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 장편소설-'사랑'(1938년)
춘원이 제시하는 이상주의적 사랑 춘원 이광수의 사랑은 1938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가 1950년 박문출판사에서 재간행된 장편소설이다. 작자인 이광수가 광복 전인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자하문(한양도성 북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밖 산장에서 병든 몸을 다스리면서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의 사상, 특히 기독교와 불교를 아우르는 이상주의적인 사랑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먼저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석순옥은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안빈내과소아과의원을 찾아 간호원이 된다. 그녀는 평소부터 의사이자 작가(소설가)인 안빈의 작품을 읽고 정신적으로 대단한 애정을 느끼고 있던 차에 스스로 안빈을 찾아와 간호원이 되기를 자원한 것이다.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소망이 실현되어 안빈의 곁에서, 그보다는 기혼자인 안빈의 곁에서,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의 높고 거룩함을 느끼면서 생활하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안다.
이에 안빈은 사랑을 실험하게 된다. 석순옥은 안빈으로 하여금 실험실에서 자기의 피를 검사하게 한 결과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모르겐’이 나오고 더 높은 평등의 사랑을 뜻하는 ‘아우라몬’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사모한다며 따라다니는 허영이란 시인에게 일종의 자비심으로 오분간의 포옹을 허락하면서 뽑은 피에서는 ‘아우라몬’이 나온 것이다. 피의 실험에서 석순옥은 안빈의 품과 가슴에 몸을 의탁한 채 흠씬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잠이 들어 버린 어린아이 모양으로 차차 숨소리가 깊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안빈 역시 석순옥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깜짝놀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석순옥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안빈을 항상 곁에서 사랑하면서 육체적인 사랑을 부정하게 된다.
안빈은 예수와 석가여래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려는 이상주의자였고, 그 아내 천옥남도 남편을 하늘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순옥은 끝없이 순수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으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오해와 곤욕뿐이었다. 안빈과 그의 아내 옥남, 그리고 순옥은 미묘한 삼각관계의 애정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그러다가 안빈의 부인 옥남이 폐병으로 눕게 된다. 석순옥은 그녀를 위해 온갖 정성으로 간호하며, 그녀의 곁에서 여러가지 일을 거든다. 그러나 그녀는 죽고 만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석순옥 때문에 천여인이 죽은 것이라고 뒷공론이 많았으나, 석순옥은 그러한 소문에 개의치 않으려 애쓴다. 더구나 옥남은 순옥과 안빈 사이가 청순한 종교적 애정이었음을 확인하고 죽는다.
순옥은 옥남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덜기 위하여 시인으로 자처하는 허영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다. 이는 안빈과의 여러가지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옥의 몸부림일 뿐 아무런 애정이 없는 결혼이었다. 더구나 순옥은 시인임을 자처했던 허영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그는 무서운 병에 걸려 있었으며 이귀득이란 여자와의 사이에는 섭이라는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순옥은 그러한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허영의 좋은 아내가 될 것을 결심하고는 많은 노력을 한다.
어느 날 섭은 순옥의 병원에 찾아온다. 순옥은 섭을 친아들과 같이 여기고 그의 생모인 귀득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허영은 귀득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또 다시 만나 그녀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순옥은 이혼하여 허영이 그녀와 결혼하여 살도록 한다.
이혼 후 순옥은 괴로운 마음 속에 허영의 딸을 낳게 된다. 이혼 직후에 낳은 딸인지라 허영은 오히려 그 딸이 석순옥이 안빈과의 불륜의 관계에서 낳은 딸이라고 말한다. 순옥은 모든 것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러던 중 귀득이 유산으로 인해 병이 들자 순옥은 정성을 다해 간호하나 그녀는 죽고 만다. 허영의 어머니 한씨는 귀득의 죽음이 순옥으로 인한 것이라 하며 순옥을 괴롭히지만 그녀는 안빈을 생각하며 모든 고달픔을 이겨낸다.
그 후 허영이 뇌출혈로 쓰러진다. 순옥은 스스로 허영의 집으로 들어가 그를 위로하고 간호하며 그 어머니와 가족을 데리고 북간도로 가서 병원에 취직하여 생계를 꾸려간다. 순옥이 취직한 병원에 근무하는 이의사는 그녀를 사모하게 되고 결국에는 본부인과 이혼까지 한다. 그러던 중 아들 섭이 죽고 허영마저 죽는다. 이를 두고 허영의 어머니는 순옥과 이의사가 공모하여 아들을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순옥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그러나 순옥은 참아낸다.
