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잘될 거다.”
서동수가 양서진의 손을 쥐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 테니까.”
부드럽지만 탄력이 강한 손이다. 서동수의 손을 마주 쥔 양서진의 손가락에 힘이 실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동수는 잠자코 꿈틀거리는 양서진의 손을 애무했다. 마주 쥔 양서진의 손가락이 오무렸다가 비틀렸고 비벼대더니 수줍은 듯 꼬물락거린다. 곧 손에 땀이 배어나오면서 끈끈해졌지만 두 손의 움직임은 더 거칠어졌다. 그때 서동수가 손을 떼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 한 장을 집어 내밀었다.
“자, 이거 이차비 받아라.”
엉겁결에 수표를 받은 양서진이 눈을 크게 떴다. 동그라미가 많았기 때문이다.
“1000만 원이야.”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신의주 장관하고 이차 뛰었으면 그쯤은 받아야지.”
“장관님.”
아직도 수표를 두 손으로 펴든 양서진이 울상이 되었다.
“왜 지금 주세요? 그냥 가시려는 거죠?”
“너한테 좋은 이야기도 들었어. 그 돈은 꼭 신의주에서 써야 된다.”
서동수가 옆쪽 벨을 누르자 곧 칸막이가 걷혔다.
“택시 정류장에 세우도록.”
최성갑에게 지시한 서동수가 양서진을 보았다.
“택시 타고 갈 수 있지?”
“여기서 가까워요, 장관님.”
밖을 내다본 양서진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꼭 신의주에서 쓸게요.”
“네 자식들한테 자랑스러운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바란다.”
차가 멈춰서자 양서진이 내리더니 허리를 기역자로 꺾어서 절을 했다. 그래서 양서진이 허리를 다 펴기도 전에 차는 멀찌감치 떠나갔다. 서동수가 고려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1시 50분이었다.
“여보, 바빴어요?”
기다리고 있던 장치가 방에 들어서는 서동수의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물었다. 장치는 실크 가운을 입었는데 젖꼭지의 돌출 부분이 드러났다.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표시다. 장치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뗀 서동수가 어깨를 당겨 안았다. 젖가슴의 촉감이 느껴졌고 하반신이 바짝 붙여졌다.
“그래, 회의가 조금 전에 끝났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았으니까 들어가요. 나도 들어갈게.”
“좋지.”
문득 양서진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서동수의 옷을 받아들면서 장치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경복궁이 너무 훌륭했어요. 동대문에서는 옷을 일곱 벌이나 샀고….”
오늘 장치는 서울 관광을 한 것이다.
“미안해. 다음에는 내가 안내를 할게.”
욕실로 들어서면서 서동수가 말하자 장치가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 한가할 때가 있으려고.”
욕조 물은 적당히 뜨거웠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만 내놓고 누워 길게 숨을 뱉었다. 하루종일 긴장했던 터라 온몸에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몸이 욕조 바닥에 딱 붙는 느낌이 들었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곧 욕조의 물이 출렁거렸다. 장치가 들어온 것이다.
“여보.”
맑고 약간 높으며 꼬리가 치켜 올라간 목소리가 들리더니 장치가 옆에 바짝 붙었다. 서동수가 눈을 떴다. 나란히 누워있던 장치가 화사하게 웃었다. 요염했다.
신의주에 대한 공격은 인권단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국인권운동협회’라는 단체에서 신의주의 한국인 처형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오전 10시 반, 서동수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유병선의 보고를 받았다.
“곧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것입니다.”
유병선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이번 반역 사건을 기화로 터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공격이 체계적으로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예상을 하고 있었던 일이다. 리무진의 앞쪽 자리에 앉은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이어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노조에서 일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회의원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입법부에서 제동을 걸면 직접적인 타격이 온다.
“이건 내가 살인마라도 되는 것 같군.”
서동수가 옆에 앉은 장치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나는 꼭 죽여야겠다고 하고, 그 사람들은 못하게 말리는 판국이니 말야.”
“여론조사 결과를 보셨습니까?”
유병선이 묻자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였다. 한국은 여론조사가 빠르다. 어제 서동수의 기자회견 후에 범법 행위를 한 7명의 처형에 대한 여론조사는 평균 60대 40이었다. 5개 여론조사 기관의 평균이다. 반대가 60퍼센트인 것이다.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인권단체의 성명서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장치가 서동수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터라 몇 할쯤은 알아들었겠지만 공사 구분은 엄격한 성품이다. 듣기만 한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맞서겠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우린 신의주야.”
딱 두 마디만 뱉고 난 서동수가 좌석에 등을 붙였다. 수백 마디 말을 두 마디로 줄인 셈이다. 어깨를 부풀렸던 유병선이 입을 다물었을 때 진동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유병선의 핸드폰이다. 핸드폰을 꺼낸 유병선이 몇 마디 응답하더니 서동수에게 내밀었다.
“안종관 차장입니다.”
