰 절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그 절 옆에 돌로 제단을 쌓고 춘추로 원주와 횡성, 영월, 평창, 정선, 여주, 제천등 7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동악제(東岳祭)라는 산신제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이 절의 옆에는 그때의 제단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산신제를 지내오던 중 6.25때 끊겼다. 그후 1967년에야 치악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원주시에서 주관, 7월에 국향사에서 제사지내고 국향사에서는 3월에 ‘동악제’라 하여 제사지낸다.
2)원주군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옛이롬 전어치)
(1)민간신앙
①백운산 산신제
5월 단오 전날 밤 12시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두 사람을 제주로 정하고 살아있는 돼 지를 직접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잡아 제물로 바치고, 신앙의식이 독특해서 그날 하루는 온 마을 사람이 춤과 노래로 줄기는 민속마을이다.
서낭당에 있는 화상은 노인이 아니며 젊은 분이고 그 부인이 함께 그려져 있다. 대부분 태백 산맥을 넘어 영서쪽에서는 남서낭신만을 모시는데 이 마을에서는 동해안 서낭제처럼 서낭과 여서낭을 함께 모셔 제사지내는 독록한 형태의 서낭제를 지낸다.
화상을 보면 말이 옆에 있고 말꾼이 있는데 말은 서낭신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위패를 보면 “백운산선왕지신위”라고 되어 있어 백운산이란 말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서는 산신이다. 그러나 산신을 상징하는 동물인 호랑이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 점에서 서낭신이라 하겠다. 따라서 산신이 서낭신으로 바뀌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잔존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의 이동과정은 천신→산신→서낭신으로 변이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천신당이 있고 그 밑에 산신당, 그 밑에 서낭당이 있다.
(2) 민속놀이
①매지 농악(梅芝農樂)
이 마을은 고려시대부터 농악마을이라 불리우며 태백의 명산 ‘백운산’아래에 위치한 전형적인 자연부락으로 각성(各性)마을이다.
매지회촌농악은 마을 개척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면서 농악 본래의 소박성을 그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길운과 한해의 풍년농사를 기약하며 각 가정의 행운을 비는 마을제는 농악으로 지낸다. 끝난 뒤에도 정월달에는 계속 농악놀이를 하고 있다.
3)원주군 부론면 손곡리
(1)통과의례
①출산
산가(產家)의 금잣줄 및 키를 훔쳐간다.
특별히 출산에 관여된 풍습은 없으며 출산전 금기사항은 오리고기, 개구리고기를 먹지말며 토끼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이다.
산후 금줄도 타 마을의 풍습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쌍가마의 아이를 낳았을 때 외가집에 가서 외할아버지의 숟갈을 훔쳐다 머리에 걸쳐놓는다는 것이 특이하다.(외할머니가 팥떡 시집갈 때 가평에서는 여자가 쌍가마일 경우 솥단지를 가져간다. 그러면 두번 결혼을 안한다.)
②혼례
이 마을의 혼례 풍습으로는 신랑은 혼례식날 신부집에 도착해야 하기때문에 만약 일찍 도착 하게 된다면 다른 마을에 묵었다 와야 한다.
혼례식을 치를때 친척들이 신랑에게 장난치는 풍습이 있다. 신방엿보기 역시 타지역과 유사 하다. 혼례식후 처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신랑집으로 오는데 신부집에서 가마에 소금을 뿌리고, (인제에서는 고추가루, 소금, 콩, 팔도 뿌린다.)신랑집에 와서는 신부가 무릎으로 문지방을 건넌다.
이 지방 사람들은 그 지방사람끼리, 사색당파(동인, 서인, 남인, 북인)중에서도 같은 파끼리 혼인하기 때문에 사돈에 팔촌, 사돈에 사돈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③상례
이 마을의 상례는 염할때 천석이요, 만석이요라 외치면서 생쌀을 손으로 떠서 입에 넣고 동전 도 넣는데 이것은 저승가는 여비와 식량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혼을 부르는 초혼은 죽은 사람의 속적삼을 흔들어 지붕위로 던지면서 ‘복 복 복 ○년 ○월 ○일 태생 아무개는 속적삼 가져가시오’라고 크게 외친다. 또는 그냥 머리맡에 놔두는 경우도 있다.
사자밥은 세그릇, 신발 세컬레, 밥위에 동전을 놓는데, 신씨(평산)는 어른을 잡아간다고 하여 사자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자밥은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놓는다.
