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한 에스라 성서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장기용(원장)
빌립보서 3:20에 나오는 '폴리튜마'(poli,teuma)의 번역 문제
원제: 빌립보서의 하팍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인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의 번역 문제
1. 머리말
원문(原文)의 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와 문학 그리고 신학적 의미 분석이 선 행되어야 한다. 본문 읽기의 주된 목표점은 신학적 요소에 담긴 의미를 평가 하여찾아내는것이긴하지만, 그렇다고해서역사적의미, 예를들어기록당 시의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 등의 요소를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 다. 이와 같이 번역문제 역시 문학적 요소를 취급하는 것이 일차적인 작업이 겠지만,1) 역사적요소를찾아그의미분석을동반해야하는것이당연한수 순일 것이다. 근자에는 사회세계비평이라는 분야가 있어 본문에 사용된 단어 가 함의하는 의미 세계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이 본문의 정확한 읽 기에 필수적이라는 점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세기의 삶을 특정 지었던 사회, 문화 그리고 경제적 요소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갖기 위하여, 성서연 구는 사회과학의 지원을 받았다.2) 사회학과 인류학 또한 정치학과 경제학의 자료들의 활용을 통하여 신약 연구자들은 신약성서의 사건들이 자리 잡았고 그 문서들이 쓰일 때의 사회상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다. 그 목적은 역사적 재건보다는 고대 세계에서의 삶의 사회적 역학(social dynamics)을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석할 전문 용어인 ‘폴리튜마’(poli,teuma) 역시 당시의 역사적 의미를 따라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세계가 그 단어를 통해서 무엇을 함축하고 말하려고 했는지를 질문해보면 이 용어의 용도가 무엇을 위한 쓰임새인지 간 파할수있다. 다양한관점을활용하는분석은본문의의미를파악하는데도 움을 준다. 번역은 또한, 삶의 자리에 그려지는 정치지형의 함의까지도 포괄 하는 작업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그 단어가 무엇 을 지시하는지 생소하기 때문이다.3) 성서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구 원과 같은 신학적 개념도 이렇게 다양한 접근방법을 통해서 하나의 실체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를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은 본문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 한 요소로 꼽힌다. 번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예사롭지 않은데, 본문을 적확(的確)하게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저자와 저작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첫걸 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약성서에서 단 한 번 쓰인 ‘하팍스 레고메 논’(hapax legomenon)은 일회적인 용도와 기능만을 수행함으로써 충분한 주 목을 끌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빌립보서 3:20에 나오는 ‘폴리튜마’ (poli,teuma)라는 명사는 같은 서신 1:27에서 그것의 용례인 ‘시민으로 생활하 다’(politeu,omai)라는 동사와 함께 단 한 번 사용됨으로써 그것의 용도와 의미 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성서 본문의 의미는 자료언어의 형태로부터 독립되어 목표언어의 문법에 따라 재배열되고 재표현되면서도 본래의 의미는 손상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지만,4) 역사적으로 추 적해야 할 단어의 경우는 다른 각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경 우는 문법적인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법적이고 사회적인 환경에서 활용되었 기 때문이다. 만약 폴리튜마가 대개의 번역처럼 시민권으로 번역된다면, 즉‘시민권으로부터 구원자의 도래를 기다린다’는 어색한 문장이 되고 만다.5)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연 바울이 사용한 폴리튜마가 빌립보서의 본문에서 어떤 용례로 사용되었는지 질문해야 하지만 우선 역사적으로 그것의 용례를 찾아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빌립보의 도시적 특성을 주목할 때 폴리튜마의 성격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바울이 강조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지향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도 요긴하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폴리튜마가 빌립보서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며, 우리말로 어떻게 번 역되어야 하는지 결정할 것이다. 부가적으로 빌립보서에서 드러나는 바울의 신학적 윤곽도 포착되리라 기대한다.
1) “번역이란 한 언어 혹은 원문언어로 표현된 것을 의미와 문체상의 등가를 유지하면서 다른
언어, 즉 목표언어로 표현하는 것인지”, 또는 “특정 언어로 표현된 텍스트 표상을 다른 언어 의 등가적인 텍스트 표상으로 대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음. R. T. Bell, 번역과 번역하기: 이론과 실제 , 박경자ᆞ장영 준 역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3-19.
2) 사회과학비평에 대한 소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J. H. Elliott, What is Social-Scientific Criticism? (Minneapolis: Fortress, 1993).
3) 참조. R. T. Bell, 번역과 번역하기: 이론과 실제 , 109.
4) G. F. Hawthorne, 빌립보서 , 채천석 역, WBC 성경주석 43 (서울: 솔로몬, 1999), 149. 저자는 바울이 진기한 동사인 ‘시민으로 생활하다’(πολιτεύομαι)를 사용하여 고대 헬라의 폴리스(πόλις)의 용례를 적용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5) 빌 3:20에서 바울은 “우리의 폴리튜마가 하늘(들)에 있다”(ἡμῶν γὰρ τὸ πολίτευμα ἐνοὐρανοῖς ὑπάρχει)고 언급하면서, 그곳으로부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학수고 대한다(ἑξ οὗ καὶ σωτῆρα ἀπεκδεχόμεθ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고 말하는데, 바울의 종말론 적인 신학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이 문장에서 그가 언급한 “그곳으로부터”(ἑξ οὗ)는 어디 로부터란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ἑξ οὗ가 단수로 되어 있지만, 하늘(들)은 복수로 서 “그곳으로부터”의 선행사가 될 수 없는 문법적 한계가 발견된다. 그렇다면 응당 단수인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가 그곳으로부터의 선행사가 되어야 한다.
