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 아미산
6월이지만 너무나 더운 여름 같은 날씨가 지속되는 즈음에 힘든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에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이 산행에 도움 되고 초록빛 무성한 산으로 가자. 라는 말처럼 신명 회원들은 황금 버스에 올라 군위로 안전부장님의 고향, 역사에 알려진 일연 스님이 말년을 지냈던 곳을 찾았다.
일연 스님에 대해 어필해 보면, 고려의 고승이요, 문장가요, 애국자인 일연은 최충헌이 집권한 무신정권 시대인 1206년에 비슬산 바로 옆 경산 압량면에서 때어나 9세 때 광주광역시 무량사에 입산하여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8년여 영동의 여러 명찰을 찾아다니며 수행했다. 22세 때 승과에 장원급제해 ‘중의 벼슬’(법계)을 받아 비슬산의 보당암(현재 대견사) 주지로 부임했다. 승려 생활의 절반가량을 비슬산에서 보냈다.
비슬산에는 일연스님과 얽힌 흔적과 이야기가 많다. 북쪽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인각사에는 일연스님의 사리탑과 깨진 부도비가 남아 있다. 일연이 말년(78세)에 어머니(96세)를 모시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이곳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완결하고 84세로 입적한 곳이다. 매년 칠월칠석이면 스님을 위해 재를 올리고 있다. 일연은 1277년 충렬왕 3년 명에 따라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했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1283년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라는 호를 받았으나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1284년 인각사(麟角寺)에서 2회에 걸쳐 구산문도회(九山門徒會)를 열었는데, 이는 가지산문이 일연을 중심으로 고려 불교계의 전 교권을 장악한 것을 뜻한다. 1289년 7월 왕에게 올리는 글을 남기고 입적했다.
〈삼국유사〉 찬술을 위해 1278년에 이미 〈역대 연표〉를 작성하고, 이후 그의 나이 73~76세에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찬술했다.
오늘날의 경상북도 경산시인 압량군 출생으로 원효대사와 동향이다.
삼국유사의 탄생은 고려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당시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으며, 불교적 가치와 사상이 국가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저술하게 되는데, 그의 주된 목적은 고대 삼국 시대부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당시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고대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통해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집대성했습니다. 특히, 그는 기존의 역사서가 주로 왕조의 연대기적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민간 전승 이야기, 신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한국 고대사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한민족 고유의 정신과 문화를 후세에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삼국유사를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한국 고대 문화와 사상, 민족 정체성의 보고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정신의 보고로 만들었습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대견사는 대구 달성군 비슬산 산정에 자리 잡은 조계종 동화사의 말사다. 신라 헌덕왕 때에 보당암(寶幢庵)으로 창건된 천년고찰이며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 봉정(암), 남 대견(사)’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도 사찰이었고 이 절의 석조관음상이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면서 세간에 영험한 절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폐허와 중건을 반복하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강제 폐사돼 한동안 삼 층 석탑 흔적만 덩그렇게 남아 한때는 ‘대견사지’라고 불렸다. 2011년 11월 대구 달성군과 동화사에 의해 전각 재건 공사가 시작됐고 2014년 삼일절에 기공식과 개산식을 열었다. 벼랑 끝에 세워진 삼 층 석탑은 1988년 가장 먼저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이후 시간을 두고 대견 보궁, 명부전, 산신각, 요사채 등 주요 건물도 다시 지어졌다. 대견 보궁에는 2013년 스리랑카에서 기증받은 진신사리(부처의 유골) 1과를 두어서 적멸보궁(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의 지위를 얻었다. 설악산 봉정암(1244m), 지리산 법계사(1400m)와 더불어 1000m 이상 고지대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사찰인데 방문하기가 어렵지 않다. 비슬산자연휴양림 초입에서 30여 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편도 5000원)를 타면 절까지 닿는다.
삼국유사는 유교적 합리주의와 중국 중심으로 기술했던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놓쳤거나 드러내지 않은 것들을 적었다. 신라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한민족을 자주 의식을 지닌 주체적인 역사로 재조명하고자 했다. 단군의 개국 설화를 비롯해 가야와 삼국의 건국 설화, 민간의 삶 속에 전해지는 신화, 전설, 향가, 고승들과 신비한 불교 이야기는 불교적 세계관과 민족의 주체성을 고양하고 있어 민족사적으로나 불교사적으로 소중한 유산이다. 외세에 시달리는 격변기에 민족혼을 불어넣고자 방방곡곡 누비며 보고 들은 것을 투철한 주체 의식에 입각해 기록한 답사 문학의 걸작이기도 하다.
■ 코스
아미산 주차장 ~ 송곳 바위 ~ 앵기랑 바위 ~무시 봉~ 아미산 ~ 발미골 삼거리 ~ 전망바위~ 임도 합류 ~ 임도 삼거리 ~ 병풍암 ~ 병풍암 삼거리 ~ 나무다리 ~대곡지 ~ 아미산주차장 (약7Km. 4시간30분)
앵기랑 바위: 작은 설악산, 작은 공룡 능선 바위
한국전쟁 당시 수호신 역할을 하였고 바위의 음덕으로 월남전에 파병된 이곳 출신 청년들이 무사 귀환하였다고 전해지며 아미라는 뜻은 높은 산 위에 또 높은 산이 있다는 의미이며 양지리 마을에서 보면 아기 동자승 같은 모습이며 석산리는 코끼리 바위로 학암리는 왕암 바위로 불려 진다. 산의 모양은 다섯 개의 바위 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댄 형국이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마을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1봉 송곳 바위, 2봉 3봉 앵기랑 바위, 4봉 아미산, 5릉으로 구성되어 작은 공룡 능선으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한다.
아미산은 암릉 코스를 지나면 사진 찍을 장소가 많지 않아 조금은 밋밋해 보이지만 숲길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늘이 주는 산행이라 적외선이 강한 계절에도 좋은 코스라고 고맙다고 할 때, 갑자기 흙이 많은 구간으로 바뀌면서 내려오는 길이 마사토가 많고 급경사로 이루어져 미끄럽고 안전 밧줄도 제대로 없어 상당히 조심조심하며 내려와야 하며 나는 무릎에 무리가 가서 돌아와서는 찬물찜질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신명 회원님들은 뛰어난 산악인답게 모두가 안전하게 즐산을 한 것 같았다. 항상 긍정적이고 많이 웃는 신명 회원님들 밝은 미래가 펼쳐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파이팅 ^^^^^
첫댓글 미리 예습을 좀 하고 갔더라면 바위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겼을까요..ㅎㅎ
이래라도 복습을하니 그하루가 더 알차게 여겨집니다.
안그래도 솟은어깨에 일자목인데 성가신 내리막길 안미끄러질라고 용쓰는바라에 거북이목 되는줄 알았어요 ㅋㅋ
산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태양언니
감사함돠~~^^
항상 격려와 따뜻함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술이 들어가면 귀여운 모습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마법으로 편안하게 리드해주어 감사합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역사 공부 잘 했습니다
대장님께서 항상 수고해주시고 좋은장소 물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공부 제대로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응과 댓글 감사합니다
와우..아미산.군위의 이런 뜻깊은역사가~~
밝은태양.누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