상제는 여자 어른이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버드나무지팡이를 짚고 남자어른일 경우는 대나무 지광이를 짚는다. 상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3년복을 입고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 일년복을 입는다. 곡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마찬가지로 상주는 ‘아이구’ 손자나 친척은 ‘에이고’ ‘어이’라고 곡을 한다.
(2)민간신앙
①장승제
손곡리 장승은 마을 입구 양쪽에 솟대와 함께 서 있는데, 양쪽 거리는 10m 정도이다.
명칭은 수살이라 해서 충청도 장승의 명칭과 동일하다.
天下大將軍은 왼쪽에 있으며, 높이는 150㎝ 정도로, 굽어져 있고, 지름은 15㎝ 정도이다. 사모관대는 격자형으로 음각되고, 눈과 입도 음각하였으며, 코는 양각하였다. 이는 네모나게 4개로 음각하였고, 귀는 나타나지 않는다. 색칠은 전혀 없고 銘文은 비바람에 바래 있다. 전체적으로 부릅뜬 모습이지만 해학적인 인상을 풍긴다. 시멘트로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웠으며, 솟대 1基 와 함께 서 있다.
地下女將軍은 오른쪽에 솟대 1基와 함께 있으며, 높이는 151㎝, 폭은 16㎝ 정도이다. 외형은 天下女將軍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눈을 동그랗게 새겨서 여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솟대는 해마다 세우고, 장승은 낡을 경우에 교체하는데, 재료는 소나무이다.
장승제는 수구제라고도 하며, 제사는 땅에서 지내므로 地下女將軍에게만 지낸다. 天下大將軍 앞에는 술만 한 잔 을린다. 이 장승은 질병 방지, 우역병 방지, 豐農 기원 등의 기능을 가진다. 祭日은 매년 음력 1월 1일인데 이를 守口祭라고 한다.
(3)세시 풍속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해마다 일정한 때가 오면 관습적으로 반복하여 거행하는 생활풍속의 의례적인 풍속을 말하는 것이다.
○정월
정월 초이튿날에 장승제를 지낸다.
정월놀이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줄다리기를 한다. 이때 아이들과 부인네들, 또는 장정과 장정끼리 하는데 남자들과 여자들이 하는 경우 여자가 이기도록 한다. 그래야 풍년이 든다고 한 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할 경우에는 아이들이 이기게 한다.
더위팔기―정월 열나흘 새벽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개’라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라’한다. 그러면 그해 여름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엔 귀신 들린 날이라 하여 채를 대문에 걸어 놓는다. 그러면 귀신이 왔다가 채구멍을 밤새 세다가 날이 새어 달아난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신는 신발은 들여놓고 안 신는 신발은 엎어 놓는다.
○02월
초하룻날 낯떡을 해 먹는다.
○3월
삼월 삼짓날에 진달래꽃을 따다가 화전을 해 먹는다.
검은 떡을 해서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깍은 후 먹게 하는데 그러면 머리가 까맣게난다고 한 다.
제비초리가 있는 아이는 장수하라고 깍아주지 않는다.
○04 월
초파일에 연등행사를 한다.
○5월
수리날, 단오날에 쑥을 뜯고 수리취를 뜯어 떡을 해 먹는다.
그네뛰기도 한다. 여인네들은 머릿결이 좋아지라고 창포로 머리를 감는다.
단오날 저녁에 상추이슬을 채취하여 분을 발라주는데 살결이 좋아진다고 한다.
○6월
유두일이 있고 유두천신이라 하여 밀국수를 만들고 수박, 참외 동울 따다 제사 지낸다.
복날에 개를 잡아먹고 초, 중, 말복에 호박잎을 두드리며 많이 열리라고 주문을 외우면 많이 열린다고 한다.
○07월
칠석날에는 부치기 즉 호박도래전을 해먹는데 이것은 기롬냄새를 풍겨야 집안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백중일에는 씨름대회, 장치기등을 하고, 머슴에게는 보너스격으로 새로 광목 적삼을 해입히고 돈을 준다. 그러면 머슴은 돈을 들고 나가 들어 을때 미역이나 고기등을 골고루 사온다.
○8월
보름날 즉 추석에 조상묘를 찾아가 벌초를 한다.
