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시대( ~ 709) 중국, 한반도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난바즈는 고대 일본의 출입구가 되어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땅, 그리고 교류인사들의 거점으로 발전했습니다. 도래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요업·단야(대장업)·건축·토목·종교 등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 전국에 확산되었습니다. 그 당시, 오사카 평야 여러 군데에 닌토쿠천황릉을 비롯한 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고분들이 지어졌습니다. 또 남쪽의 야마토강 강물을 오사카만에 흘려보내기 위한 난바호리에 운하의 개통그리고 사카이, 야마토 등지로 가는 남북 동서의 도로 정비 등의 토목공사가 활발해졌습니다. 또 거대창고군이 지어지는 등 난바즈를 거점으로 해서 오사카의 교역, 상업도시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나라·아스카 시대(710 ~ 793) 불교가 번성함에 따라 593 년에 쇼토쿠태자는 시텐노지 절을 건립했습니다. 그 무렵 견수사(遣隋使)·견당사(遣唐使)의 출발지였던 난바즈는 국제교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사카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645년 '타이카 개신'부터입니다. 코토쿠천황은 강대한 수나라, 당나라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그때까지 전통적인 수도지 였던 아스카를 떠나 수도를 난바나가라토요사키(전기 난바노미야)로 옮기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했습니다. 그 후, 다시 나라로 천도했지만 나가라토요사키에는 부(副)수도로 후기 난바노미야가 건설되어 계속해서 국제교류의 창구 역할을 맡았습니다.
헤이안·가마쿠라 시대(794 ~ 1333) 가와치호수의 물이 차차 없어지고 육지화가 진행된 시기입니다. 그 무렵에는 덴마바시 다리에서 기타하마의 남쪽 물가에 있었던 와타나베즈가 당시 유행한 구마노 참배길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시텐노지 절은 서쪽 문을 통해 바다에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데, 이것이 정토 신앙과 결부되고 많은 참배자들이 다녀왔습니다. 와타나베즈에서 시텐노지 절, 스미요시 신사를 거쳐 구마노로 이르는 길은 참배와 행락을 겸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도로 정비도 진척되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1334 ~ 1573) 현재 오사카성이 있는 자리에 정토진종의 제8대 종주인 렌뇨가 1496 년에 이후 이시야마혼간지 절이 된 이시야마고보 건립에 착수했습니다. 그 당시 우에마치 대지 끝에 있었던 오사카(小坂)라고 하는 지명이 '오사카(大阪)'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그 후, 이시야마고보 주변은 데라우치쵸로 번성하고 현재의 오사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적군이 공격하기 어렵고 전망이 좋은 '우에마치 대지'에, 오다 노부나가도 주목하고 "무엇보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에마치 대지는 야마토강과 요도가와 강 덕분에 수운도 발달했고, 오래된 국제교류의 역사도 있었기 때문에 이 곳을 장악한다는 것은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를 장악하는 일과 같은 의미라고 여겨진 것입니다.
아즈찌·모모야마 시대(1574 ~ 1600) 이시야마혼간지 절의 제11대 종주(宗主)인 겐뇨가 그 절의 땅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내준 것이 1580년이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그의 뜻을 이어받아 오사카를 거점으로 천하통일을 완료한 사람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시야마혼간지 절터에 오사카성을 건설하고 이 성을 중심으로 오사카를 발전시켰습니다. 이어서 그는 히가시요코보리가와 운하, 니시요코보리가와 운하, 아와보리가와 운하 등을 개통해서 오사카를 수운 거점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또 각지에서 상인들을 이주시켜 목면, 기름, 한약, 금속가공업 등 산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상인들이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하는 등 해외교역에도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성을 중심으로 한 오사카는 1614 년의 겨울 전쟁과 잇따른1615 년의 여름 전쟁으로 인해 황폐한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도 시대(1601 ~ 1867) 불타는 들판에서 부흥한 경제도시 오사카가 '천하의 부엌'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에도 시대였습니다. 전국에서 물자가 들어오고 또 출하되어 가는 '유통거점'이 되고 국제무역에도 연결된 국내 최대의 경제도시로 번성하며 특히 쌀은 도지마 쌀시장의 시세가 전국 쌀 시세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그 주체이었던 서민들의 문화도 융성해져 타케모토 기다유를 중심으로 한 닌교조루리가 지카마츠 몬자에몬과 손을 잡아 대성공을 거두고 그 이외에도 이하라 사이카쿠, 우에다 아키나리 등의 문예문화도 화려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또 학술·교육문화도 '가이토쿠도'와 '데키주쿠'가 개설됨에 따라 크게 발전하여 토미나가 나카모토는 가이토쿠도에서 배운 후 발상발전의 법칙적 파악과 고유한 문화유형 등을 발견하여 당시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고, 철저한 합리주의자로 유명한 야마가타 반토 등 많은 서민 출신의 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오가타 코안이 개설한 '데키주쿠'는 에도시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 시기에 활약한 후쿠자와 유키치와 오토리 케이스케 등 인사들이 배운 난학(蘭學)·의학 학교입니다. 데키주쿠는 일본의 한약 상인들의 중심지였던 도쇼우마치 근처에 있었고 전국에서 모여든 영재들은 자유롭고 활달한 서민들의 도시인 오사카에서 난학을 배웠습니다. 다양한 물자가 교류하는 천하의 부엌 즉 오사카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예, 문학, 교육, 학술의 꽃을 피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활발해진 이러한 문화의 숨결은 지금도 오사카에 오시면 느낄 수 있습니다.
