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그해 겨울,
독립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사랑스러운
'작은 아씨들' 을 만났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정책을 두고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메사추세츠 주의 뉴 잉글랜드 콩코드 마을에
평화롭게 사는 '마치(March) 가족 네 자매' 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 작은 아씨들 >...
영화는 오프닝 자막을 원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의 문장으로 대신하지요.
"삶이 고통스러워, 밝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I've had lot's of troubles, so I write jolly
tales)..."
그녀가 쓴 동명 소설에 그레타 거윅 특유의
맛깔스런 색채와 문법이 더해진 <작은 아씨들>.
영화는 성인이 된 네 자매의 인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7년 전의 시간을 오가는 플래시백 구조를
취하며 이들의 소녀 시절을 되새기지요.
해서, 네 자매들의 해맑고 희망적인 지난 날의
밝음과,
난관에 부딪히는 현실의 차가움이 엇갈리며
교차됩니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북군으로 참여해 전장에
나가 있고, 엄마와 네 자매가 서로를 도우며
함께 지내죠.
네 자매는 각기 다른 희망과 성격, 삶의 방식을
지니고 각자의 재능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작가라는 꿈을 위해 끊임없이 펜을 들며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둘째이자,
극의 중심 화자로,
진취적인 성격에, 말도 거칠고 태도도 당찬
조(시얼샤 로넌 분) 로부터,
압도적으로 아름다웠지만 사교계로의 진출을
포기한 채,
배우가 되는 것 대신 사랑하는 이와의 가정을
택한 첫째 메그(에마 왓슨 분),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녀 피아노를 잘 치지만
몸이 약한,
자매 중 제일 착하고 내성적인 모범생 셋째 베스
(엘리자 스캔런 분)에,
파리에서 미술을 배우며 최고 화가의 꿈을 좇는,
도전적인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분)와,
이들 네 자매의 어머니 메리(로라 던 분),
그리고 따뜻하고도 엉뚱한 이웃 쾌활남 로리
(티모시 샬라메 분),
집안의 부호인 대고모 마치(메릴 스트립 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역할을 매력있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연과 유기적인 호흡이 발군이지요.
여성의 삶과 예술, 사랑과 가족에 대해 극 중
곳곳에 녹여둔 그레타 거윅의 언어들은,
상당 부분 타이틀 롤 '조' 역인 시얼샤 로넌의
목소리를 빌려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시급하고도 절박한 난제일 수 있는
야망, 예술, 돈, 사업, 그리고 사랑과 결혼...
오늘날 여성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들은
150여년 전의 여기에 모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레타 거윅 감독은 오래된 19세기 시대극
상황이 아닌, 바로 오늘에 자리한 명제를
섬세히 풀어내며,
세상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멀리 가고자
꿈꾸는 여성들에게 소중한 경구(警句)를
들려줍니다.
집을 떠나면 사뭇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매들과 있을 때는 가장같이 행동하는 조...
< 작은 아씨들 > 은 출판사를 찾아간 작가
지망생 조의 모습과 함께 그 막을 열어가지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와 내 자매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지요.
우리 자매들은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야망이 있고 재능이 넘쳐요."
출판사 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충고합니다.
"짧고 자극적으로 구미가 당기게 써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누구와 결혼하죠?"
"안해요, 아무하고도 안해요..."
"안돼요, 요즘 여성 독자들은 결혼을 원합니다.
아무도 일관성에 대해 관심조차 없지요.
주인공이 여자면 죽던가, 아니면 반드시
결혼으로 끝맺도록 해야 합니다!"
긴장 속 우여곡절 끝에 출판도 하고 돈도
벌게된 조...
그녀는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신나게
뉴욕 거리를 뛰어가지요.
매사에 정열적이고 솔직한 조는 거침없습니다.
" 칭찬받자고 굶어 죽을 순 없어요! "
조는 엄마에게 여성 차별의 현실에 분노하며
하소연합니다.
"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말에요.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난 너무 외로워요..."
