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마지막 당부
Text Acts 1,6-15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1.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가장 진실한 순간은 기도 시간과 죽기 직전 시간이 아닐지 생각됩니다. 기도 시간에 갖는 진실은 공개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죽기 직전에 하는 유언은 공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얼마ㅉ쯤의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오놀이라는 시간을 현명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한스 헐터라는 사람은 사람의 마지막 말을 죽음이 사람에게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받은 성경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많은 확실한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다가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 말씀 중심으로 어버이주일이기도 하고 승천주일이며 아시아주일인 오늘 ‘마지막 당부’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나눌 때에 모두 함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6-7절 말씀을 봅니다.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그들은 사전에 의견의 일치를 본 것처럼, 함께 와서 이구동성으로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죽인 현재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또한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 로마 황제에게 순순히 이 나라를 넘기실 것인지, 반대로, 유대 나라를 그 민족에게 회복시켜 주시고 그들의 왕으로 섬김을 받으실 것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그 때까지도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그 나라에 대한 기대가 잘못되었습니다. 즉, 유대 민족을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때처럼 아사왕이나 여호사밧왕 때의 국가처럼 세계에서 위대하고 뛰어난 국가로 일으켜 줄 것을 바랬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번성을 허영과 권력에서 찾으려 하는 잘못은 오늘날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세력과 영광이 주어지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류는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였을 때 교정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나라의 때에 관하여서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주여 이 일을 이루심이 이 때니이까? 이 목적을 위해 우리를 함께 부르셨고 그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회복시키시기 위한 적절한 계획도 세워진 것인지요? 확실히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지요?’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왕좌에 앉는 큰 몫(눅22,30)이 약속되었다고 믿은 바로 그 나라가 세워지기를 조급하게 기다렸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질문을 막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회복은 그냥 왕권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국도 최고의 전성기였지만 죄와 죄의 고통이 많았습니다. 그런 나라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때와 시기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려야 하지만,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신랑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는 모두 신랑을 맞기는 하였지만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던 다섯 명만이 혼인 잔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되 무슨 준비를 하고서 기다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 준비는 인격의 준비이고 영성의 준비입니다. 이 인격과 영성의 준비는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주님은 확실하게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인생을 평안하게 합니다. 에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평안은 환경이 좋아져서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그 지옥 같은 가난과 시련,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누리는 평안입니다. 신앙생활은 인생을 기쁘게 합니다. 좋은 집에 살고 맛난 것을 얼마든지 먹으며 꿈꾸던 좋은 것을 얻어서 기쁜 기쁨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기 때문에 누리는 기쁨입니다. 신앙생활은 인생을 행복하게 합니다만 많이 축적하고 누린다고 얻어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이웃을 위해 나를 즐거이 떼어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랑의 행복입니다. 알 바 아닌 것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변화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고 찾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3. 주님의 당부 둘째입니다. 8절입니다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절은 ‘오직’ ‘성령’ ‘증인’ 이 세 단어가 핵심입니다. ‘성령’에 부연 설명이 붙어 있는데 권능을 받는 것이 그것입니다. 내 증인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에서 하게 될 증인이라 하셨습니다.
‘오직’은 ‘다른 무엇보다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본문의 ‘오직’은 주님의 마지막 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칭합니다. 때와 시기를 아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나라를 회복하는 것’, 설령 최고 전성기 시절의 다윗 왕국과 같은 나라를 회복하여 여러 나라의 조공을 받고 이스라엘의 신을 배워 받아들이려 하며 권좌에 앉아 권력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 ‘오직’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당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생긴 권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넘어 땅 끝까지 주님의 증언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위인들에게서 ‘성령’의 권능을 힘입었던 이야기들이 주요한 시작점이었고 점점 더 절정을 이루어가는 핵심이었던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엡5,18에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못하는 것은 다 ‘죄’라고 까지 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 없이 되는 기독교 신앙은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함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기도를 하십니다.(롬8,26) 성령님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서의 만족이 아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 삶을 살게 하십니다.(롬14,17) 성경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벧후1,21)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성도 안에 계실 때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의 열매가 있게 합니다.(갈5,22-23) 성령 충만은 믿음, 신유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방언 통역 등의 은사도 주십니다.(고전12,9-10) 실로 성령 없이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가짜요 거짓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권능이 있게 하시어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말이 아닌 능력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헛된 증언이 아닌 힘 있는 증언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 말대로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였을 때 그들은 마치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경탄의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지만 거기서 전에 박해하던 사람들이 증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에 헛수고하였던 유다 전역에 비치게 될 것이며, 이전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금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이 될 것이며, 결국, 전 세계가 복을 받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마지막 당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당부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신자들은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주님의 당부이신 증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겠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아시아 지역의 영혼들에게도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4. 마지막으로 9-15절 말씀입니다. 9-15절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마지막 당부를 위해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렸다는 것을 말하려 합니다. 승천을 지켜본 제자들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유하고 있던 예루살렘 시재의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포함하여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도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그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당부를 명심하고 그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렘5장에 보면 레갑 자손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갑 자손은 선조 요나답이 명령한 대로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건만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한다고 하나님은 한탄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어버이주일이지요. 우리는 부모님의 당부를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 당부를 귀담아 듣기나 했습니까? 듣지도 않고서는 하신 말씀이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대로 성령 받기 위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 시간에, 찬송할 때에,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곡조 붙은 기도라고 하는찬송을 내 입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고넬료 가정처럼 사도를 초청하여서라도 말씀을 듣고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과 성도들의 가정이, 우리 교회와 세계의 모든 사역지에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에 자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삶을 마칠 것인지, 죽을 때에 부를 이름은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주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을 붙들고 원수의 높은 곳을 밟으며 당당하게 살고 이 땅에서 행복자로 만족하며 살다가 사랑하는 주님께로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