2. 폴리튜마의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신약성서에 사용된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은 본문의 바른 이해와 직결된다. 이러한 인식은 중요한데, 바른 번역(읽기)이 원문의 의도를 감지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6) 그렇지만 신약성서에서 단 한 번 쓰이는 단어나 용어 또는 특별한 용도로 쓰이는 사례(들)에 대하여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것 의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분석이 뒤따르지 않 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7) 이러한 진단은 성서 번역작업을 위해서도 반드시 짚어야 할 요소이다. ‘하팍스 레고메논’의 경우와 같이 특정 용어의 번역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용어들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기 때문이다.8)
‘하팍스 레고메논’에 해당되는 폴리튜마는 정확한 판독이 이루어지지 않 을경우본문번역에서그단어의쓰임새에혼돈이생길수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는 조직이라는 다양한 분석이 뒤따랐 다.9) 물론이단어가신약성서에서단한번쓰였다고해서다른곳에서도아 주 드물게 사용된 것은 아니다. 폴리튜마는 정치행동, 시민권리, 국가, 정부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또한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가진 사람들 의 모임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어 그 용도를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10) 왜냐하면 폴리튜마라는 조직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을 함의했었는지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폴리튜마는 외국도시(들)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의 조직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 도시 의 정치조직 내부에 있는 어떤 기관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이 단어의 다양한 용법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임을 ‘폴리튜마’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조직(들)을 살펴보며, 빌립보서 3장 에서 바울이 사용한 ‘폴리튜마’(poli,teuma)라는 용어가 통상 시민권을 지시하 는 것으로 번역될 때 본래 의미가 우리말로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확인할 것 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폴리튜마가 무엇을 지시하는지를 역사적 상황에 서 해명하는 것은, 용어에 대한 바른 번역은 물론 빌립보서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 긍정적이며 빌립보서의 신학적 이해에 흥미를 더할 것이다.
6) S. Crisp, “Challenges for Bible Translation Today/현대 성서번역을 위한 도전들”, 신현우 역,성경원문연구 24 별책 (2009), 197-208.
7) 참조, D. A. Carson, 성경해석의 오류 , 박대영 역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적은 분 량의 책이지만 여기서 저는 단어연구, 문법, 논리, 그리고 큰 틀에서 성경해석의 전제적 오류 와 역사적 오류를 소상하게 밝혀낸다.
8) 번역은 악(惡)과 반역(反逆) 내지 제2의 창작(創作)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신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번역상의 불완전함은 지적되어 다음 번역을 위한 기초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 6:1의 개역개정판 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라고 번역했는데, 실 상은 여기 사용된 부정과거 분사형인 아펜테스(ἀφέντες)가 ‘버리고’가 아니라 ‘떠나서’가 맞 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ἡ ἀρχή τοῦ Χριστοῦ)란 신앙의 근거이고 기초인데 그 것을 버린다는 것은 문학적 맥락으로 의미가 잘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본문의 흐름상 어색 하기 때문이다. 초보는 언제까지나 근거와 기초로서 반드시 그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 다. 물론 초보로 번역된 아르케(ἀρχή) 역시 새번역을 따라 ‘초보적 교리’가 더 어울린다.
9) 참조, R. H. Reimer, “Our Citizenship in Heaven: Philippians 1:27-30 and 3:20-21 As Part of the Apostle Paul’s Political Theology”, Ph.D. Dissertation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97), 166-172.
10) 참조,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2000), 845-846; H. G. Liddell and R.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with Revised Supple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96), 1434: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illustrated from the Papyri and Other Non-literary Sources (Grand Rapids: Eerdmans, 1982), 526.
3. 바울의 정치신학과 빌립보서의 폴리튜마 문제
폴리튜마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연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11) 해외에서는 물론 여러 바울 연구자들의 심화된 제안이 제시되었고, 빌립보서의 전문주석 서에서 폴리튜마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리튜마에 대한 번역은 대동 소이하여 대부분 ‘시민권’(citizenship)으로 번역한다.12)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신약학자들이 폴리튜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바울의 정치신학적인 태도를 통해서 빌립보의 신앙공동체를 교육하려는 신학적 해명에 치중했다. 이러한 논의의 시작은 20세기 전반 파피루스 연구로 명성을 떨친 다이스만(A. Deissmann)이 그레꼬-로마 시대의 사회와 종교사를 분석하여 황제 숭배에 쓰였던 용어가 신약성 서, 특히 바울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부터 시작되었다.13) 다이스만 의 연구가 성서 본문을 비교하여 해당 단어가 고대문서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면, 최근 연구의 관심은 그 용어들이 본문에서 어떻 게 작용하는지를 판별하여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정치적 입장을 신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있다.
이미 밝혔듯이 폴리튜마에 대한 바른 번역에 집중하지만 그것에 대한 연구가 어떤 논의와 관련되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요긴할 터라 여기서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를 간략하게나마 알아본다. 먼저 바울서신이 로마제국을 반대하기 위하여 용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게오르기(D. Georgi)가 있다. 그는 로마제국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는 용어들을 차용하여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고 제안한다.14) 그는 또한 로마서의 서술이 갖는 반 로마제국의 논조
를 주목하여 복음의 특성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찾아낸다.15) 퀘스터(H.Koester)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는 로마제국의 오만불손함을 비판하기 위하여 데살로니가전서 5:3의 “평화와 안전”(Εἰρήνη καὶ ἀσφάλεια)이란 문구에서 정치신학적 함의를 찾는다. 제국의 정치용어인 이 문구는 평
화와 안전을 확보하려는 제국의 선전용이다.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그들의 통치에 순응할 때 민족들의 안녕이 보장되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주장이다.16)
