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에는 향기가 없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아마도 교과서에서 배운 것으로 기억된다. 신라의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설명하고자 삼국유사에 기록된 다음의 일화를 예로 든 것이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붉은빛·자줏빛·흰빛의 세 가지 빛으로 그린 모란[牧丹]과 그 씨 서 되[升]를 보내 온 일이 있었다. 왕은 그림의 꽃을 보더니 말하기를,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씨를 뜰에 심도록 했다. 거기에서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이 설화는 두 가지의 오해를 낳았다. 그 하나가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왕의 총명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림을 보는 방법에 대한 오해를 낳은 것이다. 모든 식물의 꽃에는 수정을 위하여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향기가 있다. 어린 시절 일화를 책에서 읽은 후 모란꽃의 향기를 직접 맡아보고 향기를 느낀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던 시기였기에 모란꽃 향기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채워졌고 크게 기억으로 남아 있지도 않았다.
이후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후 이 설화에는 실로 엄청난 비밀 같은 것이 있어 일반인들에게 아직도 크나큰 오해를 싸고 있음에 틈나는 대로 이 사실을 바로잡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설화의 핵심은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설명함에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란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어 오히려 그 총명함을 깎아내리고 있을까? 동양의 그림 특히 꽃이나 동식물을 그린 그림(기명절지)에는 그 등장하는 각각의 소재에 의미를 부여하여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기원하고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모란꽃 그림도 마찬가지로 생태학적으로 벌과 나비의 존재는 별 의미가 없다. 모란꽃이 가진 의미(부귀,영화)가 중요한 것이다. 그밖에도 잉어와 해(어해도-출세), 까치와 호랑이(작호도-잡귀나 액을 막는 벽사), 거북·소나무·달·해·사슴·학·돌·물·구름·불로초(십장생도-장수), 문자도, 책가도, 고사성어를 그린 그림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설화를 섰다면 한 인물을 영웅화하기 위하여 예술을 철저하게 무시하였거나, 모르고 썼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학문하는 자들의 예술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단적으로 드러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모란꽃에 향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이제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는 택도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모란꽃의 향기는 있습니다.
모란꽃의 향기보다는 그림의 향기가 훨씬 은은하고 진하겠지요.(후대에 그려진 모란꽃 그림에는 나비와 벌도 등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