엄마는 그런 딸 조를 조용히 달래줍니다 .
" 난 거의 매일 분노하고 있단다.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지.
유머, 친절함, 용기...
너희 자매들이 그런 걸 갖길 바래.
너희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
그러면 너희들은 더 좋게 만들 거야."
마치 부인 메리는 나눔과 헌신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여성입니다.
이런 엄마의 고결한 성품은 네 자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한데, 크리스마스에 헐벗은 이웃을 돕고자
가족들의 음식을 선사했던 마치 가족에게
기적같은 만찬의 선물이 가득 전해집니다.
바로 이웃집 대부호 로렌스 할아버지가
마련해준 것으로 그 배후엔 선한 외손자 로리가
있었죠.
이 일을 계기로 마치가의 자매, '작은 아씨들'과
로렌스 가문, 특히 '로리' 와의 우정이 깊어지게
됩니다.
조는 "화나지 않았냐" 고 묻는 에이미에게도
똑부러지게 말하지요.
" 자매끼리 싸우기엔 인생이 너무 짧단다!
어쩜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인
것을..."
조는 뛰어난 배우를 향한 소망을 접은 채,
가난뱅이 교사와의 사랑을 선택한 언니 메그를
적극적으로 말립니다.
" 2년만 지나도 남편한테 질릴 걸,
우린 평생 재미있게 살건데.
우리 당장 도망치자, 내가 글써서 돈벌게.
언니는 배우가 돼서 무대를 빛내며 살아야 해!"
그러나, 메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조용히
답하지요.
" 네 꿈과 내 꿈이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
"유년시절이 끝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라며
한숨짓는 조.
언니 메그는 그런 조를 위로해줍니다.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는 걸.
해피 엔딩이잖아..."
로리는 메그의 결혼을 계기로 마침내 조에게
청혼하지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해왔어!"
하지만 조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희망을 꺾은 언니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은
꿈을 위해 과감히 사랑을 포기하지요.
"결혼하면 불행해질거야. 비참해질 거라고,
난 못해!"
로리와의 결별 끝에 뉴욕으로 떠나버린 조는
그곳 하숙집에서 글을 쓰고 근근히 살며,
독일 출신의 프리드리히와 문학적(?)인 친교를
갖게 됩니다.
엄마 말을 가장 잘 듣는, 심성이 고와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피아노를 칠 때면 조 부럽지 않게 멋있었던
베스...
"여러 번 생각해봐서 죽는게 두렵지 않다" 며,
베스는 걱정하는 조에게 담담하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는 없어.
썰물처럼 사라지는 거야(It's like the tide
going out).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모두에게 얄밉게 비쳐질 법한 당돌한 에이미...
"크게 될 게 아니면 아예 안하고 싶어!"
야망이 있는 그녀는 언니 조만큼이나 성공하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에이미는 조와는 달리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 명료한 선택,
즉, '결혼을 잘하는 것' 만이 모든 자매들이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죠.
"사랑은 선택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게 아냐!"
그레타는 에이미를 통해 자못 현실적인
메시지를 에둘러 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는 "여자가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거나
몸을 파는 거 뿐" 이라며,
여성의 신분 상승은 부잣집과의 결혼밖에
없다는 고모할머니의 독설에 발끈하며 대들죠.
"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거에요.
차라리 노처녀가 돼서 꿋꿋하게 노를 저어
나아가겠어요!"
"혼자선 힘들단다.
특히 여자는 더 그렇지, 결혼을 잘해야 돼.
내가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절대로 틀린 적은
없다."
"대고모님도 독신이잖아요..."
"나는 부자잖니!"
결국 대고모는 이토록 고분고분하지 않는 조를
"넌 진작 글렀다" 고 내친 채,
대신 '결혼'에 현실적인 에이미를 "네가 사고뭉치
가족 중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다" 라며 함께
파리로 떠납니다.
막내이지만 영리하게 세상을 누구보다
잘 헤쳐나가는,
어쩌면 제일 어른스러운 에이미...