필자 역시 신약성서의 반-로마(제국)적 입장을 주장하며 누가문서(Luke-Acts,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묘사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로마제국과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제안했지만,17) 학자들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18) 최근까지 바울서신의 정치적 해석을 주도한 홀슬리(R. A. Horsley)는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사용한 폴리튜마를 ‘시민권’이라기보다‘정부’로 번역하여 하늘에 하나님의 정부가 있다고 해석하면서, 이러한 근거 에서 3:20은 지상에 존재하는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대안 통치구조인 교회(ἐκκλησία)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은 누가복음 2:11에서 공명(共鳴)하는데,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그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말하 면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고지(告知)하며 특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σωτήρ)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κύριος)시니라”고 전하는 메시지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구주’와 ‘주’라는 호칭은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들 에게만 붙여졌으며, 아기 예수에게는 어불성설이나 같았고 더구나 이제 갓 태어날 유아(=예수)를 로마 황제와 동일선상에서 견준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 니컬한 구석이 있다.19) 즉 황제가 구원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참된 구주/구 원자라는 상반된 주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천사의 고지는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당시 세계의 구원자로 칭송되던 로마 황제와 직접 적으로 대척점에 위치한 상대라고 제시됨으로써 정치적으로 긴장을 고조시 킨다. 여기서 바울과 누가가 로마 황제와 제국을 반대하는 동일한 입장을 견 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바울과 그의 사상에 대한 최근 연구에서 톰 라이트(N. T. Wright)는 바울 복음과 황제의 제국 사이에서 판별할 수 있는 차이점을 주목하는 데 특히 바울의 복음은 유대교 전통에서 관찰할수록 황제 숭배(imperial cult)라 는 사상에 더 직접적으로 저항한다고 강조한다. 즉 다른 왕이나 황제에 대한 충성은 포기하고 예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라고 촉구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것은 예수에게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 나님에 대한 충성과 맞닿은 의미이기도 하다.20) 라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빌 립보서에서 바울은 로마제국의 통치에 대한 직접적인 논박보다는 황제 숭배 와 관련하여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출발했다고 전제하 면서 바울은 유대교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재림과 함께 로마가 통치 하는 ‘악한 시대’의 끝을 기대했으며,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한 것이 라고 주장한 홀슬리와 일치한다. 라이트는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이 유대인 들을 거론하면서 그들과 신학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는 이방인들에게 계약공동체의 탄생이라는 종말론적 신학을 주장한다고 이 해한다. 즉 바울이 로마제국의 황제가 속주도시들을 직접 방문하여 제국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들의 생활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 과 같이 새로운 황제인 그리스도가 빌립보를 방문하는 결과로 그들에게 절실 한 종말론적인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라이트는 주장한다.21) 위에서 거론 된 학자들의 주장이 갖는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연구가 끝나는 시점 에서 확인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신학적인 해석은 바울서신의 이해에 새로운 빛을 제공한다. 왜 냐하면 바울이 선교하던 당시 상황은 로마제국의 정치권력을 가장 숭상하던 사회였고, 그와 같은 환경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들의 생존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무엇보다도 중시했기 때문이다. 바울서신 가운데서 정치적 중 립 내지 제국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언급도 있는 것은 바로 이와 연관되는 이유가 된다.22) 이러한 정치신학적인 주장들은 바울의 관점이 과연 어느 곳에 머물며 동시에 폴리튜마 역시 어떤 동기로 쓰였는지 보다 심층적 으로 분석하도록 이끈다. 이에 따르는 폴리튜마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은 바 울서신의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 므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폴리튜마의 쓰임새를 보다 정확하게 알아보려는 것 이다.
11) 폴리튜마를 연구한 논문은 2편으로 확인된다. 윤철원, “알렉산드리아 행전(Acta Alexandrinorum)의 생성배경 연구”, 「신약논단」 3 (1999), 125-141. 필자는 알렉산드리아에 서 유대인공동체가 경험한 역사적 족적을 통해 폴리튜마의 정체성을 추적한다; 김덕기, “바 울의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정치신학-빌립보서 1:27-30과 3:20-21을 중심으로”,「신약논단」 17:3 (2010), 711-753. 김덕기는 폴리튜마 연구의 최근 경향을 분석하면서 빌립 보서에서 폴리튜마를 통해서 바울이 제시하려는 정치신학적 태도를 밝힌다.
12)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주석의 경우도 유사하다. C. B. Cousar, Philippians and Philemon(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9). 예를 들어, 영어번역들의 폴리튜마 번역은 ‘시민 권’(citizenship)으로 동일하다. 특기할 것은 매우 제한된 영어성서(Reviser Standard Version과 Revised English Bible)에서만 ‘국가’나 공통의 이해관계로 형성된 ‘단체’나 ‘세계’를 의 미하는 ‘commonwealth’로 번역한 것이 눈에 띤다.
13) A.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27), 338-392.
14) D. Georgi, Theocracy in Paul’s Praxis and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1991) 83. 복음,믿음, 의 그리고 평화라는 용어는 로마제국이 선전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위해 사용되었다.
15) D. Georgi, “God Turned Upside Down”, R. A. Horsley, (ed.),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48-157. 로 마서 역시 로마제국의 정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정밀하게 비평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제안 하면서 로마의 황제와 제국은 참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도전 받는다고 주장한다.
16) H. Koester, “Imperial Ideology and Paul’s Eschatology in I Thessalonians”, R. A. Horsley, ed.,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61-162. 퀘스터는 이 문구는 유대교의 종말론 전승에서 찾아보기 어렵 다고 말한다. 특히 ‘안전’이란 용어는 바울서신에서 다시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7) 윤철원, 신약성서의 그레꼬-로마적 읽기 (서울: 한들출판사, 2000), 265-316. 바울의 재판 상황에서 발견되는 반-로마제국의 이미지와 모티프들을 찾아내어 읽어보는 것은 사도행전 읽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복음을 포함하여)사도행전이 정치 선전을 일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엄연히 누가문서의 저자는 복음의 증인으 로서의 책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대표 독자인 데오빌로가 접한 복음의 진정성에 확실성(ἀσ φάλεια)을 더해 주려는 목적을 명시해 두었기(눅 1:4) 때문이다.
18) H. Conzelmann, Theology of St. Luke (London: SCM, 1961). 누가의 기록 목적이 재림 지연에 직면한 교회가 로마제국에서 생존(生存)해야 하는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고 주장 하는 정치적 호교론을 독보적으로 주장하여 20세기 누가신학의 중심 축을 형성했다. 즉 파 루시아의 지연을 경험하는 교회가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로마 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의 정치세력과의 세련된 관계유지로 교회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19) J. B. Green, Theology of Luke, New Testament The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5), 8, 34.
20) N. T. Wright, “Paul’s Gospel and Caesar’s Empire”, R. A. Horsley, (ed.), Paul and Politics(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164-165.
21) N. T. Wright, “Paul’s Gospel and Caesar’s Empire”, 173-174.
