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 |
기준치 |
2011-08-22 |
2011-08-08 |
2011-07-25 |
2011-07-18 |
WBC |
4-10.8 10^3/㎣ |
6.2 |
5.2 |
3.7 |
4.7 |
RBC |
4.2-6.1 10^6/㎣ |
|
4.16 |
3.87 |
3.97 |
Hgb |
12-18 g/dl |
10.8 |
12.0 |
10.9 |
11.2 |
Platelet |
130-450 10^3/㎣ |
187 |
98 |
108 |
53 |
Lymphocyte |
20-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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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
48.9 |
|
Neutrophil |
38-75 % |
|
51.3 |
38.6 |
|
밤 늦게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남편 말기암 판정받고 딸래미 암판정 받고, 내 심정 한번 생각해 봤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 걸.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고 있거든.. 잘 자시오 어차피 내 말 들어줄꺼도 아닌데..' 아내의 상처가 크다. 요즘 우리 가족들 모두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상처들이 크고 무겁다. 아내도 계영이도 호야도 모두 말 수가 줄었고, 웃음이 사라진지도 오래 됐다. 나도 부쩍 짜증이 많아졌고, 만사에 무기력해졌다. 해야할 일은 천지로 늘어났는데 말이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고 마음이 울적해져서 병원복도를 한 바퀴 돌고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의사가 와서 케모포트 수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아갔다. 케모포트 수술은 내일 하기로 했다.
8월 23일 6시 기상, 온몸이 찌뿌둥하다. 3층으로 내려가 빠른 걸음으로 워킹코트를 5바퀴 돌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침을 죽으로 먹고 계란 한개를 먹었다. 회진 온 정익주 교수는 전보다 좋아졌으니 열심히 항암을 하자고 한다. 케모포트 수술은 외과 스케줄에 따라 오전 10시20분쯤 하게 되었다.
영상의학과 옆 수술실로 들어가서 오른쪽 목과 가슴에 마취제 투여하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게 한 후 가슴과 목에 관을 삽입하고 가슴에 포트 삽입한 후 의료용 스테플러로 마무리한 시간이 한 15분 걸린 것 같다. 케모포트 후 병실에 올라와 항암 주사를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엘록사틴 주사중 어지러움과 혈압상승이 있어 2시간여 항암제 투여를 중단했다. 그 주음 아내와 계영이가 왔다.
아내는 나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많이 걱정했다. 지난번에도도 아내가 집에 다녀오는 동안 엘록사틴 쇼크가 일어났는데.... 아내가 계영이 입원수속을 하고 있는 중에 이태규 목사님과 김광열 목사님 부부가 왔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병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아내와 계영이가 병실을 확정하고 올라왔다. 계영이 기도를 부탁했다.
다섯시쯤 이목사님 일행이 돌아가고 우리는 잠시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끓여온 문어죽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 후 운동을 하러 3층 뒤 워킹코트로 내려 갔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서 포기했다. 지하 매점에 들러 물한병, 참외두개, 화장지 하나를 샀다. 5층 계영이 병실(5127호)에 가서 잠시 기도해주고 병실로 올라왔다. 아내는 딸아이는 내버려 두고 내 간병을 한다고 보조 의자에 누었다. 12시 경에나 5-FU를 맞게 될 것 같다.
10시경 딸 아이의 남자친구가 왔다.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11시경 돌려보냈다. 결혼을 전제로 한다고 하는데 비전이 뚜렷하지 않고 중량감이 보이지 않아 별로 내키지 않는다. 왼손에 꽂았던 주사바늘을 오른쪽 팔뚝으로 옮겼다. 너무 저리고 혈관이 따끔거리기 때문이다. 케모포트를 심었으니 다음 항암부터는 주사바늘 꽂는 문제로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11시 30분쯤 엘록사틴을 다 맞고 5-FU를 맞게 되었다. 이제 약 12시간 후면 이번 항암주사는 모두 끝나게 된다.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체중을 재야 된다고 해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6시,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많이 게을러 졌다. 마취가 풀렸는지 케모포트 자리가 욱신거렸다.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위해 3층에 내려왔다. 조금있다 딸래미도 내려와 운동에 동참하고 아내도 내려왔다.
간호사실에서 소독해야 된다고 전화가 왔다. 소독하고 퇴원약 설명을 받고 퇴원 절차를 설명받았다. 아침식사를 문어죽으로 먹고 주사약이 빨리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병실을 쓰던 어르신이 다인실로 가고 또 다른 분이 왔다. 그러는 사이 주사가 모두 끝나고 퇴원약도 도착했다. 김명남 집사에게서 전화가 왔고 정승남 집사가 퇴원을 위해 마중온다고 하였다. 퇴원 준비를 했다.