이날 거북놀이를 하는데 수수잎으로 엮어 만든 거북이 모양의 것을 지고 두 사람이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복을 기원한다. 헹가래를 불고 농악놀이를 하며 집앞에서 ‘동해바다 거북이가 왔소’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 정성스레 음식을 대접한다.
○10월
상달 성주제를 지내는데 길일을 택하고 햅곡식으로 술, 떡을 빚고 과일과 함께 제사 지내며 집안의 안녕을 기원한다.
○11월
동짓날에 동지차례를 지내는데 팥죽을 쒀서 집안 사방에 뿌리면 마귀가 물러간다.
팥죽에 넣은 찹쌀 옹심이는 아이들이 나이 수대로 먹는다.
○12월
구세배를 하는데 묵은 세배라고도 한다. 이것은 집안 내의 가까운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일년간 보살펴 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또 새를 잡아먹는 풍습이 있다.
수세一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운다.(세배, 차례준비때문)
섣달 그믐_산소에 다녀온다.
(4) 민간의료
○다래끼一옷 안자락에 소금을 담아서 눈을 문지르게 한다.
○눈병一석가래 저쪽귀에서 풍여석가래까지 세어서 그사람 나이를 숟가락 끝으로 꽂으면서 ‘아무개 몇살먹은 누구의 눈에 가시를 파내 주시오’라고 외친다.
또 한가지는 해가 뜨면 정 동쪽에 서서 볕이 쪼이면 세워놓고 생년월일을 쓰고 ‘내 눈에 가시를 안 파내주면 네 눈의 가시를 안 파내준다’라고 한다.
(5) 풍수지리
이마을에 3대 영걸이 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①임경업장군 조부묘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 평촌마을에는 ‘임경업장군 추모비'라고 쓴 자연석 화강암 비석이 서 있는데, 1968년 8월에 세운 것이다. 원래 임경업은 고향은 충주 달천이 아니라 부론면 손곡리라는 얘기이다. 일세의 풍운아였던 임경업장군은 김자점에 의해 참살당해 죽었는데 임경업의 부친은 그렇게 될 것을 예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임경업을 낳기전 임경업의 부친은 원주감영의 옥사장으로 있었는데 경상도의 한 사람이 원주에 와서 무고하게 살인죄에 걸렸는데 무죄함을 아시고 몰래 풀어 주었다. 나중에 옥사에서 죄수가 도망갔다고 난리가 났으나 무사히 넘어갔다. 그후 부친도 도망을 나와 평촌마을에 살게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후 경상도 사람이 임씨라는 것만 알고 찾아 다녔다. 이 마을까지 찾아 오게 되어 부친을 만나 내가 그때 그 사람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데 가진것은 없고 내가 풍수지리를 배웠으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 때 마침 임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럼 묘자리를 봐 줄테니 가자'고 하여 나온곳이 부론면이다.
자리를 잡은 후 포장을 치고 나서 지키다가 ‘내가 떠난 다음 몇시간 후에 포장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날것이니 절대 보지말라’고 이르고 떠났다. 얼마 뒤 정말 포장친데서 말달리는 소리, 칼 쓰는 소리가 나고 조금후 조용해지는데 궁금해서 포장을 들춰보니 칼을 든 두장수가 한 명은 밀에 있고, 한명은 위에서 칼을 들고 싸우고 있었다. 그때 부친이 포장을 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에 있던 장수가 뒤를 쳐다보자 밑에 있던 장수가 위에 있던 장수를 목을 쳐 죽이게 되었다.
깜짝 놀라 포장을 덮고 있는데 그 사람이 오더니 ‘보지말라 했는데 봤구료’ 하면서 한숨을 쉬 더니 그래도 묘자리를 쓰되 택일을 하는데 모월 모일에 하되 그날에 쇠모자 쓴 사람이 지나가 거든 하산을 하라 했다. 그래서 장사날이 되어 기다리는데 오지 않아서 ‘세상에 쇠모자 쓴 사람 이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참때쯤 새참을 국수로 해서 머리에 이고 가는데 항아리에 국수를 담고 그 뚜껑으로 솥뚜껑을 덮고 가길래 그것인가 생각하고 하산을 하였다.
후에 임경업이 궁궐로 들어간 후 싸움이 있었는데 밑에 있는 사람이 김자점이고 위에 있는 사람이 임장군이다.