한씨마저 허영이 죽은 사흘 후 죽고 만다. 졸지에 세식구를 잃은 순옥은 몸져 눕게 되고 다섯 달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서울에서 안빈이 보낸 간호부의 지극한 정성으로 기운을 찾은 순옥은 딸 길림과 함께 안빈의 병원으로 돌아온다.
춘원이 제시하는 이상주의적 사랑
「사랑」에서 이광수는 애정과 갈등, 그리고 불교적인 숭고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즉, 사랑을 승화한 가장 높고 거룩한 이야기가 바로 석순옥의 일생이며, 이를 그리고 있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이광수는 1930년대의 국내외적인 정세의 불안의식을 형이상학적인 정신지상주의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이상주의적인 애정관은 「유정」(1935)에서 비롯되었고, 「사랑」에서는 그것을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광수가 만년에 도달한 인생관은 끝없이 높은 사랑을 찾아 향상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사랑, 무차별 평등의 사랑, 모든 중생을 애인이나 외아들 같이 사랑하는 사랑, 이것이 그가 말하는 끝없이 높은 사랑이요, 인생의 최고 목표였다. 춘원은 사랑의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단정지으면서 「사랑」의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사랑이 일체 유정물(有情物)의 생명현상(生命現象) 중에 가장 숭고한 것임을 믿는다. ...... 육체의 결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많겠지마는 그것은 마치 생물계(生物界)에 사람보다도 벌레가 많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 사랑의 극치로 말하면 물론 무차별 평등의 사랑일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사랑이다. 육체를 떠난다는 말은 동물적 본능을 떠난다는 말이다.
이는 바로 육체적 사랑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이 숭고하고 순결하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광수의 작품에 나타난 사랑을 종교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보면, 범신적인 다양한 종교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최고의 사랑을 위한 고행을 구체화한 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석순옥의 일생이다.
순옥의 일생은 성자(聖者)처럼 묘사된 안빈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지고의 사랑을 바치는 종교적 이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벌레도 향상하기를 힘쓰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영원한 존재를 인식하여 육체를 떠나는 불교적 인생관이 이 작품의 주된 사상이다.
물론 석순옥에게 안빈을 향한 육체적인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의 실험에서 보이듯이 순옥에게도 안빈을 향한 육체적 애욕이 있었다. 물론 작품에 나오는 피의 실험, 즉 육체적 애욕을 뜻하는 ‘아모로겐’이나 평등애를 뜻하는 ‘아우라몬’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공적인 것이며, 춘원 자신의 지고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에 불과하다. 어쨌든 독자들은 피의 실험 장면을 읽으며 안빈과 순옥 모두 서로를 원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순옥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안빈을 항상 곁에서 사랑하면서 육체적인 사랑을 부정한다. 인내와 희생 그리고 베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순옥이 몸과 마음을 다바쳐 지고의 사랑인 자비심을 베풀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곤욕뿐이었다. 안빈의 부인 옥남을 죽게하고, 귀득을 죽게 했으며, 의붓자식 섭을 죽게하고 남편인 허영까지도 죽게 한 요부라고 보는 것이 세속의 눈치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안빈에게까지 오명이 돌아가게 했다. 그녀가 그러한 곤욕을 참고 견뎌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과연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주요한의 지적처럼 「사랑」에 묘사된 사건과 인물은 일견 비현실적이요 우화적이라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는 안빈의 위선이요, 이광수의 작위라고까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신세타령을 보면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
「저는 이 세상에 가장 행복된 사람 중에 하나라고 믿어요. 제 소원은 완전히 성취되었으니깐요... 선생님 곁에서 거진 반생이나 보낼 수가 있었으니깐요. 제 만족은 완전해요. 제게는 이 이상의 소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구나 북간도에서 온 뒤에 십여 년간은 저는 완전한 기쁨 속에서 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러 갔는지도 몰라요. 앞으로 더 소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제가 죽기까지 선생님 곁에 모시는 거야요.」
순옥의 이 말은 바로 사랑을 말한 것이다. 모든 곤욕을 치르면서도 안빈을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의 물질적 이해관계와 육체적 욕망을 초월한 이상주의적 사랑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광수가 제시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 작품해석 : 이병렬(작가. 숭실대학교 강사) |