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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파티
캐더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날씨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주문을 하더라도 이
이상 가든 파티에 알맞은 날은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바람도 없고 따뜻한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다만 푸른 하늘에는 초여름에 때때로 볼 수 있는 얇은
금빛 안개가 끼여 있을 뿐이었다. 뜰을 손질하는
사나이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일하면서 잔디를
깎고 쓸고 하였기 때문에 잔디와 전에 데이지가 있던
곳의 검고 편평한 장미무늬를 새긴 돌이 빛나는 듯이
보였다. 장미꽃으로 말하면 그것이 가든 파티
사람들의 눈요기를 시킬 유일한 꽃으로서, 누구라도
틀림없이 알고 있는 유일한 꽃이라는 것을 장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몇
백이라는 실지로 문자 그대로 몇 백 송이나 되는 꽃이
단 하룻밤 사이에 핀 것이다. 녹색의 나무는 마치
천사의 방문을 받은 것처럼 몸을 굽히고 있다.
아침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남자들이 커다란 천막을
치러 왔다.
"어디다 천막을 쳤으면 좋을까요, 어머니?"
"이봐요, 나한테 물어봐야 소용없어요. 올해는
너희들에게 완전히 일임하도록 결정했으니까. 내가
어머니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특별한 손님 정도로
생각하기 바란다."
그러나 메그가 남자들을 지시하러 가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식사 전에 머리를 막
감았으므로 녹색의 터번을 하고 밤색의 젖은
머리카락이 두 볼에 찰싹 붙어 있는 그대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멋장이 조우즈는 언제나
실크의 페티코트에 기다란 웃저고리를 걸치고
식사하러 내려왔다.
"네가 가 봐, 로라. 넌 굉장한 예술가니까 말이야."
로라는 버터빵을 손에 든 채 뛰어갔다. 집 밖에서
무엇을 먹을 핑계가 생겼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그녀는 사물을 이것저것 결정하기를
좋아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러한 일은 매우 잘
한다고 언제나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셔츠바람의 남자 넷이 정원의 작은 길에 모여 서
있었다. 그들은 막대기에 천막을 뚤뚤 감은 것을 들고
있었으며, 각자가 커다란 연장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압도되는 것 같기도 했다. 로라는
이 버터빵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둘 데도 없고, 던져 버릴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게다가 조금 근시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셨어요?"
그녀는 어머니 목소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도 꾸며대는 목소리같이 들렸기 때문에
그녀는 부끄러워져서 어린애처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저, 또...... 당신네들 저...... 천막 때문에
그러세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키가 제일 큰 남자가 말했는데, 그는 후리후리하게
크고 주근깨가 있는 남자로서 연장주머니를 조금
움직거리더니, 밀짚모자를 뒤로 젖히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남자의 미소가 매우 상냥하고 친밀감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로라는 자신을 되찾았다. 이 사람은
정말 좋은 눈을 가지고 있구나. 작지만 검은 빛이
도는 푸른 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딴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는데 그들도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운을 내십시오. 우리들은 물어뜯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미소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꾼들은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이군! 게다가
기분좋은 아침이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사무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돼. 천막
이야기를 해야지.
"그러면 저 백합이 있는 곳의 잔디밭이 어떨까요?
그곳이 괜찮겠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버터빵을 들지 않은 손으로
백합의 잔디밭 쪽을 가리켰다. 남자들은 고개를
돌려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뚱뚱하고 작달막한 남자가
아랫입술을 내밀고 키 큰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안 좋은데요."
하고 그는 말했다.
"눈에 확 띄지 않는군요. 실은 큰 천막과 같은
것은......"
그는 마음이 느긋해진 모양으로 로라 쪽을
돌아다보았다-
"어디든 눈에 확 들어오는 곳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응석받이로 자라난 로라는 일꾼이 자기에게 눈에 확
들어온다는 따위로 말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뜻은 잘 알고 있었다.
"테니스 코트 구석은 어떨까요?"
그녀는 말해 보았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악대가 자리잡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요."
"흐음, 악대가 옵니까?"
딴 일꾼이 말했다. 창백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거무스름한 눈으로 테니스 코트를 살펴보는 모습이
정말 초조해 보였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주 작은 악대예요."
로라는 조용히 말했다. 아마 악대가 작다든가 하는
것은 이 남자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키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봐요, 아가씨. 저기가 좋군요. 저 나무 앞
말입니다. 저쪽입니다. 저기라면 안성맞춤인데."