타고난 재능 뿐 아니라 짝사랑하는 로리까지
늘 조의 차지였던 것에 열등감으로 고통받았던
그녀는,
그토록 간절히 바랬음에도, 뜻밖에 언니 조를
대신(?)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로리를 향해 부르짖습니다.
" 그만 둬! 그만 둬!
나는 모든 일에서 조에게 언제나 밀려왔어.
네가 언니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정착할(settle) 수 있는 사람은 되지 않을거야!
그러지 않을거야, 평생을 사랑한 너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로리의 진심을 알게 된 에이미는 부자집
가문과의 정략 결혼을 거절하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죠.
그렇게,
젊은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은 <작은 아씨들>을
통해,
소설 속 대사의 충실한 옮김으로 원작이 가진
감동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다른 몇 가지 장치를 통해 현재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가를 꿈꿨던 둘째 조를 원작자인
루이자 메이 올컷으로 등장시켜,
그녀가 '작은 아씨들' 을 집필하는 과정을 함께
담고있는 식이지요.
영화의 순서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둘째 조가 뉴욕에 와서 교사와 작가로 생활하며
출판사에 기고하는 시퀀스로 출발됩니다.
조는 자매들에게 푸념하지요.
"아무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그 누가 봐줄까?"
한데, 뜻밖에도 막내 에이미가 영화를 관통하는
화두를 품어냅니다.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라, 아무도 안쓰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레타는 영화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지요.
“ < 작은 아씨들 > 의 스토리는 성인이 된
등장인물로부터 시작되어 그들의 유년시절
속으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길을 걸을 때 늘
어린 시절의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현실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죠.
아울러 이 방식을 통해 인생 전체를 담을 수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감독은 조의 결혼 역시 편집자의 요구로 삽입한
대목으로 해석하면서,
조를 결혼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인물로
변용했지요.
그레타는 여자의 이름을 가진 남자 '로리' 와
남자의 이름을 가진 여자 '조', 두 사람 모두,
고답적인 성(Gender) 역할에서 벗어난
캐릭터로 재창조했습니다.
감독은 성별의 제약을 뛰어넘는 '이름' 을 통해,
당대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너무 많은 21세기적인 아이디어를 19세기의
이야기에 넣진 않았지만,
이처럼, 그 둘 사이에 중성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한 감독은,
<작은 아씨들> 속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설정했던 게지요.
하여,
< 작은 아씨들 > 을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페미니즘 영화' ,
곧, 오직 여성만을 위한 필름이 아닌, 남녀 구별
없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페미니즘에 관한
서사로 직조해냈습니다.
원작가 루이자가 '남성상' 이란 무엇이고 '남성을
어떻게 해야 한다' 라는 문제에 굉장히 광범위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점에 주목한 그레타.
그녀는 그렇게 당시에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좀더 많은 가능성과 더욱 평등한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레타는 말합니다.
" 내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배타적인 페미니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영화 <작은 아씨들> 은 좋은 여성, 좋은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들로 하여금
그녀들의 목적과 임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지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지요.
물론 반대로 여성들도 남성들을 도와줍니다.
남녀 관계의 위계질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위계질서를 없애나가는 스토리인 것으로,
바로 이 점이 훨씬 흥미롭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그레타는 이전의 다양한 < 작은 아씨들 >
버전들에 각인된 캐릭터나 이미지, 스토리를
활용해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그림을 원하는대로
그려냈습니다.
또한 드라마 속 인물 한명 한명을 우열을 가리지
않고 균형감있는 진지함으로 다루고 있지요.
가난한 가정교사 브룩과의 사랑,
로렌스 할아버지와의 우정,
돈을 보고 결혼하는 게 아닌 진심어린
선택과 결정 들이 그러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각자가 원하는 예술 분야의
재주꾼였던 네 자매들이 19세기에 도대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갈 데도 없고, 별 수단도 없었던...
