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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성식 기자
"국악 대중화·세계화는 내 화두"
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인 작곡가 김영동(51)이 지난 주 발표한 새 앨범 <하나>를 듣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영혼은 어느새 적요한 고궁(古宮) 위를 날아 비단잉어 유유자적하는 연못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김영동의 음악은 고요한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마음으로 번져 가는 조용한 파문과 함께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추함을 잠시 잠깐 잊게 만드는 나른한 편안함.
간명하고, 단순한 가사로 '통일'을 읊조리는 동명 타이틀곡 '하나'와 대금 연주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가다가 가다가', 이장호 감독의 영화 <어둠의 자식들> 타이틀곡으로 쓰인 '어디로 갈거나', 사랑과 증오, 만남과 헤어짐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한네의 이별', 시인 김지하가 노랫말을 쓴 '사금파리' 등 수록된 11곡 모두가 그야말로 절창(絶唱)이라 버릴 게 없다.
인간문화재 김성진에게 정악을, 민속악 명인 한범수에게 산조를 사사(師事)한 김영동은 78년 국립극장에서 '개구리 소리'와 '누나의 얼굴' 등 국악 동요를 발표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후 24년. 그는 주위의 비판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초지일관 '국악의 대중화'와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지향해왔다.
<어둠의 자식들> <꼬방 동네 사람들> <땡볕> <씨받이> <아다다> <젊은 날의 초상> <휘모리> 등의 영화음악 작업도 병행한 그는 대종상을 비롯, 벨기에 국제영화제 음악상과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음악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도 그는 오원(吾園)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 음악 작업으로 바쁘다.
"가난한 고아 출신이 안견, 김홍도와 비견되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 성장하잖아. 그야말로 영화적인 삶이지. '청록산수도'와 '심양송객도'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하고. 이 인터뷰 끝나면 마무리 작업 때문에 양수리로 가야 해.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이 어우러지는 웅장한 음악이 될 거야. 국악 연주자 30명과 서양음악 연주자 30명이 참여하고 있어. 이번엔 임(권택) 감독도 칸느(영화제)에서 상 한 번 받아야지."
말끝에 그가 너털웃음 터뜨린다. 듣는 사람을 명상에 잠기게 하는 조용한 매력을 가진 그의 음악. 사람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는 기자의 예단은 빗나갔다. 김영동은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세상 어느 것에도 비껴가지 않는 명확한 태도를 가진 호협활달한 사람이었다.
"내 음악은 조성모나 GOD의 노래와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을 다양함으로 받아들이고, 문화의 '다양함'이 존재하는 사회가 좋은 세상 아니냐"라 거침없이 말하는 김영동. 아래는 봄볕이 좋던 지난 11일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주고받은 대화다. 그의 '음악'과 그의 '삶'에 관한.
'하나'는 통일 이후 한국노래의 방향 찾는 곡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 <하나>를 낸 소회는?
"78년에 작곡 발표회를 하고, 80년대에는 연극과 영화 음악, 명상음악을 했다. 이후 적지 않은 공백기도 가졌고. 최근엔 왜 노래 작업을 하지 않느냐는 주위의 질책 아닌 질책이 많았다. 우리 노래다운 우리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 스스로의 깨달음도 있었고. '서양 악기와 우리 악기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노래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작업한 것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자천할 만한 수록곡이 있는지.
"쑥스럽게 무슨 내가 내 노래를... 굳이 하라면 '하나'다. 노래와 합창, 연주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곡이다. 통일 이후 한국의 노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만들었다. 통일을 절실히 원했던 이전 노래들의 집약과 확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앨범 전체의 컨셉트는 '우리 노래의 정체성 찾기'와 '한국 전통음악의 힘 찾기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번 앨범은 랩과 힙합처럼 빠른 노래만이 득세한 2002년 한국에서 '맥박처럼 느리면서도 편안한 음악'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국악의 대중화를 지속적으로 얘기해왔는데.
"언론이 말하는 대중화는 아니다. 그것은 상업성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내가 말하는 국악의 대중화란 정체성을 잃고, 유행만을 좇는 음악을 지양하고 내용성과 다양성을 갖춘 음악을 들을 권리를 국민에게 주자는 것이다. 중심 없는 세계화에 휘둘리고, 민족의식이 결여된 최근의 음악들을 볼 때 문화운동 1세대로서 답답함을 느낀다."