카라카나무를 보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카라카나무가 뵈지 않게 되고 만다.
폭이 넓고 반짝거리는 잎사귀를 가진, 노란 열매가
총총히 달려 있는, 저렇게 아름다운 나무인데, 황량한
외딴 섬에 혼자서 의연한 모습으로, 그 잎과 열매를
햇빛에 드러내는, 이른바 현란한 고요 속에 서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나무였다. 어떻게 하든, 천막으로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없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남자들은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키 큰
남자가 혼자 뒤에 남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라벤더의
잔가지를 집어서 뭉개가지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로라는
그가 하는 짓을 보고 그런 것에 마음을 쏟는-
라벤더의 냄새에 마음을 쏟는 남자에게 감복하여
카라카나무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치고 몇 사람이나 이런 행동을 했을
것인가. 아아, 일꾼이라는 것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같이 춤추기도
하고, 일요일 밤에 식사를 하러 오는 저 멍청한
남자친구들보다는 일꾼을 친구로 삼는 편이 낫겠다.
이런 사람들하고라면 훨씬 더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겠다.
모두가 다, 이 돼먹지 못한 계급식 차별 탓이야,
하고 그녀는 판단을 내렸다. 그때 키 큰 남자는 봉투
뒷면에 무언가 둥글게 매듭을 지어놓든가, 그대로
늘어뜨려 놓든가 할 것을 계속 그리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그러한 계급적 차별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그런 눈치는 조금도 없다. 눈곱만큼도
없다...... 그때 나무망치의 쿵쿵 하는 소리가 났다.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고 어떤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쪽은 괜찮은가, 형제?"
형제라니! 얼마나 친밀한 말인가! 뭐랄까......
뭐랄까......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보여 주기를,
얼마나 흉허물 없는 기분을 품고 있는가를, 얼마나
인습의 하찮음을 경멸하고 있는가를 키 큰 남자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로라는 그 작은 봉투에 그려진 것을
바라보면서 버터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녀는
일하는 여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라, 로라, 어디 있지? 전화야, 로라!"
집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곧 가겠어."
그녀는 경쾌하게 뛰어서 잔디를 넘고, 계단을 올라,
베란다를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의
홀에서는 아버지와 로리가 회사에 나갈 준비를 하고
솔로 모자를 털고 있었다.
"이봐, 로라."
하고 로리는 매우 빠른 말씨로 말을 했다.
"오후까지 내 옷을 좀 봐 주지 않겠어? 다림질을
해야 할지 어떨지 좀 봐 줘."
"좋아."
그녀는 말했다. 갑자기 그녀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로리에게 달려들자 재빨리 그를 끌어안았다.
"난 파티가 정말 좋아, 안 그래, 오빠?"
로라는 헐떡거리며 말했다.
"좋구말구!"
로리가 따뜻하고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그도 또한 동생을 꽉 껴안고 나서 살짝 밀어 놓았다.
"빨리 전화나 받아."
전화였지, 참.
"네, 네, 그래요. 키티니, 안녕, 점심식사 때에
오겠어? 그래, 와요. 물론 기쁘잖고. 뭐 이것저것
긁어모은 식사야. 샌드위치 부스러기며 메링과자 조각
따위가 남아 있어요. 정말 좋은 날씨야. 넌 화장하니?
오, 난 꼭 그렇게 할 거야. 잠깐만 기다려- 끊지
말고. 어머니께서 부르고 계셔."
그렇게 말하자, 로라는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혔다.
"뭐예요, 어머니, 안 들려요!"
셰리단 부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흘러왔다.
"요전 일요일에 썼던 그 멋진 모자를 쓰고 오라고
일러요."
"어머니께서 말야, 요전 일요일에 썼던 그 멋진
모자를 쓰라고 하셨어. 좋아, 그럼 한 시에 또."
로라는 수화기를 놓고, 머리 위에 두 팔을 올리어
숨을 깊이 쉬면서 뻗었다가 힘없이 내렸다. 아아 하고
한숨을 쉬고, 한숨을 쉬자마자 재빨리 고쳐 앉았다.
