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ief's Diary : 대재앙-
“하아, 결국 오늘도 이렇게 가는 걸까.”
휴일이 제일 후회스러운 때가 바로 늦은 오후 때. 시은은 이라가 사는 폐교를 나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목소리 저 끝에는 자신이 하루 종일 원하는 것도 못해보고 다른 사람의 뒤만 쫓아다닌 오늘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시란과 산영을 쫓아다니다 이번엔 이라 뒤를 따르고, 남의 집(?)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밖으로 도망 나온 시은. 그러면서 이라가 남긴 한 마디를 걱정하는 그.
“나중에 우리 집에 놀러오겠다고? 나 참.”
시은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고서 단 한 번도 친구 등등의 다른 사람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모로 수상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의 함정을 파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그래서일까. 한때 그들의 집은 ‘유령의 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는 소문.
그런데 이번 상대가 이라라니, 뿌리치기도 힘들 것 같다. 싫다고 하면 분명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떠벌리려 할 테니 말이야. 어느덧 집이 가까워지자 시은은 다시 한 번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친구가 온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그 전에…….
‘그 애가 우리 가족의 내력을 알고 있다는 걸 먼저 말하는 게 좋을까?’
그랬다가는 내일부터 아침 태양을 못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걸 먼저 말해야 이라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 텐데…….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그는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
“……?”
집안이 지나치게 조용하자 시은은 신발을 벗으며 의문을 머금었다. 귀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미약하게 거실의 TV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조용히 들어가자, 다행이랄까, 엄마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표정이 왠지 태풍에 일년 농사 다 말아먹고 따가운 햇볕 아래 멍하니 서 있는 농부의 얼굴과 같았다. 조심스레 엄마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지만 엄마의 눈동자는 시은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눈동자는 눈동자대로 굴러갈 뿐이었고, 머리는 아예 눈동자와 연결을 끊어버린 듯 했다. 재차 손을 휘젓자 그제야 엄마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시은을 올려다보았다.
“어라……. 언제 왔니?”
“아주 방금, 근데 무슨 일 있었어요? 얼굴이 꼭 세상 살 만큼 다 살았다는 사람 같아요.”
“시란 때문에 그래……. 휴우. 벌써 6시 반인가? 밥이나 지어야겠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은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기 방에 올라가면서도 내내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 이상한 금발 남자에게 진 뒤로 조금 우울해 보이긴 했는데, 그게 아직도 남아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시은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발을 돌려 시란의 방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스레 한 번 들춰보자는 생각에 문고리를 돌렸지만, 이미 문은 단단히 잠겨 있는 상태였다. 별 수 없다 생각하며 시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야, 시란!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하지만 이어져야 할 대답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시은은 한참 동생의 방 앞을 서성이다가 옷을 갈아입고는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던 그는 부엌 앞에서 우뚝 멈춰서야 했다.
‘하아, 제발 잘 되어야 할 텐데.’
다름이 아니라 이라의 방문 예정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정말 태양을 못 보더라도 그는 일단 있는 그대로를 털어놓아 볼 심산이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일에 대해 진척을 보일 테니 말이다.
“저기, 엄마.”
“왜.”
으, 목소리가 너무 기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단 말부터 걸자.
“조만간 친구가 우리 집으로 놀러온다고 하는데, 괜찮죠?”
순간 엄마는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시은은 그런 엄마 앞에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몸을 돌려 시은을 바라본 엄마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번쩍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내 아들아.”
“그러니까, 친구가 집으로 놀러온다고…….”
“우리 집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구나? 아들아.”
“아, 하하, 엄마, 일단 말부터 듣고…….”
“변명은 필요 없다! 이 녀석!”
엄마가 식칼을 치켜들자 시은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엄마는 그에게 육박해 올 뿐이었다. 결국 벽까지 내몰리고, 식칼이 점점 그 고도를 더해 가자 시은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엄마! 그 애는 우리 가족이 뭘 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요!”
“……지금 뭐라 그랬니?”
엄마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 그 애는 우리가 뭘 하는지 알고 있다고요…….”
가만히 구석에 처박혀 얼굴을 감싸던 시은은 엄마에게 슬쩍 눈을 돌렸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한참동안 서 있더니 한 차례 휘청거리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앉았다기보다는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했다. 그대로 이마를 짚은 엄마는 곧 시은에게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알게 되었니? 일하다가 들킨 거야?”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만, 저는 제 정체를 알리려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독심술 같은 걸 하던데…….”
“독심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래? 아빠한테 부탁 좀 해야겠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려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안 죽을걸요. 총을 쏘든 칼로 찌르든.”
“……그게 무슨 소리야?”
잔뜩 궁금하다는 엄마였지만 시은은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었다. 우선 자기도 왜 그녀가 안 죽는지 모르니까.
“하아, 그래서, 언제 온다든?”
“언젠지는 잘 모르겠는데, 빠르면 월요일 쯤 해서 올 거예요.”
“그래? 이렇게 된 거 사내아이들의 잡담이나 들어볼까…….”
“저기, 엄마.”
“왜.”
“……여자인데요…….”
또 다시 동그랗게 변해가는 엄마의 눈. 그러는 그녀의 눈동자엔 의외와 함께 은근한 대견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숙맥이던 시은이 여자를 데려온다니. 거기다 집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 색싯감으로 금상첨화!
“……아들아.”
“네?”