-음악만이 아니라, 여타 예술 장르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
"음악이 타 문화 장르와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후학들의 문화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싶다. 또한 그 작업 자체가 내겐 즐거움이기도 하고. 영화는 대중 파급력이 굉장한 예술이다. 하지만 작금의 영화음악이란 팝송 일색 아닌가. 우리 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음악을 만들 수 있다. 임권택의 영화 <취화선> 음악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을 현실에서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다."
"내가 간 것이 아니라, 음악이 내게 왔다"
-우리 음악과 만난 계기는?
"비원 건너편에 있는 국악예고에 다녔다. 일단 학교만 들어서면 싫어도 판소리와 장구 소리, 대금과 아쟁 소리를 들어야했다. 내가 음악에게 간 것이 아니라, 음악이 내게 왔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청소년기 6년을 거기서 보냈다. 대학에 가서는 김지하와 김민기('아침이슬' 작곡자), 임진택(판소리꾼) 등과 어울리며 '우리 것 찾기 운동'을 했다. 그때부터 우리 음악이 대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다. 대학 문화운동도 어려웠던 때 아닌가?
"맞다. 강퍅한 시대였다. 연극과 탈춤 등은 나름대로 활성화되긴 했었지만, 음악 쪽은 많은 힘들었다. 73년에 김지하의 소리굿 <아구>를 무대에 올렸는데, 체포와 투옥을 각오하고 공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스스로 놀랄 정도였으니까."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 참여에 대한 견해는?
"당시의 문화운동 자체가 사회 참여였다. 전통의 경직성과 서양음악의 고루한 답습을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노력들도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예술적 능력이 좋은 세상을 위한 도구로 쓰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도구는 목적의식적 도구였지, 단순한 소모품의 성격은 아니었다."
-당신 음악을 규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크로스 오버'다.
"말 그대로 넘나든다는 것 아닌가. 70년대엔 거기에도 일정한 룰이 있었다. 서양음악은 반주를 맡고, 국악은 리듬을 담당한다는 따위의.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 음악의 특수성이 세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단순한 '섞임'이 아닌 '녹아듦'으로써의 크로스 오버(Cross-over)가 필요하다. 우리 음악의 개성을 지켜내는 노력 또한 거기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음악의 세계 진출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여기엔 제대로 된 국가의 문화정책이 필수다.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 비전문성과 관료주의로 일관한다면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세계화도 요원하다. 로비가 개입된 문화정책 결정과 예술이 아닌 산업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천박성이 극복돼야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음악의 세계화는 자연스런 수순이다."
-이번 앨범에 사용된 현대 음악적 요소가 국악과의 충돌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이번 앨범만이 아닌 이전의 내 작업과 연계시켜 살펴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나는 대중-순수-대중-순수를 반복해서 작업하는 것으로 일관해왔고, 이번 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서있다. 이번 앨범은 김영동 개인의 음악 역사 중 한 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국악의 전통성만을 고집할 때 서양음악만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겠는가? 그건 대중화를 중시해온 나의 입장과도 위배된다."
"'달타령'과 '새타령'이 민요의 전부 아니다"
-국악 시장의 침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회복시킬 복안은 있다. 첫째는 언론의 관심이다. 댄스뮤직 가수들의 기사만 쓸 것이 아니라, 우리음악을 다루는 꼭지도 상설화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24시간 내내 자국의 전통음악만을 방송하는 채널도 있다. 음악담당 기자들도 우리 음악에 대해 공부를 안 한다. 국악이라면 무조건 어렵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불교적 색채의 명상 음악도 많이 작업했는데.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정신적 위로를 주고 싶었다. 물질이 아닌 정신에 집착하는 음악은 나에게 부여된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불교에는 수천 년을 이어져온 역사의 힘이 있다. 그 힘이 사람들을 자기 반성으로 이끌 수 있다."
-대금과 가야금 등 우리 악기를 변형하고, 개량하는 작업도 해온 걸로 안다.
"우리 악기로 서양 멜로디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량 악기로 서양 멜로디를 연주할 땐 반드시 우리의 전통성과 정체성까지를 염두에 둔다."