조용히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온 집의 문이라는 문은
다 열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집안은 바삐
돌아가는 나직한 발소리와 끊임없는 말소리로 활기에
넘쳐 있었다. 조리실로 통하는 초록색 니스를 바른
도어가 힘차게 열리더니 둔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번에는 키득키득 웃는 듯한 길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딱딱한 바퀴가 달린 무거운 피아노를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유, 이 공기 좀 봐! 가만히
주의해서 보자니까, 공기란 언제나 이런가 몰라.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바람이 숨박꼭질을 하면서
창문 위쪽에서 들어와 문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햇빛을 받은 작은 점이 두 개, 하나는 잉크빛, 또
하나는 은빛 사진액자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장난치듯 하고 있다. 귀여운 두 점, 잉크병 위에 있는
것은 유달리 귀엽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 따뜻하고
귀여운 은빛 별이다. 그녀는 그것에다 키스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현관의 벨이 울리고 세이디의 날염한 스커트가
계단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말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도 났다. 세이디의 대답하는
무관심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기다려요. 셰리단
마나님께 물어보고 올 테니까."
"뭐야, 세이디?"
로라는 현관의 홀로 갔다.
"꽃장수예요, 아가씨."
사실 그대로였다. 현관 바로 들머리에 넓고 얕은
쟁반에 핑크빛 백합 화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른
꽃은 없다. 백합뿐- 칸나백합뿐인데 커다란 핑크빛
꽃은 완전히 피어서 빛나는 듯했으며 새빨간 줄기
위에서 놀라울 정도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오, 세이디!"
하고 로라는 말했다. 그 목소리는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 백합의 빨간 불꽃에 몸을
쬐이기라도 한듯이 움츠렸는데, 손가락 속에, 입술에,
가슴 속에 그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겠지."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렇게 많이 부탁한 사람은 없을 거야. 세이디,
가서 어머니를 찾아봐요."
그러자 마침 그때, 셰리단 부인이 그들에게로 왔다.
"잘못된 게 아니야."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부탁한 거야. 예쁘지?"
그녀는 로라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어제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진열창에 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리고 한번 칸나백합을 듬뿍 사보겠다고
우연히 생각했지. 가든 파티가 좋은 구실이 되어
주었지."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참견하지 않으실
작정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하고 로라가 말했다. 세이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꽃집 남자는 아직 바깥의 수레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 목에 팔을 감고 부드럽게
그리고 가만히 어머니의 귀를 물었다.
"그렇지만 얘야, 융통성이 없는 엄마는 싫어
하겠지.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꽃집 남자가
들어오지 않니."
그는 다시 백합을 춤이 낮은 쟁반에 가득 담아 들고
왔다.
"현관 들머리의 통로 양쪽에 한 줄로 나란히 놓아
주세요."
하고 셰리단 부인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됐지, 로라?"
"네, 좋아요. 어머니."
객실에서는 메그와 조우즈, 그리고 착한 꼬마
한스가 드디어 제대로 피아노를 막 옮겨 놓은
참이었다.
"이번에는 이 커다란 소파를 벽 쪽으로 붙이고 의자
이외의 것은 모두 방 밖으로 내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렇군요."
"한스, 이 테이블을 모두 끽연실로 날라다 주어요.
그리고 소제기를 가지고 와서 융단에 난 테이블
자국을 지워 없애요- 아, 가만, 한스-"
조우즈는 하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도 기꺼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녀는
언제나 하인들에게 무언가 연극배우의 역할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가 있었다.
"어머니와 로라한테 빨리 와 달라고 일러줘."
"네, 네, 조우즈 아가씨."
그녀는 메그 쪽을 돌아보았다.
"피아노 소리가 어떤지 알고 싶구나, 오늘은
노래하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말야. '이 세상은
지겨워'를 한번 해볼까."
퐁! 타타타 타타! 피아노가 갑자기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하자 조우즈의 얼굴 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팔짱을 꼈다. 슬프고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어머니와 로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 세상은 지겨워,
눈물- 한숨.
사랑은 덧없이,
이 세상은 지겨워,
눈물- 한숨.
사랑은 덧없이,
이제는 굿바이.
그러나 그 '굿바이'라고 하는 데서 피아노는 한층
더 절망적인 소리로 울렸으나,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활짝 개여서 노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는 좋지요, 어머니?"
그녀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이 세상은 지겨워,
희망은 사라지고,
꿈인가- 현실인가.
이때 세이디가 들어왔다.
"무어야, 세이디?"
"저, 마나님, 요리사가 샌드위치에 꽂을 기(旗)가
있느냐고 묻는데요."
"샌드위치에 꽂을 깃발 말이야, 세이디?"
셰리단 부인은 꿈꾸듯 그 말을 되풀이하였다. 그
얼굴 표정에서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아차렸다.