②이괄의 할아버지묘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이 거사 전에 조부상을 '당하여 천하 명당을 찾는데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에 명당이 있어 여기에 산소를 쓰면 좋은 일이 일어 날것이라고 하였다. 중이 알을 묻어 놓고 ‘내일 아침 닭소리가 날것이다’라고 하여 그 때 알이 닭을 낳다 하여 알생골이라 하였다 한다. 그곳에 조부를 매장하고 난 후 이괄이 공을 세웠다.
③손곡 이달 선생
이조 중기의 한시인(漢詩人)으로 자는 익지요 호는 손곡, 본관은 홍주이다.
어렸을 땐 신동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며 커서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도 첩의 자손이라 사회 진출이 어려웠다.
그러나 문장이 원체 뛰어나 한리학관이 되기도 했으나 그 직을 사직하고 향리인 원주에 돌아 와 시문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 후 손곡리의 산골집에서 5년동안 두문불출하며 글 공부에 전념하여 새로운 시문의 경지를 터득하여 나중엔 삼당(三唐)이란 칭호를 받았다.(삼당이란 최경창, 백광훈과 같이 당시에 뛰어 났다는 데서 이 세람을 일컬은 말이다.)
나중에 허난설헌과 허균이 이달선생에게 글을 배웠고, 문학풍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 다.
손곡리 는 이달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한다.
④고시래의 도선스님
이 마을에서는 도선스님의 얘기와 더불어 ‘고시래(고시라)’의 얘기가 전한다. 도선스님이 어머니(고씨)의 묘자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산 밑 어느집에 도착하여 보니 그집의 부엌자리가 명당자리라 밤에 몰래 부엌을 파고 묻으려 하니 방에서 자던 할아버지가 ‘도선이란 놈이 지 어미 묘를 쓰려 하는구나. 전라도 어느 땅이 어미 묻을 자린데’하였다. 도선이 깜짝 놀라 그 부부에게 사과를 한 후 나와보니 집과 그 부부들이 사라졌더라. 그래서 도선이 그곳에 가서 어머니 묘를 쓰니 묘에 밥을 갖다 놓은 어느 집은 농사가 잘되고 주위의 다른 집들은 벼가 잘 되지 않아 묘에 밥을 놓으니 곡식이 잘 되더라. 그 후 사람들이 ‘고시내’를 부르며 밥을 뿌리는 풍습 이 생겼다 한다.
3. 맺음말
원주군의 민간신앙은 많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그 유풍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 있다.
예전의 치악산제는 진산의 치악산의 산정에 치악산사가 있어서 나라에서 춘추로 내린 향축으로 지냈으나 지금은 원주시는 국향사 옆 동악단에서, 원주군은 구롱사에서 관청의 주관으로 지 낸다. 특히 예전에 원주군 소초면, 신림면, 판부면 일대에는 산신제가 성행하였다.
서낭당은 많이 없어졌으나 백운산 산신제가 서낭신과의 혼합형태로 나타난 매지리 회촌마을 은 특이하다.
가는 곳에 명당자리의 이야기는 끊임이 없던것 같고 관심이 많은 계층도 주로 노인이다.
주민의 생활 속에 전래되어온 전통적인 의식주신앙 및 각종 연중행사등에 관한 습관은 타 지 역과 대동소이했다.
채취한 자료는 대부분 계속 전래되어온 대표적인 민속들이며 강원도내에서도 가치있는 민속 학 자료들이다.
현대의 물결은 우리의 생활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미신을 터부시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허나 우리의 고전중에는 밝혀지지 않은 과학적 요소는 얼마든지 많다. 발견해서 이용할 가치가 있는 전통이라면 서슴치 않고 개발 보존되어야 하며 현재는 노인층의 잔멸도 민속의 소멸 중 크나큰 소멸과정이다.
관에서의 의례적인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금, 많은 자료들이 건강함을 밝혀내야 하겠다.
VI. 참고자료
1. 논매기와 두레싸움 江原道 原州지 방의 민속놀이
고려시대부터 유래된 놀이로서 논을 멜 때 논매기노래로 일의 능를을 을리기 위한 놀이이다.