안종관은 오늘 오전에 국가정보원에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유병선은 아직도 직급을 부른다. 안종관이 신의주로 옮아온다는 것을 유병선도 아는 것이다. 핸드폰을 받은 서동수가 응답했을 때 곧 안종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재 여야 의원 42명이 신의주 ‘인권회복운동’에 참여한다고 서명했습니다. 여당 11명, 야당 31명인데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서동수는 깊은 숨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안종관한테는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 안종관의 말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 중에는 북한 측과 교감을 나누는 의원도 있는 것 같고 여당 의원 중에는 강경파 의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의주가 남북한, 미, 중, 일의 각축장이 된다는 신호 같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안종관이 신의주로 오는 것이다. 다시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수고했습니다. 신의주에서 기다리지요.”
“예, 장관님.”
안종관과 통화를 끝낸 서동수가 잠자코 유병선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장치는 이제 창밖을 보고 있다. 그렇다. 남북한에는 신의주의 번성에 불안을 느끼는 세력이 존재한다. 위장한 친북, 친미, 친중 세력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의 현실이다. 그래서 신의주를 기반으로 한반도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여당인 한국당 원내총무 박세중은 4선의원으로 서울시당위원을 겸하고 있다. 올해 53세, 성격이 원만하고 느린 편이나 목표를 세우면 밀어붙이는 저돌성, 인내심이 강하다고 알려졌다. 대중 인지도는 낮은 편, 도표를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에서 좌우로 선을 긋고 정치인 이념 등급을 매긴 적이 있었는데 0을 중심으로 좌우 5까지의 선에서 박세중은 우로 4.5쯤 되었다. 극우는 아니지만 강우(强右)등급이다.
낮 12시반, 박세중이 장충동의 일식당 ‘애원’의 방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안종관이 일어섰다.
“어, 안 차장님. 아니, 이젠 아니시지.”
박세중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말을 이었다.
“장 수석한테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여서 둘의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다. 이미 회요리를 시켜놓고 있던 터라 둘은 잔에 소주를 한 잔씩 채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경수 수석은 교수 출신이라 말하는 것이 가르치려는 것 같아. 15분 동안 강의를 들었어요.”
박세중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양 실장이 잘 부탁한다고 마무리를 하더구먼. 그건 2분 30초 걸렸어.”
입맛을 다신 박세중이 한 모금 소주를 삼켰다.
“대통령이 맨 마지막으로 한마디했다면 내 기분도 업되었을 텐데 그 양반 바쁘신 모양입니다.”
웃기만 하던 안종관이 입을 열었다.
“박 총무께서 중심을 잡아주셔야겠습니다.”
“그래야죠.”
이제는 정색한 박세중이 똑바로 안종관을 보았다.
“신의주 인권회복운동에 여야 의원이 대충 20여 명 가입해 있는 것 같던데. 서 장관이 의외로 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파악된 숫자는 39명입니다. 어제까지는 32명이었는데 늘어났지요.”
“39명?”
놀란 박세중이 눈을 크게 떴다.
“여야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여가 14명, 야당이 25명입니다.”
“아니, 이런.”
“예상외로 빨리 늘어납니다. 이렇게 진행되면 투자 분위기가 얼어붙게 됩니다.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요.”
알다 뿐인가? 박세중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안종관을 보았다. 오전에 장경수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국회에서까지 여야가 뭉쳐서 공격하면 인권 이전에 신의주 발전은 치명상을 입는다. 결국 여야의 목표는 서동수인 것이다. 서동수가 신의주다. 서동수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들의 앞길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 안종관이 말했다.
“장관께서 통화를 하시고 싶다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 장관께서?”
되물었던 박세중이 숨을 들이켰다. 박세중이 머리를 끄덕이자 핸드폰의 버튼을 누른 안종관이 잠깐 이야기를 하더니 박세중에게 내밀었다.
“예. 박세중입니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박세중이 말하자 서동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총무님, 도와 주십시오.”
“아이구,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들 그러십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볼랍니다.”
뜸 들이지 않고 바로 그렇게 말했더니 서동수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제가 평소에 총무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에 뜻이 없으니 만치 신의주만 발전시키고 나면 정치는 총무님께 맡겨 드리겠습니다.”