메이지∼다이쇼(1868 ~ 1926) 메이지유신후, '가와구치'에 외국인거류지가 만들어져서 문명개화의 창구가 되었지만 새정부의 잇따른 새로운 정책에 의해 금융·유통은 정체상태에 빠져 예전 같은 성황은 사라졌다. 그 바람에 그 때까지의 상업·금융을 중심으로 한 도시에서 공업에 중점을 둔 상공업도시로 전환하여 공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19세기말에는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을 덮어 '연기의 도시'라고 불렸다. 20세기초에는 방적공장이 세계시장을 석권하여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쇼와∼헤이세이(1927 ~ ) 오사카는 명실 공히 근대적인 상공업도시로 재출발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통제로 인해 경제활동의 범위가 작아진데다가 잇따른 공습으로 오사카시의 27 %가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이후 재기하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시민의 줄기찬 노력과 부흥도시계획의 추진으로 시민생활은 바로 안정되고 경제활동도 전쟁 이전 수준을 넘을 정도가 되었다. 전쟁 이후의 사회 경제 상황이 크게 변해가는 가운데 오사카는 일본 서쪽 지역의 중심지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오사카시는 한 세기 이상 근대화·국제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도시, 세계에 공헌하는 도시'로서 다시 도약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BC 4500년-조몬문화(~BC2세기) 2세기-야요이 문화(~AD3세기) AD 57년-왜국왕, 후한에 조공, 광무제로부터 인수를 받음 107년-왜국왕, 후한의 안제에게 조공 239년-왜의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 위나라의 명제에게 사절단 파견 266년-왜의 여왕 도요, 서진에 조공 4세기-야마토 조정 통일 5세기-왜의 5왕 중국 동진, 송에 사절단 파견(조공) 538년-백제로부터 불교 유입 593년-쇼토쿠태자 섭정(~622년) 604년-쇼토쿠태자, 헌법17조 제정 607년-오노노 이모코, 수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630년-견당사, 처음으로 파견 645년-다이카개신 663년-백제부흥운동 구원군, 백강에서 대패, 반전수수법 시행 701년-다이호 율령 성립 710년-헤이조쿄로 천도 712년-오노 야스마로, 고사기 720년-도네리친왕등, 일본서기 723년-삼세일신법 794년-헤이안쿄로 천도 805년-사이초, 당나라에서 귀국, 일본 천태종 창시 806년-구카이, 일본 진언종 창시 858년-후지와라 요시후사, 섭정이 됨 894년-견당사 폐지 935년-쇼헤이, 덴교의난(~941년) 967년-섭관정치(~1068년) 1017년-후지와라 미치나가, 태정대신이 됨 1086년-시라카와 상황, 원정 시작 1167년-다이라노 기요모리, 태정대신이 됨 1175년-호넨, 정토종 창시 1185년-헤이지 멸망 1192년-미나모토 요리모토, 세이타이쇼군이 됨, 가마쿠라바쿠후 시작 1221년-쇼쿠의 난 1227년-도겐, 일본 조동종 창시 1232년-조에이시키모쿠 제정 1253년-니치렌, 일련종 창시 1274년-중국 원나라, 일본 군사침공 1281년-중국 원나라, 일본 군사재침공 1333년-가마쿠라바쿠후 멸망 1334년-고다이고천황, 겐무의 중흥 1336년-남북조 대립 1338년-아시카가 다카우지, 세이타이쇼군이 됨, 무로마치바쿠후 시작. 