22) 전통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로마서 13장이 꼽힌다. 참조. N. Elliot, “Romans 13:1-7 in the Context of Imperial Propaganda”, R. A. Horsley, ed.,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84-204. 로 마정치의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 저항하여 정치폭동을 일 으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데, 하나님은 거짓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제국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4. 폴리튜마의 용례 분석
폴리튜마(poli,teuma)는 정치적인 행동이나 시민들의 권리를 위한 모임이나 조직을 지시하는 데 쓰였다. 또한 고국을 떠나 외국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 들의 회합, 즉 전 세계에 흩어져서 생활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모이는 조직의 경우와 유사한 모임에도 사용되었다. 이와 함께, 그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 장받거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국정부 또는 속주의 지방 정부의 허가를 받아 구성된 모임을 지시할 때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다. 이 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이 단어가 함의하는 다양한 용법에 대한 정확한 정의 를내리고자할때애를먹을수밖에없다.23) 먼저여기서다룰과제는자신들 을 ‘폴리튜마’라고 불렀던 조직이 어떤 형태를 띠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며,나아가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의 (하늘의) 폴리튜마 발언에 함의된 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폴리튜마의 용례 가운데 맨 먼저 확인되는 용례는 이집트 고대도시의 유적 지인 베레니스(Berenice)에서 발굴된 두 비문이다. 이 비문들은 ‘폴리튜마’가 지금까지 사용된 첫 사례에 해당한다.24) 이것은 ‘베레니스에 있는 유대인들 의 폴리튜마’로 불리는 유대인들의 조직이 공포한 법령으로 구성되었다. 또 다른 폴리튜마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에 언급되어 있 다.25) 베레니스의 비문들이 발굴된 이래 대부분의 학자들은 베레니스의 폴리 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폴리튜마를 동일한 것을 지시한다고 간주했 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은 대단한 세력을 형성했었다.26) 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제공하는 주인공들이었는데, 도리어 그것이 알렉산드리아를 반-셈족주의의 본산이 되게 만들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은 폴리튜마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와의 깊은 연관성이다. 폴리튜마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다수가 살던 알렉산드리아를 연결해보면, ‘호이 아포 투 폴리튜마토스’(οίαπ́ὸτου πολιτευμ́ατος)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전체 유대인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폴리튜마와 다수(多數)를 지칭하는 ‘토 플레쏘스’(τό πλῆθος)를 동 의어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폴리튜마는 다른 공동체와는 구별되는 어떤 특권 을 누렸다.27) 물론 폴리튜마에 제공되던 혜택과 특권을 가졌던 유대인들의 폴리튜마와 함께 자신들을 폴리튜마로 부르는 비유대인 조직(들)도 있었 다.28) 폴리튜마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폴리튜마’가 전문 용어로 사용된 사례만으로 제한하면 두 범주로 분류된다.
1). 그리스 폴리스(polij)의 행정조직의 일부인 정치조직.
2). (1)의 사례에는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의 조직화된 다른 모임.
이 구분에 따르면, 그리스 도시에 있는 외부인들의 조직인 유대인 폴리튜 마는 물론 두 번째 범주에 포함되고,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폴 리튜마가 하늘에 있다고 언급할 때도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 리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정치조직의 형태로 나타난 ‘폴리튜마’나 이 용어로 지칭되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부 기구(NGO)의 흔적을 가진 폴리튜마의 다양 한 유형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분석은 폴리튜마가 쓰였던 사례 가 지시하거나 의미했던 것을 확인해 줄 것이며, 바울이 언급한 (하늘에서의)폴리튜마(빌 3:20)가 함축하는 신학적 차원을 파악하도록 도울 것이다.
23) 참조. G. Lüderitz, “What is the politeuma?”, J. W. van Heuten and P. W. van Der Horst, (eds.),Studies in Early Jewish Epigraphy (Leiden: E. J. Brill, 1994), 183-222.
24)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XV, 913.
25) 아리스테아스 서신(Letter of Aristeas)에 의하면, 유대교의 경전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70인 역(LXX) 번역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도서관 사서 데미트리우스(Demetrius)는 알렉산드리 아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을 소집했고, 그 두루마리를 엄숙하게 들려주었다(308). 이러한 맥 락에서 서신의 저자인 위-아리스테아스(Pseudo-Aristeas)는 폴리튜마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두루마리가 읽혀졌을 때, 제사장들과 번역자들과 폴리튜마에 속한 사람들의 장로들과 많은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일어나서 말했다.”(310) 이 문장에서 네 그룹인 ‘제사장들’, ‘번 역자들의 장로들’, ‘폴리튜마 출신의 장로들’과 ‘많은 사람들의 지도자들’이 거명된다. 이 경 우 폴 리 튜 마 출 신 ( α π́ ́ο ̀ ̀τ ο υ π ο λ ι τ ε υ μ́ ́α τ ο ς ) 이 라 는 언 급 과 많 은 사 람 ( τ ὸ π λ ῆ θ ο ς ) 은 같 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폴리튜마의 장로들’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지도자들’과 다른 그룹 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폴리튜마는 알렉산드리아의 다른 유 대인들과는 구별되는 유대인들의 더 작은 집단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폴리튜마 안에서 얼마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조직했고, 그들의 중요성 때문에 별도로 언급될 수 있다.
26) 윤철원, “알렉산드리아 행전(Acta Alexandrinorum)의 생성 배경 연구”, 129.
27) 알렉산드리아의 폴리튜마는 준 시민권자들의 집단으로 이해되었다. 윤철원, “알렉산드리 아 행전(Acta Alexandrinorum)의 생성배경 연구”, 136-139.
28) 참조. Antiquitates Judaicae 14.215f., 235. 여기서 요세푸스는 세계의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 의 조직들을 ‘쉬노도스’(συν́οδος)나 또는 ‘씨아소스’(θιάσος)라 부른다. 첨언하여 설명하 면, 두 용어는 협회나 클럽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이다. ‘쉬노도스’는 모든 종류의 협회에 쓰 이는 아주 일반적인 명칭인데 반하여, ‘씨아소스’는 주로 어떤 협회의 종교적인 측면을 강 조한다.
