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삼국이 메뚜기에 의한 피해기록이 신라14회, 백제 5회, 고구려 8회가 나온다. 메뚜기 피해는 중국대륙에만 있었다. 주로 광동성과 강서성에서 발생했는데 강서성은 특히 심했다.
지진과 화산기록은 신라 57회, 백제 14회, 고구려 19회, 백제는 강진 기록이 4회 있다.
가뭄기록은 신라 55회, 백제 30회, 고구려 10회, 홍수기록은 신라 28회, 백제 6회, 고구려 6회로 기록되었다.
일식기록이 전체 67회, 행성의 이상한 현상 40회, 혜성이 나타남 63회, 운석 42회, 기타 14회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는 기록 총226회 천체이상 기록이 있다.
8회 일식 관측기록이 있는데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 곳곳에서 넓게 펴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위의 기록으로 유추해 보면 신라가 가장 커다란 나라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삼국의 최대 격전지며 쟁탈중심지인 한강(한수漢水)는 현재 한반도의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아니다. 한수漢水는 중국의 섬서성 서안 쪽에서 발원하여 양자강의 하류인 무한 근처의 양자강과 이어지는 커다란 강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강은 매우 수량이 많았고 크기도 커서 한수를 양洋이라고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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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라고 표기된 강이 한수이며 서안의 서쪽에 란주가 보이고 서안과 란주사이에 천수天水가 있는데 <<부도지>>에서는 천수가 바다였다고 기록된다.>
즉 고구려 신라 백제는 모두가 한수유역에 국경을 두고 있었으며 한수를 점령하는 자가 가장 커다란 강대국이 되었다. 당시에 서안에는 8개의 강이 흘렀다고하며 한수역시 서안까지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낙양성을 수축하고 낙양성에 입성한 기록이 있고, 다음역사카페 coo2 에서는 고구려의 성들이 현제 산동성 아래 안휘성까지 있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안휘성 안시安矢는 일명 봉황성이라고 부르던 고구려의 안시성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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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2카페에서 중국의현지 인터넷 에 올라있는 자료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에게 쫒겨가던 당태종이 우물에 빠져서 살아났다고한지역>
서안에서 물자가 집결되고 성안으로부터 청해성의 청해호수 천수지역 그리고 오늘날 투루판분지일대까지는 거대한 내륙의 호수였다. 이것을 산해경에서는 내해內海라고하며 <해내경>은 바로 이 바다의 주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와의 무역로인 실크로드는 모두가 바닷길이었으며 서안이출발지였다. 그리고 둔황이 중간 정착지이며 실크로드는 뱃길이었다.
현재둔황근처에서는 2만 여기에 가까운 고분들이 발굴되었고 그 중 단 한기를 발굴했는데 고대신라의 유물과 비슷한 것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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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비단길은 바로 얼마 전까지 강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비단길은 옆의 사막보다 검정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이곳이 커다란 강이었고 유기질이 부식되어 검정색을 띠고 있는 것이다. 즉 커다란 바다였던 것이 점차 줄어들어 양쪽을 흐르는 강이 되었고 이것이 실크로드가 되었다가 강이 마르면서 실크로드는 약화되었다. 동양의 물품은 바다가 끝나는 타클라마칸 사막 끝의 도시 카스까지만 운반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의 이야기로는 이곳이 커다란 내륙의 호수였다고하고, 성경학자들 역시 이곳이 커다란 내륙의 호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지 관광 가이드들의 이야기로는 이곳이 커다란 바닷물 호수인 내해였다고 주장하며 현재도 소금산과 염호가 남아있으며 청해 호수 역시 바닷물호수이다. 불모지의 흙에는 아직도 소금기가 섞여있다. 따라서 염도가 낮은 바다였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현재 둔황에서 투루판쪽의 중앙 쯤에 높노르라는곳 주변에는 수많은 유적도시들이 있는데 이 도시들은 불과 몇 백년 전에만 해도 이곳근처가 사람이 살기좋은 풍요로운 곳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몇 년전 방영된 루들루드(국수)의 역사를 방영했는데 이곳근처가 물이 풍부한 풍요로운 지역이었다는 것이 방영되었다.
카스는 동양의모든 물품이 모여드는 집결지였고 서역의 상인들이 카스에서 서역의 물건을 싣고와서 동양의 것과 바꾸었다. 그들이 로마로 운송해 간 것이다.
당시에도 역시 무역은 최대의 경제적 원천이었고 한반도나 동남아등의 모든 물건은 한수를 통하여 서안으로 운송될 수가 있었다. 따라서 한수를 장악하는 자는 경제적으로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 신라는 동 신라와 서 신라로 나뉘게 되는데 동 신라는 이곳 한수지역을 점령했고 서 신라는 둔황을 점령했다. 그러다가 당나라가 서안과 둔황을 점령하므로서 삼국의 무역의 중심로를 당나라에게 빼앗기게 되므로서 국제적 상권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 당나라의 세력이 커지게 된다.
장보고가 활동한 청해진 청해성은 현재 중국대륙의 청해성에 있는 청해바다로서 당시에는 투루판분지일대까지 이어진 거대한 바다였다. 따라서 장보고가 청해진일대를 장악한 것은 통일신라시기에 다시 이곳을 신라가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현재까지 알려지거나 참역사를발구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엄청난 확대주장에도불구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훨씬더 큰 나라들이었다.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것이없기에 발표할수는없지만, 최근까지 필자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고구려는 북방으로는 터어키(투르크/돌궐)와 천산위쪽에서 국경을하고 동쪽으로는 연해주근처까지 남으로는 중국대륙 안휘성 안시까지 걸친 대제국이었다. 백제는 천산 아래 투루판과 타클라마칸사막을비롯하여 중국대륙전역을 장악하고 남으로는 대만과 안휘성남쪽 광동성, 절강성 일부를 제외한 전 중국을 지배했다.
신라는 안휘성과 절강성, 광동성일대와 동남아시아 태국,인도네시아와 티벳이 모두 신라였고 서쪽으로는 둔황,카스일대를모두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는 원래 서안을 중심으로 천수 창해성, 란주등을 장악했으며 나중에 실크로드의 핵심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막강한 부를 이루게되어 결국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것으로보인다.
첫댓글 중국은 지명도 바꾸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혜초는 남천축(현재의 인도)에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북쪽 하늘에 있는 내나라 계림"이라고 노래 했습니다. 계림이 한반도라면 당연히 동쪽 하늘을 이야기 했겠죠.
그랬었군요..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내용 인가요? 그렇다면 북쪽 계림..연구대상이군요.
네
구체적으로 삼국사기 어느 부분에 메뚜기 기록이 있는지 자료를 같이 올려주시면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거 같네요.... 메뚜기 피해는 중국에만 있는거라서 절대 딴소리 못하는 기록이니깐요....(지진도 마찬가지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