-'새타령'과 '달타령' 등의 국악가요는 싫어한다고 그러던데.
"민요적 정서가 담겨 있지 않아서 그렇다. 민요의 정서는 참여와 시대 풍자다. '달타령'과 '새타령'에는 음악적 형식에 용해된 내용(참여, 시대풍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사회성에만 침몰하는 것도 민요의 본질은 아니다.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고, 현재도 모색중이다."
-크로스 오버가 국악의 정체성을 흔든다는 비판에 대해선.
"전통은 지키지만, 내 갈 길은 간다라는 것이 내 모토다. 전통음악을 대중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중간자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고, 나는 이 역할을 자임해왔다. 앞으로도 만찬가지다."
-우리 음악의 전통성을 찾기 위한 복안이 있나?
"같은 연주 패턴의 답습과 이론의 경직화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음악의 원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집약된 책이 <악학궤범>이다. 이 책에는 주역의 원리가 들어있다. 최근 김지하 선배와 주역 공부를 시작했다. 작곡자들은 부단한 공부를 통해 우리 음악의 원리를 체득해야 하고, 이후에는 이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음악으로 풀어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우리 음악의 전통성 복원 방안이다."
-영화, 연극, 무용 등 타 장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데.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라는 단어 때문에 폭을 넓힐 수 없었다. 국악에도 전통의 답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와 연극 등에 참여한 것은 국악의 보급이라는 내 나름의 명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음악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면 앞으로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연극은 <처분> <태> <한네의 승천> 등에 참여했고, <춤소리> <집> <시나위> 등의 무용음악도 만들었다. <땡볕> <젊은 날의 초상> <휘모리>의 영화음악으로는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거 참, 내 자랑하는 것 같아 영 쑥스럽네(웃음)."
"조영남과 양희은도 음반 내기를 꺼리니..."
-요사이 유행하는 음악에 대한 생각은?
"지나치게 댄스 음악 위주다. 한 분야의 독재는 다른 분야를 고사(枯死)시킨다. 그런 상황이니 조영남과 양희은도 음반을 못 내고 있는 것 아닌가. '판을 만들어 봐야 팔리지가 않는다'는 그들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작업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왜곡된 한국의 음반 시장은 문제가 심각하다. 싱어송라이터(직접 곡과 가사를 쓰고 부르는 사람)를 죽이는 제도는 자본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기획사의 상업성에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당신은 대금 전공자다. 그럼에도 제의(祭儀)에 쓰이던 악기 '훈'을 비롯, 페루 민속악기 '기나' 인디언의 타악기인 '타포' 등도 연주하는데.
"'훈'은 유일하게 흙으로 제조된 우리나라 악기다. 그럼에도 연주법은 발전은 중국에서 이뤄져왔다. 그것이 안타까웠고, 이 안타까움을 이전 앨범 <바람의 소리>를 제작하며 풀었다. '훈'은 지구의 울음소리를 내는 악기다. '훈'만이 아니라,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우리악기 60여종을 다시 우리 음악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여성 성직자들의 모임인 '삼소회'의 합창에 감동받아 <화해>를 작곡한 걸로 안다. 음악적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오는지.
"영감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의지에서 온다. 혼탁한 세상과 인간 정신을 정화시키려는 노력이 저간에 깔리지 않는다면 음악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당신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김지하에게서 '창작'이란 단어의 중요성을 배웠고, 동갑내기 김민기에게선 좋은 노래를 만드는 태도를 배웠다. 두 사람은 단순한 대금 연주자였던 나를 '창작하는 예술가'로 만들었다."
-음악을 통해 당신이 세상에 발언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나는 지금 율려(律呂)를 배우고 있다. 율려가 무엇인가. 음양의 조화를 익혀 세상과 인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 아닌가. 음악에 있어서도 율려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내 음악을 통해 나와 타자, 세상과 우주를 치유하고 싶다는 포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여섯 살 아이도 고개 끄덕일 음악 만들 터"
-앞으로의 음악 작업에 대해 한마디.
"철학은 이해에 다름 아니고, 음악은 감동에 다름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 여섯 살 아이도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이번 앨범 <하나>도 국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 2002/03/14 ⓒ 2002 Ohmy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