"잠깐 기다려."
그리고는 그녀는 명백하게 세이디에게 말했다.
"십 분만 있으면 가지고 가겠다고 요리사에게
일러줘."
세이디가 나갔다.
"자, 로라."
어머니는 빠르게 말했다.
"같이 끽연실로 가자. 봉투 뒤엔가 어디에 이름이
씌어 있을 거야. 그것을 좀 써 줘. 메그야, 빨리
이층에 가서 그 젖은 것을 머리에서 벗어 놓아라.
조우즈는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어. 내 말이 들려?
오늘 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일러바쳐도 괜찮아?
그리고는...... 그리고는 조우즈야, 조리실에 가거든
요리사를 구슬러 줘. 오늘 아침은 그녀가
무서워지는구나."
봉투는 식당 시계 뒤에서 가까스로 발견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곳에 끼어들었는지 셰리단
부인으로서는 통 알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너희들 중의 누군가가 내 핸드백에서
훔쳐냈을 거야. 나는 집어넣은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거든...... 크림 치즈에 레모네이드, 이건 다
만들었니?"
"네."
"달걀과......"
셰리단 부인은 봉투를 떼어들고 바라보았다.
"쥐라는 글자 같구나. 쥐일 턱은 없는데 말이야."
"올리브예요."
로라가 어머니 어깨 너머로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올리브라는 글자군. 정말 괴상하게
짜여질 뻔했구나. 달걀과 올리브."
겨우 끝나서 로라는 그것을 조리실로 가져갔다. 가
보니까 조우즈가 계속 요리사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는데, 요리사는 조금도 무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훌륭한 샌드위치는 구경조차 한 일이 없어."
조우즈가 매우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몇 종류 있다고 했지? 열다섯?"
"열다섯입니다. 아가씨."
"정말 훌륭해요."
요리사는 기다란 샌드위치 나이프로 빵부스러기를
밀어젖히면서 활짝 웃었다.
"고드 버에서 왔습니다."
세이디가 대기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창 밑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드디어 슈크림이 도착된 것이다. 고드 버는
슈크림으로 알려진 가게였다. 아무도 집에서
만들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날라다가 테이블 위에 놓아 줘."
요리사가 지시했다.
세이디는 날라다 놓고 문께로 돌아갔다. 물론
로라도 조우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정신을 팔지는 않았다. 그래도 역시, 슈크림이
굉장히 맛나겠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맛나겠다. 요리사가 덤으로 붙어 있는 설탕을
털어내면서 나란히 놓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니까, 이때까지 있었던 온갖 파티가
생각나는구나."
하고 로라가 말했다.
"그래."
지나간 일을 회상한다는 것 따위를 싫어하는
현실주의자인 조우즈가 말했다.
"가볍고 부풀어 있는 느낌이 들어 정말
훌륭하구나."
"하나씩 먹어 보세요."
요리사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께서는 모르실 거예요."
어머, 정말 먹을 수 없어. 아침식사를 막 끝냈는데
슈크림을 먹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 그러나, 이 분
뒤에 조우즈와 로라는, 거품이 알맞게 인 크림을 맛볼
때에만 볼 수 있는, 방금 먹은 것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은 눈을 하고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뒤꼍을 돌아서 뜰로 나가 보자, 얘."
하고 로라가 말을 꺼냈다.
"저 사람들이 천막을 어느 정도나 쳤는지 보고
싶구나.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야."
그러나 뒤꼍에는 요리사, 세이디, 고드 버의 점원,
게다가 한스까지 어울려 있었다.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엇, 저, 저, 저......"
요리사는 놀란 암탉 같은 소리를 질렀다. 세이디는
이빨이라도 아픈지 두 손을 양 볼에 대고 서 있었다.
한스의 얼굴은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하여
찌푸린 표정이 되어 있었다. 고드 버의 점원만이
재미있어 하는 듯이 보였는데, 그가 끄집어낸 이야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답니다."
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죽었다고? 어디서, 왜, 언제?"
그러나 고드 버의 점원은 자기가 꺼낸 이야기를
눈앞에서 날치기당하는 것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요 아래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아십니까, 아가씨?"
"알고 있느냐고?"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이름이 스코트라고 하는 젊은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짐수레꾼이었어요. 오늘 아침
호우크 거리 모퉁이에서 이 남자의 말이 견인차에
놀라서 뛰는 바람에, 그 남자는 내동댕이쳐져서
뒤통수를 받쳤어요. 그래서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로라는 고드 버의 점원 얼굴을 뚫어질 듯 빤히
바라보았다.
