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9일(토),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정기산행일이다. 부산지역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산행을 하기로 정해졌기에 피할 수 없는 산행이다. “피하지 말고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만 멀고 험한 지형과 궂은 날씨를 앞에 두고 들머리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4시간 반 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초장에 비는 이슬비를 흩뿌릴 뿐 산행에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체 거리의 2/3 정도인 백양산을 지나서부터는 세차게 쏟아져서 길이 미끄러워지고 옷이 젖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거기다가 백양산을 오르는 비탈길(경사도가 18도 정도로 추정)은 급경사길에서 해발 고도를 370m 가량 높여야 하는 난코스로 온 힘을 짜내서 올라가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15인의 노련한 산 꾼들은 보통 때보다 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은 해발 고도 400m의 산성고개에서 시작하여 대륙봉과 동제봉(549m)이 있는 큰 산을 하나 넘은 뒤에, 불웅령, 백양산(642m), 삼각봉을 포함한 더 큰 산을 넘어서 큰 산 두 개를 넘어 개금역(해발 85m)까지 가는 개념인데 거리가 14km 이상으로 짧지 않은 거리의 산행에 동문 16인이 참가하였다.
아침 7시 양재역을 정시에 떠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동천역에서 5인의 동문들을 더 태우고 청주JC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상주의 낙동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남하하여 김천JC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만나서 내려가다가 동대구JC에서 중앙고속(부산-대구)도로로 남하하여 대저JC에서 낙동강을 건넌 다음, 덕천IC에서 나와서 금정산을 가로질러 지난번 산행을 끝냈던 산성고개에 11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도착하였다.
간단히 산행채비(배낭커버 씌우기, 스틱 늘여서 고정하기 등)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성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11:34)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약간 듣고 있었지만 우산을 쓸 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니 고도 517m의 대륙봉에 도착한다.(11:54) 대륙의 끝자락에 자리 잡아 붙인 이름 같기도 하며 이채로운 이름이다.
여기서부터 길은 거의 수평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위로 치솟더니 12:21, 동제봉(제2망루)을 지나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때 다른 산객에게 만덕고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남문을 거쳐서 가라고 가르쳐 주는 바람에 300m 가량 서쪽으로 정규의 정맥길(선답자의 트랙을 GPS로 보고 있음)을 벗어나서 남문에 도착했다.(12:30)
남문에서 나오니 길은 넓은 임도가 되고 계속 내려가는데 2.7km 가량을 같은 방향으로 내려가서 원 길과 만나도록 되어 있었다. 남문을 조금 지나자 음식점이 몇 개 나오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절도 하나 나타났는데, 원 길을 따라 내려갔다면 보지 못 했을 유원지 풍경이었다. 만덕터널 위 만덕고개를 600m 가량 남겨둔 지점에서 정맥의 원 길과 만나게 되었다.(13:00) 여기서부터 약 3.1km 앞의 불태령까지의 길은 만덕 고개 바로 지나서 있는 계단을 빼고는 가파르지 않고 경사도가 낮은데다 넓어서 걷기에 편했으며 양편의 소나무 숲이 볼만한 곳이 많았다.