왜구의 활발화 1392년-남북조 통합, 왕위는 북조계통으로 세습 1397년-아시카가 요시마쓰, 금각사 축조 1404년-아시카가 요시마쓰, 중국 명나라와 통상조약 1467년-오닌의 난(~1477년), 전국시대 시작(~1568년) 1497년-렌뇨, 오사카에 이시야마본원사 축조 1543년-포르투갈인, 다네가섬에 표착, 철포, 화약 전래 1549년-프란치스코 사비에르, 그리스도교 전래 1568년-오다 노부나가, 교토 입경 1573년-무로마치바쿠후 멸망 1590년-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통일 1592년-도요도미 히데요시, 조선 군사침략(임진왜란)개전. 1597년-도요도미 히데요시, 조선 재침략(정유재란)개전. 1600년-세키가하라의 싸움 1603년-두쿠가와 이에야스, 에도바쿠후 시작 1609년-네덜란드, 히라도에 상관 설치 1613년-영국선박 입항, 통상 시작. 하세쿠라 쓰네나가 유럽 방문 1616년-나가사키, 히라도로 외국무역 한정 1623년-하라도의 영국상관 폐쇄 1630년-금서령 반포 1637년-시마하라의 난 1639년-쇄국령 1641년-네덜란드상관, 나가사키 데지마로 이주 1657년-에도 대화재 1688년-문화의 전성기 겐로쿠 시대 시작(~1703년) 1716년-교호의 개혁(~45년) 1720년-금서령 완화 1744년-스기타 겐파쿠, <<헤제신서>>간행(발간) 1787년-간세이의 개혁 1792년-러시아사절 K.락스만, 북해도 네무로로 일본 방문 1804년-러시아사절 N. 레자노프, 나가사키로 일본 방문 1833년-덴포의 대기근(~38년) 1841년-미즈노 다다쿠니, 덴포의 개혁 시작(~43년) 1854년-미, 일 화친 조약 조인 1858년-미, 일 수호통상조약 조인.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수호통상조약 조인 1860년-사쿠라다몬가이의 변 1862년-나마무기 사건 1864년-하마구리 고몬의 변. 4개국(미국, 영국,그랑스,네덜란드)연합함대, 시모노세키 포격 1867년-에도바쿠후 멸망. 왕정복고 1868년-메이지유신. 천황정권제도 성립 1872년-태양력 채용 1975년-일본, 러시아 쿠릴열도, 사할린 교환조약 조인 1876년-조선과의 조, 일 수호조약(강화도 불평등 조약)조인 1877년-세이난 전쟁 1885년-톈진조약. 내각제도 창시 1889년-일본제국 헌법 제정 1890년-제1회 제국의회 개회 1894년-영, 일 통상항해조약. 청일전쟁 시작 1895년-시모노시키 조약(청,일 강화조약)조인. 3국(러시아,프랑스,독일)간섭. 제1,2차 러,일 의정서. 청일통상항해조약 조인,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일으킴. 1902년-영, 일 동맹체결 1904년-러, 일 전쟁(~1905년). 포츠머스조약(러,일 강화조약)체결 1905년-대한제국 외교권 강탈(을사늑약)강제조인 1910년-대한제국 국권 강탈(강제합병), 조선총독부 설치(~1945년) 1912년-헌법옹호운동 시작 1914년-제1차 세계대전 시작(~1918년) 1918년-시비리아에 출병 1925년-치안유지법, 보통선거법 성립 1927년-금융공황. 제1차 산둥출병 1928년-소,일 어업조약. 제1회 보통선거 실시. 제2차 산둥출병 1931년-만주사변 1933년-국제연맹 탈퇴 1934년-워싱턴, 런던 양대 조약 폐기 1936년-런던군축회의 탈퇴. 독, 일 방공협정 체결 1937년-중국과의 전쟁 개시(중일전쟁:~1945년). 독, 이, 일 방공협정 1938년-국가총동원법 발령. 장고봉 사건(소,일 국경분쟁) 1939년-노몬한사건(만주,몽골국경에서 소련과의 군사충돌). 제2차 세계대전 시작 1940년-독, 이, 일 3국 군사동맹 체결 1941년-소, 일 중립조약 체결. 미,일교섭 시작. 일본군, 진주만(미국 태평양기지)폭격. 태평양전쟁 개전 1942년-미드웨이해전, 미국 해군에 대패당함. |
출처: ㅇ 니 르 바 나 ㅇ 원문보기 글쓴이: 물처럼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