"모두들 그를 붙들어 일으켰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점원은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여기 올 때에 마침 시체를 집으로 옮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요리사를 보고 말했다.
"마누라와 어린것을 다섯이나 남겨두고 갔어요."
"조우즈, 이리 와요."
로라는 언니의 소매를 붙들자 조리실을 빠져 나와
녹색의 니스를 바른 도어 저쪽까지 그녀를 끌고 갔다.
거기서 멈추어 서자 도어에 기댔다.
"조우즈."
하고 그녀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죄다 그만둘 수 있을까?"
"죄다 그만둔다고, 로라?"
조우즈는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뜻이지?"
"물론 가든 파티를 그만두는 거야. 조우즈는 왜
모르는 척하는 걸까?"
그러나 조우즈는 점점 더 놀랐다.
"가든 파티를 그만둔다고? 이봐 로라,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물론 그런 짓은 할 수도
없지. 아무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어. 엉뚱한 소리를 하면 못써."
"그렇지만 바로 대문 앞에 사는 사람이 죽었다는데
가든 파티 따위를 할 수는 없지 않아?"
사실 그것은 엉뚱한 일이었는데, 그 작은
오두막집은 이 저택으로 통하는 가파른 고갯길
아래쪽의 골목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사이에 널따란
길거리가 있었다. 과연 너무 가까웠다. 그
오두막집들은 정말 눈 위의 혹으로서 이 근처에
있어야 할 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연두
초콜렛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작고 엉성한 집이었다.
좁은 뜰에는 양배추의 밑둥, 병든 닭, 토마토의 빈
깡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마저 매우 가난하게 보였다. 누더기를 연상시키는
가냘픈 연기는 셰리단가의 굴뚝에서 푹푹 솟아나는
커다란 은빛의 깃털 같은 연기와는 전혀 닮지도
않았다. 그 골목에 빨래하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굴뚝장이, 구두 수선공, 그리고는 집 정면의 벽
가득히 작은 새장을 걸어 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아이들은 여럿이었다. 셰리단가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에 말씨가 상스럽고 게다가 무슨 병이 전염될지도
모른다고 하여 그곳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라고 나서, 로라와 로리는 몰래
걸어가면서 이따금 그곳을 지나갔다. 불쾌하고 더러운
곳이었다. 그들은 몸서리를 치면서 나왔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어디든지 가보지 않으면 안 되었고,
무엇이든지 보아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갔다.
"게다가 악대 소리가 들린다면, 그 가엾은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생각해 봐요."
라고 로라가 말했다.
"오오, 로라!"
조우즈는 정색을 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든 사람이 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악대의
연주를 그만둔다면 정말 견디지 못할 평생을 보내게
돼요. 나도 역시 너처럼 가엾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동정하고 있어."
그녀의 눈은 험악해졌다. 그녀가 동생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그들이 어린애였을 무렵 자주 싸우던 때
그대로였다.
"감상적이 된다고 해서 주정뱅이 일꾼은 되살아나지
않아."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주정뱅이라고! 누가 주정뱅이라고 말했어?"
로라는 화를 내며 조우즈한테 대들었다. 그녀는
그들이 옛날 이런 경우에 자주 입에 담았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
"엄마한테 가서 일러바치고 말 테야."
"제발."
조우즈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방에 들어가도 좋아요?......"
로라는 커다란 유리 도어의 손잡이를 돌렸다.
"좋아요. 아니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얼굴빛이
변해가지고."
그렇게 말하고는 셰리단 부인은 몸을 획 돌려서
화장대를 등졌다. 그녀는 새 모자를 써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지금 막 사람이 죽었어요."
로라는 말을 끄집어냈다.
"설마 뜰에서는 아니겠지?"
하고 어머니가 말을 막았다.
"그렇지는 않아요."
"얜,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구나."
셰리단 부인은 안도의 숨을 쉬고 나자 커다란
모자를 벗어서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들어보세요, 어머니."
하고 로라는 말했다. 숨가빠하면서 목이 반쯤
메이면서,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파티 따위는 할 수 없겠죠!"
그녀는 호소하듯이 말했다.
"악대도, 많은 사람들도 오지요. 틀림없이 들릴
거예요, 어머니. 이웃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가까운
걸요."