두레싸움은 한곳에서 논을 매고 있는데 다른 곳의 논매기패가 가까운 곳으로, 논을 매러 오게 되면 논매기의 여흥으로 시비를 걸어 서로 기를 꺾이지 않으려고 두레싸움을 하게 되는 바 이는 일부는 농기를 보호하고 일부는 상대편 농기의 장목을 먼저 뺏는 쪽이 이기게 되며 깃봉을 뺏긴 쪽의 營座(우두머리)는 굴복하며 용서를 빌게 된다. 이긴 쪽의 영좌는 깃봉을 깔고 앉아 상대 영좌에게 의기등등하게 사비를 걸지 않도록 꾸짖고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깃봉을 돌려주며 어울려서 한판 놀고 끝을 맺는다. 農樂을 놀며 또 노래를 하며 논매기를 하면 그만큼 일의 능를을 을릴 수 있고 또한 여가에 두레싸움을 하며 일을 하면 지루함을 모르고 흥겨운 속에서 논을 맬 수 있고 또 部落民들이 和合단결의 계기가 되었다.
2. 논매기와 호미씻이
江原道 原州郡 興業面 梅芝3里 회촌마을에서 高麗때부터 내려오는 민속놀이. 논을 매는 지루함과 힘든 것을 노래를 부르며 잊는다. 며칠을 두고 논을 다 매면 부락주민들이 한데 모여 한바탕 호미씻이 놀이를 하는데 젊은이들은 씨름도 하고 노인은 노인끼리, 부녀자는 부녀자끼리 모여 농주를 마시며 흥겨운 한때를 보낸다.
3. 梅芝農樂
원주군 흥업면 매지3리 희촌마을에 전승되는 농악. 희촌마을은 백운산 아래에 위치한 전형적인 자연부락이며 각성 마을이다. 매지 희촌농악은 마을 개척 시기부터 전승되어오면서 농악본래의 소박성을 그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매지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길운과 한해의 풍년농사를 기약하며 각 가정의 행복을 비는 마을제를 농악으로 끝난 뒤에도 정월달은 계속 농악놀이로 하고 있다. 매지농악은 이 마을제(祭)를 발판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매지리 풍물놀이는 1. 입장 : 농악대의 3열로 입장한다.(농기를 앞세우고)2. 인사 : 원을 그리며 농악을 치며 관중에게 인사를 한다. 3. 진풀이 4. 36방향놀이 5. 마무리굿 6. 원을 그리며 인사(관중에게)7. 퇴장의 순서로 엮어진다.
4. 梅芝지경다지기
강원도 원주군 흥업면 매지리 중촌마을에서는 집을 짓거나 다른 建物을 지을때 그 地盤을 굳게 다지는 지경다지기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마을내에서 집을 짓게되면 의례적으로 部落全 住民이 모여서 둥근 돌덩이를 역떼기 같은것으로 망가지지 않게 단단하게 얽어매어 일곱내지 열줄 사이의 끈을 만들어 한줄에 두명 정도 마주잡고 선소리에 맞추어 줄잡이들의 協同心을 발휘하여 지경을 다지므로 地盤이 고루 잘 다져진다. 그후에 주추를 세우고 집을 지어오고 있다 한다. 지경다지는 상쇠의 가락에 따라 길군악을 치며 입장하여 관중에게 인사를 하고 典樂의 사물과 무등은 지경다지꾼의 후편에 1열로 서고 전면 중앙에 서있는 선소리군의 욕실가 중에서 한대목인 선소리에 따라 줄군들의 협동심에 의하여 지반다지기를 시작한다. 홍을 돋구워 줌으로 힘든 줄 모르고 초가 삼칸의 지반을 고루 잘 다져준다. 이렇게 지경다지기가 끝나면 상쇠의 끽음가락에 따라 지경다지기꾼 전원이 뒤로 돌아서 人寧를 하고 길군악을 치면서 퇴장한다.
5. 梧里縣農樂
강원도 원주지방에 전승되는 농악. 우리나라의 농악은 嶺東•嶺南•湖南•京畿•忠淸 농악으로 오리현 농악은 色旗 등이 다른 농악과 다른 것이 특색이다. 이 농악은 시작부터 끝까지 상모를 돌리며 舞童을 한 명씩 태워 자유로이 이동, 놀이를 생동감있게 진행한다. 또한 農旗의 꼬리부분이 紅綠黄白色의 순으로 세번을 반복하여 12짝으로 띄움새 없이 달고 있는 특색을 보이고 있다.