4.1. 정치 유형의 폴리튜마
폴리튜마의 정치적 형태에 대해서는 두 사례를 통해서 나타난다. 첫째는 프톨레미(Ptolemy) 1세가 주전 321년에 키레네인들의 헌법을 다시 제정한 바에 따르면, 키레네의 폴리튜마는 수천 명의 남성만으로 구성된 모임이었다.이 모임에 소속될 수 있는 자격은 배우자의 재산을 포함, 2,000드라크마를 소 유해야만 했다.29) 이 재산은 60명의 조사단이 평가했는데, 이 조사단은 101명 의 장로들로 구성된 원로들에 의해서 폴리튜마의 구성원 가운데 선발되었고 나이 제한은 최소 30세가 되어야 했다. 이 폴리튜마는 시민권을 부여하고 원 로들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전쟁 중에는 폴리튜마가 최고사령관 을 승인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선출했다. 사형이 포함된 소송에서 판결은 원로들과 입법의회(제비뽑기로 임명된 500명의 위원회로, 50세가 되어야 하 고 2년 임기)와 제비뽑기로 선발된 1,500명의 폴리튜마 구성원에 의해서 통 과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특권을 가진 폴리튜마(μύρ́ιοι, 1만 명)는 프톨레미 에 의해 확대되었다. 동일한 기능은 전에 (전쟁 이전) 1천 명(χιλ́ιοι)에 의해 서 수행되었다.30) 이것은 키레네 정부의 기반을 확대하고 강화시키려는 의도 로볼수있다. 정부는귀족정치나금권정치상태에있었지만더많은사람들 이 당시 지배계층에 속했다. 키레네의 폴리튜마가 지닌 특성은 이러한 규정 들에 비춰볼 때 분명히 시민들의 단체는 아니다. 이 시민들의 단체는 규모가 더 컸고, 시민권은 다른 방법인 세습으로 획득되었다.31) 시민들은 어떤 권리 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키레네의 헌법에 따르면 그들 모두가 이 도시의 행정 에참여한것은아니었다. 결론적으로위의사실에서확인할수있는것은키 레네의 정치권력이 폴리튜마에게 있었다는 점이고, 그 폴리튜마에 소속하기 위한 자격은 오늘날의 정치헌금처럼 금전적인 원리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 러므로 키레네의 폴리튜마는 현대적인 개념의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직능이나 소수집단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배려하 는 대안장치로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출방식 가운데 비례대표제 같은 특 수한 제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폴리튜마의 두 번째 정치형태는 주전 332년 중반 소아시아 전투에서 알렉 산더 대왕이 에게 해의 키오스(Chios) 섬에서 추방된 주민들의 귀환을 명령한 편지에 드러난 법령에서 확인된다. 이 편지에서 시인 호머(Homer)의 고향으 로도 유명한 키오스 섬의 주민들(δημος)에게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과 같이 공포한다. “키오스에서 추방된 사람들은 모두 복귀해야 한다. 키오스의 폴리 튜마(poli,teuma)는 그 주민들이 될 것이다. 입법자들이 선출될 것이고, 그들은 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도 민주주의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며 추방자들의 귀환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32)
이로 보건대 알렉산더 대왕이 에베소와 다른 도시들에서 시행했던 것처럼키오스에 민주주의를 수립했음을 알 수 있다.33) 키오스 섬의 헌법은 주민들 스스로 폴리튜마를 구성하는 방식이었으므로 민주적이었다. 물론 키오스 섬 의 폴리튜마는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에서고도로발달한민주주의의형태를띠고있다고말할수없다. 즉제 국의 정부나 속주 또는 식민지정부로부터 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매우 현실적 인 대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키오스 섬을 대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숨겨진 정 치적 의도는 우리의 논의와는 별개이다.
위의 논의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폴리튜마라는 공적 제도가 어떤 폴리스 에서 특정한 권한과 투표 과정을 가지고 있는 주권 단체로서 지배계급을 대 표한다는 점이다. 폴리튜마에 속한 시민들이 모두인지 아니면 일부인지는 특 정도시(들)의 법이 규정한다. 폴리튜마는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으로 구 성되고(주로 성인 남성들), 귀족정치에서는 일부 시민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용어를 사용한 방식과 일치한다.34) 폴리튜마는 권력을 상징하는 주권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서는 백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고, 과두정치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다.35) 만일 과두정치의 형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산의 소유자들이라고 하면 많은사람들이그폴리튜마에참여할수있었을것이다. 각도시의서로다른 폴리튜마가 얼마나 규모가 크다거나 그들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에 대해서 는 물론 규정된 법에 따랐다. 그러므로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폴리튜 마가 정치적인 뉘앙스를 어떤 맥락에서 활용했는지 밝히는 것도 매우 흥미로 울 것이다.
29)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9.1. 여기에는 많은 특별규정들이 있었다. 많은 채무 는 어떤 조건 아래서 채권자의 재산으로 간주되었다30) Ibid.
31)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XVIII, 726.'
32) Sylloge Inscriptionum Graecarum, I. 283.
33)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의 중요한 각 도시에서 실시한 민주적인 절차에 대하여 다음을 참고할 수 있음. A. Kasher, The Jews in Hellenistic and Roman Egypt, TSAJ 7 (Tübingen: J.C.B.Mohr, 1985), 181.
34) 참조, 2 Maccabees 12:3-7.
35) Politica, 1293a 15f.
4.2. 직능 유형의 폴리튜마
현대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베이비부머들이 유년기를 보 낸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이나 문화 속에서 보존되었던 공동체의 연대성이 완전히 사라져가는 대신 개별화된 생활 패턴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현상은 세분화되고 다양화되고 있지만 특히 상품 구매나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극명해지고 있다. 자신의 구미에만 맞으면 되지 여타의 관계망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사회와는 판이하여 그 당시의 공동체 중심의 생활 패턴과 완전히 반대 현상을 보여준다.36) 예를 들 어, 누가복음이 묘사하는 집단화된 사회의 단면은 매우 독특하다. 유월절 축 제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예수의 부모가 예수만을 남겨두고 나사렛으로 돌아가고 있는 장면이 당시사회의 공동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누가복음 2:44에서 예수의 부모는 그가 “동행”(συνοδία) 가운데 있는 줄로 생각했는데, 이 말은 여행자들의 그룹을 지시한다.37) 예수가 예루살렘 순례 그룹 가운데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은 예수의 부모의 모습 속에 서 고대인들의 집단지향적인 인격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대인의 사 고구조에서 이해하기 힘든 양상이다. 그렇지만 집단화된 사회에서는 순례그 룹의 일원으로 예수가 나사렛을 향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고 대사회에서 ‘폴리튜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이나 특별한 단체를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여성들의 축제모임, 종교행위를 위한 특별 한구역, 군인들의모임, 외국에거주하는사람들가운데서같은도시출신시 민들의 모임 같은 민족공동체로 확대되어 자신들의 공동체성을 유감없이 발 휘했다. 직능 유형별로 자신들만의 고유성을 갖고 있는 각 폴리튜마의 성격 과 특징을 살펴보면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36) 1세기 지중해 세계의 특징이 ‘집단지향적인 인격’이라는 견해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음. B. J. Malina, 신약의 세계 , 심상법 역 (서울: 솔로몬, 2000), 119-130.
37) Josephus, Bellum Judaicum, 2.587.