로라는 어머니가 조우즈와 똑같은 태도를 짓는 것에
놀랐다. 어머니가 재미있어 했기 때문에 한층 더 견딜
수 없었다. 로라의 말을 조금도 진정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우리들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전혀 우연이야. 만일
거기서 누군가가 제 명으로 곱게 죽었다고 한다면-
저런 답답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파티는 역시 하게 되지 않겠니?"
로라는 그 말에는 '네' 하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소파에 앉아서 쿠션의 술을
만지작거렸다.
"어머니, 정말 우리는 심한 짓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어머, 얘는."
셰리단 부인은 일어서자 모자를 손에 든 채 그녀가
있는 데까지 왔다. 로라가 막을 사이도 없이 어머니는
그것을 불쑥 씌웠다.
"어때?"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모자는 네 거야. 너한테 잘 어울리는구나.
내게는 너무 야해, 이렇게 예쁜 네 모습을 본 적은
없어. 한번 봐."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손거울을 들고 비춰 주었다.
"그렇지만 어머니."
로라는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기의 모습
따위는 보기도 싫었다. 그녀는 외면을 했다.
이번에는 셰리단 부인도 조우즈와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로라."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런 사람들은 우리가 희생이 된다는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아. 지금의 너처럼 모두의 즐거움을
짓밟으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야."
"저는 모르겠어요."
하고 로라는 말했다. 그리고는 훌쩍 방을 나와서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정말 우연히, 그녀의
눈에 먼저 띈 것은 거울에 비친 아리따운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검은 모자는 황금빛의 데이지와 길고
검은 빌로드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자기가 이런
모습으로 보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일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젠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되었다. 내
생각은 엉뚱한 것일까. 아마 그렇겠지. 한순간,
그녀는 다시 저 가엾은 여자랑 어린애들이며 시체가
집으로 운반되어 가는 광경을 언뜻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희미해져 현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신문에 나와 있는 사건처럼 생각되었다. 파티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는
한 시 반에는 이미 끝났다. 두 시 반에는 파티 준비가
모두 다 되어 있었다. 녹색의 옷을 입은 악대가
도착하여 테니스 코트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얘, 키티!"
하고 메이틀랜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어쩐지 정말 개구리 같지 않니? 연못
주위에 나란히 세우고 지휘자는 한복판의 잎사귀 위에
올라앉도록 했으면 좋았을걸."
로리가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도중에
그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로라는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냈다. 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만일 로리도 다른 사람과 같은
생각이라면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것이 옳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뒤를 따라서 현관 홀로
들어갔다.
"로리."
"응!"
그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돌아보고 로리
모습을 발견하자 갑자기 그는 볼을 부풀게 하고
눈알을 휘둥그렇게 해 보였다.
"놀랐어, 로라. 정말 굉장한데."
하고 로리는 말했다.
"정말 멋진 모자구나."
로라도 "그래?" 하고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미소를
지어 로리를 올려다보았을 뿐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 뒤 이윽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악대가 갑자기 연주를 시작하고, 임시로 고용한
급사들이 집에서 큰 천막 쪽으로 뛰어갔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짝을 지은 사람들이 천천히 거닐기도
하고, 허리를 굽혀 꽃을 바라보기도 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잔디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선명한 빛깔의 새가 오는 저녁 나절만 셰리단네
정원에 내려와 앉은 것 같았는데, 지금부터 그 새는
어디로 날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행복한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은, 손을 잡기도 하고, 볼을 가까이
대기도 하며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머, 로라, 정말 건강하게 보이는구나."
"모자가 참 잘 어울리는데."
"로라, 스페인 여자 같구나. 이처럼 아름다운 네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러면 로라는 완전히 들떠서 상냥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차는 드셨어요? 아이스크림을 드시겠어요? 시계풀
열매로 만든 얼음과자는 정말로 별미랍니다."
그녀는 아버지한테 뛰어가서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아버지, 악사들한테도 뭐 마실 것을 좀 갖다
주어도 좋죠?"
그리고 그 신바람나는 오후는 서서히 무르익어서
서서히 퇴색하고 천천히 입을 오므렸다.
"이렇게 즐거운 가든 파티는 처음예요......"
"정말 성대한 잔치였어요......"
"정말 참......"
로라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어머니를 도왔다. 둘은
완전히 마칠 때까지 포오치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이제 끝났다. 죄다 끝났어, 휴."