6. 音舞呢넋풀이
강원도 원주지방에 전승되는 굿놀이. 원주의 音舞視이란 고장에 성행하던 巫人의 놀이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과장 및 제2과장에서 卜術家의 독경으로 神잡이가 시작된다. 신 장대잡이와 사귀대잡이는 독경소리에 맞추어 뛰놀게 된다. 이때 한 옆에서는 巫人들이 작두타기와 물동이 타기로 신을 달랜다. 제3과장에서 15명의 巫人들이 靑, 紅, 白色의 천을 가지고 나와 시앙굿이 벌어지며 영혼을 달랜다. 잽이로는 장고, 징, 새납, 바라, 북, 꽹쇠둥 6鍾의 타악기가 반주 하므로서 홍을 돋운다.
7. 地神밟기와 炬火戯
정월 대보름날 강원도 原州 오리골 부락에서 성행하던 놀이. 지신밟기는 五方地神을 밟고 건물의 구조와 용도에 따라 주문을 외운다. 거화희는 참깨섶으로 만든 횃불을 휘두르며 달맞이를 하는 놀이로 일년간의 무병과 만사형통 하기를 기원한다. 햇불놀이는 인접 부락과의 패싸움(횃불싸음)으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진쪽은 이긴쪽의 모든 불결함을 떠말게 된다는전설이 있다.
8. 豐年맞이 기줄다리기
江原道 原州지방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원주는 원래부터 민속적 행사로 매년 정초에 기줄다 리기가 실시되어 왔다. 처음에는 소년들이 모여서 상하 동리로 편을 갈라 소규모로 줄다리기를 시작하면 이어서 청년들이 다시 제2차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이것이 과열하여 상동리 하동리 주민들이 편을 갈라 큰줄다리기로 발전하게 된다. 일단 상하동리에 암수의 줄이 결정되면 해당 편에서는 각 동리와 각 면에 줄의 양을 배당하고 짚이 수집되는 대로 줄을 드리는데 밤을 새워가며 월여간 작업을 하며 상대방의 방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줄드리는 곳에는 경비를 세워가며 작업을 하게 된다. 이와같이 만든 줄은 용머리 굵기가 직경 8척이며 원줄의 길이는 100m에 이르며 원줄에 달린 애기줄(지네발)은 100여개나 된다. 이와같은 줄을 완성하면 전야제 행사가 이루어지고 암수의 줄이 이어지면 인원의 제한없이 수천명의 군중이 덤벼들어 줄을 당 기게 되는데 줄의 승부가 나자마자 군중은 응원을 하는 농악대의 농기에 장목을 먼저 뺏는 편이 완전 승리하게 된다.
9. 터다지기와 성주풀이
江原道 原州郡 흥업면 매지3리의 희촌마을의 터다지기와 성주풀이 민속놀이는 마을에서 집을 지을 때 터(지반)을 다진 다음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민속으로 집을 다 짓은 다음 돼지머리에 과일과 떡시루를 차려 놓고 성주풀이에 맞추어 고사를 지내며 성주풀이(고사)가 다 끝난 다음 마을 주민이 한데 모여 농악의 흥에 맞추어 한마당 노는 놀이이다. 터다지기와 성주풀이는 4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악 및 지경다지기 집짓는 재료를 가지고 입장하면서 원을 그리며 놀이꾼들은 대열을 이룬다. 이때 농악을 울리면서 관중에게 인사를 한다. 첫째마당인 터다지기가 시작된다. 터다지기는 먼저 넉가래로 집터의 흙을 골고루 펼치며 지경다지기(선소리꾼의 리듬에)맞추어 지경(지반)다진 다음 잠시 술과 떡 둥 음식을 들며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집을 짓는 마당놀이로 들어간다. 둘째마당인 집을 짓는 순서는 먼저 기둥6개를 세우고 서까래로 기둥과 기둥사이에 움직이지 않게 얽어매고, 기와를 얻고 한쪽에서는 문짝과 창호지로 문을 바르고 한 쪽에서는 집앞에 멍석을 깔고(성주풀이)고사를 지낼 수 있게 준비를 한다. 세째마당인 성주풀이는 마루 위에 자리 펴고 상을 차리고 상위에 한지 깔고ᅵ 한지위에 쌀 한 말 담고 식기쌀 숟갈 꼽고 실을 걸어 성주풀이(고사)를 지낸다. 성주풀이가 다 끝난다음 마을 주민이 한데 모여 떡과 술을 마시며 마을주민이 한데 어울려서 농악의 흥에 맞추어 한마당 논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이 원을 그리며 관중에게 엎드려 인사를 한 다음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