13:10, 만덕고개를 지나자 곧 가파른 계단이 이어서 두 번 나왔다. 천천히 내려오던 길이 갑자기 약 60m 고도를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니 제법 힘이 들었다. 계단을 다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오는데 마침 비가 그쳐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13:20) 식사와 함께 막걸리 한 잔과 매실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식사후 서서히 하강하는 평이한 길을 따라서 불태령까지 쉽게 전진했다. 나에게는 여기서 시작되는 오르막길에서부터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락가락하여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중에 몸에선 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 땀이 빗물과 섞여 흐르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무더위가 엄습해 오는 중에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후에 이 길의 경사도를 계산해 보았더니, 탄젠트 값이 0.326이니 아크탄젠트(0.326)=18.06도로, 이 길의 경사도는 18도이니 꽤 급경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몇 번을 쉬면서 급경사길의 끝인 해발 598m의 매봉이에 도착한 것은 15:24였다. 이 마의 구간을 돌파하는 데에는 후미 팀을 이루어서 동행한 31회 두 동문(강XX, 신XX)의 스틱과 얼음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매봉이에서 길은 평탄해지더니 불웅령(해발 616m)까지 잠시 고도를 높이다가 다시 조금 내려갔다가 오늘의 최고봉인 백양산(해발 642m)으로 올라갔다.(16:11) 서서히 비가 강해지기 시작한다. 이 곳은 멋진 전망처인데 사방은 안개에 가려져 낙동강과 동해, 남해바다 쪽 경치가 다 숨었다. 다시 한 번 오든지 다음 번 산행할 500급의 엄광산과 구덕산에서 비슷한 경치를 구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하산길은 아직 5km 정도나 더 내려가야 했다. 우산을 들었지만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고 우산은 얼굴에 비가 들이치지 않게 하는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고, 옷이 다 젖고 신발도 속까지 다 젖었다. 거기다 길에 큰 돌이 박혀 있는 곳이 나타나는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길 위에 물이 흘러넘치며 길이 미끄러운 곳도 있었다. 쫄딱 비를 맞으며 삼각봉을 지나는데 이곳도 좋은 전망처이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다시 다음 봉우리인 갓봉을 지나 목적지인 개금역을 향해서 힘들게 내려왔다.
산행길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길을 찾기 힘들어 정규 길을 버리고 지도상에 나오는 아파트를 향해 내려갔다. 다행히 길이 잘 이어져 개금동 보라아파트 앞으로 내려왔다. 목표였던 개금역이 지척이지만 비가 계속 내리기에 여기서 약 6시간의 산행을 마감하였습니다.(18:21) 그리고, 편의점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고 우리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개금역 바로 인근에 있는 “맛나감자탕”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한 다음 서둘러서 서울로 상경했다, 19:37, 부산 개금동을 떠난 버스는 아침과 비슷한 코스(중부내륙고속도로 일부와 여주JC 이용만 다름)를 운행하여 23:47, 서울 양재동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걱정했던 어려움도 막상 닥치니 돌파할 수 있었지만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힘든 산행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본격적인 우중산행의 진수를 맛보게 되었다. 산행을 같이 한 동문들, 정말로 고난을 극복할 실력이 있는 엘리트 산악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날 산행은 험준한 지형과 악천후를 극복한 기념비적인 산행으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
- 후기 -
산행 후 상경하는 버스 속에서 여느 때처럼 시를 한 수 지었다.
제32차 낙동정맥 종주에 부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안개에 싸여 산은 안 보여도
가파른 비탈도 있고
미끄러운 하산길은 있었다
산성고개 400고지
버스로 쉽게 올라
산성 따라 종주행이다
큰 육지의 끝 쯤에 있다고
대륙봉이 나타났다
만덕을 넘는 일급 산길
계단만 없다면
산길로선 고속도로다
그러나 백양산 가는 길
만만치 않다
낙동정맥 말단부
끝에 있지만 642m로 높고
18도 경사길
온 힘을 짜내어 올라야 한다
백양산 올라
안개바다 위에 서서
기회비용을 생각했지만
산은 경제가 아니다
헌신과 믿음이다
보고 싶은 게 많았다
오륙도, 을숙도, 하굿둑
낙동정맥 물을 받아
구비치며 흐르는 낙동강 본류
백양산 올라서 받아내야 할 청구서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행복하다지만
허위단신 비를 맞으며
올라온 산객들에겐
서운함이 남는다
다음 번 산행에
구덕산 엄광산이
500m 급이라니
같은 경치를 거기서
받아내야겠다
거세게 내리는 비엔
우산도 우비도
방패 안 되고
온몸이 젖고
신발 속까지 젖는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추상명사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보석같은 마음이다
삼각산 후예들
잊지 못 할 우중산행
내일의 전설이 되고
먼 훗날 신화가 될
역사를 오늘 하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