하고 셰리단 부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요. 로라, 새 커피라도
마시러 가자꾸나. 아이 피곤해. 정말 대성공이야,
그렇지만 사실 파티는 질색이야. 뭣 때문에 너희들은
파티 같은 걸 열자고 하는지 모르겠어."
모두 휑한 천막 안에 앉았다.
"샌드위치 드시겠어요, 아버지? 기는 제가 그린
거예요."
"고마워."
셰리단 부인이 하나 집어들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는 또 하나를 먹었다.
"오늘 언짢은 일이 일어난 걸 듣지는 않았겠지?"
하고 그는 말했다.
"그게 말예요."
하고 셰리단 부인은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알고 있어요. 가든 파티가 중지될 뻔했어요.
로라가 연기하자고 고집을 부렸거든요."
"어머, 어머니."
로라는 그 일로 놀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끔찍한 일이야."
하고 셰리단 부인은 말했다.
"게다가 그 남자는 혼잣몸이 아니야, 바로 아래
골목에 살고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가 대여섯이나
있다는 이야기야."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셰리단 부인은 불안한
손짓으로 컵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아버지는 언짢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들었다. 눈앞의 테이블에
샌드위치, 과자, 슈크림 등 손도 안 댄 것들이
있었다. 그대로 두면 버리게 되고 만다. 그녀는
희한한 생각을 했다.
"좋은 일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바구니를 가져와. 그 가엾은 사람에게 이 훌륭한
음식을 갖다 주도록 하자. 어쨌든 아이들은 매우
좋아할 거야. 안 그래요? 틀림없이 이웃사람들이
들르기도 하겠지요. 그런 때에 음식 준비가 되어
있다면 더 이상 안성맞춤일 수 없지, 로라!"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계단 밑 선반에서 큰 바구니를 가지고 와요."
"그렇지만 어머니,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로라가 말했다.
다시 한 번 묘한 일이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인간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티의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가다니, 저 가엾은 사람은 그런 것을
고마워할까.
"물론이야. 오늘은 네가 어떻게 된 것 같구나. 한두
시간 전에는 동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좋아요."
로라는 바구니를 가지러 뛰어갔다. 바구니는
가득찼다. 어머니 손에 의하여 산더미처럼 채워졌다.
"네가 가지고 가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대로 빨리 갔다 와요. 아, 잠깐 기다려. 이
칸나백합꽃도 가져다 줘라. 저런 계층의 사람들은
칸나백합꽃을 매우 좋아한단다."
"줄기 때문에 레이스 옷을 더럽혀요."
하고 현실주의자인 조우즈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알맞은 때 말해 주었다.
"그럼 바구니만 가져 가. 그리고 로라!"
어머니는 그녀를 따라 천막 밖으로 나왔다.
"이봐, 절대로......"
"뭐예요, 어머니?"
"아니, 이 아이의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불어넣지
않는 게 좋겠어.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갔다 와."
로라가 정원의 문을 닫았을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커다란 개가 그림자처럼 뛰어갔다. 길은
희뿌옇게 빛나고 아래쪽 우묵한 곳에 작고 엉성한
집들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후의 파티 다음에는 정말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부터 언덕을 내려가서 어딘가 죽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그녀는 잠깐
발을 멈추었다. 저 키스 소리, 사람들의 떠들어대는
소리, 스푼이 딸그락거리는 소리, 웃음 소리,
짓이겨진 풀냄새가 어쩐지 그녀의 몸에 가득차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밖의 것은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녀는 점점 맑아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리에는 '정말 멋진
파티였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벌써 큰길을 가로질렀다. 어두침침한 샛길이
시작되었다. 숄을 걸친 여인과 테가 없는 모자를 쓴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남자들이 울타리에
기대 섰고, 어린이들이 문 밖에서 놀고 있었다. 낮게
웅성대는 소리가 초라한 작은 집안에서 들려왔다.
몇몇 집에는 등불이 켜지고 사람의 그림자가 마치
게처럼 창가에 어른거렸다. 로라는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코트를 입고 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의 옷이 얼마나
멋지게 보일 것인가. 거기에 빌로드로 만든 리본이
달린 큰 모자- 그것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걸, 이
사람들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아아 보고
있을 것이다. 온 것이 잘못이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 때는 이미 늦었다. 이 집이 그 집인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사람들이 검게 한데 모여 밖에 서
있었다. 문 옆에 나이많은 노파가 소나무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발을 신문지 위에
얹어 놓고 있었다. 로라가 가까이 가자, 말소리가
그쳤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었다.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로라는 마음이 몹시 조마조마했다. 빌로드 리본을
어깨 위로 늘어뜨리면서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이 집이 스코트 씨 댁인가요?"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그래요" 하고 말했다.