김독 그레타는 주어진 선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 나갔던 그 소녀들의 삶에 집중해 비춰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여, 그레타 거윅 브랜드의 < 작은 아씨들 > 은
교훈적이거나 설명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또는 당시 여성들에 대한 클리셰를 보여주는게
아닌,
할 수 있는 만큼 각자의 삶을 보충해나가는
모습을 솔직히 그려낸 영화로 자리하지요.
앤티크한 고품격의 의상, 배경, 소품 들,
슈베르트, 브람스, 구노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함께 화면 속 자주 등장하는 무도회의
춤곡으로부터,
바흐와 비발디의 바로크 뮤직, 그리고
베토벤과 슈베르트 , 쇼팽과 슈만, 브람스와
드보르작으로 이어지는 고전, 낭만파 클래식 곡...
더불어, '극중극 형식' 의 연극 시퀀스와 소설의
미학적 미장센들은,
그레타 어윅의 동화적 분위기 연출과 미려하게
아우러지지요.
여기에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적재적소에 배치한 오리지널 스코어 역시 극의
생명력을 더해줍니다.
1. 영화 <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예고편
https://youtu.be/79_nkjuOWVg
그레타 거윅의 < 작은 아씨들 > 은,
출판사에 친구의 이름으로 소설을 보내는 조,
파리에서 고모할머니와 마차를 타고 가다
로리를 만나 사랑의 눈길을 건네는 에이미,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 노동을 하며 힘겹게
가난과 싸우는 메그 등,
마치가 자매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7년 전의 과거,
즉 네 자매가 처음으로 로리를 만나는
어린 시절의 시퀀스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감독 그레타는 조의 엄마 메리와 아빠 마치
(밥 오돈커크 분),
로리와 그의 외할아버지 로렌스(크리스 쿠퍼 분),
그리고 매그의 남편 브룩(제임스 노턴 분),
조와 맺어지는 프리드리히(루이 가렐 분) 등,
네 자매를 둘러싼 극 중 어느 특정 인물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 인물간의 관계에 집중해 흡사
꼬리물기를 하듯,
효과적으로 여러 인물들의 얘기를 골고루
담아내며,
'평등의 주제' 를 온전히 전달하고 있죠.
그렇게, 7년이 지난 뒤...
셋째 베스가 전염병에 걸려 위급해져,
조는 콩코드 마을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스는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조는 그제서야 로리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고 사랑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로리는 파리에서 에이미에게
청혼을 한 상황이었죠.
매사에 당차고 똑똑한 '조' 였음에도,
사랑의 선택엔 서툴렀던 것입니다.
자매들과 연극을 함께 하며 상상력과 희망을
키워나갔던 조...
그녀는 작가라는 꿈을 위해 끊임없이 펜을 드는
둘째이자, 드라마의 중심에 섭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 부딪히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지요.
사랑에 웬지 능숙하지 못한 조는 어쩔 수 없는
상처와 외로움을 겪습니다.
당시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죠.
1868년 뉴욕의 한 출판사,
손가락에 잉크 자국이 그대로 묻은 채,
조는 출판사 대표 대쉬우드에게 친구의 원고라며
보여주지요.
여성은 투표권도 없었으며, 여성 작가의
출판이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웠던 시기...
대쉬우드는 '도덕이 안팔리는 세상' 임을
강조하면서,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결혼하거나, 죽어야 한다"고
요구하지요.
결국, 조는 소설 출간 계약을 하면서 출판사
대표에게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대쉬우드 씨, 내 여주인공을 돈을 받고
결혼에 판 대가로 나도 얼마를 챙겨야겠어요!
(I might as well get some of it!)"
생계를 위한, 원치 않은 글이 아니라 소신껏 쓴
글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죠.
https://youtu.be/0f_4CjSkSS4
< 작은 아씨들 > 의 매력은 150년도 더 된
옛날에 쓰인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혹은 더 유효하다는데
있습니다.
그레타는 말하죠.