박세중은 평생 동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요.” 신의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서동수 동성1호기는 신의주장관 전용기로도 쓰이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만난 부장관 최봉주가 말한 것이다. 표정이 굳어 있었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이고 앞장을 섰다. 잠시 후에 둘은 앞쪽 회의실에서 마주앉았다. 순항 고도에 오른 비행기는 허공에 멈춰 서 있는 것 같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최봉주가 입을 열었다. “북조선에서 신의주 발전을 방해하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최봉주가 말을 이었다. “신의주 발전과 북남 간 평화 분위기 조성, 그리고 북남평화통일에 대한 반대 세력입니다.” “그럴 때가 되었지요.” 머리를 끄덕이며 서동수가 말했다. 첫째로 북한 군부(軍部)다. 남북한 강경 분위기를 조성해야 군부의 가치와 위상이 높아졌고 그것을 분단 후 60년간 북한 지도층은 반복해서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제 신의주로부터 시작된 남북한 경협, 발전, 평화 분위기가 군부의 존재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봉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대장 동지의 측근으로부터 받은 정보입니다. 이 말씀을 장관 동지께 전하라고 했습니다.” “뭡니까?” “신의주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비밀리에 조직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직을 중심으로 필요시에 사보타지를 일으켜 신의주 체제를 뒤엎을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 “이것은 남조선의 일부 세력들도 동조하고 있으며 결정적인 시기에 남조선의 정치권도 동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서울에서도 그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이다. 남북한 반대세력의 연합이다. 그들은 현재의 분단과 대결 국면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때 최봉주가 말했다. “지도자 동지께서는 이에 대비한 어떤 조치도 적극 후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남북한 지도자의 의지가 있는데도 반대 세력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한국인의 고질적 습성인가? 임진왜란 2년 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는 제각기 정반대의 보고를 했다. 그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소하고 볼품없어서 조선을 침략할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했던 부사 김성일은 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소환을 당했다가 도중에 돌려보내 초유사에 임명되었다. 이것도 당파 싸움이 국가를 망친다는 증거일 것이다. 김성일은 당시 집권세력인 동인(東人)이었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제 목숨들이 걸린 일이니만치 결사적으로 방해를 하겠지요. 우리도 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최봉주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방심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지금은 사방이 적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최봉주에게 한국 내부의 상황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만 지었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의 의지는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가는 것이지요. 단숨에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서동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안팎이 전장이다. |
요토미 히데요시는 왜소하고 볼품없어서 조선을 침략할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했던 부사 김성일은 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소환을 당했다가 도중에 돌려보내 초유사에 임명되었다. 이것도 당파 싸움이 국가를 망친다는 증거일 것이다. 김성일은 당시 집권세력인 동인(東人)이었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제 목숨들이 걸린 일이니만치 결사적으로 방해를 하겠지요. 우리도 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최봉주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방심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지금은 사방이 적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최봉주에게 한국 내부의 상황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만 지었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의 의지는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가는 것이지요. 단숨에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서동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안팎이 전장이다.
“전영주라고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반듯이 선 채 여자는 허리를 45도 정도 굽혔다. 목덜미를 반쯤 덮은 검은 머리칼에 윤기가 흘렀고 몸을 세웠을 때 맑은 눈이 정면으로 서동수를 응시했다.
“이번에 수행비서로 채용된 전영주 씨입니다.”
옆에 선 유병선이 다시 소개했다. 유병선의 눈에 웃음기가 섞여져 있다. 호의다. 전영주는 북한 측이 추천해준 비서인 것이다. 북한 측은 모두 7명의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유병선이 전영주를 골랐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앞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전영주, 30세, 평양외국어대 졸업, 모스크바대 정치학 박사, 영·러·중·일어 가능, 외교부 통역관, 남북경협 북한 측 보좌관 역임함.’
유병선이 보고하는 서류다. 맨 밑에 유병선이 이렇게 별첨으로 써놓았다.
“최 부장관의 추천입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애국심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애국심’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준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북한에 대한 애국심이란 말인가? 그 순간 서동수의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충성심보다 애국심이 지금은 적절하다. 북한에 대한 애국심은 곧 신의주 발전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시선을 둔 서동수가 전영주를 보았다.
“꿈이 뭔가?”
“네, 전에는 인정받는 통역관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장관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비서가 되고 싶습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입사 면접 때 서동수는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면접관들은 그것을 동양의 사장으로 착각하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유병선은 전영주를 데리고 나가더니 다시 혼자 돌아왔다. 벽시계가 오전 9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다. 장치는 아침에 베이징으로 돌아갔고 다시 서동수는 신의주에 혼자 남았다.
전영주가 북한 측과의 비밀 연락을 맡게 될 것입니다.”
앞에 선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최 부장관은 전영주가 믿을 만하다고 했습니다.”
“안종관 씨는 언제 오나?”
“내일 오전에 도착할 것입니다.”
국정원 1차장이었던 안종관은 이제 신의주 장관특보가 되어 내분 진압의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전영주의 채용도 북한 지도부와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바짝 다가선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한국의 전철을 밝게 되면 신의주의 발전은 물거품이 됩니다. 장관님.”
서동수가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유병선은 한국 내부의 갈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이번 경우는 달라, 남북한 지도자가 70년 만에 합심해서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 보자고 시도한 거야, 그 새 모델이 신의주란 말이지.”
서동수가 입을 다물었지만 유병선은 그다음 말을 이을 수가 있다. 그 신의주를 시작으로 남북한은 공론, 번영의 시대로 진입한다. 그것은 통일의 시작이다. 통일은 그 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니 서둘 것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5년마다 새 대통령이 나오는 한국보다 북한의 김동일 대장이 통일 한국의 지도자에 더 유리하다. 이것이야말로 윈윈 아닌가? 그때쯤이면 신의주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경제, 사회 체제도 한국과 비슷해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첫댓글 즐감요~~~~~~~
즐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