아아,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 그녀는 문에서부터 나
있는 뜰안 길을 걸어가 문을 두드리며 "하나님, 도와
주세요" 하고 입 밖에 내어 말했다. 이상스럽게
훑어보는 이 눈초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어디에건, 이
여인들의 숄 아래라도 좋으니 숨어 버리고만 싶었다.
바구니만 놓고 돌아가야지 하고 그녀는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바구니를 열어볼 때까지 기다리지도
말아야지.
그때 문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두침침한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로라는,
"스코트 씨예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자는,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하고 말했고, 그러자 그녀는 좁은 낭하에 갇히고
말았다.
"괜찮아요. 안에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바구니만 맡겨두고 가면 되요. 어머니가
보내셔서......"
어두침침한 낭하에 서 있는 몸집이 작은 여인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그녀가 친절하게 말하므로, 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는 희미한 등불에
비쳐진 지저분하고 천정이 낮고 좁은 부엌에 들어와
있었다.
난로 앞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엠마."
그녀를 안내한 작은 몸집의 여인이 말했다.
"엠마! 아가씨가 왔어요."
그녀는 로라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뜻있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애의 언니 되는 사람입니다. 저 애의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고 로라는 말했다.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저는...... 저는 단지
이것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때 난로 앞의 여인이 몸을 휙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벌겋게 퉁퉁 부어 눈이나 입술
등이 보기에도 무서웠다. 그녀는 로라가 어째서
그곳에 왔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무슨 까닭일까.
어째서 이 낯선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와 있는
것일까.
그녀의 가련한 얼굴은 또다시 일그러졌다.
"괜찮아요."
또 한 사람의 여인이 말했다.
"제가 아가씨에게 감사를 드리죠."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가 말했다.
"제발 저 애의 실례는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부석부석 부어 있는 얼굴에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로라는 그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 복도로 나왔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죽은 남자가
눕혀져 있었다.
"좀 보시지 않겠습니까?"
엠마의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로라의 옆을
빠져나가 침대 가까이 갔다.
"무섭지 않아요."
여인의 음성이 부드럽게, 어쩐지 장난기가 섞인
듯이 들렸는데, 그녀는 하얀 천을 들쳤다.
"아주 착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표정도
없구요. 이리 가까이 와 보세요."
로라는 가까이 다가갔다.
젊은 남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너무도 평화롭게
잠들고 있어서 그를 바라보는 두 사람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이렇게 멀리
떨어져 평화롭게 잠들고 있다. 꿈을 꾸고 있음에
틀림없다. 두번 다시 그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그의 머리는 베개에 파묻혀 있고 눈은 감겨져
있다. 눈은 감겨 있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꿈의
세계를 거닐고 있다. 가든 파티나 바구니나 레이스
달린 옷들이 지금의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것들로부터 아주 먼 세계에 가 있는 것이다.
아주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들이 껄껄대며
웃고 있는 동안에,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 이런 놀라운 일이 골목에서 일어난 것이다.
나는 행복해...... 만사가 뜻대로, 하고 그 잠들어
있는 얼굴이 말하고 있다. 나는 벌써부터 이렇게
되리라 믿고 있었다.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울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무슨
말을 걸지 않고는 방을 나올 수 없었다. 로라는
어린애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엠마의 언니를 기다리지 않았다. 혼자서
겨우 그 집을 빠져나와 골목을 지나고 검은 사람의
그림자를 지나쳤다. 골목 모퉁이에서 그녀는 로리를
만났다.
그는 어둠 속에서 나왔다.
"로라냐?"
"응."
"어머니께서 걱정하고 계셨어. 아무 일도 없었니?"
"응 괜찮아, 아, 로리!"
그녀는 그의 팔을 붙들고 그에게 온몸을 기대었다.
"아니, 울고 있잖아?"
로라는 고개를 저었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로리는 그녀의 어깨를 껴안았다.
"울 거야 없지 않니?"
그는 정겹고 부드럽게 말했다.
"무서웠어?"
"응."
로라는 흐느꼈다.
"정말 멋있었어. 그렇지만 로리......"
그녀는 말을 끊고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인생이란......"
그녀는 더듬거렸다.
"인생이란......"
인생이 어떠한 것인가, 그녀로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겠지."
하고 로리는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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