"작가의 고백은 그녀가 실제로 '살아온 삶과
글과의 간극' 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에 담고자 했던 '화두' 중
하나였죠."
감독은 편지와 일기, 다른 글들을 통해 알게된
원작가의 실제 삶을 영화에 절묘하게 녹여내고
있습니다.
해서, 단순히 내용 뿐 아니라 '작은 아씨들' 이
갖고 있는 기억,이미지, 언어들을 조합해,
기존 '작은 아씨들' 의 추억을 되살림과 동시에
원작과는 자못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해주지요.
예를들면, 감독은 원작의 로맨틱 엔딩을
그대로 품은,
일종의 '더블 엔딩 프레임' 으로 예상치못한
반전을 이뤄냅니다만...
둘 중 하나는 허구임을 분명히 하며, 왜 이것이
여성에게 필요한 이야기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건네고 있습니다.
https://youtu.be/lh6wnIHAAsU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주인공 '조' 뿐 아니라,
메그, 베스, 에이미의 이야기를 펼쳐내며,
서로 다른 삶의 다채로운 양상, 사랑의 방식,
그리고 '선택' 을 절묘하게 그려내지요.
이처럼 그레타는 원작을 충실히 옮겨내되
전개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과 7년 전, 즉 유년기의 마지막
시절들을 교차편집해서 그려낸 것이죠.
영화는 자칫 집중력이 흩어질(?) 정도로
빈번하게 지난 날과 현재의 날들을 오갑니다.
해서, 화면 속 현재와 과거는 같은 공간을
담아내더라도 느낌과 질감이 색다르게 다가오죠.
또한 각 캐릭터들의 의상과 태도, 언어와
이미지 등 그 상황들이 달리 표현되며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일한 마치 가문의 집이라 하더라도 과거
유년시절엔 훨씬 더 정겹고 따스하게,
반면, 7년 후의 현재는 쓸쓸하고 뭔가 텅빈
느낌이 들도록 그려지고 있는 게지요.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아빠에게 떠나는 엄마의
기차 요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파는 열정의 '조'...
'조'라는 남성적 이름은 19세기 중반,
당 시대가 강요했던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녀를 표현하기엔
적절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는 추억하지요.
"우리 자매 기억에, 그해 겨울은 제일 추웠다.
일시적인 가난은 몇년 전부터 우리 가족에게
와 있었다.
전쟁으로 등잔 기름이 귀한 시기였지만
중요한 건 창조였다.
그 어두운 시절에 우리 마치 가족은
우리만의 불빛을 만들어갔다.
- - - - - - -
밤이 깊어지면 내 마음속의 수많은 소리들이
살아난다.
현실 속의 친구들과 같이 변신을 꿈꾸며
빨려 들어갔다.
계절이 바뀌듯 모든 게 빨리 변했다.
우린 그 속에서 평화를 찾을 것이다.
에이미가 언젠가 말했다.
우리가 자라면 원하는 걸 찾아 떠날 거라고..."
- Vignette - 'Behind-The-Scenes'
https://youtu.be/oUrvMVM8iLA
제92회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작품에
걸맞게,
< 작은 아씨들 > 은 자유로움과 모던한 기품을
갖춘 자매들에게 어울리는,
분명한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있죠.
화면 속 메그는 로맨틱한 '라일락'과 '그린',
조에게는 열정 가득한 '레드',
베스는 부드러운 '핑크', 그리고
에이미에겐 생기발랄한 '라이트 블루'의 의상을
따로 입히며,
세상을 향한 네자매의 관점과 면모를 은유해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코르셋(속박)을 싫어하는 조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의상을 입게 해 캐릭터
특유의 결과 질감을 살려냈지요.
해서, 각각의 장면이 다른 감정으로 풀어지며,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극 중 네 자매들은 얘기하지요.
"남의 눈이 그렇게 중요해?"
"난 그래. 남의 칭찬은 기분이 좋거든."
"물론 그래. 하지만 중요한 건 생각이야."
"자신의 가치가 미모라 생각하면 언젠가
그게 전부가 될 거야."
