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야유회 때마다 유독 때이른 무더위의 징크스는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비가 오지 않고 무사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음은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 65명의 엠마우스 가족들은 버스와 자가용에 나누어 타고 각기 독립기념관에 모였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독립기념관의 상징인 기념탑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모두는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으로 향했다. 요즘 전력난 문제가 심각해서 공공시설의 냉방온도가 제한이 있는 관계로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불어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에버랜드, 서울대공원의 땡볕과 급경사를 생각하면 여유있는 관람환경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의 간단한 역사가 전시되어있는 이곳에서는 고인돌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제2전시관(겨레의 시련)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을사늑약을 논의하는 실제장면이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조선을 일본이 보호해야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이완용 인형의 뒷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우린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가지런히 상에 차려있는 비빔밥을 후딱 먹어치우고 다시 제3전시관(나라지키기)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서는 의병들의 봉기와 열사들의 의거에 대한 자료들이 있었는데 민영환 열사의 유서가 눈에 들어왔다. 헤이그에서 우리의 뜻을 채 알리지도 못하고 자결해야만 했던 그 비통한 심정에 마음이 아파왔다.
제4전시관(겨레의 함성)은 3․1운동에 관한 자료가 있었는데 당시의 장면을 영화로 촬영된 화면을 보는 동안 ‘기미년 3월 1일 정오...’로 시작되는 3․1절 노래가 합창단의 목소리로 들려나오자 왠지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3․1절이면 억지로 불러야만 했던 그 노래가 아니었다.
제5전시관(나라되찾기)은 항일독립투쟁에 관한 자료들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재판장면이 미니어처와 육성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일본 재판관이 사형을 선고하자 사형보다 더한 형벌은 없냐고 당당히 외치는 안중근 의사의 목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봉창, 김상옥 열사 외에도 많은 열사들의 이름을 보며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제6전시관(새나라세우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의 밀랍인형이 있었다. 겨레의 지도자 김구 선생님 옆에 있는 이승만 前 대통령을 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고 친일파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호위호식했던 부조리한 현실의 책임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7전시관(함께하는 독립운동)은 체험전시관이었는데 나도 어설프게나마 총을 잡고 몇 방 쏘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관람은 끝났지만 요즘 아베 일본정부에서 쏟아지는 그들의 막말을 듣고 있노라면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의 그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하루의 나들이가 아니라 무언가 작은 불꽃이라도 가슴에 타올랐던 기회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오늘도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우리 봉사자나 다름없이 맹활약하는 학생들과 특별히 함께해주신 바오로회 봉사부장 김용성 형제님, 친절하게 도와주신 굿버스 김진영 기사님과 언제나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우리 봉사자들, 그리고 환한 표정으로 함께해주신 우리 회원들 덕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예쁜 딸 수아의 돌을 맞아 떡을 선물해준 유창길, 최주리 봉사자 부부와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기증해 주신 바오로회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물론 이모든 걸 주관하신 하느님께도 감사를...
첫댓글 이 글을 보니까 못 간게 너무 아쉽습니다.
후기 글로나마 아쉬움을 달랩니다.
그러게 마끄리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의미있고 즐거운 야유회. 잘 그리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