덥석
“……꼭 데려와라. 알았지?”
“아, 예, 예.”
시은은 갑자기 두 눈을 박히는 엄마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같은 시각, 시가지.
“이런, 피가 너무 많이 튄 것 같은데. 얼른 출발하자.”
“네.”
성환이 재빨리 차에 오르자 화주는 셰네를 몰아 빌딩 앞을 빠져나왔다.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셰네를 향해 빌딩에서 몇몇 사람들이 총을 들어 쏘았으나 차는 능숙한 솜씨로 시가지 사이의 골목길로 새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검은색 자동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쫓아 들어와 셰네를 향해 총을 내갈기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에 요란한 총성과 불꽃이 번쩍였다.
“젠장, 이것들이……!”
철컥 파다다다
차 밖으로 뻗은 성환의 손에서 구식 잉그람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검은 자동차의 추격대들은 잉그람의 탄환이 내비치는 그 잠깐 동안 잠잠하더니 이내 그들에게 반격을 개시했다. 몸을 사리며 성환이 중얼거렸다.
“젠장, 어이, 화주. 저것들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고르세요. 좀 시끄럽지만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것, 오래 걸리지만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무거나 해. 어서!”
성환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짓궂은 미소만 흘리던 그는 이윽고 운전대에서 붉은 단추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잠시 뒤 차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검은 자동차들이 단체로 터져 올랐다. 뒤를 돌아본 성환은 뭘 어떻게 했냐는 표정으로 화주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대로변으로 차를 몰며 유유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승자의 미소랄까. 창문을 닫으며 성환이 물었다.
“차에 별의별 걸 다 달아 놓았나 보군. 전에 이거 자기 차가 아니라고 한 것 같은데?”
“할부금을 다 갚았으니 상관없습니다. 총구멍 때우는 데 돈이 더 들겠지만요.”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말한 그건 할부금 이야기였냐?”
화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방금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던 성환도 그제야 미소를 머금었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스쳐가는 듯 했다.
그때 성환은 무언가를 느낀 듯 몸을 들썩이며 네모난 물건을 꺼내들었다. 요즘 같지 않은 오래된 슬라이드 휴대폰 화면 위로 간단한 문자가 적혀 있었다. 조만간 시은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올 테니 준비해 두라고?
“무슨 문자 왔나요?”
“그냥, 아들이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온다는군. 나 참, 방문을 다 잠가 놓아야 하나.”
화주는, 일을 할 때는 인정사정없이 인간을 죽여 대는 사람이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고심하는 평범한 아버지라는 사실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런 자신의 기분을 숨기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넌지시 성환에게 물었다.
“아들 이름이 뭔데요?”
“안시은. 아, 참고로 여동생은 안시란이라고 하네.”
“안시란…….”
문득 동생의 명령 아닌 명령이 생각난 화주는 오늘 오전 자신을 노려보던 그녀의 눈빛을 떠올리며 슬쩍 얼굴을 굳혔다. 순수한 살기로 뭉친 두 눈동자. 하얗게 날아오는 단도와 재빠른 그녀의 몸. 한편으로 그녀를 도발해 달라는 동생의 부탁.
‘언젠가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군.’
화주는 차를 몰며 가만히 생각했다.
유후-ㅂ-~ 감개가 무량합니다~[응?;]
대략 그렇고 그런 관계로 발전하는 거죠'ㅂ'! 일단 상견례를 치룬 뒤 쌍방이 합의하면 함 보내고 식장 잡고 그대로 하룻밤 ㄱㄱ...[타앙] 쿨럭; 여, 여하튼 이래저래 교환이 시작되는 편입니다.
시란의 이후 행방을 보자면, 은근왕따로 전락되는 정도...? 뭐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 왕따로 전락되는 게 다반사지만[...먼산] 여하튼 혼자서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 같군요:D
참, 그리고 한 가지 밝히지 않은 설정. 프롤로그에서 이라를 죽인 '남자'는 사실 성환의 외모와 많이 닮았대요;9[...응?;;]
다음편에는 이라가 시은의 정원으로 놀러옵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 발언+ㅂ+!!! 여러분, 꼭 지켜보시는 쎈쓰![어이?;;]
-----다음편 예고-----
#14.변화(變化)
"엄마, 아침마다 찌개 먹기는 싫은데..."
"어라? 너, 너 머리가 왜......"
"후훗, 내 직업이 뭔지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참, 그런 소문도 나돌던데."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맞아. 머리 잘랐다더니 정말이네."
"만약에...정말 만약에, 이 세계가 사라진다면 넌 어쩔 거야?"
"헤에~. 이리로 가는 거야?"
"다녀왔습니다."
"아빠, 저기, 친구가 왔는데...요."
"안녕, 미카엘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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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흠... 오늘첨으로 이글을 보네요 ㄱ- ;; 요글보니 "성환"이라는 이름나오던데 제친구 이름 +ㅋ+ 무쥐재밌네요 첨부터 다시 봐야할듯 ㄷㄷ... <- 언제? 흠흠,, 여하튼 시간나는데루 ㄱㄱ싱...
ㄲㄲ 감사합니다아:D
ㄲㄲ 나도 맨날 보는대 감사 해 줘어어~~
응? 성덕군은 애독자이니까 매번 고맙지:D[...<<;]
빤쮸님하 올앤만인거셈 ! ! ! - ㅅ-
-ㅁ- 제발 많이 좀 보러 오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