"한데,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지만, 사라지지 않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거야...
- 프리드리히의 '마치 집 방문' 신
'Friedrich visits the March house'
https://youtu.be/ewSpqPviiAQ
에이미 표현대로 이상한 이름을 가진 외국 남자
프레드리히 베어...
그는 조에게 책을 전달해주며, 조를 향한
사랑을 에둘러 고백하지요.
"당신 글을 읽으면서 당신 마음을 보는 것
같았소.
누군가가 내 손에서 빼앗더니 다시는 주질
않더군."
고모가 물려준 큰 저택 플럼필드를 개조해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조.
그녀는 내일 아침 보스톤에서 배를 타고 서부로
떠난다는 프리드리히에게,
"가르칠 교사가 필요하다며, 당신이 계셔주면
안되냐" 고 부탁합니다.
프리드리히는 말하지요.
"하지만, 난 당신에게 줄 게 없소.
내 손은 텅 비었어..."
조는 흔연스레 화답합니다.
"이젠 아니에요!"
- 엔딩 신
https://youtu.be/EA5xRXl-jSw
그레타의 < 작은 아씨들 > 은 회화(繪畵)적인
이미지로 충만합니다.
프랑스 출신 촬영감독 요릭 르 소는 파리 거리를
르누아르, 해변의 모래사장은 윈슬로우 호머,
숲 속 언덕은 모네, 그리고 주택가 장면은
쇠라의 그림을 각각 연상시키는 인상파 화풍으로
담아냈지요.
콩코드 마을의 설경 또한 한폭의 풍경화처럼
운치있게 품어냈습니다.
이렇듯,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그레타 스타일의
< 작은 아씨들 > 은,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달란트가 있는 베스
덕분에,
클래식 음악가들의 피아노 소품 곡들과
어우러지며,
음악을 보고 즐기는, 이른바 '화음(畵音)'의
매력을 만끽하게 해주지요.
2. 쇼팽 녹턴 5번 F#장조, Op.15의 2번
(절제된 우아함과 기품)
- 파질 세이의 피아노
https://youtu.be/U_cJBg5vi8s
3. 요한 슈트라우스의 'Mephistos Hollenrufe
Op.10'
영화의 절반 정도를 얽히고 섞인 관계로
끌어가는 '조와 로리, 두 캐릭터' 는,
극 중 내내 긴박함과 시대를 초월한 에너지를
불러 일으켜 줍니다.
영화 초반, 무도회의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규칙을 따르지 않은 채, 그 틀을 깨트리는
파트너로 풀어지는 춤 시퀀스부터가 그러하지요.
댄스 파티에서 이웃 사촌 로리는 처음 만난
조에게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듭니다.
"조, 나랑 춤출래?"
"드레스를 태워먹어서...
이럴땐 언니가 남들 흉본다고 가만 있으래."
"좋은 생각이 있어!"
그렇게, 둘이서 복도에서 '격조있는' 클래식 왈츠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조와 로리...
(실제 이 장면은 록 뮤직에 따라 흥겹게 추는
걸로 촬영됐다고 합니다만)
성격상 조와 에이미는 당연 사사건건 부딪히죠.
19세기 댄디나 한량의 라이프 스타일, 파리나
런던을 어슬렁거리는 사교계 명사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로리...
이 대책없는 미소년이 마치 가문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맺은 후 가장 끌린 상대는 단연 조입니다.
극 중 내내 로리는 조와 붙어다니며, 늘 함께
장난을 치곤 하지요.
반면, 로리에게 짝사랑의 가슴앓이를 하는
에이미...
그런 막내는 해변에 놀러간 날, 조와 노느라
정신없는 로리를 캔버스에 애정으로 담아냅니다.
조가 함께 데려가달라는 에이미를 뿌리치고
로리와 무도회에서 춤을 추지만...
에이미는 야속한 조에게 복수하기 위해 언니의
소설을 불태워버리죠.