4.2.1. 여성 폴리튜마
직능 유형으로 보는 폴리튜마의 첫 양태는 여성 폴리튜마인데, 매우 독특 한 형태를 띠고 있다. 파나마로스(Panamaros)에 있는 제우스 신전 경내에서 주전 200년부터 주후 300년까지의 기간에 걸친 400개가 넘는 비문이 발견되 었는데,38) 매우 흥미롭게도 그 가운데서 많은 비문이 축제 기간에 활동했던 사제들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는 2년마다 ‘헤라 축제’(Heraia)가 열렸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여성들만을 위한 축제였다.39) 사제들이 헤라 여 신을 숭배하는 헤라이온(Heraion) 신전으로 자유인들(the free)인 여성들을 초대하여 술과 돈을 제공했는데 물론 (여성)노예들까지도 포함되었다. 비문들 에는 ‘모든 여성들’(τας̀γυναικας πασ́ας)과 같은 표현 대신 ‘여성들의 폴리 튜마’(τὸπολ[ει]τ́ευμα των γυνα[ι]κων)가 초청받아 대접을 받았다고 적어 놓았다. ‘여성 폴리튜마’는 모든 여성들을 나타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폴리튜 마가 어느 특정 그룹을 지칭했다면 다른 여성들이 또한 언급되어야 했기 때 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축제 기간에 어느 조직을 구성했다. 남성들은 그 신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경내에 남아 있었다. 이것이 맞다면 여 성 폴리튜마는 축제 기간에만 운영된 한시적인 조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쭉 연이어 계속되는 순례자들의 모임 내지 조직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 폴리튜마는 화환과 비명(碑銘)의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었다.40)
그러므로 여성 폴리튜마의 유형이나 특성은 바울이 언급한 것과 유사하거 나 일치하지 않는다. 그가 빌립보서 3장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빌립보 교회 의 구성원들이 믿음 안에서 연대(連帶)와 일치를 형성하여 교회를 세워간다 면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지복의 소유자가 되리라는 강한 확신을 전하고 있 고, 여성 폴리튜마가 갖고 있는 매우 제한된 기간만의 특권이라면 실제로 한 시적인 즐거움을 선사받는 유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 천대받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당의정(糖衣錠)과 같이 일시적인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 같은 돌봄과 복지적인 특성을 지닌 여성들만을 위한 폴리튜마의 존재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 법하다. 동시에 고대사회의 상황에 서 여성들의 권익보호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모임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금전적인 혜택을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 다. 그렇지만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신앙의 유희나 일회성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통치 안에서 누릴 종말론적인 영원성에 대해서 강한 확신을 선언한다. 그 러므로 바울이 언급하는 천상의 폴리튜마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성 폴리튜마 가 제공하는 통찰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나 신앙공동체와 같은 조직이 실 제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뿐이다.
40) Sylloge Inscriptionum Graecarum, III. 1107.
4.2.2. 종교 폴리튜마
직능 유형의 폴리튜마 가운데 두 번째로 종교 폴리튜마는 이집트의 고대도 시 파이욤(Faiyum)에 있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발견된 한 묘비를 통해서 알려졌다. 그 비문의 날짜는 93년 4월 7일이다.41) 폴리튜마의 지역은 사킵시스(Sachypsis)의 신전 전체를 나타내거나 아니면 폴리튜마를 위해서 지정된 그 신전의 일부를 나타낸다. 한편으로 이 폴리튜마는 고인이 된 이 폴 리튜마의 설립자일 가능성이 있는 위대한 하쏘테스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 거나 이시스(Isis)의 별명인 사킵시스 여신을 따라 명명되었을 것이다.42) 따 라서 이 폴리튜마는 아마도 하쏘테스가 유언으로 기부한 경비로 건립되었을 것이다. 이 폴리튜마는 사킵시스의 신전 한 구역을 가졌고 그 여신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이 종교 폴리튜마는 ‘제의협회(cult association)’로도 볼 수 있다. 뤼데리츠는 이러한 입장에 모든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말한다.43)
그렇다면 바울이 언급한 폴리튜마와 어떤 연관성을 찾아보면, 그는 누군가 를 위한 모임이나 공간을 마련하여 봉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의 영역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누릴 하늘에서의 향연이 보장되어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가 작동하는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44) 이것은 어떤 개인 이나 조직이 자기들의 이름이나 자금의 동력을 활용하여 입지를 확보하는 것 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움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 에 참여하기를 진정으로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 여기서 특히 지적되어야 한 다.
41) Gert Lüderitz, “What is the politeuma?”, 191에서 재인용. “가이사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 스 게르마니쿠스(Caesar Domitiannus Augustus Germanicus) 황제를 위하여, 최고의 여신 사 킵시스의 축복을 받은 하쏘테스(Harthotes)의 폴리튜마의 지역은 아에깁티 페트로니우스 세쿤도스(Aegypti Petronius Secundus) 총독 시대에 압돈(Abdon) 의장에 의해서 재건축되었 다.
42) K. J. Rigsby, Asylia: Territorial Inviolability in the Hellenistic World (Berkeley; Los Angeles Univ. of California Press, 1997), 554.
43) G. Lüderitz, “What is the Politeuma?”, 191.
44) 참조, 김덕기, “바울의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정치신학-빌립보서 1:27-30과 3:20-21을 중심으로”, 711-753. 여기서 저자는 반제국적이거나 친제국적인 정치적 입장이 주도하는 정치적 해석을 반대하며, 유대교 공동체나 로마제국의 정치모델이 아닌 그리스도 가 통치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비전을 제안한다
4.2.3. 군인 폴리튜마
세 번째로 직능 유형의 폴리튜마는 군인들과 관련되어 있다. 주전 112/111년 혹은 76/75년에 기록된 한 헌정 비문은 알렉산드리아에 주둔했던 군인들 의 폴리튜마를 언급한다.45) 이 군인 폴리튜마에는 대표(προστάτης)와 서기(γραμματεύς)가 있었는데, 둘 다 고대사회의 단체에서 통상적인 자리였다.이러한 자리에는 ‘크티스타이’(κτισ́ται)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그런 맥락에 서 ‘크티스테스’(κτισ́της)는 신전 같은 건물이나 협회의 설립자를 지칭한다.어떤 건물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제우스 소테르와 헤라 텔레 이아에게 헌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맹세를 의미하는 ‘유켄’(ευχ́ην́)이라 는단어가나오기때문에, 그것은그비문과함께봉헌된기념비로보인다. 따 라서 설립자들을 지칭하는 ‘크티스타이’(κτισ́ται)는 이 비문에서 언급된 대 표와 서기를 지시하고, 그들은 분명히 이 폴리튜마를 세웠을 것이다.46)
스몰우드는 “폴리튜마는 외국 도시에서 거주의 권리를 누리는 이방인들로 구성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기구였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반자치적인 시민 단체를 형성하고 도시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도시였다”고 언급하면서 “그것은 속주의 통치자나 시민단체나 아마도 그 권한과 조직을 규정한 설립 허가서를 받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만 했다”고 주장한다.47) 그렇지만 비문에 대한 내용 분석을 통해 폴리튜마가 다양한 조직 형태와 특성을 가지고 있음이 확 인되었다. 그러므로 위에서 파악된 사항에 근거하여 빌립보서의 폴리튜마가 보다 더 정밀하게 정의되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게 된다. 파당성 이 농후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교회(εκκλησία)에 대한 강조가 빌립보서 의 바울의 언급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8에서 예수와 베드로 사 이에서 벌어진 세족사건도 이와 마찬가지의 강한 연대성을 암시하는 매우 정 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예수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 이 없다”(Ἐὰν μὴ νίψω σε, οὐκ ἔχεις μέρος μετ̓ ἐμοῦ)고 천명한 것은 둘 사 이의 친밀한 관계라는 정치적 연대의 뉘앙스가 매우 짙다. 왜냐하면 여기서 상관에 해당하는 메로스(μέρος)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산, 특별히 약속의 땅, 또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분깃을 소유하는 일에 대해 사용되 기 때문이다.48) 이와 같이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교회가 응당 일치된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새로운 비전 공동체로 자라나가기를 훈육 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 묻어나는 정치적 뉘앙스는 정치행위나 집중된 권력의 사용 문제 등을 언급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려는 강한 의지로 결집되도록 이끈다. 이것이 지금까지 바울을 정치신학적으로 해석한 견해들과 다른 입장이다. 바울의 관심은 정치적이거나 권력 자체에 대한 것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하는 윤리적이고 실천적인데 더 가깝다고 지적할 수 있다.