2시쯤되어 정승남 집사 부부와 현옥점 권사님이 오셨다. 잠시 계영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짐을 꾸려 퇴원을 하고 정승남 집사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집에 가는 도중에 아내로부터 계영이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문자가 왔다. 3시 15분,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고 4시쯤 완도에 도착해서 순대국밥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후 장보고대대 앞에서 20여분을 기다리다가 호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7시쯤 되어서 계영이 수술 끝내고 회복실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9시 삼일밤 예배를 마치고 아내에게 계영이 상태는 어떤지 문자를 보냈다. 아내의 힘들어하는 것이 문자 속에서도 느껴졌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8월 25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러 주일 예배를 준비하다가 점심을 먹고 화순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내가 휑한 눈으로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마취에서 깨어나 아파 우는 딸과 함께 울었다고 한다. 딸아이의 남자친구가 왔기에 계영이 간병을 맞기고 아내와 함께 광주 정자골에서 7시에 있는 암싸사 전남모임에 참가하였다.
거의 30명 가까이 성황리에 모임이 이루어졌다. 식사는 유기농 웰빙이라지만 매우 맛이 없는 비빔밥을 먹었지만 이 지역에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되고, 또 그들과 교류하므로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총무인 옥이님이 많이 수고하였다. 8시30분쯤 정자골을 나와서 다시 화순 병원에 돌아왔는데 그 동안 계영이의 직장 동료들인 완도건강가정지원센터 직원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9시반쯤 병원에서 잘데도 없고 불편하여 집에 간다고 하니 아내가 서운해 한다. 그래도 병원을 나서 집에 왔다. 졸음운전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집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쯤,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너무 너무 피곤하였다.
26일 아침 병원에서 알람을 꺼놓았던 관계로 새벽예배도 빼먹고 잠에 취해 있었는데 7시쯤 정현숙 권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철우 성도가 소천했다는 것이다. 예배를 인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일어나 씻고 준비하여 10쯤 권사님들과 함께 대성병원장례식장에 갔다. 태완숙 집사가 슬피 울며 맞이해 주었다. 장례절차를 의논했는데 검사확인서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오후 5시30분에 입관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토요일 오전 8시30분에 발인예배를 드리고, 오후 1시에 광주 화장장에서 화장 산골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11시쯤 장례식장을 나와서 현옥점 권사님, 손미옥 권사님, 정현숙 권사님과 함께 화순전대병원으로 갔다. 피가 나오지 않으니 퇴원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영이를 퇴원시켜 담양 나눔내과로 옮겨 그곳에서 회복하기로 했다. 수술비와 입원비가 359만원이나 나왔다. 3개월 할부로 카드를 긁고 계영이를 퇴원시켜 담양 나눔내과로 옮기니 오후 2시40분, 원장님과 면담을하고 병원을 출발한 시간이 3시 20분, 5시30분안에 완도까지 가기에 빠듯한 시간이었다.
권사님들은 현옥점 권사님이 운전하는 교회 차를 타고, 나는 정종균 집사님의 차에 타고 광산IC쪽으로 돌아서 하남산단길로 내려갔다. 나주를 지나니 비내 내리기 시작했다. 5시 15분 완도 다리를 건너 완도에 들어서니 비가 앞이 보이지 않도록 내렸다. 완도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에서 시간이 촉박하여 과속하던 차량이 빗길에 미끌어지기 시작했다. 수막현상,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100여m를 미끌어지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차가 멈춰섰다. 본네트부분이 구겨져 올라온 가운데 엔진 부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다행히 뒤 따르던 차량이 없어 대형사고는 면했다. 시동이 살아나서 차를 장좌리 교차로까지 끌고가서 살펴보니 많이 부셔졌다. 보험도 들지 않은 차라 했다. 앞서간 현권사님에게 전화해서 유터해 우리를 태우리 오라고 전화하고 공업사에 전화해서 레카를 불렀다.
입관예배시간이 이미 지났으므로 현권사님 차가 오자마자 대성병원장례식장으로 내 달렸다. 5시 50분, 기다리고 있던 성도들과 유족과 함께 영안실에서 입관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니 이마가 욱신 거리고 무릎 옆이 쓰라렸다. 가벼운 타박상이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가? 그정도 사고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다니... 정집사님에게 위로의 전화를 하고 피곤하여 쓰러져 잠이 들었다.
첫댓글 목사님께서 넘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이 됩니다.
환우들에겐 피로가 많이 쌓이면 해롭답니다.
그래도 마땅히 해야될 일이어서 무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다행히 지금은 피로가 많이 풀렸네요. 감사합니다.
위암보다 과로로 쓰러지실것 같습니다. 좀더 충분한 휴식이 필요치 않은지요..
염려 감사합니다. 그러나 해야할일을 하는 동안에는 힘이 넘칩니다. 일이 끝난 후 몰려오는 피로감이 문제지만... ㅎㅎ
목사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