옷을 찢어도 상처입지 않으니 조에게 제대로
상처를 주기 위해서 언니가 가장 아끼는
소설을 태운 것입니다.
조는 어처구니 없는 에이미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지만,
정작 에이미가 얼음 구멍에 빠지자 그 즉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영화 < 작은 아씨들 > 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지요.
4.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폴로네이즈 B플랫장조 D.580
- 캐롤린 와이드만 바이올린,
앙드레 오로즈코 에스트라다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LbzNEEz1FiQ
5. 구노의 오페라 < La reine desaba >
2막 왈츠
- 리차드 보닝 지휘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s05eiB2Vi2k
6. 슈베르트 왈츠 Op.9, D.365의 16번
- 알란 휴클베리 피아노
https://youtu.be/L3YmtoJlaWA
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Pathetique)'
- 백건우 피아노 / 섬마을 콘서트, 2013
https://youtu.be/eW9WIQpcXhw
대부호의 권력가임에도 조의 가족을 애정으로
보살펴주고,
특히 착한 베스를 친손녀처럼 아끼며,
자신의 딸(로리의 엄마) 유품인 피아노를
물려주는 로리의 외할아버지(크리스 쿠퍼 분)...
베스가 조심스레 쳐보는 곡이 바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의 2악장 도입부이지요.
8. 브람스 왈츠 A플랫장조 Op.39의 15번
- 에브게니 키신 피아노 / 토쿄 리사이틀, 1988
https://youtu.be/oy6uV-eMOEs
9. 루이스 모로 고트샤크의 L'Estincelle Op.20
10. 드보르작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American', Op.96의 3번, 몰토 비바체
- 노부스 콰르텟
https://youtu.be/wnUa3FvYZjo
11. 새뮤얼 웹의
'Come, Ye Disconsolate(목마른 자들아)'
https://youtu.be/NPlFCN0kCFQ
아버지 마치 목사는 메그와 브룩 부부를 위해
축도해줍니다.
"나를 남에게 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선물일까요.
기쁨과 슬픔을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부부가 된 두 사람을 축하합니다!"
그렇게, 아버지 교회에서 치뤄진 메그의
결혼식 때 흐르는 '목마른 자들아'...
토마스 무어의 시 'Come, ye disconsolate
(너희 슬픈 자들아, 다 이리오라)' 에
새뮤얼 웹이 곡을 붙인 이 찬송가는
< 작은 아씨들 > 의 화면을 통해
의미있는 경건함으로 울려 퍼집니다.
'목마른 자 들은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12. 슈베르트 '5 German Dances' D.900
13. 바흐의 '사냥 칸타타' 208번 중 '양들은
편안히 풀을 뜯고(Sheep may safely graze)'
- 알레시오 박스의 피아노
https://youtu.be/a_MtK9W_nok
15. 비발디 류트협주곡 D장조 RV.93의 2번
일 지아르디노 아르모니코(2악장 라르고)
https://youtu.be/-G5ZB2s40n8
- 줄리앙 마르티누의 만돌린
: 리날도 알레상드리니의 라디오 프랑스필하모닉
(전악장) https://youtu.be/0pjtWvaEj-M
16. 슈만의 '빠삐용(Papillons)' , Op.2의 10번
'Waltz Vivo' - 니콜라 에코노무의 피아노
https://youtu.be/5csG23b4k9U
17. 요셉 빈스 하트 'Hart's Lancers Quadrille'
1). 'La Lodoiska'
https://greenginger.bandcamp.com/
track/joseph-hart-s-lancers-quadrille-1
-la-rose
2). 'La Finale'
18.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Kinderszenen)',
Op.15의 1번,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Von
fremden landern und menschen)'
- 마르타 아르게리히의 피아노
https://youtu.be/XMs7o19C-YM,
- 李 忠 植 -
첫댓글 <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예고편
https://youtu.be/79_nkjuOWVg
PLAY
<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엔딩 신
https://youtu.be/EA5xRXl-jSw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