45)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XX, 499. “제우스 소테르(Zeus Soter)와 헤라 텔레이 아(Hera Teleia), 알렉산드리아에 온 군인들의 폴리튜마와 그들의 대표(προστάτης)인 칼론 의 디오니시오스(Dionysios of Callon)와 서기(γραμματεύς) 필립보스의 필립보스(Philippos of Philippos), 설립자들(κτισ́ται)에게, 맹세에 따라(ευχ́ην́) 6년에(씀)”.
46) G. Lüderitz, “What is the politeuma?”, 192-193.
47) E. M. Smallwood, The Jews Under Roman Rule From Pompey To Diocletian: A Study in Political Relation (Leiden: E. J. Brill, 1981), 225.
48) 참조. G. R. Beasley-Murray, 요한복음 , 이덕신 역, WBC 성경주석 36 (서울: 솔로몬,2001), 472.
5. 논의의 요약과 제안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이 단 한번 사용한 폴리튜마의 의미와 그 용례를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서 검토했다. 위의 토론을 통해서 폴리튜마의 역사적 지문(指紋)이 대략적으로 확인되었다. 폴리튜마의 성격이나 의미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단 검증되었기에 빌립보서에서 쓰인 폴리튜마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한 번역을 제시할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선행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빌립보서가 정치적인 고려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정치신학적인 입장에서 로마제국에 적대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49) 왜냐하면 정치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직능 유형별로 구성되는 조직으로서의 폴리튜마 역시 당국의 보호라는 핵우산의 도움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되었고,또한 바울의 정치적 성향이 농후하게 배어 있다면 다른 표현들도 모두 정치 적인 관점으로 읽기가 가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로마제국과 황제에 대 한 비판적 입장이 과연 빌립보서에서 얼마나 지지와 옹호를 받을 수 있는지 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빌립보서 3장에서 사용된 폴리튜마의 적합한 번역을 위해서 어떤 제안을 내놓을 것인가? 우리는 정치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리스 도인들로 구성되는) 조직이 정착할 수 있는 영역 개념으로 폴리튜마를 번역 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표출하고자 하는 바 구체적인 삶의 윤리를 강조하기 때문이다.50)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주권이 작용하는 영역인 하늘에서 누리게 될 특권을 염 두에 두면서 현실에서 자신들의 정체성 확보라는 관점이 부각되어야 한다.물론여기서정치적차원이결코무시될수는 없을 것이다.
폴리튜마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작동하는 영역을 함의하기 때문에 시민권 보다는 (공간적) 영역을 나타내는 ‘(천상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51)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천상의 폴리튜마를 이 세상에 있는 로마인들의 폴리튜마와 대조하기 때문이다.52)
빌립보 교회에 소속 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방도시인 빌립보에서 하나님의 식민지를 이루며 살아 가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늘에 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뻐기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들이 심지어 노예라 하더라도, 수도(首都)가 로마가 아닌 하늘에 있는 더 높 고 더 앞선 공동체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로마에서 통치하는 황제가 아니 라 하늘에서 통치하는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있 음을 강조하는 것이다.53)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깊은 연계성을 갖는 번역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데, 예수의 선포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점을 직시할 때 그의 영원한 통치가 작동하는 ‘(천상의) 공동체’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되 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해와 번역이 종말론적 신앙을 간직한 바울의 신학 적 입장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충분히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바 울이 그것의 충만함이 종말에 이루어질 실체로, 셈족어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헬라적 동의어로 ‘폴리튜마’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제안에 한층 더 힘을 실어준다.54)
즉 그리스도의 주권이 통치하는 영역으로서의 하늘에 있는공동체와조직을상정할수있다. 이와함께수사학비평이제시하는바,바울서신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강조 사이에서 ‘이론과 실제’ 내지 ‘신학과 윤 리’라는 이중구조를 인지할 때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들의 윤리생활이야말로 종말론에 입각한 신앙고백에 근거해야 한다고 역 설한다. 바른 신앙고백을 견지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일상 속에서 강력한 실 천력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빌립보서를 정치적인 문서로 취급하여 이에 일치하는 번역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다.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은 로마제 국의 당국자들이나 그들의 정의롭지 않은 통치에 대한 저항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물론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력은 로마제국이었고 그들의 압제 라는 차원에서 삶의 곤고함은 여전했을 것이다.55)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선두주자로 나서서 제국을 공격하거나 단호하게 반-로마적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빌립보서 3:20에서 바울은 반-로마적인 태도를 갖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통치자와 다른 세계가 있어서 거기에 소속되어 있다고 강조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요, 그것이 작용하는 하늘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을 향한 충성, 소명, 시민권을 소유해야 하고, 그들이 정착할 진정성 있는 기반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제공하는 어떤 정치조직이 아니라 구원자인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오직 하늘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집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자신들만의 규범과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나 돌아갈 공동체와 조직이 있는 도상의 실존인 것이다.56)
49) 참조, 김덕기, “바울의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정치신학-빌립보서 1:27-30과3:20-21을 중심으로”, 715-718. 김덕기는 바울이 제한적으로 종교적 측면에서만 비판하고 저항보다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로마사회에 자리매김을 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제안하는 오 우크스(P. Oakes)의 사회경제적 해석을 비판한다.
