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6502>無相 스님
발행일 : 2004.10.04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
실학자 홍만종(洪萬宗)이 “신라인 김가기(金可己)가 중국에서 우화등선한 선인(仙人)임을 비록 아녀자라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식자층에서도 아는 이가 없어 중국 사람이 와서 물어보아도 대답을 못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했다. 수년 전 탈레반에 의해 폭파된 세계 최대의 불상인 바미안 대불보다 3배나 더 긴 155m 높이의 불상이 중국 구화산에 건조 중인데 그 불상의 주인공이 신라스님 김교각(金喬覺)이다. 역대 중국인이 지장보살로 우러러 왔고 중국 최고 최대의 미래불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그의 고국에서 그를 아는 이 역시 드물다. 일전 중국 청두(成都) 대자사(大慈寺)에서 중국 선종(禪宗)의 법통을 잇는 조사(祖師)로서 신라 무상(無相) 스님의 업적을 조명하는 한·중 학술회의가 열렸는데 그 역시 명성에 비해 너무 오래 망각돼온 인물 국보(國寶)다.
중국 선종의 조상은 달마대사로부터 시작하여 육조(六祖)인 혜능(慧能)으로 끝난다. 한데 둔황에서 발견된 불교고문서 가운데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에 보면 선종의 법통이 육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선(智詵)-처적(處寂)-무상(無相)-무주(無住)까지 십조(十祖)에 이르고 있음이 밝혀졌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혜능에게 법통을 보증하는 가사(袈裟)를 내리고 그 가사를 3대 만에 물려받은 구조(九祖)가 무상 스님으로, 1200년 만에야 각광받은 셈이다. 속성이 김씨인 무상은 신라 왕족으로 당나라에 들어가 팔조(八祖)인 처적을 사사하여 대자사의 전신인 정중사(♥衆寺)에 들어가 79세에 열반했는데 “당대(唐代)의 극유명지고승(極有名之高僧)으로 그 행하는 것에 영이(靈異)로운 것이 많았다” 했다. 또한 무상은 설법(說法) 위주보다 염불(念佛) 위주의 포교로 신라 원효불교의 법통을 중국 불교에 접목시키고 있다. 무상이 얼마나 이름을 떨쳤는가는 한국 스님으로는 유일하게 오백나한(五百羅漢) 가운데 455번째로 끼였다는 것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사는 조상에 너무 무심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