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과 급훈에 대한 소회, 그리고 학교에 대하여

[홍긍표]

교훈과 급훈에 대한 소회, 그리고 학교에 대하여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어디 한둘이랴.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를 반영한다.

유리액자에 담겨 교실마다 걸려있던 급훈도 마찬가지이다.

70년대까지는 천편일률적으로 근엄하고 교훈적 의미가 담겨있는 한자어 급훈이 많았다.

고진감래 / 성실·정직 / 진인사대천명 / 초딩 교실은 ‘쓸모 있는 사람’ 등등

90년대에는 순우리말이나 우리말로 풀어쓴 문자형 급훈이 등장했다.

가온누리(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라)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 / 뜨거운 가슴, 찬 머리.

라면이 얼큰하면 우리는 화끈하게 / 대학가든 공장가든 멋지게 신나게 참답게 살자.

2000년대 들어서 또 한 번 변신을 한다. 특히 고3교실은 현실적으로 변했다.

[올인] 네 모든 것을 걸어라. / 눈 떠! /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 / 엄마가/담임이 보고 있다.

2호선 타자. /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직업이(아내가) 바뀐다.

‘우리는 지금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십분 강조한 글귀들이다.

요즈음은 합성이나 쌍관을 넘어 언어의 유니섹스라 할까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두드림(Do dream)]이란 표현도 보았다.

꿈을 향해 자꾸 두드리다 보면 실현되겠다 싶어 의미연결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급훈이 담임교사의 학급경영 의지가 담긴 내용이라면,

교훈은 종교단체 학교든 독지가가 세운 학교든 모두 건학이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학교는 볼 것도 없이 ‘진리’ ‘정의’ ‘자유’라는 단어가 단골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의 교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낙토건설(樂土建設)’이다.

          (낙토건설탑)                   (그 당시 중학교 전경, 오른쪽 위는 고등학교 신축교사) - 송중 24회 앨범

운동장 바로 위 교사 정중앙에 낙토건설 탑이 있었다.

체육대회 때는 하루 종일 탑 위에서 성화도 타올랐다.

반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교훈을 기억하는 것은

새마을 운동과 맞물려서 교훈 덕분에 각종 지원금(상금)을 쓸어 왔다는 사실이다.

가나안 농군학교도 아닌 1950년 개교한 정규학교의 교훈으로는 참으로 독특했다.

1970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공업 우선 정책으로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농촌지역을 획기적으로 개발하면서 성공한 범국민운동이었다.

이장님댁 마이크로 지겹도록 듣던 그 노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교훈 낙토건설(樂土建設)이 바로 새마을 운동의 취지와 딱 들어맞고,

이런 저런 명목으로 각종 정비사업의 자금이 지원될 때,

교훈을 내세운 송악중학교의 사업계획서는 비교불가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교훈 덕을 얼마나 보았으랴 싶지만, 또한 교훈 덕을 본 학교는 어디에 있으랴 싶다.

교실마다 태극기를 가운데 두고, 왼쪽이 교훈이고 오른쪽이 급훈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때는 액자 속에 넣는 태극기 형태가 일제의 잔재라 하여 깃대 태극기를 하다가

지금은 다시 액자 태극기로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실엔 필요 없고 교내 국기게양대에 펄럭이는 태극기 하나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옛날의 유곡초 교사)                                          (현재의 유곡초-홈페이지)

책상, 식판, 교실, 건물, 운동장 등 지겨운 4각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님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식상한 말.

누가 그랬단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린다.”

그럼 학교 마당인 ‘교정(校庭)’이 교도의 ‘교정(矯正)’인가?

교훈을 [법과 질서의 확립], 급훈을 [행복한 교정(矯正)]이라고 하면 어울리겠다.

졸업할 때는 꽃다발 대신 다시는 오지 말라고 두부를 안겨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감방생활(?)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좋은지 졸업하는 날엔 입던 교복도 찢는다.

서글픈 통계가 있다. 학생들 등교 목적은 이렇다.

1. 잠자려고   2. 점심 먹으려고   3. 축구하려고   4. 친구 사귀려고    5. 공부하려고

학교교사는 목조 단층건물이 시멘트골조 4층건물로 바뀌었고,

학급당 학생수는 콩나물교실 70명에서 전국평균 23명으로 줄었을 뿐.

교실 안 모습은 우리들이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이제는 정말 태극기, 교훈, 급훈을 다 없애고 교실을 카페처럼 꾸미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