50) 빌립보서 2:5 이하의 ‘케노시스’(κένωσις) 기독론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 비하의 모범은 삶의 윤리를 위한 최고의 사례에 해당한다
51) B. Witherington III,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11), 216. 폴리튜마가 내포한 다양한 의미 가운데 시민권도 들어있지 만, 이 점이 바울 당시에는 잘 입증되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한다.
52) R. S. Ascough, Paul’s Macedonian Associations: The Social Context of Philippians and 1 Thessalonians (Tübingen: Mohr Siebeck, 2003), 149.
53) B. Witherington III,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216-217.
54) R. F. Collins, The Power of Images in Paul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08), 55.
55) P. Oakes, Philippians: From People to Lett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를 참고하라. 로마제국의 식민지통치 아래 민중들이 고통당하는 경제적 열악함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56) 베드로전서의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의 고난과 견주어 종말론적인 신학수립이 가능하리라 본다. 참조. J. H. Elliot, A Home for the Homeless: A Social-Scientific Criticism of I Peter, Its Situation and Strategy (Minneapolis: Fortress, 1990).
<주요어> (Keywords)
빌립보서, 바울, 폴리튜마, 알렉산드리아, 로마제국, 정치신학.
Philippians, Paul, poli,teuma, Alexandria, Roman Imperial, Political Theology.
<참고문헌>(References)
성경전서 개역개정한글판 , 서울: 대한성서공회, 2005.
Josephus, Antiquitates Judaicae 14.215f., 235.
Josephus, Bellum Judaicum, 2.587.
Aristoteles, Politica, 1293a 15f.
Klaffenbach, G., Robert, L.and Tod, M. N., (eds.),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IX-X, Leiden: E. J. Brill, 1944Tod, M. N., Woodward, A. M., (eds.),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XVII-XVIII, Leiden: E. J. Brill, 1960.
Dittenberger, W., (ed.), Sylloge Inscriptionum Graecarum, I-IV. Hildesheim: Georg Olms, 1982.
Pfohl, G., (ed.), Supplementum Epigraphicum Graecum, XI-XX, Lugduni Batavorum: Sijthoff, 1970.
Bauer, W.,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2000. Liddell, H. G. and Scott, R., A Greek-English Lexicon with Revised Supple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96.
Moulton, J. H. and Milligan, G.,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Illustrated from the Papyri and Other Non-literary Sources, Grand Rapids: Eerdmans, 1982.
김덕기, “바울의 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정치신학-빌립보서 1:27-30과 3:20-21을 중심으로”, 「신약논단」 17:3 (2010), 711-753
윤철원, “알렉산드리아 행전(Acta Alexandrinorum)의 생성배경 연구”, 「신약논단」 3 (1999), 125-141.
윤철원, 신약성서의 그레꼬-로마적 읽기 , 서울: 한들출판사, 2000.
Ascough, R. S., Paul’s Macedonian Associations: The Social Context of Philippians and 1 Thessalonians, Tübingen: Mohr Siebeck, 2003.
Beasley-Murray, G. R., 요한복음 , 이덕신 역, WBC 성경주석 36, 서울: 솔로몬,2001.
Bell, R. T., 번역과 번역하기: 이론과 실제 , 박경자ᆞ장영준 역,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Carson, D. A., 성경해석의 오류 , 박대영 역,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Collins, R. F., The Power of Images in Paul,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08. Conzelmann, H., Theology of St. Luke, London: SCM, 1961.
Cousar, C. B., Philippians and Philem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9. A.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27.
빌립보서의 하팍스 레고메논인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의 번역 문제 / 윤철원 131
Elliot, N., “Romans 13:1-7 in the Context of Imperial Propaganda”, R. A. Horsley, (ed.),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84-204.
Elliot, J. H., A Home for the Homeless: A Social-Scientific Criticism of I Peter, Its Situation and Strategy, Minneapolis: Fortress, 1990.
Elliott, J. H., What is Social-Scientific Criticism?, Minneapolis: Fortress, 1993. Georgi, D., Theocracy in Paul’s Praxis and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1991. Georgi, D., “God Turned Upside Down”, R. A. Horsley, ed.,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48-157.
Green, J. B., Theology of Luke, New Testament The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5.
Hawthorne, G. F., 빌립보서 , 채천석 역, WBC 성경주석 43, 서울: 솔로몬, 1999. Kasher, A., The Jews in Hellenistic and Roman Egypt, TSAJ 7, Tübingen: J. C. B. Mohr, 1985.
Koester, H., “Imperial Ideology and Paul’s Eschatology in I Thessalonians”, R. A. Horsley, (ed.),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61-162.
Lüderitz, G., “What is the politeuma?”, J. W. van Heuten and P. W. van Der Horst, eds., Studies in Early Jewish Epigraphy, Leiden: E. J. Brill, 1994, 183-222.
Malina, B. J., 신약의 세계 , 심상법 역, 서울: 솔로몬, 2000.
Oakes, P., Philippians: From People to Lett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Reimer, R. H., “Our Citizenship in Heaven: Philippians 1:27-30 and 3:20-21 As Part of the Apostle Paul’s Political Theology”, Ph.D. Dissertation,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97.
Rigsby, K. J., Asylia: Territorial Inviolability in the Hellenistic World, Berkeley: Los Angeles Univ. of California Press, 1997Smallwood, E. M., The Jews Under Roman Rule From Pompey To Diocletian: A Study in political relations, Leiden: E. J. Brill, 1981.
Swaddling, J., 올림픽 2780년의 역사 , 김병화 역, 파주: 효형출판사, 2004. Witherington III, B.,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11.
Wright, N. T., “Paul’s Gospel and Caesar’s Empire”, R. A. Horsley, ed., Paul and Politics,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164-165.
윤철원 교수(서울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교수,신약학)
https://www.bskorea.or.kr/data/pdf/31-06%20빌립보서의%20하팍스%20레고메논%20(윤철원)%20doi.pdf
|
출처: 대한 에스라 성서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장기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